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와 1945.8.15. 광복 그리고 일본과의 단교, 1950 6.25전쟁 발발, 1951.10.20. 재일본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중재로 이승만 정부에서의 국교정상화 등을 위한 한국의 양유찬 대표와 일본의 슌이치간의 도쿄에서의 제1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시작, 1952.2.15.~4.21. 제1차 본회담에서 이후의 제4차 회담까지, 장면 내각에서의 제5차 회담, 윤보선 말기와 박정희 정부 초기시절까지 진행된 제6차 한일회담과 이후의 1965.6.22.까지 7차례의 본회담이 진행되었다. 

이 제7차 회담의 1965년 6월 22일 일본 동경에서 국교정상화에 관한 제협정이 정식으로 조인되고, 다음 날인 23일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회담 타결에 대한 대통령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게 된다.

특별담화 전문 [한일국교정상화]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회담 타결에 즈음한 특별담화문

1965.6.23. 박정희 대통령은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한일협정 조인에 대해 국민의 협조를 당부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 1965.6.23. 박정희 대통령은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한일협정 조인에 대해 국민의 협조를 당부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이와 같이 제7차 회담의 진행 끝에 마침내 1965년 6월 22일 동경의 일본 총리 관저에서 국교정상화 등을 위한 한일기본조약인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부속서류로 4개의 협정 및 25개의 문서로 이루어짐)이 서명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같은 해 12월 18일에 발효되었다. 이로써 지금까지 단절되어 왔던 양국간의 국교가 비로소 정상화되었다.

▲ 1965.6.22. 일본 총리관저에서 한국 정부 이동원 외무부장관과 일본 정부 시이나 외상이 4개협정과 25개 문서로 구성된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조인식을 거행했다.

한일기본조약에 부속된 4개의 협정(아래) 중 약칭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불리는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의 내용은 일본이 한국에 대해 10년에 걸쳐서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지원하고, 2억 달러의 정부차관을 장기 저리로 지원하는 것이었다. 또 한국에 대해 조선에 투자한 자본과 일본인의 개별 재산 모두를 포기하고, 한국은 대일 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 바로보기 [한일기본조약]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조약 163호)

1.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약칭 한일청구권협정)(조약 제172호)」

- 서명일: 1965년 6월 22일 

- 발효일: 1965년 12월 18일

▶바로보기 [한일청구권협정]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2.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조약(조약 제164호)」

- 서명일: 1965년 6월 22일 

- 발효일: 1966년 1월 17일

▶바로보기 [한일기본조약]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조약 제164호)

3.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어업에 관한 협정(조약 제166호)」

- 서명일: 1965년 6월 22일 

- 발효일: 1965년 12월 18일

▶바로보기 [한일기본조약]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어업에 관한 협정(조약 제166호)

☞ 1965년의 협정을 1차 협정, 1998년의 협정을 2차 협정이라 하며, 1998년 협정을 이전의 것과 구분하기 위하여 '신한일어업협정'이라 부른다.

4.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81호)」

- 서명일: 1965년 6월 22일 

- 발효일: 1965년 12월 18일

▶바로보기 [한일기본조약]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81호)

이 제7차 회담의 양국 실무 책임자는 한국 측 이동원 당시 외무부장관, 일본 측 시이나 에쓰사부로 외무대신이 맡아 진행하였다. 이렇게 타결된 한일기본조약 아래에서 이루어진 이와 같은 한일청구권 협상금액은 제6차 한일회담에서 아래의 1962.11.12. 김종필 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외상 간의  청구권 협상 금액에 대한 무상 3억불, 차관 2억불, 수출입은행에서 1억불 이상 등의 타결안에 관해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고, 이 제7차회담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기초로 교섭을 진행하여 무상 3억 달러, 정부차관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이상, 어업협력 9천만 달러, 선박 협력 3천만 달러 등의 금액과 제공기간(10년), 정부차관 금리(3.5%)와 상환기간(7년 거치 포함 20년) 등의 조건에 합의하게 된 것이다.

1965.6.22. 한국측의 이동원 외무장관과 일본측 시이나 외상이 참석한 가운데 양국 관련 대표가 한일기본조약을 조인하고 있다.

▲ 1965.6.22. 한국측의 이동원 외무장관과 일본측 시이나 외상이 참석한 가운데 양국 관련 대표가 한일기본조약을 조인하고 있다.

※ 참고 : 아래의 1965년 당시 1,332억원(5억 달러) 2018년 현재의 화폐가치로 계산해 보면 5조원(45억 달러)에 상당함(37.954배).

■ 대일 청구권자금(10년간 분할제공 총 5억 달러 = 1,800억 엔; 65년 당시 환율로 1,332억원)

무상 3억 달러(1,080억 엔; 65년 당시 환율로 799억2천만원☜ 협정 효력발생일(1965.12.18)로부터 10년간 분할제공

- 이 무상자금 금액 중에서 협정 당시 우리나라의 일본국에 대한 채무(1961년까지의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 4,573만 달러(정확히는 4,572만 9,308.08달러; 164억 6,280만 엔)를 같은 기간(10년간 분할변제)에 걸쳐 무이자로 상계(相計)하도록 하였다. ☞ 상계 후 금액: 2억 5,427만 달러(915억 3,720만엔)

▸정부차관 2억 달러(720억 원엔; 65년 당시 환율로 519억4,800만원) ☜ 금리 연 3.5%, 7년 거치 13년 상환(7년 거치 포함 20년) → 10년간에 걸쳐 2억불 상당의 산업시설과 기계류 등을 공공차관으로 7년 거치 13년 분할상환, 연리 3.5%로 제공하기로 함.

※ 10년간에 3억달러(1080억엔) 무상공여, 2억달러(720억엔)의 유상급부. 민간차관 3억달러(1080억엔)

■ 민간 신용 제공 3억 달러(1,080억 엔; 65년 당시 환율로 479억5,200만원이상

• 민간 상업차관 1억 8천만 달러(648억 엔; 65년 당시 환율로 799억2천만원수입대체산업, 수출산업 및 중소기업 육성에 우선 배정

▸어업협력기금 9천만 달러(324억 엔; 65년 당시 환율로 239억7,600만원낙후된 수산업 발전과 국제경쟁력 배양을 위한 어업 장비, 기자재 및 그 생산시설과 수산가공설비 도입

▸선박도입자금 3천만 달러(108억 엔; 65년 당시 환율로 79억9,200만원중형 수송 선박 건조에 필요한 장비, 기자재 및 긴급을 요하는 선박 도입

 청구권자금의 연차별 사용 내역 (단위: 천 달러, %)

■ 기타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협력 자금 지원

- 위 청구권경제협정에 따른 지원 외에도 한국 측 요청에 따른 자금 총 6,746억 엔(18억 7,300만 달러; 65년 당시 환율로 4,992억원) 지원

① 신규 엔(円) 차관6,455억 엔 = 17억 9,300만 달러(1990년도 종료)

② 무상자금협력 약 47억 엔 = 1,300만 달러(1990년도 종료)

③ 기술협력 약 244억 엔 = 6,700만 달러(2001년도 종료)

김종필·오히라 회담 (1962.11.12)

[1962.11.21] 김종필-오히라 메모 회담 당시의 김종필 중앙 정보 부장과 오히라 일본 외무 대신

▲ [1962.11.21] 김종필-오히라 메모 회담 당시의 김종필 중앙 정보 부장과 오히라 일본 외무 대신

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2년 7개월 전인 1962.11.12.에 대일청구권 해결 방안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과 일본 외무대신 오히라 마사요미가 논의를 진행한 끝에, 일본은 한국에 3억 달러 무상제공, 공공차관 유상 2억 달러, 수출입은행 차관 1억 달러 도합 6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합의하고, 이 결과를 양국 수뇌에게 건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김종필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후일 해석의 차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 회담 결과를 메모형식(아래)으로 담게 되었는데, 이것을 후일 김종필-오히라 메모사건이라 불리게 되었고, 이 메모는 40년간 비공개되었다가 외교통상부가 2005.1.17. 전격 공개하면서 결국 모두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1962.11.21] 김종필-오히라 메모(2005.1.17. 외교통상부 공개)

▲ [1962.11.21] 김종필-오히라 메모(2005.1.17. 외교통상부 공개)

같이보기 [전쟁배상] 일본의 동남아국가에 대한 전쟁 배상·보상금액(버마·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 등)

■ 이하 1965.06.22. 체결된 조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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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7차 한일회담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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