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는 1963.12.6. 제정된 의료보험법을 시발점으로 여러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의 건강보험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전국민의료보험 달성 소요기간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인 1963년 의료보험법 제정부터 1989년의 지역의료보험 확대로 전국민의료보험이 달성된 해까지로 치면 26년, 직장건강보험이 실시된 1977년부터 1989년 해까지로 치면 12년이 걸렸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전국민의료보험 확대까지의 100여년, 일본의 전국민의료보험 달성까지의 36년이라는 기간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빠른 성과였다.

정부 수립직후 1948.9.30. 국회에서 이범석 국무총리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대독한 시정방침을 통해 의료보험의 시행을 최초로 국가정책의제로 등장시켰다. 집권 내내 비록 시행은 못하였지만 농민·노동자 생활향상을 위한 국정과제로 제시하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학계에서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의 가능성, 타당성을 검토한 것으로 처음 기록된 것은 1956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양재모 교수에 의한 '서울시민의 상병 및 의료에 관한 종합적 연구'이다.

박정희 의장의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한 1963.12.16. 의료보험법이 제정되기 이전에서의 건강보험의 입법화는 제1공화국 제3대 이승만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59.10. 보건사회부 의정국 주관 하에 결성되었던 '건강보험도입을 위한 연구회' 발족을 그 효시로 볼 수 있다.

1961년 5.16으로 붕괴되기 직전 장면내각의 당시 보건사회부 의정국장인 이용승이 1961.1.8.자 의사신문에서 처음으로 의료보험제도의 시행계획을 대외적으로 발표한바 있다.

▴1963년 박정희 의장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상임위원회회의 주재 장면

◎ 박정희 의장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료보험법 제정(1963.12.16.) 및 그 진행과정

1960년 4.19 혁명으로 동년 4.26. 이승만 정부(1948.7.24.~1960.4.26.)의 제1공화국이 붕괴된 후 등장한 허정 과도정부(1960.4.27.~1960.6.15.)를 거치고 1960.8.13. 대통령 윤보선(1960.8.13.~1962.3.22.)·국무총리 장면 내각(1960.8.19.~1961.5.20. 사직)의 제2공화국 하에서 경제 및 사회발전을 위한 각종 개혁이 구상되었으나, 당시 여당인 민주당 신·구파간 갈등, 내각제 체제에서의 대통령과 내각 두 권력의 충돌과 대립, 내각제 통치체제의 부정립으로 인한 국정불안정,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대졸실업 등 전반적인 정치·사회적 불안정 속에 추진력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결국 1961년 박정희 소장의 5.16을 불러일으켜 집권 9개월 만에 붕괴되고 말았다.

1961년 5.16 이후 6.6.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이 시행되고, 이에 근거해 최고권력기구인 국가재건최고회의(1961.5.19.~1963.12.16.)가 구성된 후, 장도영 중장(당시 육군참모총장)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초대의장(1961.5.18.~1961.7.3.) 겸 내각수반(1961.5.20.~1961.7.3.)을, 박정희 소장이 부의장을 맡았다. 이어 5.20. 장면 총리가 사직하게 되면서 장면내각이 무너지게 된다.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제2기 의장(1961.7.3.~1963.5.20.) 박정희 소장(1961.8.10. 육군중장|1961.11.1. 육군대장)의 군정(軍政)체제가 지속된다.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은 1963년 말 민정이양을 앞두고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을 국민에게 약속하고, 박정희 의장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지원 하에, 당시 송요찬이 내각수반(1961.7.3.~1962.6.15.|전임 내각수반 장도영)으로 재임하던 1962년 사회보장에 관한 연구와 조사를 보장하는 각령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규정(1962.2.20. 제정~1996.7.13. 폐지)이 제정되고, 이에 근거해 보건사회부장관 소속하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의료보험법의 기초를 담당할 기구인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같은 해 1962.3.22. 윤보선 대통령의 하야로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1961.7.3.~1963.5.20.)  박정희 대장이 대통령 권한대행(1962.3.24.~1963.12.16.)을 겸임하게 되고, 이후 내각수반(1962.6.18.~.1962.7.9.)까지도 겸하게 된다. 이후 김현철 경제기획원장관(1962.6.18.~1962.7.10.)이 1962.7.10.~1963.12.16.까지 내각수반을 역임하게 된다.

☞ 내각수반(1961.9.18.~1964.5.25.까지 사용)

더보기

'내각수반'이라는 말은 1949.8.12. 국가공무원법이 제정되면서 1961.9.18. 2차 개정 전까지 사용했던 '국무총리'라는 말을, 이 법이 2차 개정된 1961.9.18.부터 1964.5.26. 6차 개정 전까지의 시기동안 사용되었던 말이다. 즉 박정희의 5.16이 일어났던 해인 1961.9.18.부터 제3공화국 제5대(1963.12.17.~1967.6.30.)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절 초기이던 1964.5.25.지 이 말이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1964.5.26. 공무원법 6차 개정부터는 다시 '국무총리'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또 하나는 박정희의 5.16 이후 제정된 국가재건비상조치법(1961.6.6. 제정~1963.12.17. 제3공화국 제5대 대통령 임기와 함께 효력 상실)에 의해 1960.11.29. 개정된 당시의 제4차 개정헌법에 규정된 정부 행정권을 가지게 되는 국무원과 그 조직인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을 각각 내각·내각수반·각원으로 명명하고, 내각수반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임명하고, 각원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승인을 얻어 내각수반이 임명하고, 각원의 수는 10인 이상 15인 이내로 하는 등의 여러 규정을 신설했다. 이곳에서도 이렇게 내각수반이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했다.

박정희 대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던 1962.12.26. 제3공화국(1963.12.17.~1972.12.26.) 첫 박정희 정부에서 적용되는 제5차 헌법이 전면 개정되고, 이 헌법 제30조와 제31조에 사회보장의 증진과 국민보건 향상에 관한 국가의 보호 조항을 신설하면서 의료보험 제도의 도입에 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게 된다.

관련 글
대한민국헌법의 개정 과정(헌법 전문·대통령 임기 등의 변화)
국민발안권 헌법 개정 규정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나?

1962.7.28.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겸 내각수반인 박정희의 '사회보장제도 확립'이라는 지시각서가 내각에 내려가고, 그 결과 김현철 내각 마지막 해인 1963.9.20. 사회보장에관한법률안이 발의되어 1963.11.5. 제정(법률 제1437호)되었다.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기존의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규정을 1963.12.16. 폐지하고 대체 제정된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규정에 의해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는 사회보장심의위원회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이후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고 정부형태가 대통령제로 바뀌면서 동 규정은 1970.2.5. 대통령령인 사회보장심의위원회규정으로 명칭이 변경된다.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에 의해 마련된 의료보험법안이 1963.12.11. 국가재건최고회의 상임위원회 심의를 거쳐  수정가결되고, 1963.12.13. 정부에 이송되어 1963.12.16. 박정희 대통령권한대행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의해 공포번호 1623호로 공포(醫療保險法 법률 제1623호)되었다. 이때의 내각수반은 김현철, 주무부처인 보건사회부 장관은 정희섭(제9대 1961.7.7.~1963.12.16.)이었다. 의료보장제도가 이승만 정부의 국정의제로 상정된 1948.9.30.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의료보험법의 제정은 지금까지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였던 학자 및 전문가 및 '건강보험제도도입을 위한 연구회'의 연구결과를 기초로 하여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가 주도하여 기초하게 된 것이다.

1963.12.16. 폐지·제정된 각령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규정 제4조에 의해 사회보장심의위원회의 직무를 의료급여에 관한 사항, 노령급여에 관한 사항, 산업재해보상에 관한 사항 등을 조사 심의하도록 규정하면서 본격적인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고,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에 관한 연구가 검토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가 기초한 의료보험법안은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 대해 강제적용하는 사회보험방식의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을 구상한 것이었다. 동 법안의 초안대로 보건사회부에서 정부안으로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상정하였다. 그러나 내각회의 심의과정에서 강제적용 조항이 임의 적용으로 바뀌었다. 당시의 시대상황에서는 의료보험을 강제적용하기에는 아직 사회보험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 없었고, 빈곤한 국가에 의료보험제도 실시를 위한 기금 갹출 능력은 미흡한 시기였고, 의료보험에 이해를 가질 만한 사회집단이나 정당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논거가 제시된다. 1960년 당시 국제노동기구(ILO)는 임금생활자가 전체 근로자의 50%선으로 올라가기 전에는 섣불리 전국적인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한국의 국제노동기구(ILO) 가입현황 등

위의 같은 날인 1963.9.20. 내각은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보상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의 일종인 산업재해보상보험법안도 함께 발의하였는데, 10.8. 국가재건최고회의 상임위원회를 통과하고 11.5. 박정희 대통령권한대행에 의해 공포번호 1438호로 공포(産業災害補償保險法 법률 제16272호)되어 다음해인 1964.1.1.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4대보험 중 하나인 산재보험이 적용되고 있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다. 이렇게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 및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의료보험법 등의 제정으로 인해 사회보장제도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각종 비상조치들이 시행되었던 1961년 첫 해에는 장기적 정책방안이 제시되지 않았으나, 이듬해인 1962년부터는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때 국가적 차원에서 사회보장에 관한 각종 정책 및 제도들이 도입돼 시행되었다. 뒤를 이은 박정희 대통령의 제3공화국은 농어민에 대한 고리채 정리, 부정축재자 정리, 생활기풍 확립 등 많은 사회개혁 조치와 경제발전을 위한 조치를 국가 주도로 강력히 추진하였다. 이와 더불어 의료보장에 있어서도 획기적 계기를 마련했다.

박정희 소장의 1961년 5.16.군사혁명 이후 1963.12.17.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출범한 제3공화헌정 체제에 이르기까지의 국정공백기간(군정기간) 동안 국가재건최고회의 아래 구빈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장법이라 할 수 있는 생활보호법(1961.12.30. 제정~1999.9.7. 폐지)|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규정(1962.2.20. 제정~1996.7.13. 폐지)|군인연금법(1963.1.28. 제정~현재)|사회보장에 관한 법률(1963.11.5. 제정~1995.12.30. 폐지)|산업재해보상보험법(1963.11.5. 제정~현재)|의료보험법(1963.12.16. 제정~1999.2.8. 폐지) 등이 제정되었다.

이들 각 법률과 목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생활보호법(1961.12.30. 제정~1999.9.7. 폐지)

1961년에는 구빈정책의 일환으로 노령, 질병 기타 근로능력의 상실로 인하여 생활유지 능력이 없는 사람의 보호와 방법을 규정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장법이라 할 수 있는 생활보호법이 제정되었다.

더보기

1961년 생활보호법에 의거 국가 재정으로 생활무능력자 및 저소득층에 대한 진료를 보장하기 위하여 시작된 의료보호제도는 공적부조(public assistance) 형태의 사회보장제도로서 1977.12.31. 법률 제3076호로 의료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더욱체계적이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동법에 정한 의료보호의 내용은 “진찰, 처치·수술 및 기타의 치료, 약제 또는 치료재료의 지급, 의료시셜에의 수용, 간호, 이송, 기타 의료목적의 달성을 위한 조치, 분만”으로 하고 있으며, 그 세부적인 방법·절차·범위·수가기준파 계산방법 등은 복지부장관이 「의료보호의기준」 으로 별도 고시하고 있다.

1978.12.6.에는 의료보호법을 제1차 개정하여 의료보호기금을 설치하였으며,1986년에는 의료보험과 의료보호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사각지대의 저소득층에대하여 1993년말까지 별도 의료부조를 실시함으로써 시혜대상을 확대하였다.

그 후 1991년 3월 분만보호 실시, 1993년 1월 한방의료보호 실시 등 보호범위가 점차 확대되었고, 의료보호기간을 의료보험 요양급여기간과 같이 연간 180일에서 1995년부터 매년 30일씩 연장하여 1999년에 330일, 2000년에는 연중 365일 동안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제도 초기에는 보호대상자의 진료비 전액을 국가에서 부답하였으나, 남수진 방지를 위해 1994년 1월부터 의료보호 2종대상자의 1차진료시 방문당 1천원의 본인일부부담금을 신셜하였다. 또한 의료보호 2종대상자 중 특정 만성질환자(만성신부전 환자의 인공신장투석·복막투석, 혈우병, 고셔병)에 대하여 장기진료로인한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경감시켜 주기 위하여 1999년 7월부터 종전에 2차진료기관에서 외래진료시 총진료비의 20%를 정률로 본인부담하던 것을 1차진료기관에서의 진료시와 동일한 수준으로 낮추었다.

의료보호의 기준에 있어서는 1977.10.1. 최초 고시시부터 의료보험 비급여대상인 식대 및 안치료를 급여대상으로 인정하였고 1978년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액수가를 고시하였으며, 1982년에는 보건기관에서의 진료를 인정하였다. 그리고,1990.1.1.부터는 드디어 의료보험 진료수가와 동일한 진료수가를 적용하게 되었으며, 6.1부터 정신질환자에 대한 외래수가는 예외적으로 정액 포괄수가를 적용토록 하였다. 1997.1.1.에는 진료행위에 대한 진료기관종별 가산율을 신셜하였고(의료보혐의 1/3수준), 1998년부터 동 종별 가산율을 의료보험 요양기관 종별 가산율의 1/2수준으로 상향조정하였다. 1999.10.10.에는 의료보호법 및 시행령의 개정(1999.7.1. 시행)에 따라 관련규정 및 의료보호기준을 조문형식으로 전면개정, 정비하였다. 1999.11.15.에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외래 진료수가를 방문당 정액수가와 1일당 투약비로 분리하여 청구토록 변경하였고, 입원에 있어서도 입원기간에 따른 차등수가 적용 및 민간위탁 공립병원 입원수가 신설, 낮 병동수를 별도 신셜함으로써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액수가체계를 합리적으로 정비하였다. <의료보험의 발자취 추록자료집 1997~2000.3. p182>

▪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규정(1962.2.20. 제정~1996.7.13. 폐지)

보건사회부장관의 자문에 응하여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사항을 조사심의하게하기 위하여 보건사회부에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하는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규정이 제정되었다.

▪ 군인연금법(1963.1.28. 제정~현재)

군인이 상당한 기간 동안 성실히 복무·퇴직하였거나 심신의 장애로 인하여 퇴직 또는 사망한 때에 본인이나 그 유족에게 적절한 급여를 지급하기 위한 목적 하에 군인연금법이 제정되었다.

▪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1963.11.5. 제정~1995.12.30. 폐지)

국민의 사회보장에 의한 제급여와 무상으로 행하는 공적부조 등 사회보장제도의 확립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이 사회보장에 관한 중요사항에 대한 자문에 응하게 위하여 보건사회부장관소속하에 사회보장심의위원회를 두고, 보건사회부장관이 사회보장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고자 할 때에는 미리 이들 위원회의 자문을 거치도록 했다.

▪ 산업재해보상보험법(1963.11.5. 제정~현재)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보상함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제정되었다. 산재보험이 1964.7.1.부터 급여가 실시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 외국 민간 원조단체에 관한 법률(1963.12.7. 제정~2016.2.3. 폐지)

그 본부가 외국에 있고 그 본부의 지원으로 국내에서 보건사업·교육사업·생활보호·재해구호 또는 지역사회개발 등의 사회복지사업을 행하는 비영리적인 사회사업기관으로서 그 사업자원이 외국에서 마련되고 실질적으로 외국인에 의하여 운영되는 국내에서의 외국민간원조단체의 등록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마련하여 사회복지사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목적으로 이 법이 제정되었다.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까지 외국의 종교 및 원조단체에 의해 일정한 체계 없이 이루어지던 구호사업도 1963년에 제정된 이 법에 따라 비로소 정부의 계획과 통제아래 놓이게 되었다.

▪ 의료보험법(1963.12.16. 제정~1999.2.8. 폐지)

근로자의 업무외의 사유로 인한 질병·부상·사망 또는 분만과 근로자 부양가족의 질병·부상·사망 또는 분만에 관하여 보험급여를 함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보험법이 국가재건최고회의 발의로 1963.12.16.  제정되었다. 의료보험법이 제정되어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강제가입이 아닌 임의 적용방식이었다. 이후 아래와 같이 개정작업을 통해 사업장별로 강제가입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박정희] 의료보헙법 개정의 변천 과정·국민의료보험법·국민건강보험법

▪ 1970.8.7. 제1차 의료보험법이 개정되어 근로자, 공무원, 군인 등을 강제보험 적용 대상으로 하였으나, 제반 여건상의 어려움으로 오랫동안 시범사업으로만 운영되었다.

▪ 의료보험제도가 국민을 상대로 제대로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법이 제정된 지 14년만인 1976.12.22. 제2차 의료보험법이 전면 개정되면서부터이다. 이때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에 대하여 최초 강제 적용되는 직장의료보험제도가 처음 실시되었다.

- 이때의 법에서는 공무원연금법(1960.1.1. 제정~현재)·군인연금법(1963.1.28. 제정~현재) 또는 사립학교교원연금법(1973.12.20. 제정·2000.1.12.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으로 명칭 변경~현재)의 해당자나 다른 법률에 의하여 의료보험에 가입된 자 및 생활보호법(1961.12.30. 제정~1999.9.7. 폐지)에 의해 보호를 받는 자와 그 세대에 속하는 자는 피보험대상에서 제외했다.

▪ 직장의료보험은 1979.4.17. 제3차 의료보험법 개정을 통해 그 강제가입 적용범위가 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등으로 확대되었다.

- 이때의 법에서는 군인연금법(1963.1.28. 제정~현재)의 해당자나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의료보험법(1977.12.31. 제정~1997.12.31. 폐지) 기타 다른 법률에 의하여 의료보험에 가입된 자 및 의료보호법(1977.12.31. 제정·2001.5.24. 의료급여법으로 명칭 변경~현재)에 의해 보호를 받는 자(의료보호대상자)는 피보험대상에서 제외했다.

▪ 1981.4.4. 제4차 의료보험법 개정을 통해 직장의료보험은 1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등으로 강제가입 적용범위가 확대되었고, 지역의료보험은 일단 1차로 1981.7.1. 강원 홍천군, 전북 옥구군, 경북 군위군|2차로 1982.7.1 경기 강화군, 충북 보은군, 전남 목포시를 대상으로 하여 시범사업이 실시되었다.

▪ 1984.12.1.~1986.11.30.까지 충북 청주시·청원군을 대상으로 한방의료보험 시범사업이 실시되었고, 1987.2. 전국적으로 한방의료보험을 확대실시했다.

▪ 1984.12.31. 제6차 의료보험법 개정을 통해 직장의료보험은 16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등으로 강제가입 적용범위를 확대했다.

- 이때의 법에서는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의료보험법(1977.12.31. 제정~1997.12.31. 폐지)에 의하여 의료보험에 가입된 자 및 의료보호법(1977.12.31. 제정·2001.5.24. 의료급여법으로 명칭 변경~현재)에 의해 보호를 받는 자(의료보호대상자)는 피보험대상에서 제외했다. 단,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의료보험법에 의한 연금수급자가 이 법에 의한 의료보험의 피보험자로 될 수 있을 때에는 이 법에 의한 피보험대상이 되도록 했다.

▪ 1987.12.4. 제7차 의료보험법 개정을 통해 직장의료보험은 5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등으로 강제가입 적용범위를 확대했다.

- 이때의 법에서는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의료보험법(1977.12.31. 제정~1997.12.31. 폐지)에 의하여 의료보험에 가입된 자 및 의료보호법(1977.12.31. 제정·2001.5.24. 의료급여법으로 명칭 변경~현재)에 의하여 의료보호를 받는 자(의료보호대상자), 국가유공자예우등에관한법률(1984.8.2. 제정~현재)에 의하여 의료보호를 받는 자(단 이 법에 의한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고자 하는 자는 그러하지 아니함)는 피보험대상에서 제외했다. 단,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의료보험법에 의한 연금수급자가 이 법에 의한 의료보험의 피보험자로 될 수 있을 때에는 이 법에 의한 피보험대상이 되도록 했다.

또 기존의 보험가입 대상 당연적용피보험자, 임의적용피보험자 2가지 유형에서 임의계속피보험자 부분을 추가해 3가지 유형이 되었다.

노태우 정부에서 통합의료보험 법안인 국민의료보험법안이 발의되어 1989.3.9. 국회를 통과했으나, 노태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재의결을 요청했으나, 당시 야당의 재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의결되지 못하다가, 1992.5.29.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법안이 자동 폐기되었다.

관련 글 참고 1989년 노태우 정부의 국민의료보험법안의 발의·의결·폐지까지의 과정

▪ 국민 모두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그 혜택을 받게 된 것은 1989년부터이다.

- 지역의료보험은 1988.1. 농어촌지역의료보험(군지역주민 당연적용)이 실시되고, 1989.7. 도시지역의료보험(도시지역주민 당연적용)으로 확대 적용되면서 의료보험제도 도입 후 12년 만에 전국민의료보험이 달성(임의조항인 직종조합은 해산되어 지역의료보험을 적용받게 됨)되었다. 지역주민(1988년)이 도시자영자(1989년)보다 먼저 의료보험이 실시된 것이다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 가입이 실시된 후 의료보험은 제1종 직장의료보험, 제2종 지역의료보험,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 의료보험으로 구분되었고 직장·지역 의료보험은 의료보험조합,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 의료보험은 의료보험관리공단에서 담당하였다.

▪ 의료보험은 이후 10여년간 그 관리체계를 손질하여 1998년 10월 지역의료보험조합과 공무원·교원 의료보험공단을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으로 통합하였고, 2000년 7월부터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139개 직장의료보험조합이 단일조직으로 통합되어 '의료보험'은 '건강보험'으로 개칭되었다.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로 인해 직장조합별로 달랐던 보험료 부과체계가 단일화되었고 병·의원의 진료비 청구 심사평가 업무를 맡던 '의료보험연합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변경되었다. 이전까지 분리해서 관리해 온 의료보험 재정은 재정통합이 단계적으로 실시되었으며, 2011년 1월에는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징수가 통합되었다.

약국의료보험은 1989.10.1.부터 실시되었다.

▪ 1994.1.7. 제8차 의료보험법 개정을 통해 기존의 피보험대상자 구분을 모두 없애고, 기존의 직종의료보험을 폐지하고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만 유지하도록 했다. 직장피보험자는 당연적용피보험자 대상 사업장의 근로자가 되고, 지역피보험자는 직장피보험자와 그 피부양자를 제외한 자가 된다.

또 기존의 보험가입 대상 당연적용피보험자, 임의적용피보험자, 임의계속피보험자 3가지 유형에서 임의적용피보험자를 폐지하고 당연적용피보험자와 임의계속피보험자만 유지하도록 했다.

▪ 1997.12.31. 제13차 의료보험법 개정을 통해 직장피보험자와 지역피보험자를 모두 폐지하고, 이에 따라 기존의 보험가입 대상 당연적용피보험자 부분을 없애고, 임의계속피보험자만 유지하도록 했다.

▪ 김영삼 정부 말기이던 1997.12.31. 국민의료보험법이 새로이 제정되었다.

▪ 김대중 정부의 1999.2.8. 의료보험법과 국민의료보험법 2개의 법률이 모두 폐지되고, 대신 아래의 설명과 같이 1999.2.8. 각 의료보험을 통합한 국민건강보험법이 제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의료보험통합일원화 과정

1977년의 의료보험에 있어서의 큰 관심사는 누가 보험자가 되어 관리 운영하느냐의 문제였다. 즉 보험가입자가 치료를 받고 그로부터 발생한 진료비를 대신 지불하는 제3자가 누가 되느냐의 문제이다. 공적의료보험에서의 보험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정부 또는 이에 준하는 공법인이 단일보험자로 전국을 통괄하여 보험재정을 조성하여 발생하는 진료비를 지불하여 주는 단일보험자 방식이 그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직종별 또는 지역별로 다수의 보험자조직을 설립하여 개개의 보험자가 급여를 하는 다보험자 방식으로 운영하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의료보험법 제정에서 김대중 정부의 국민건강보험법 제정까지의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1963.12.16. 의료보험법 제정 → 김영삼 정부 1997.12.31. 국민의료보험법 제정 → 김대중 정부 1999.2.8. 의료보험법·국민의료보험법 2개 법률 각각 폐지 통합한 국민건강보험법 제정(현재)

1963.12.16. 제정된 의료보험법에 의한 의료보험은 제도 초기부터 일관되게 정부가 아닌 지역의료보험조합들이 운영하는 다보험자 방식(조합주의 방식)으로 운영이 되었다.

1997.12.31. 제정된 국민의료보험법에 의해 1998.10.1. 227개 지역의료보험조합과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의료보험관리공단(공교공단)이 통합해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1차 통합)이 출범했다. 이로써 그동안 다수보험자방식(조합주의 방식)의 의료보험제도에서 통합주의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이어 1999.2.8. 제정된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해 2000.7.1.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139개 직장의료보험조합이 조직통합(2차 통합)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출범했다. 단일보험자 방식으로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관리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보건복지부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다.

이후 2001.1. 직장건강보험과 공교건강보험의 1차 재정통합(3차 통합)이 이루어졌다.

이후 2003.7. 지역과 직장건강보험의 2차 재정통합(4차 통합)을 통해 완전한 재정통합이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은 갑오경장 이후 1895년 설립된 대조선보험회사가 1897년 6월 함경도에서 발행한, 사람이 아닌 소를 보험계약 대상으로 한 일종의 가축보험인 우(牛) 보상보험이다.

관련 글
[박정희 의료보험법 등] 역대 대통령 의료복지 관련 법률(국민의료보험법·국민건강보험법 등)
박정희의 의료보험제도 등에 대한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