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3.16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오직 한가닥 타는 가슴속/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시 「타는 목마름으로」)
386들은 술집에서, 서클룸에서, 때론 강의실이나 거리에서 노래를 참 많이도 불렀다 .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애절한 곡조의 노래를 부르며 울먹였고, 빠른 속도의 「농민가」에 맞춰 춤을 추며 집회를 시작했다 . 「아침이슬」은 그날 모임을 마칠 때 합창했던 애창곡이었다 .
노래는 386들에겐 삶의 일부였다 . 최루탄 냄새 매캐한 시위 현장, 혹은 고상한 어떤 자리, 엠티의 밤에도 언제나 노래는 함께였다 . 「메아리(서울대)」, 「노래얼(고려대)」 「울림터(연세대)」 등 각 대학 노래패들은 역사의식과 메시지를 담은 민중가요를 학원가에 속속 보급했다 . 학교 앞 주점 식탁은 소주와 막걸리를 들이킨 386들이 경쟁적으로 노래를 부르며 두드려댄 젓가락으로 성할 날이 없었다 .
80년대 노래운동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대 노래모임 「메아리」는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a tribute to 1977∼1996」이라는 음반을 지난달 제작했다 . 386을 주축으로 70∼90년대 학번 등 각계서 활동중인 100여명의 전직 회원들이 참여했다 . 이 음반에는 그동안 메아리 출신들이 만든 노래들(「그날이 오면」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등)과 공연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타는 목마름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 등) 14곡이 담겨 있다 . 안재권(32·수학과 87학번)씨는 『집회가 쉽지 않던 그 시절에는 메아리 공연 그 자체가 시위를 위한 기폭제가 된 경우가 많았다』며,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이 어깨를 걸고 교문으로 나가 시위를 했고, 우리도 노래를 마치고 시위대 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
386의 운동권 가요는 84년 전문 노래집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이 탄생하면서 전기를 맞는다 . 민중가요의 대중화가 시작된 것 .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사계」 등 유리알처럼 명징한 가사들을 담은 「노찾사」 2집은 89년 발매돼 80만장이 팔려나가 음반 시장을 뒤집어놓았다 . 이제 더이상 대학 운동권 가요는 대학생들만의 것이 아닌 때가 온 것 . 노찾사의 멤버 안치환(34·연세대 신학대 84학번)은 2집 앨범 성공으로 단번에 대중스타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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