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05
현재 우리나라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공헌한 이들을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그들의 충의와 위훈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국립묘지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 국립호국원 그리고 4·19, 3·15, 5·18 민주묘지로 구분된다.
현충원의 경우 대통령 등 국가 고위직 대상이나 ‘국가장’으로 장례된 사람, 순국선열, 애국지사 등이 주요 안장대상자다.
더불어 무공수훈자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한 전상·공상·전몰·순직 군경, 장관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복무 군인 등이 안장된다.
대한민국에 현충원이 두 곳이 있다. 서울 동작동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역사로는 대전현충원보다 24년 빠르다. 1955년 7월 15일에 설립이 됐고 대전은 1979년 8월 25일에 설립됐다.
▲국립서울현충원
서울현충원은 안장기수가 5만4400기이고 대전현충원은 7만5800기이다. 그런데 현충원의 공통적인 요소는 서울이든 대전이든 1895년 국모인 명성황후가 시해된 날이 있었다. 바로 10월 8일이고 음력으로는 8월 20일이다. 이때서부터 의병운동이 일어났다. 일제 제국주의에 항거해서 1905년도 을사늑약으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실질적으로 국권을 빼앗기다 시피 했다.
1910년도 나라는 기울게 되고 이럴 때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 이분들 안장된 분들이 3270여분 된다. 그리고 이곳에 민족사에 가장 최대 비극이라 할 수 있는 6.25전쟁, 그 숫자로 증명해 보이면 우리 현충탑은 국립대전현충원의 센터에 있다. 그 현충탑에 4만1100여분을 위패로 모시고 있다.
▲국립대전현충원
그 분들 전부 시신도 못 찾는 6.25전쟁 중 산화 하신 분들이다. 그리고 또 국가의 부름에 따라서 월남전에 파병이 되신 분들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1964년 7월 18일부터 8년8개월 5일 1973년 3월 23일까지이다.
월남전이 패망한 날은 1975년 4월 30일이지만 우리는 미국과 더불어서 조금 일찍 철수 했다.
그때 파병된 숫자가 31만2853명인데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많은 분들이 전몰, 전사, 무공 세우신 분들이 많이 계신다. 또 천안함 용사들, 연평도 포격전, 2002년 연평해전의 용사들, 경찰관 4700여명, 소방관, 독도의용수비대, 의사상자, 국가사회공헌자 등 여러분들이 계신다. 국가원수 가운데 최규하 전 대통령도 계신다.
호국원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전상·공상·전몰·순직 군경에 더해 참전유공자와 10년 이상 장기복무 제대 군인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 국립이천호국원
▲ 국립영천호국원
▲ 국립임실호국원
▲ 국립산청호국원
국립호국원(National Cemetery)은 만장되어가는 국립현충원을 대체하고 더 많은 대한민국의 국가유공자를 안장하려는 취지에서 재향군인회가 국가보훈처로부터 위임을 받아 운영을 하다가 국가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마지막 공간을 국가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2006년 1월 30일에 국립묘지로 승격되었고 2007년 1월 1일부터 국가보훈처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
호국원은 50만 명에 이르는 한국전쟁 참전유공자들에게 안장혜택을 주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보훈연금을 받고 있는 전·공상자를 제외하고는 국가 차원의 보훈혜택이 없었고, 또 안장자격과 수용 능력의 한계로 대부분 참전유공자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었다. 그래서 참전유공자분들을 위한 묘소만큼은 국가에서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계속 터져 나왔다.
이에 국가보훈처에서는 지난 94년부터 '향군 참전군인묘지 조성사업계획'을 수립해 2001년 영천호국용사묘지, 2002년 임실호국용사묘지에 이어 2008년 이천에 야외봉안탑과 추모공원을 조성했다. 재향군인회에서 운영·관리해오던 경북 영천과 전북 임실의 호국원은 지난 2006년부터 '호국용사묘지'에서 '국립묘지'로 승격되었고, 명칭도 '국립호국원'으로 바뀌었다.
호국원과 현충원은 안장대상이 조금 다르다. 현충원은 한국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해 상이등급(1~7급)을 받거나 무공훈장을 받은 분들만 안장이 가능하지만 호국원은 참전한 사람은 누구나 안장될 수 있다.
경북 영천과 경기 이천, 전북 임실 등 총 3곳에 조성된 호국원에는 8월 현재 총 6만 1829명이 안장돼 있다. 호국원의 총면적은 영천호국원 36만 9000㎡, 이천호국원 30만 4355㎡, 임실호국원 10만 5000㎡이다.
현재 보훈처에 등록된 참전유공자는 37만3245명으로 이 중 6·25전쟁 참전유공자가 16만1930명, 베트남전쟁 참전유공자는 20만8172명이다.
두 전쟁 모두 참전한 유공자는 3143명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등록된 참전 유공자 외에 참전 사실이 확인된 유공자도 호국원 안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호국원은 경기 이천과 전북 임실, 경북 영천 등 3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국립이천호국원은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에 위치한 국립묘지이고, 국립영천호국원은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에 위치한 국립묘지, 국립임실호국원은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에 위치한 국립묘지이며 국립산청호국원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 위치한 국립묘지이다.
안장규모는 이천과 영천호국원이 약 5만 기, 임실호국원이 약 2만2300기에 이른다. 약 5만 기 규모의 산청 호국원이 내년 초 개원 예정이다.
10만 기 규모의 괴산호국원과 1만 기 규모의 제주호국원이 2017년 개원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 국립3·15민주묘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 소재 국립3·15민주묘지(國立三一五民主墓地)는 3·15부정선거 항거하다가 희생된 마산 시민들을 위하여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에 조성된 국립묘지이다. 2002년 8월 3·15성역공원에서 국립3·15묘지로 승격되었다.
1968년 마산시 구암동 애기봉에 1,200평 크기의 묘역을 만들고 1969년 1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3·15의거 희생자 묘 13기를 이장하면서 묘지가 조성되었다. 1998년 3월부터 3·15성역공원 조성공사가 시작되고 2003년 3월 15일 준공식이 열렸다. 준공에 앞서 2002년 8월 1일 대통령령 제17668호에 따라 3·15성역공원이 국립3·15묘지로 승격되었다. 국립묘지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6년 1월 30일부터 국립3·15민주묘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모두 4개 묘역에 80위를 안장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으며, 2006년 5월 현재 26위가 안장되어 있다. 안장대상은 3·15의거 때 사망자와 3·15의거 때 부상당한 뒤 사망한자, 3·15의거 유공건국포장 수상자로서 사망한자 등이다.
묘역은 쉬는 날 없이 매일 개방되지만 기념관의 경우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기념관 영상실에서는 3·15의거의 배경과 과정, 의미 등을 알리는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 국립5.18 민주묘지
국립5.18 민주묘지는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공원으로 5·18묘역이라고도 한다. 문민정부 출범과 더불어 5.18 민주항쟁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5.18 희생자 묘역을 민주 성지로 가꾸려는 움직임이 뜻있는 국민들로부터 일어났다. 광주광역시는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아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산34번지 165k㎡의 부지 위에 5.18묘지를 조성하였다.
묘역 안에는 5·18영령의 묘 333기(2002년 5월 현재)가 있으며, 건축물 7동(민주의 문, 유영봉안소, 역사의 문, 숭모루, 추념문, 관리동, 휴게실)과 역사공간, 민주광장, 참배광장, 전시공간, 상징조형물, 광주민주화운동추모탑, 7개 역사마당(의병, 동학, 3·1운동, 광주학생운동,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통일마당), 헌수기념비, 준공기념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5ㆍ18민주화운동추모탑
5ㆍ18 묘지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사각기둥인 탑신은 높이 40m로 우리나라 전통석조물인 당간지주를 현대감각에 맞게 형상화 했다. 탑신 가운데 감싸쥔 손 모양으로 중앙에 설치된 타원형 형상은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상징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광에 반사된 빛은 희망의 씨앗이다.
<관련 글 >
∙ 광주사태, '5·18민주화운동' 명칭으로 제정된 법률들과 그 재가(裁可) 대통령
∙ 유승민 부친 유수호는 왜 '5.18 특별법'을 반대했을까?
∙ 박지원·김동철 의원, 5.18 비판하면 징역 처하는 5.18특별법 조문신설
▲ 국립4.19민주묘지
삼각산(북한산) 기슭의 국립4.19민주묘지는 1960년 4.19 혁명 때에 희생된 224분의 합동 분묘로서, 이들을 기리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기념탑 중앙에는 의롭게 죽어간 이들을 기리는 탑문이 새겨져 있다. 135,901m²의 묘지 경내에는 소나무와 향나무, 주목과 단풍나무 등으로 아담하게 꾸며져 있으며, 1,652.9m² 규모의 기념관과 영정을 모신 유영봉 안소는 한식 목조건물이 330.58m² 규모로 확장되어 있다. 그 외에 상징문, 민주의 뿌리, 정의의 불꽃 등 조각 작품과 연못이 있으며, 보도블록을 예쁘게 깔아 놓은 산책로와 야외 의자도 있다. 벚꽃이 피는 5월, 공원에서 바라보는 삼각산(북한산)은 어머니 품과 같은 아늑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일몰의 풍경은 장관이다.
한편 이들 국립묘지는 대부분 국가보훈처가 운영하고 있고, 대전현충원은 2006년 국방부에서 보훈처로 운영권이 이양됐다.
이전에 재향군인회에서 운영하던 호국원 역시 2006년 보훈처로 관리주체가 변경됐다.
◈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위키백과 일부발췌
•아주경제 일부발췌
※참고할만한 글: <통일뉴스> “남북의 국립묘지를 찾아 역사화해를 모색하다”
<관련 글>
2019/03/01 - 국립묘지 안장·이장·합장 등에 대해
2019/02/28 - [국립묘지 안장 자격] 국립묘지 안장대상자의 구체적 자격요건(국립현충원·민주묘지·호국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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