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기소처분취소
(1995.1.20. 94헌마246 전원재판부)
【판시 사항】
1. 헌법소원심판청구로 인한 공소시효의 정지 여부
2. 헌법 제84조에 의하여 대통령 재직중에는 공소시효의 진행이 당연히 정지되는지 여부
3. 검사의 소추재량권의 성질과 한계
4. 검사가 기소편의주의에 따라 소추권을 행사함에 있어서의 참작사항
5. 이른바 12·12 사건에 대한 검사의 처분이 기소편의주의가 예정하고 있는 재량범위를 벗어난 것인지 여부
<이 청구사건의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하려면 다음 글 참고>
▸정승화 등의 전두환에 대한 불기소처분 취소 94헌마246 헌법소원에 대한 헌재 판단 要旨
【결정 요지】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내란죄의 경우에는 재직중 소추가 가능하므로 재직기간중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아니하나, 내란죄 또는 외환죄가 아닌 군사반란죄에 있어서는 그를 이유로 한 소추가 헌법상 허용되지 아니하므로 그 공소시효는 재직 기간중 정지된다.
1.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이 재판부의 심판에 회부된 경우에도 그로 인하여 그 처분의 대상이 된 피의사실에 대한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
2.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국민주권주의(제1조 제2항)와 법 앞의 평등(제11조 제1항), 특수계급제도의 부인(제11조 제2항), 영전에 따른 특권의 부인(제11조 제3항) 등의 기본적 이념에 비추어 볼 때,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에 관한 헌법의 규정(헌법 제84조)이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신분에 따라 일반국민과는 달리 대통령 개인에게 특권을 부여한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단지 국가의 원수로서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직책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하고, 그 권위를 확보하여 국가의 체면과 권위를 유지하여야 할 실제상의 필요 때문에 대통령으로 재직중인 동안만 형사상 특권을 부여하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헌법 제84조의 규정취지와 함께 공소시효제도나 공소시효정지제도의 본질에 비추어 보면, 비록 헌법 제84조에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만 규정되어 있을 뿐 헌법이나 형사소송법 등의 법률에 대통령의 재직중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명백히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위 헌법규정은 바로 공소시효진행의 소극적 사유가 되는 국가의 소추권행사의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므로, 대통령의 재직중에는 공소시효의 진행이 당연히 정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3. 모든 국민의 법 앞에서의 평등(헌법 제11조 제1항),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에서의 진술권(헌법 제27조 제5항), 범죄피해 국민의 구조청구권(헌법 제30조) 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정신과, 검사의 불편부당한 공소권행사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기본적 전제로 하는 기소편의주의제도 자체의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보면,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검사의 소추재량권은 그 운용에 있어 자의가 허용되는 무제한의 자유재량이 아니라 그 스스로 내재적인 한계를 가지는 합목적적 자유재량으로 이해함이 마땅하고, 기소편의주의 혹은 소추재량권의 내재적 제약은 바로 형법 제51조에 집약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따라서 형법 제51조에 규정된 사항들이나 이러한 사항들과 동등하게 평가될 만한 사항 이외의 사항에 기한 검사의 기소유예처분은 소추재량권의 내재적 한계를 넘는 자의적 처분으로서 정의와 형평에 반하고 헌법상 인정되는 국가의 평등보호의무에 위반된다.
4. 검사가 기소편의주의에 따라 소추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참작하여야 할 형법 제51조에 규정된 사항들은 단지 예시적인 것에 불과하고 피의자의 전과 및 전력, 법정형의 경중, 범행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 사회정세 및 가벌성에 대한 평가의 변화, 법령의 개폐, 공범의 사면, 범행 후 시간의 경과 등과 같이 위 법조에 예시되지 아니한 사항도 참작의 요소가 될 수 있다.
5. 이른바 12·12 사건의 처리에 있어 충실한 과거의 청산과 장래에 대한 경고, 정의의 회복과 국민들의 법감정의 충족 등 기소사유가 갖는 의미도 중대하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대립과 갈등의 장기화 또한 가볍다고만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고, 양자간의 가치의 우열이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가치의 우열이 명백하지 아니한 상반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두 가지 참작사유 중에서 검사가 그 어느 한 쪽을 선택하고 다른 사정도 참작하여 기소를 유예하는 처분을 하였다고 하여 그 처분이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1항에 규정된 기소편의주의가 예정하고 있는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서 헌법재판소가 관여할 정도로 자의적인 결정이라고 볼 수 없다.
재판관 김진우, 재판관 조승형의 보충의견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직에 있는 자연인이 범한 내란 또는 외환죄 이외의 죄에 대하여는 공소권행사를 할 수 없는 것으로, 즉 유효한 공소권행사에 대하여 법률 그것도 헌법에 장애사유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규정은 비록 직설적으로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규정하지는 아니하였으나 공소시효의 진행에 대한 소극적 요건을 규정한 것이므로, 공소시효의 정지를 규정한 규정이라고 보기에 족하다. 또한 헌법 제84조에 의하여 내란 또는 외환죄를 제외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대통령 재직기간 중 정지된다고 하여도 이러한 범죄에 대하여 소추당할 수 있는 기간은 일반국민과 동일하고 더 길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법률상 대통령이 더 불리하다고 할 수도 없다.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의 반대의견
1.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 경우는 형사소송법이 공소시효 정지제도 자체를 인정하고 있는 이상 명문에 그 정지규정이 있는 여부를 가리지 아니하고 공소시효제도의 법리에 따라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 경우를 인정할 수 있고 형사소송법에 명문규정을 두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위 법리를 확인함에 불과하다 할 것이므로, 검사의 불기소처분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청구가 적법요건의 심사를 거친 후 심판에 회부되었다면 그 때부터 불기소처분에 대한 취소결정이 있을 때까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봄이 마땅하다.
재판관 김문희, 재판관 황도연의 반대의견
2. 헌법 제37조 제2항의 정신에 비추어 공소시효의 정지는 반드시 법률로써 명문의 규정을 둔 경우에 한하여 인정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그러하지 아니하는 한 공소시효의 진행은 방해받지 아니한다고 하여야 함이 법치주의원칙에 당연한 귀결이다. 만일 헌법 제84조의 뜻을 다수의견과 같이 풀이할 때에는, 공소시효제도의 실질이 형사피의자의 이익을 위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그 진행을 정지시킬 수 있는 예외적인 사유를 법률로써 명문으로 규정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헌법이나 법률의 해석을 통하여 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되고, 따라서 공소시효제도에 의하여 보장되는 피의자의 법적 이익을 법률의 근거 없이 침해하는 것으로 되어 우리 헌법의 기본이념의 하나인 법치주의에 반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새로운 공소시효의 정지사유를 신설하는 내용의 적극적인 입법을 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른 헌법재판제도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재판관 조승형의 반대의견
5. 이 사건에서 피청구인이 내세우는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에 대한 논증은 있었으나 기소유예 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에 대하여는 아무런 논증이 없고, 가사 그에 대한 논증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참작사유의 가치가 그 반대사유의 가치에 비하여 현저히 그리고 명백하게 우월하므로, 피청구인의 기소유예처분은 검사의 합리적인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부당한 처분이며 그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평등권과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하였으므로 마땅히 취소되어야 할 것이다.
재판관 고중석의 반대의견
5. 이 사건 범행의 동기, 수단, 결과, 법정형과 범행 후 피의자의 태도, 피해자에 대한 관계 등은 이 사건 기소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다른 어느 사항보다도 중요하고 크게 참작해야 할 사항임에 비하여, 피청구인이 불기소사유로 들고 있는 사유는 객관적으로 근거가 없거나 기소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기소사유에 비하여 정상참작사항으로서의 중요성이나 가치가 훨씬 덜함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이 피의자에 대하여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은 기소편의주의의 재량권 행사의 한계를 벗어난 자의적의 검찰권의 행사라 아니할 수 없고, 그로 말미암아 청구인들은 헌법상 보장되는 재판절차 진술권 및 평등권을 침해받았으므로 피청구인의 기소유예처분은 마땅히 취소되어야 한다.
【당사자】
청구인 정승화외 21인 (별지 1 청구인 명단과 같음)
대리인 변호사 홍성우 외 12인 (별지 2 대리인 명단과 같음)
피청구인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참조 조문】
헌법 제1조 제2항, 제11조, 제27조 제5항, 제30조, 제84조
형사소송법 제247조 (기소편의주의와 공소불가분)
① 검사는 형법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있다.
② 생략
【참조 판례】
1. 1993.9.27. 선고, 92헌마284 결정
4. 대법원 1980.5.20. 선고, 80도306 판결
【주문】 청구인들의 이 사건 심판청구 중, 내란수괴죄, 내란목적살인죄 및 내란목적살인미수죄에 관한 부분은 이를 모두 각하하고, 그 나머지 죄들에 관한 부분은 이를 모두 기각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이 사건 기록과 증거자료(서울지방검찰청 1993년 형제51255, 53173, 67689, 81259, 82885, 85737, 101660호, 1994년 형제32230호 각 수사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1) 청구인들은 1993.7.19. 대검찰청에 이른바 12·12 사건에 관하여 청구외 전두환 외 33명(별지3 피고소인 명단과 같음)을 고소하였는바, 그 고소사실의 요지는 아래 2 기재와 같다.
(2) 피청구인은, 대검찰청으로부터 청구인들이 낸 위 고소장을 송부 받아 수사하는 한편 12·12 사건에 관련된 다른 고소·고발사건도 함께 수사한 후, 1994.10.29. 청구인들의 위 고소사건(서울지방검찰청 1993년 형제81259호)을 포함한 8건의 고소·고발사건(서울지방검찰청 1993년 형제 51255, 53173, 67689, 82885, 85737, 101660호, 1994년 형제32230호)의 피고소인 및 피고발인들에 대하여 별지4 피의자별 죄명별 처분내용기재와 같이 “혐의없음”, “기소유예” 또는 “공소권없음”의 각 불기소처분(이하, “이 사건 불기소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3) 청구인들은, 위 불기소처분 중 피의자 전두환에 대한 부분(“혐의없음” 처분 및 “기소유예”처분)에 불복하여 검찰청법의 규정에 따라 항고 및 재항고를 하였으나 모두 이유 없다고 기각되자(1994.11.10. 항고기각 서울고등검찰청 94불항2952, 같은 달 18. 재항고기각 대검찰청 94재항1961), 피의자 전두환에 대한 피청구인의 위 불기소처분은 매우 자의적인 검찰권의 행사로서 범죄피해자인 청구인들의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 즉 평등권, 재판청구권, 재판절차진술권 등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1994.11.24.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그러므로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위에서 본 이 사건 불기소처분 중 피의자 전두환에 대한 부분, 즉 동 피의자의 내란수괴(형법 제87조 제1호), 내란목적살인(형법 제88조), 내란목적살인미수(형법 제89조, 제88조), 반란목적군용물탈취(군형법 제6조) 및 일반이적(군형법 제14조 제8호)의 점에 대한 각 “혐의없음”의 처분과 반란수괴(군형법 제5조 제1호), 불법진퇴(군형법 제20조),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군형법 제27조 제2호), 상관살해(군형법 제53조 제1항), 상관살해미수(군형법 제63조, 제53조 제1항) 및 초병살해(군형법 제59조 제1항)의 점에 대한 각 “기소유예”의 처분이, 헌법상 보장된 청구인들의 위 기본권을 침해하였는지의 여부이다.
2. 고소사실의 요지
가. 이른바 12·12 사건 당시의 시대적 배경
1979.12.12. 당시는 같은 해 10.26. 궁정동에서 발생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살해사건으로 통치권의 공백이 초래되었으나, 곧 위 김재규에 대한 체포와 기소가 이루어졌고 대통령 권한대행체제에 이어 당시 헌법에 따라 국무총리 최규하가 대통령에 취임하여 정국이 상당한 안정을 되찾는 한편 정상적인 여야의 논의에 의한 개헌과 민주발전이 기대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나. 범행의 모의 및 준비과정
별지 3 기재의 피고소인들은, 피고소인(이하, “피의자”라 한다) 전두환이 국군보안사령관으로서 1979.10.26. 박정희 대통령 살해사건 이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부”라 약칭한다)의 본부장 직위에 오름을 기화로 같은 해 11월 중순경부터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라 약칭한다) 및 군내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 구성원 등의 인맥을 이용하는 한편 “보안사”내 간부들의 보좌를 받아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박정희 대통령 살해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꾸며 납치하고 이를 통해 정상적인 지휘계통을 제거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국가권력을 탈취할 목적으로 내란 및 반란을 공모하고,
(1) 1979.12.12. 18:30경 수도경비사령부(이하, “수경사”라 약칭한다) 제30경비단 단장실에 피의자 노태우(9사단장), 동 유학성(국방부군수차관보), 동 차규헌(수도군단장), 동 황영시(제1군단장), 동 박희도(제1공수여단장), 동 최세창(제3공수여단장), 동 장기오(제5공수여단장), 동 백운택(71방위사단장), 동 박준병(20사단장), 동 김진영(수경사 제33경비단장), 동 장세동(수경사 제30경비단장)등이 집결하여, “보안사”에 있는 위 전두환, 피의자 허화평(보안사령관 비서실장), 동 허삼수(보안사 인사처장), 동 이학봉(보안사 대공처장)과 함께 지휘부를 구성하고,
(2) 피의자 조홍(수경사 헌병단장) 등은 위 전두환 등의 지시에 의하여 육군본부(이하, “육본”이라 약칭한다) 직할부대 주요 지휘관들을 격리하기 위한 사전계획에 따라 같은 시각에 정병주 특수전사령부(이하, “특전사”라 약칭한다) 사령관, 장태완 수경사령관, 김진기 육본 헌병감 등을 연희동 소재 음식점으로 유인하여 각 그 소속부대로부터 격리시켰다.
다. 범행의 실행경위
(1) 피의자 전두환은 1979.12.12. 공식적 승인을 얻거나 법적 절차를 밟지도 아니한 채 위 허삼수, 피의자 우경윤(육본 헌병감실 범죄수사단장) 등에게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의 납치를 지시하고, 이에 따라 위 허삼수, 우경윤, 피의자 성환옥(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 동 최석립(수경사 33헌병대장), 동 이종민(육본 현병대장) 등은 같은 날 18:50경 “합수부”에 배속된 33헌병대와 “보안사” 수사관 등을 이끌고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이르러 무기로 경비병을 위협하여 그 무장을 해제시키고, 이어 그 공관 안에 들어가 정승화 총장을 총기로 위협하여 강제로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납치하고, 이에 저항하는 총장부관 이재천 소령과 경호장교 김인선 대위 등에게 총격을 가하여 각 상해를 입히고,
(2) 위 전두환은, 같은 날 18:30경 국방부장관을 경유하지 아니한 채 중요보고가 있다는 구실로 대통령 면담요청을 하여 최규하 대통령이 당시 머물던 총리공관에 위 이학봉을 대동하고 찾아가 동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의 연행·조사조치에 대한 재가를 요구하였으나 국방부장관을 경유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피의자 정동호(청와대 경호실장 직무대리), 동 고명승(청와대 경호실작전과장)이 같은 날 21:30경 대통령경호실 병력을 무단 동원하여, 총리공관 특별경호대장 구정길 등을 총으로 위협하여 경비병들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대통령 임시관저인 총리공관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시 위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희도, 백운택 등을 대동하고 집단으로 최규하 대통령을 방문하여 재차 정승화 총장 연행·조사에 대하여 재가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역시 거절당하자, 병력을 동원하여 그 위력을 과시하는 한편 육군 정식지휘계통을 제압하기로 위 지휘부 구성원들과 상호 공모하여, 위 전두환은 같은 날 23:00경, 위 박희도에게는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점령, 국방부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해 올 것을, 위 최세창에게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체포와 휘하 병력의 경복궁 출동을, 위 장기오에게는 휘하 병력의 육군본부 출동을 각 지시하고, 위 노태우는 피의자 구창회(9사단 참모장)에게 휘하 병력의 중앙청 출동을 지시하고, 위 황영시는 피의자 박희모(30사단장)에게 휘하 병력의 고려대학교 진주를 지시하고, 위 황영시, 백운택 등은 피의자 이상규(1군단 제2기갑여단장)에게 전차부대의 중앙청 출동을 지시하고, 피의자 정도영(보안사 보안처장) 등은 피의자 김정룡(특전사 보안부대장), 동 신우식(특전사 작전참모)에게 정병주 특전사령관 체포작전시 그 휘하 병력이 대응하지 못하도록 지원을 각 지시하고, 위 정도영, 허화평, 허삼수 등은 위 전두환 등 지휘부에 수시로 그때 그때의 상황을 보고하는 한편 26사단, 30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의 지휘관, 참모 및 보안부대장 등에게 “합수부”측의 위와 같은 조치에 동조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가) 위 최세창, 피의자 박종규(제3공수여단 5대대장)등은 같은 날 23:50경 위 김정룡, 신우식 등의 지원하에 특전사령관실에 제3공수여단 제5대대 병력을 투입, 총격을 가하여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을 현장에서 사망케 하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 상해를 입힌 후 그를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강제연행하는 한편, 다음날인 12.13. 02:00경 제3공수여단 병력을 경복궁에 진주시키고,
(나) 위 박희도, 피의자 서수열(제1공수여단 2대대장), 동 박덕화(제1공수여단 5대대장) 등은 12.13. 00:30경 제1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점령하고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총리공관으로 연행하는 한편, 국방부근무 초병인 정선엽 병장에게 총격을 가하여 그를 현장에서 사망케 하고,
(다) 위 장기오는 같은 날 03:00경 제5공수여단 병력을 효창운동장에 진주시키고,
(라) 위 구창회, 피의자 이필섭(9사단 29연대장)등은 같은 날 01:30경 9사단 29연대 병력을 출동시켜 03:30경 중앙청을 점령하고,
(마) 위 박희모, 피의자 송응섭(30사단 90연대장)등은 같은 날 03:30경 30사단 90연대 병력을 고려대학교에 진주시키고,
(바) 위 이상규는 같은 날 01:30경 제2기갑여단 제16전차대대병력을 출동시켜 03:30경 중앙청을 점령하고,
(사) 위 조홍, 피의자 신윤희(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등은 같은 날 03:40경 수경사령관실에 진입,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에게 총격을 가하여 상해를 입게 한 후 육군본부 수뇌부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윤성민 육군참모차장, 장태완 수경사령관, 문홍구 합참 대간첩대책본부장 등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하였다.
3. 불기소이유의 요지
이 사건에서 심판의 대상이 된 피의자 전두환에 대한 불기소처분(“혐의없음” 처분 및 “기소유예” 처분)의 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가. “혐의없음” 처분의 이유
(1) 형법상의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목적살인미수의 점에 대하여 이른바 12·12 사건과 관련하여 피의자 전두환 등이 병력을 동원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 등을 점령하고 육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를 체포한 사실 등은 인정되나, 이는 국가기관인 자연인 또는 구체적인 정부기관에 대한 침해행위에 불과하여 헌법이나 헌법이 정한 정부조직제도 자체를 파괴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고, 또 위 피의자들이 군 수뇌부의 경질을 통하여 결국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헌법기관이 그대로 유지된 점에 비추어 그것만으로는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달리 그들에게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어, 형법상의 내란(제87조), 내란목적살인(제88조) 및 내란목적살인미수(제89조, 제88조)의 점은 모두 범죄의 혐의가 없다.
(2) 군형법상의 반란목적군용물탈취 및 일반이적의 점에 대하여
반란목적의 군용물탈취죄(군형법 제6조)는 인정되나 이는 반란죄(군형법 제5조)에 흡수되어 피의자 전두환에 대한 반란죄를 인정하는 이상 별도로 위 죄는 성립하지 아니하며, 또 일반이적죄(군형법 제14조 제8호)에 관하여는 위 피의자에게 어떠한 이적의 범의가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고 또한 동 피의자의 행위를 군사상 이적행위로 볼 수도 없으므로 법리상 위 죄는 성립하지 아니하여, 모두 범죄의 혐의가 없다.
나. “기소유예” 처분의 이유
피의자 전두환에 대한 군형법상의 반란수괴(제5조 제1호), 불법진퇴(제20조),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제27조 제2호), 상관살해(제53조 제1항), 상관살해미수(제63조, 제53조 제1항), 초병살해(제59조 제1항)의 점은 모두 범죄의 혐의가 인정되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들 범죄에 대하여는 “기소유예”처분을 함이 상당하다.
즉, 위 피의자 등이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우리 헌정사를 후퇴시켰고, 지금도 이 사건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관용하는 것은 정의에 반하고 국민의 법감정상으로도 용납되지 아니하므로, 이들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법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고, 나아가 제2, 제3의 불법적 군사행동이나 하극상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여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1) 위 피의자 등을 기소하는 경우, 재판 과정에서 과거사가 반복 거론되고 법적 논쟁이 계속되어 국론분열과 대립양상을 재연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고, 이러한 혼란상은 결국 장래적으로 국가안정을 저해하고 자칫하면 국가발전에도 지장을 초래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아니할 수 없다.
(2) 또한, 검찰이 이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그것이 범법행위이었음을 명백히 인정한 이상 불행하였던 과거를 청산하고 불법적 실력행사를 경고하는 냉엄한 역사적 교훈을 남겨 역사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므로,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후세에 맡기고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이번 검찰의 결정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며, 대다수 국민들도 더 이상 지난 일로 갈등과 반목을 지속하여 국가적 혼란을 초래함으로써 국가발전에 지장을 주는 것을 바라지 아니할 것이다.
(3) 한편, 위 피의자 등이 지난 14년간 우리나라를 통치하면서 나름대로 국가발전에 기여한 면이 있음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고, 또 이 사건이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이 사건의 주역의 한 사람인 대통령후보가 당선되고, 이른바 5공 청문회를 거치는 등으로 이미 국민적 심판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으며, 특히 전직 대통령 등을 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경우에는, 그 동안 형성된 제반 기성질서와 관련하여 국민에게 심정적으로 혼돈을 느끼게 할 우려가 있는 점 등 여러 가지 정황도 참작하지 아니할 수 없다.
(4) 아울러 지금은 전국민이 힘을 합하여 치열한 국제경쟁을 이겨내고 숙원인 남북통일에 대비해야 할 시기이고, 이러한 시기에 그 어떤 명제보다도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국민화합을 토대로 정치와 사회의 안정을 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여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도모하는 것인 바, 이러한 시점에서 과거에 집착하여 미래를 그르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아니하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아니할 수 없다.
(5) 이에,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최선인가 하는 관점에서 위와 같은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사회안정과 국가발전을 위하여 위 피의자등에 대한 소추처분을 유예하기로 결정하였다.
4. 당사자의 주장
가. 청구인들의 주장
(1) 청구인적격
청구인들은 이른바 12·12 사건 당시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이었던 청구인 정승화를 정점으로 하는 군의 정규지휘계통에 속하는 지휘관 및 참모들로서, 피의자 전두환을 수괴로 하는 피의자들이 작당하여 저지른 이 사건 내란 및 반란행위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위 반란세력에 대한 적법한 군령권행사가 거부되고 또 직접 신체상 피해를 입는 등 위 범행으로 인한 피해자들이므로 이 사건 불기소처분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청구인자격이 있다.
(2) “혐의없음” 처분의 위법성
형법상의 내란죄 등 부분에 대한 피청구인의 “혐의없음” 처분의 논거는, 요컨대 내란죄가 성립하려면 정권탈취의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12·12 사건으로 헌법이나 헌법이 정한 정부조직제도 자체가 파괴된 것이 아니고 당시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헌법기관이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검찰의 논거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내란죄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첫째, 피청구인은 이른바 12·12라는 역사적 사건은 그 이후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 후 피의자들이 1980년 정권을 장악할 때까지 벌였던 연속적 사건들과 독립하여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즉, 12·12 이후의 진행과정을 보면 1980.4.16.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군인으로서는 취임할 수 없는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하고,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5.18. 김대중·김종필·이후락 등 26명 연행, 광주민중에 대한 무차별 살상, 5.31.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상임위원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 취임, 8.27.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전두환을 새대통령으로 선출, 9.1. 전두환의 제11대 대통령 취임, 10.27. 제5공화국 헌법 발효, 국회·정당·통일주체국민회의의 해산, 국가보위입법회의 발족 등으로 정권을 탈취하였는 바, 이러한 일련의 사태의 단초는 12·12 에서 찾아야 할 것이므로 12·12 사건으로 헌법이나 헌법이 정한 정부조직제도 자체가 파괴된 것이 아니고 당시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헌법기관이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검찰의 견해는 내란죄의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둘째, 12·12 사건 자체만 보더라도, 검찰이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당시 신군부측은 사전 모의 아래 계엄사령관을 강제로 연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밖의 주요 군지휘관을 연행하고 주요 군지휘부를 점거하여 그 기능을 마비시키고, 이와 아울러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중앙청과 총리공관(최규하 대통령 관저) 등 주요시설을 점거하는 한편 계엄사령관 연행에 대한 재가를 얻기 위하여 국방부장관을 연행하고, 최규하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전두환,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백운택, 박희도 등) 몰려가 재가를 요구하는 등으로 군지휘 계통을 마비시키고, 최고헌법기관인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사실을 검찰 스스로 인정하는 한 형법상 내란죄의 성립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국군통수권을 가진 대통령의 권한행사를 무력화시키지 않은 채 군사권만을 장악한다는 것은 경험칙이나 논리칙에 반할 뿐더러 아울러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헌법기관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검찰의 논거도 당시 대통령이 자유롭게 정상적인 국정수행을 할 수 없었던 상태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바로 그러한 상태를 예상하여 형법 제91조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경우도 “국헌문란”의 태양의 하나로 적시한 점을 간과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결국 피의자 전두환에 대한 피청구인의 이 사건 “혐의없음” 처분은 형법상 내란죄의 법리를 오해한 것으로서 위법함이 명백하고 그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청구인들의 기본권(즉 평등권, 재판청구권,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 등)이 침해되었으므로 위 처분은 마땅히 취소되어야 한다.
(3) “기소유예”처분의 위법성
군형법상의 반란죄 등에 대한 피청구인의 “기소유예”처분의 논거는, 요컨대 이 사건 피의자들을 기소할 경우 재판과정에서 과거의 일이 재론되는 등 법적 논쟁이 계속되어 국론분열과 대립양상을 재연함으로써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는데다가 이들이 이미 5공 청문회 등을 통해 국민적 심판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고, 특히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 단죄할 경우 그 동안 형성된 제반질서와 관련해 국민에게 심정적 혼돈을 느끼게 할 우려가 있는 점 등을 감안하여 기소를 유예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검찰의 처분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공소권을 남용한 것으로서 위법, 부당함이 명백하다.
첫째,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1항에 의하면 피의사건이 범죄의 혐의가 충분하고 소송요건을 구비하였더라도 형법 제51조에 규정된 사항을 참작하여 형사정책적 차원에서 검사는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으나, 피청구인이 이 사건에서 기소유예의 사유로 적시하고 있는 점 등은 위와 같은 형법 및 형사소송법의 규정을 참작한 것이 아니고 그의 독단적인 정치적 견해에 그 근거를 두고 있음이 명백하다.
둘째, 우리나라 검찰조직 및 작용원리를 규정하는 검사동일체의 원칙, 기소독점주의 및 기소편의주의는 검찰조직의 준사법기관으로서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정치권력 등 외압으로부터 독립된 독자적인 검찰권 행사를 가능케 함으로써 국가적 입장에서 공소권 행사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보장하려는 데 그 본래의 뜻이 있는 것이지, 검찰권 행사를 법적 기속으로부터 해방시켜 정치적 판단에 종속시키는 것은 제도의 본래의 취지에 반하는 것인바,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은 기소독점주의 및 기소편의주의의 내재적 한계를 명백히 일탈, 남용한 것이다.
셋째, 피청구인이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의 사유로 적시하는 것들은 기소편의주의의 이념을 왜곡하는 것이다. 즉, 검찰의 논지는 모든 재판이 과거사의 재론을 전재로 하는 법적 논쟁이라는 점을 간과한 단견이고, 더 나아가 재판기능 자체가 법의 해석 적용을 통하여 국법질서를 통일함으로써 국론분열을 막는 데 있음을 간과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원처분이 적시한 “피고소인들이 이미 5공 청문회를 통해 국민적 심판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고,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 단죄할 경우 사회안정과 국가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이유는 지극히 피상적인 견해에 불과하다. 요컨대, 피청구인이 적시한 사유들은 수사기관이 고려해야 할 법적인 정상참작의 사유가 아니다.
넷째, 피의자 전두환에게는 형법 제51조에 규정된 정상참작의 사유가 없다.
그는 지난 14년간 나라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바 없으며, 그를 비롯한 피의자 등의 이 사건 소위는 집권 이래 지속적인 국민적 반발을 초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는 이 사건 고소과정에 이르기까지 반성의 뜻을 표하기는 커녕 허위의 주장과 자신의 정당성만을 강변하였는바, 그러한 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검찰의 처분은 결과적으로 모든 국민의 국가행위로부터 균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평등권) 및 범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재판청구권,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 범죄피해자의 구제청구권 등)등의 헌법상 기본권을 훼손, 방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법감정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피의자 전두환에 대한 피청구인의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은 공소권(불기소처분권)을 명백히 남용한 것으로서 위법함이 명백하고 그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청구인들의 기본권(즉 평등권, 재판청구권,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 등)이 침해되었으므로 위 처분도 마땅히 취소되어야 한다.
(4) 공소시효의 기산점과 정지에 대한 주장
(가) 형법상의 내란죄 등 부분에 대한 공소시효의 기산점은 내란죄의 범죄행위가 종료된 1981.4.로 보아야 하므로 그 공소시효는 1996.4.에 완성된다. 즉, 이른바 12·12 사건은 그 이후의 피의자 전두환 등의 정권찬탈과정과 포괄하여 내란죄로 평가되어야 하고 따라서 그 후 내란수행과정의 역사적 전개과정에 비추어 보면 그 내란행위는 1981.4. 마지막으로 개최된 국가보위입법회의 제25차 본회의시까지 계속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 군형법상의 반란죄 등 부분에 대한 공소시효는 피의자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재직한 7년 5개월 24일간은 진행이 정지되는 것이므로 2002.4.4.에 완성된다. 즉,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피의자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재직중 형사상 소추할 수 없었던 범죄에 대하여는 소추할 수 없었던 기간 동안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보아야 하고, 이는 위 헌법규정의 해석과 시효에 관한 총칙적 법리상 명백하다.
따라서 피의자 전두환의 군형법상의 반란죄 등에 대한 공소시효는 그가 대통령직에 취임한 1980.9.1.부터 그 임기가 종료된 1988.2.24.까지의 7년 5개월 24일간은 정지되었다가 차기 대통령이 취임한 1988.2.25.부터 정지된 공소시효가 다시 진행되었다 할 것이므로 그 반란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22년 5개월 24일이 되는 2002.4.4.에 공소시효가 완성된다.
(다) 헌법소원의 제기로 인하여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아니한다는 종래의 헌법재판소 결정은 폐기되어야 하고, 따라서 피의자 전두환의 이 사건 모든 범행에 관하여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로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보아야 한다.
나. 피청구인의 답변
(1) “혐의없음” 처분의 정당성
청구인들은 이른바 12·12 사건의 사실관계를 오인하였거나 내란죄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즉,
첫째, 우선 청구인들은 이 사건 고소장에서 12·12 사건에 관하여서만 피의자의 처벌을 요구한 이외에 그 이후의 일련의 과정에 관련하여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한 바 없으며, 또한 이 사건 이후의 일련의 사건에 대하여는 관련자들이 별도로 고소·고발장을 제출하여 현재 수사 중에 있으므로, 그에 관하여는 따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둘째, 피청구인은 이 사건 수사를 함에 있어 과연 피의자들에게 이 사건 범행 당시 “국헌을 문란할 목적”이 있었는지의 여부를 가장 중요한 수사사항으로 판단하고 수사의 전 과정에 걸쳐 국헌문란의 목적 유무에 관하여 집중 수사한 바 있으나, 피의자들에게 이 사건 당시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는 아무런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부득이 12·12사건은 내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청구인들은 이 사건 이후의 일련의 사건의 전개과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당시 피의자들에게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으나, 피의자들이 내란의 범의를 일관하여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사건 당시가 아닌 사건 이후에 새로이 발생한 사정만을 근거로 하여 이 사건 범행 당시 피의자들에게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셋째, 형법은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를 내란죄로 처벌하고 있으며(형법 제87조),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국헌문란”으로 정의하고 있는바(형법 제91조), 이 사건에서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단순히 대통령의 구체적·개별적인 권한행사를 외적 요인에 의해 지장을 주고 방해를 한다거나 하급자가 대통령의 지시·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 자체를 강압에 의하여 전복하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즉 국가기관의 존재자체를 부정할 정도로 국가의 기본조직으로서의 헌법기관을 파괴 또는 변혁하는 정도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상당하다. 그런데 증거에 의하여 이 사건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결국 이 사건 당시 대통령이 개별적·구체적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다소간의 지장이 있었다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국가기관으로서의 대통령의 존재를 부정할 정도로 그 권능행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며, 더구나 피의자들에게 그 당시 대통령 등 국가의 기본조직을 파괴 또는 변혁하고 헌법과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정권을 탈취할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피청구인은 피의자들에게 국헌을 문란할 목적을 인정하지 아니한 것이다.
따라서 청구인들의 위 주장은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오인하였거나 내란죄의 법리를 오해한 데 기인하는 것으로 이유 없는 것이다.
(2) “기소유예”처분의 정당성
현행 형사소송법은 제247조 제1항에서 “검사는 형법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범죄의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형사정책적인 고려에 의하여 피의자에 대한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바, 검사가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기소유예”처분을 한 경우에는 이로써 헌법상의 평등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일본 최고재판소 판례).
형법 제51조는 “기소유예”처분을 함에 있어서 고려하여야 할 사항으로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의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규정하고 있는바, 범행 후의 정황이라 함은 단순히 범인과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의 정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관련된 것으로서 정치·사회정세, 국민감정의 변화, 범행 후의 경과기간 등을 포함하는 것이고, 또한 형법 제51조에 열거된 양형조건은 모든 양형조건을 망라하여 규정한 것이 아니고 단지 양형조건을 예시해 놓은 데 불과할 뿐이므로, 검사는 형법 제51조에 열거된 양형조건 이외의 다른 요소들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기소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통설인 점에 비추어 피청구인인 검사가 준사법기관이자 최고의 형사정책기관으로서 범인, 피해자, 사회와 관련된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 사건 피의자들에 대하여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할 것이다.
결국 피청구인이 위에서 적시한 제반 요소를 고려하여 피의자들에게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은 정치적인 고려에 의하여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 아니고 형법 제5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행 후의 정치·사회적인 정황과 사회정세 등 이 사건과 관련하여 고려하여야 할 제반 요소를 고려하여 법적 판단을 한 것이다. 따라서 피청구인이 이러한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피의자들을 “기소유예”처분한 것은 적법하고 정당하며, 이를 두고 피청구인이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정치적으로 결정을 하였다거나 기소편의주의의 한계를 일탈하여 공소권을 남용하였다고는 할 수 없다.
(3) 공소시효의 기산점과 정지에 관한 청구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가) 청구인들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범행에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되어 내란죄가 성립된다면 내란죄의 기수시기의 법리상 이 사건 범행은 1994.12.12.로 그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 할 것이고, 이 사건 범행 당시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면 가사 이 사건 이후에 내란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범행은 그 내란행위의 경과사실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그 내란행위의 실행의 착수에 해당된다고는 볼 수 없다.
(나) 공소시효의 제도는 범죄행위가 종료한 후 공소가 제기되지 않고 일정한 기간이 경과되었다는 객관적인 사실상의 상태를 존중하여 국가의 형벌권을 소멸시킴으로써 형사피의자에게 법적 지위의 안정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형사피의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제도이므로, 이 제도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형사피의자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한편, 공소시효제도의 실질은 국가 형벌권의 소멸이라는 점에서 형의 시효와 마찬가지로 실체법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므로 그 예외로서 시효가 정지되는 경우는 특별히 법률로써 명문의 규정을 둔 경우에 한하여야 한다는 것은 헌법상의 죄형법정주의, 적법절차주의 등에 비추어 명백하다 할 것이다(헌법재판소 1993.9.27. 선고, 92헌마284 결정 참조). 따라서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법률의 명문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도에 관한 헌법 또는 법률규정을 유추적용하여 공소시효의 정지를 인정하는 것은, 법률상 근거 없이 형사피의자의 법적 지위의 안정을 침해하는 것이 되고 나아가서는 죄형법정주의, 적법절차주의에 반하여 기소하고 처벌하는 결과가 된다 할 것이며(위 헌법재판 결정 참조), 또 헌법재판소가 그 권한의 한계를 넘어 사실상의 입법행위를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할 것이다.
우리 헌법 제84조는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의 권위를 존중하고 대통령 재직기간 중의 원활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기 위하여 대통령에게 부여한 형사상의 특권을 규정한 것에 불과하고 공소시효의 정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님은 그 문리상 명백하다. 이를 공소시효의 정지규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법률상 근거 없이 형사피의자의 법적 지위의 안정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공소시효제도의 취지에 반할 뿐만 아니라 죄형법정주의 등 헌법상의 기본권 보장규정에도 위배된다.
5. 판단
헌법소원의 제도는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구제하여 주는 제도이므로 그 제도의 목적상 권리보호의 이익이 있어야 이를 제기할 수 있는바,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에 있어서도 그 대상이 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을 때에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으며(당재판소 1989.4.17. 선고, 88헌마3; 1990.4.2. 선고, 89헌마185 각 결정 등 참조). 또 헌법소원 제기 후에 그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도 역시 그 심판청구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것이 당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이다(당재판소 1992.7.23. 선고, 92헌마103; 1992.12.24. 선고, 92헌마186 각 결정 등 참조).
그런데 이 사건에 있어서, 청구인들은 피의자 전두환의 위 모든 피의사실에 관하여 “헌법소원심판청구”로 인하여, 또 그의 군형법상의 범죄에 관하여는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한 기간” 동안은 각 그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주장하고 있고, 피청구인은 이와 반대의 견해를 표명하고 있는바, 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공소시효의 완성시점이 달라지며, 또 그에 따라 위 판례대로 심판청구에 관한 권리보호이익의 유무판단이 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선 공소시효의 정지 여부에 관한 청구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살펴보고, 그 다음에 위 피의자에 대한 이 사건 “혐의없음” 처분과 “기소유예”처분의 당부에 관하여 차례로 판단하기로 한다.
가. 공소시효의 정지여부에 관한 판단
(1) “헌법소원심판청구”로 공소시효가 정지되는지의 여부
청구인들은 재판진행 중에 시효가 완성된다는 법리는 있을 수 없으므로 헌법소원의 제기가 있어도 공소시효가 정지되지는 아니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종전 판례는 폐기·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당재판소는, 1993.9.27. 선고, 92헌마284 결정에서,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이 재판부의 심판에 회부된 경우에도 형사소송법 제262조의2의 규정의 유추적용으로 당해 피의사실에 대한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그 논거를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즉 “이 문제는 결국 법에서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아니한 공소시효의 정지를 법률의 유추적용으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라 할 것이다. 생각건대 공소시효제도는 시간의 경과에 의한 범죄의 사회적 영향이 약화되어 가벌성이 소멸되었다는 주된 실체적 이유에서 일정한 기간의 경과로 국가가 형벌권을 포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형벌권의 소멸과 공소권의 소멸로 범죄인으로 하여금 소추와 처벌을 면하게 함으로써 형사피의자의 법적 지위의 안정을 법률로써 보장하는 형사소송조건에 관한 제도이다. 비록 절차법인 형사소송법에 규정되어 있으나 그 실질은 국가형벌권의 소멸이라는 점에서 형의 시효와 마찬가지로 실체법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예외로서 시효가 정지되는 경우는 특별히 법률로써 명문의 규정을 둔 경우에 한하여야 할 것이다. 법률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경우 다른 제도인 재정신청에 관한 위 법조의 규정을 피의자에게 불리하게 유추적용하여 공소시효의 정지를 인정하는 것은 유추적용이 허용되는 범위를 일탈하여 법률이 보장한 피의자의 법적 지위의 안정을 법률상의 근거 없이 침해하는 것이 되고, 나아가서는 헌법 제12조 제1항, 제13조 제1항이 정하는 적법절차주의, 죄형법정주의에 반하여 기소되고 처벌받는 결과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당재판소가 사실상의 입법행위를 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형사소송법 제262조의2의 규정의 유추적용으로 고소사건에 대한 헌법소원이 심판에 회부된 경우도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인정함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설시하였던 것이다.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이 재판부의 심판에 회부된 경우(헌법재판소법 제72조 제4항 참조)에도 그로 인하여 그 처분의 대상이 된 피의사실에 대한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위 결정의 결론은 지금도 이를 변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지 아니하고 또 이를 변경해야 할 사정변경이 있다고도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위 판례는 이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다. 따라서 위 판례의 폐기·변경을 구하는 청구인들의 주장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이 부분 결론에 관하여는, 위 판례가 변경되어야 한다는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의 아래 “8가” 기재와 같은 반대의견이 있다.
(2) “대통령 재직중”에는 그의 범행(내란 또는 외환의 죄 이외의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정지되는지의 여부
(가) 청구인들은 피의자 전두환의 군형법상의 반란죄 등에 대한 공소시효는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한 기간인 7년 5월 24일간은 진행이 정지되므로 현재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하였다고 주장하는데 대하여, 피청구인은 대통령 재직중 그의 범행에 대한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명문규정이 없으므로 위 각 범죄행위에 대하여도 그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날은 1994.12.12.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의자 전두환은 1980.9.1. 대통령에 취임하여 1988.2.24. 임기가 만료되었는데, 위 피의자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시행된 헌법인 1972.12.27. 개정 헌법 제62조와 1980.10.27. 개정 헌법 제60조는 각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1988.2.25.부터 시행된 현행 1987.10.29. 개정 헌법 제84조에도 똑같이 규정되어 있다). 헌법 제84조에 의하면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하게 되어 있으므로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기간 동안 소추할 수 없는 범죄행위에 대하여는 그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보아야 할 것인지의 여부가 문제로 된다. 즉 위 헌법규정은 단지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소추되지 아니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된다고는 규정하지 아니하고 있는바, 위 헌법규정 이외에 헌법이나 형사소송법 등 다른 법률에 대통령의 재직중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명백히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의 재직중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지 않는 것으로 봄으로써 대통령의 재직기간보다 공소시효의 기간이 짧은 대통령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형사상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결과가 되는 해석이 가능한지가 문제로 되는 것이다.
(나) 이 문제는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헌법상 “불소추특권”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위 헌법규정 자체의 근본취지와 함께 공소시효와 공소시효의 정지 등 제도의 존재이유를 규명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국가의 원수에 대하여 형사상 특권을 인정할 것인지의 여부에 관하여는 미국과 같이 헌법에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아니한 국가를 제외하고는, 각국의 헌법이 대통령의 형사상 특권의 범위 등 내용에 관하여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형태로 규정하고 있다.
첫째, 프랑스·이태리 등의 헌법과 같이 특정한 범죄(예컨대 대역죄 등)를 제외하고는 직무집행 중에 행한 행위에 대하여 일체의 형사상의 책임을 지지 아니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직무와 관련이 없는 범죄에 대하여는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경우,
둘째, 우리나라·자유중국·필리핀·케냐·1991년 개정 전의 싱가폴 등의 헌법과 같이 특정한 범죄를 제외한 나머지 범죄에 대하여 재직 중의 소추만을 금지할 뿐, 형사상의 면책이나 재직 후의 소추금지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은 경우(케냐 헌법은 재직기간 동안의 공소시효의 정지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셋째, 그리스·싱가폴·1987.2.11.개정 전의 필리핀 등의 헌법과 같이 재직중의 직무행위에 대한 형사상의 면책과 그 이외의 행위에 대한 재직중의 소추의 금지만을 규정하고 있는 경우(싱가폴 헌법은 불소추기간에 관하여는 공소시효의 정지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나라가 헌법에서 국가의 원수에 대한 형사상 특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직무집행과 관련된 행위에 대한 형사책임의 면제나 재직중의 형사상 소추의 유예에 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바로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질서로 삼고 있는 국가에서 국가의 원수에 대한 형사상 특권을 어느 범위 내에서 부여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과거 절대주의적 전제왕정제하의 국가에서 국가나 법과 국왕의 존재를 혼동하거나 동일시하여 국왕이 곧 법이라는 사상적 배경으로부터 국왕에게 부여되었던 면책특권과는 그 존재이유나 이념적 기초를 달리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국민주권주의(제1조 제2항)와 법 앞의 평등(제11조 제1항), 특수계급제도의 부인(제11조 제2항), 영전에 따른 특권의 부인(제11조 제3항) 등의 기본적 이념에 비추어 볼 때,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에 관한 헌법의 규정이,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신분에 따라 일반국민과는 달리 대통령 개인에게 특권을 부여한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단지 국가의 원수로서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직책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하고, 그 권위를 확보하여 국가의 체면과 권위를 유지하여야 할 실제상의 필요 때문에 대통령으로 재직중인 동안만 형사상 특권을 부여하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헌법 제84조의 근본취지를 이와 같이 해석하는 한, 그 규정에 의하여 부여되는 대통령의 형사상 특권은 문언 그대로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하는” 것에 그칠 뿐, 대통령에게 일반국민과는 다른 그 이상의 형사상 특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헌법 제84조 때문에 대통령의 재직중 국가의 소추권행사가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의 진행이 대통령의 재직중에도 정지되지 않는다고 본다면, 대통령은 재직 전이나 재직중에 범한 대부분의 죄에 관하여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특별한 혜택을 받게 되는 결과 일반국민이 누릴 수 없는 특권을 부여받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가 앞에서 본 헌법 제84조의 근본취지의 그 어느 것에 비추어 보더라도 정당성이 뒷받침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또 만일 대통령의 재직중에도 공소시효가 진행된다고 해석한다면 임기 중에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범죄가 상당히 있게 되어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우리 헌법은 법치주의를 기본적인 이념의 하나로 삼고 있고, 특히 제69조에서는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1972.12.27. 개정 헌법 제46조와 1980.10.27. 개정 헌법 제44조에도 같은 취지로 규정되어 있다),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성실히 헌법상의 법치주의의 이념에 따라 헌법과 법률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인바, 우리 헌정사의 경험에 비추어 대통령이 그 직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헌법을 준수하여 법치주의의 이념을 실현하도록 하기 위하여도 헌법 제84조를 위와 같이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다) 다음으로 공소시효제도나 공소시효정지제도의 본질에 비추어, 헌법 제84조에 따라 대통령의 재직중 소추를 할 수 없는 범죄에 대하여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어야 한다는 해석이 타당한 것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살펴본다.
형사소송법이 일정한 기간의 경과를 이유로 범인에 대한 처벌을 면제하는 공소시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근본취지는, 다른 시효제도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기간의 경과에 따른 사실상태의 존중, 다시 말하면 법적 안정성을 고려함에 있다고 할 것이다. 즉 공소시효제도의 존재이유는, 오랜 동안 형사상의 소추권이 행사되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국가가 소추권의 행사를 게을리 한 것에 다름 아닌데도 그 불이익을 오로지 범인만이 감수하여야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 유죄의 증거이든 무죄의 증거이든 오랜 기간의 경과로 증거가 산일(散逸)됨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시간의 경과에 따라 범죄의 사회적 영향력이 미약해 질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범인의 범행에 대한 후회나 처벌에 대한 불안 등으로 오랜 기간 동안 범인이 처벌을 받은 것과 비슷한 상태가 계속되어 형벌이 기대하는 범인의 인격의 변화가 기대될 수 있음에 반하여, 처벌한다고 하더라도 형벌이 기대하는 범인에 대한 형벌의 감화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오래 전의 범죄에 대한 수사나 재판의 필요를 면제함으로써 국가의 부담의 경감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이유가 공소시효제도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더라도, 죄를 범한 자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는 형사사법적 정의의 기본적인 요청에 따라 특정한 범죄에 관하여는 아예 공소시효 자체의 적용을 배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입법례도 있다(예컨대 독일에 있어서 모살죄, 프랑스에 있어서 각종 군사범죄 등).
한편 시효제도의 근본적인 존재이유가 오랜 동안 권리의 행사를 게을리 함으로써 생긴 새로운 사실상태를 존중한다는 데 있는 것이므로, 검사가 법률상의 장애사유로 인하여 소추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진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입법례에 따라서는 소추권의 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가 있는 경우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는 일반원칙을 명문화함과 아울러 소추권행사에 있어서의 개개 사실상 장애사유까지도 공소시효의 정지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예컨대 독일), 그것이 법률상의 장애사유이건 사실상의 장애사유이건 간에 입법의 미비로 인하여 공소시효의 정지에 관한 위 일반원칙에 어긋나는 구체적 사례가 나타나는 경우 명문의 규정이 없이도 위 원칙을 적용하여 공소시효진행의 정지를 판례로써 인정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예컨대 프랑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은 공소시효제도나 공소시효정지제도의 본질에 비추어 보면, 비록 헌법 제84조에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만 규정되어 있을 뿐 헌법이나 형사소송법 등의 법률에 대통령의 재직중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명백히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위 헌법규정의 근본취지를 대통령의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할 수 없는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진행은 정지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즉 위 헌법규정은 바로 공소시효진행의 소극적 사유가 되는 국가의 소추권행사의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므로, 대통령의 재직중에는 공소시효의 진행이 당연히 정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라) 이에 대해 공소시효제도는 결과적으로 범인으로 하여금 소추와 처벌을 면하게 함으로써 그 법적 지위의 안정을 법률로써 보장하는 제도이므로, 공소시효의 정지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이외에 함부로 그 공소시효의 정지를 인정하는 것은 자칫 헌법상에 규정된 적법절차주의(제12조 제1항)나 죄형법정주의(제13조 제1항)에 위반되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어 극히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인데, 헌법에는 물론 형사소송법이나 다른 어느 법률에도 대통령의 재직중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에, 위와 같이 해석한다면 대통령에 대하여는 헌법이 보장하는 적법절차주의나 죄형법정주의의 예외를 인정하여 일반국민보다 오히려 불이익하게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헌법 제84조 자체가 대통령이 퇴직한 후에는 일반국민과 마찬가지로 범죄에 대한 형사상의 소추를 할 수 있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여, 대통령에 대하여는 재직중에 한하여 형사상의 소추를 유예함으로써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직책의 원활한 수행을 도모하고 있는 것일 뿐이므로, 위 헌법규정이 대통령에 대하여 형사상의 소추를 유예하는 이외에, 소추권의 행사가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소시효가 계속 진행되는 것으로 봄으로써 대통령의 재직중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범죄에 대한 형사상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특권을 부여하는 규정이라고 볼 수 없다 함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다. 또한 이 문제는 대통령에 한하여 재직중 일정한 범죄에 대하여는 형사상의 소추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 헌법 제84조 자체에서 말미암은 것으로서, 위 헌법규정이 대통령에 한하여 적용되는 것이므로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지의 여부도 대통령에 한하여 문제로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것이고, 그렇게 본다고 하여 일반국민에 비하여 대통령을 형사상 특별히 불리하게 취급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헌법이 대통령에 대하여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유예한다는 특권을 부여하였다면 그로 인한 일반국민과 대통령 사이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서 형사상의 소추가 유예되는 동안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헌법상의 국민주권주의와 평등주의에 합치되는 해석이 될 것이다. 더욱이 헌법 제84조가 적용되는 사람은 오로지 대통령 1인 뿐이므로 설사 헌법이나 법률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위 헌법규정 자체의 해석만으로 공소시효의 정지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일반국민의 법적 안정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는 보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헌법 제84조에 따라 소추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어야 한다는 것은 위와 같은 당연하고도 정당한 법리가 적용된 결과일 뿐이라고 할 것이므로 헌법상의 적법절차주의나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마) 결론적으로 피의자 전두환에 대한 군형법상의 반란죄 등에 관한 공소시효는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한 7년 5월 24일간은 진행이 정지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2001년 이후에야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다만 이 부분 결론에 관하여는, 아래 “7” 기재와 같은 재판관 김진우, 재판관 조승형의 보충의견이 있고, 대통령 재직중에도 위 각 범행에 대한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아니한다는 재판관 김문희, 재판관 황도연의 아래 “8나” 기재와 같은 반대의견이 있다.
나. “혐의없음” 처분의 당부에 관한 판단
(1) 형법상의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목적살인미수의 점에 대한 “혐의없음” 처분에 관하여 본다.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심판청구에 관하여, 권리보호의 이익이 있는지의 여부를 살펴본다.
헌법소원의 제도는 국민의 기본권침해를 구제하여 주는 제도이므로 그 제도의 목적상 권리보호의 이익이 있어야 이를 제기할 수 있는바,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에 있어서도 그 대상이 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을 때에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으며 또 헌법소원 제기 후에 그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도 역시 그 심판청구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것이 당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임은,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다.
그런데 형법상의 내란수괴죄(제87조 제1호), 내란목적살인죄(제88조) 및 내란목적살인미수죄(제89조, 제88조)의 법정형은 형법 제87조 제1호, 제88조, 제89조에 의하여 모두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이므로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1호, 제250조에 의하여 그 공소시효의 기간은 모두 15년이고, 공소시효의 기산점은 범죄행위가 종료한 때이다(형사소송법 제252조).
청구인들은, 이른바 12·12 사건은 그 이후의 피의자 전두환 등의 정권찬탈과정과 포괄하여 내란죄로 평가되어야 하므로 그 후의 역사적 전개과정에 비추어 볼 때 내란죄는 1981.4. 마지막으로 개최된 국가보위입법회의 제25차 본회의의 시점까지 계속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따라서 내란죄의 공소시효의 기산점은 내란죄의 범죄행위가 종료된 1981.4.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형법상의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고(형법 제87조) 여기서 폭동이라 함은 다수인이 결합하여 폭행·협박을 하는 것을 말하며 그 폭행·협박의 정도는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고 그 폭동행위로서의 집단행동이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에 이르렀을 때에 기수(旣遂)로 된다고 하는 것이 통설과 판례(대법원 1980.5.20. 선고, 80도306 판결 참조)의 견해인바, 이 사건 수사기록과 청구인들이 낸 고소장의 기재에 의하면 이 사건 피의자들은 피의자 전두환 등 지휘부의 지시로 각자 분담한 바에 따라 1979.12.12. 18:50경 병력을 이끌고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이르러 무기로 경비병을 위협하여 무장을 해제시키고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총기로 위협하여 같은 날 19:27경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강제 연행하고(그 과정에서 이에 저항하는 총장부관 이재천 소령과 경호장교 김인선 대위 등에게 총격을 가하여 각 상해를 입게 하였다), 같은 날 21:30경 대통령경호실 병력을 무단 동원하여 총리공관 특별경호대장 구정길 등을 총으로 위협하여 경비병들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대통령 관저인 총리공관을 장악하였으며, 피의자 전두환 등이 최규하 대통령으로부터 정승화 총장의 연행·조사에 대한 재가를 얻지 못하자 병력을 동원하여 그 위력을 과시하는 한편 육군 정식 지휘계통을 제압하기로 하고, 같은 날 23:00경부터 그 다음날인 12.13. 03:40경까지 사이에 “합수부”측 병력을 동원하여 이에 저항하는 정병주 특전사령관 등을 제압하고 (12.12. 23:50경 특전사령관 연행과정에서 총격을 가하여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을 현장에서 살해하고 위 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는 상해를 입게 하였다), 윤성민 육군참모차장, 장태완 수경사령관, 문홍구 합참 대간첩대책본부장 등을 비롯한 육군 주요지휘관 및 참모들을 체포하고 국방부장관을 연행하는 한편 육군본부와 국방부 및 중앙청 등의 주요기관을 점령하고, 경복궁과 고려대학교 등 서울시내 주요지역에 병력을 진주시킨 다음 (12.13. 00:30경 국방부 점령과정에서 국방부 근무 초병인 정선엽 병장에게 총격을 가하여 현장에서 그를 살해하고, 같은 날 03:40경 수경사령관실에 진입, 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에게 총격을 가하여 상해를 입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12.13. 05:10경 최규하 대통령으로 하여금 위와 같은 사태에 관한 보고문서에 서명하도록 하고, 같은 날 아침 노재현 국방부장관으로 하여금 군이 10·26 사건과 관련하여 정승화 총장을 연행·조사하는 한편 그에 관련된 일부 군장성들도 구속수사 중이라는 취지의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게 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내란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인 폭동행위로서의 집단행동은 늦어도 12.13. 아침 국방부장관이 담화문을 발표한 시점무렵에, 내란목적살인죄 및 동 미수죄의 각 객관적 구성요건인 살해 또는 그 미수의 행위는 위 각 총격이 있었던 시점 무렵에 각각 범행이 종료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피해자 김오랑에 대한 내란목적살인 및 피해자 이재천, 김인선, 정병주 등에 대한 내린목적살인미수의 각 피의사실에 대한 공소시효는 1979.12.12.부터, 내란수괴 및 피해자 하소곤 등에 대한 내란목적살인미수의 각 피의사실에 대한 공소시효는 그 다음날인 12.13.부터 각 진행된다 할 것이고, 그로부터 각 15년이 경과된 1994.12.11. 및 같은 해 12.12. 위 각 피의사실에 대한 공소시효가 모두 완성되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 사건 심판청구 중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목적살인미수의 점에 관한 부분은 위 각 죄의 피의사실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되어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 할 것이므로, 본안(이들 범죄의 성립 여부)에 관하여 판단할 것도 없이, 부적법하여 이를 모두 각하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이 부분 결론에 관하여는, 위 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아직 완성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본안에 들어가 판단해야 한다는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의 아래 “8가” 기재와 같은 반대의견이 있다.
(2) 군형법상의 반란목적군용물탈취 및 일반이적의 점에 대한 “혐의없음” 처분에 관하여 본다.
피청구인은 이 부분 피의사실에 관하여, 반란목적의 군용물탈취죄(군형법 제6조)는 인정되나 이는 반란죄(군형법 제5조)에 흡수되어 피의자 전두환에 대한 반란죄를 인정하는 이상 별도로 위 죄는 성립되지 아니하며, 또 일반이적죄(군형법 제14조 제8호)에 관하여는 위 피의자의 행위를 곧 군사상 이적행위로는 볼 수 없으며 달리 동 피해자에게 이적(利敵)의 범의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하여, 모두 “혐의없음”의 처분을 하였는바, 기록에 의하여 검토하여도 위 인정,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고 달리 피청구인이 이 부분 피의사실(고소사실)에 관하여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수사를 하였다거나 헌법의 해석, 법률의 적용 또는 증거판단에 있어서 위 “혐의없음” 처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고도 볼 수 없으므로, 위 처분으로 인하여 청구인들 주장의 그 기본권 등이 침해되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청구인들의 이 부분 심판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모두 기각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이 부분 결론에 관하여는, 이 부분 심판청구도 위 두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완성으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이 이를 각하해야 한다는 재판관 김문희, 재판관 황도연의 아래 “8나” 기재와 같은 반대의견이 있다.
다. “기소유예”처분의 당부에 관한 판단
(1) 우리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1항은 사인의 소추를 허용하지 아니하고, 공소는 오로지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만이 제기하여 수행하도록 공소권자를 검사로 한정함과 아울러 원칙적으로 검사는 형법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소유예”처분은 위와 같이 검사가 위 법조항에 규정된 기소편의주의에 근거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하는 처분으로서, 공소를 제기하고 유지하기에 충분한 범죄의 혐의가 있고 소추요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소권자인 검사가 형사정책적인 재량에 의하여 행하는 불기소처분이라는 점에서, 범죄의 혐의가 불충분하거나 소추요건을 갖추지 못하는 등의 객관적인 소추장애사유 때문에 하는 그 밖의 불기소처분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2) 기소편의주의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1항은 “검사는 형법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다른 제한은 가하지 않고 있으므로, 공소를 제기할 것인지의 여부는 기본적으로 검사의 “재량”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모든 국민의 법률 앞에서의 평등권(헌법 제11조 제1항),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에서의 진술권(헌법 제27조 제5항), 범죄피해 국민의 구조청구권(헌법 제30조) 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정신과, 검사의 불편부당한 공소권행사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기본적 전제로 하는 기소편의주의제도 자체의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검사의 소추재량권은 그 운용에 있어 자의가 허용되는 무제한의 자유재량이 아니라 그 스스로 내재적인 한계를 가지는 합목적적 자유재량으로 이해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1항은 그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소편의주의의 운용기준이라고 할 참작사항으로서 형법 제51조에 규정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사항들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앞서 본 기소편의주의 혹은 소추재량권의 내재적 제약은 바로 형법 제51조에 집약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따라서 위 법조에 규정된 사항들이나 이러한 사항들과 동등하게 평가될 만한 사항 이외의 사항에 기한 검사의 “기소유예”처분은 소추재량권의 내재적 한계를 넘는 자의적인 처분으로서 정의와 형평에 반하고 헌법상 인정되는 국가의 평등보호의무에 위반되는 것으로 귀착된다.
(3)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1항은 “검사는 형법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형법 제51조에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판단의 기준이 될 사항으로서 “1.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2. 피해자에 대한 관계, 3.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4. 범행후의 정황”이 규정되어 있다.
검사가 기소편의주의에 따라 소추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참작하여야 할 사항은 형법 제51조에 규정된 네 가지 유형의 사항들에만 한정되는 것인가에 대하여 한정적 열거조항이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없지는 아니하나, 형법 제51조에 규정된 사항들은 단지 예시적인 것에 불과하고 피의자의 전과 및 전력, 법정형의 경중, 범행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 사회정세 및 가벌성의 평가의 변화, 법령의 개폐, 공범의 사면, 범행 후 시간의 경과 등과 같이 위 법조에 예시되지 아니한 사항도 참작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
또 형법 제51조에 규정된 네 가지 유형의 사항 중, 다의적 개념인 “범행 후의 정황”은 범행 후 판결선고에 이르기까지의 피고인의 행태, 범행 후의 범인의 태도, 범행 후의 회오, 피해회복 또는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 소송중 피고인의 태도 등은 물론, 당해 범죄가 사회일반에 미치는 영향, 범죄 이후의 사회정세의 변화, 범행 후의 시간적 경과, 법령의 개폐, 형의 변경, 사면 등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함이 상당하다.
그리고 검사가 소추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참작하여야 할 형법 제51조에 규정된 사항 중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 즉, 기소하여야 할 사유와 불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 즉, 기소를 유예할 만한 사유가 서로 경합할 경우에 어느 사유를 선택할 것인지는 원칙적으로 검사의 “재량”의 범위에 속한다.
다만 그와 같은 선택에 명백하게 합리성이 결여된 경우, 예컨대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참작사유가 중대한 데 비하여 불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는 경미함에도 불구하고 기소를 유예하거나, 그 반대로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가 불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에 비하여 경미한 것이 객관적으로 명백함에도 기소를 하는 것은, 어느 것이나 소추재량권의 남용으로서 기소편의주의의 내재적 한계를 넘는 “자의”적인 처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소편의주의의 한계를 위와 같이 이해한다면 이 사건에 있어서는, 첫째 검사가 “기소유예”의 이유에서 제시하고 있는 사항이 과연 형법 제51조에 예시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사항에 포함되거나 이와 동등하게 볼 수 있는 사항인지의 여부와, 둘째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참작사유가 중대함에 비하여 불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가 현저하게 경미한 것인지의 여부 등 두 가지 점이 문제로 된다.
(4)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의 당부에 대하여 판단을 함에 있어서는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는 피의자들의 범행이 군권(軍權)의 장악을 목적으로 불법한 병력동원과 무력행사를 통하여 인명을 살상하고 저질러진 하극상의 군사반란으로서 국민들로 하여금 좌절감과 굴욕감을 느끼게 하였고, 우리 헌정사에는 왜곡과 퇴행의 오점을 남기게 한 범죄행위이며, 피의자들이 범행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청구인들에 대하여는 물론이고 궁극적인 피해자인 국민들에 대하여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한 바 없었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범행이 계기가 되어 피의자들 중 두 사람은 대통령으로서, 나머지 피의자들은 그 보조자로서 혹은 국회의원 등으로서 십수년간을 국정운영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이 나라를 이끌어 왔고, 그 기간 동안 형성된 질서는 이미 우리 역사의 일부로서 자리잡아 크든 작든 그리고 싫든 좋든 오늘날의 정치·경제·사회의 전반에 걸친 기성질서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이 사건 범행의 핵심적 주역 중의 한 사람인 피의자 전두환은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고, 같은 노태우는 국민들의 손에 의하여 직접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범행의 처리와 관련되어 국회의 소위 “5공비리청문회”를 통하여 한차례의 여과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두 가지의 사실은 피의자 전두환의 범행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서로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된다.
첫번째 사실은 이 사건 범행의 동기, 수단과 방법, 피의자들의 태도 및 우리 역사에 미친 영향 등에 비추어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라고 봄이 상당하다. 이러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하는 것은 잘못된 과거의 청산에 철저하지 못할 뿐 아니라, 통상적인 중죄의 처리결과와 대비하여 균형을 잃게 되어 형사사법(刑事司法)의 정의에 반하고, 국민들의 일반적인 법감정상으로도 용납될 수 없으며, 제2, 제3의 군사반란에 대한 충분한 경고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두번째 사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정권이 창출되고, 그 정권과 국민의 타협으로 그 다음 정권이 들어서고, 다시 새로운 정권과 야당의 연합으로 현재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는 역사적 현실에 대한 인식을 그 판단의 출발점으로 하여, 현재의 헌법과 골격을 같이하는 헌법 아래서 그 헌법에 의하여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혹은 각료나 국회의원으로서 일한 피의자들이 사법적 판단에 의하여 범죄자로 규정되어 처벌된다면, 지난 십수년 동안 그들이 직무상 행한 수많은 결정과 처분의 정당성이 한꺼번에 부정됨으로써 국정전반이 불확실한 상태에 놓이게 되고, 국제적으로도 국위와 국익에 대한 중대한 손상이 생길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피의자들의 통치 아래 십수년간을 살아 왔고 그들 중의 한사람을 직접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던 국민들의 자존심과 체면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가하게 됨은 물론, 장기간의 재판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어둔 과거사의 재연(再演)으로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증폭됨으로써 국민정서의 혼란과 국력의 낭비가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으므로 불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라고 봄이 상당하다.
(5) 검사의 “기소유예”처분 이유에 의하면, 요컨대 검사는 이 사건 범행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위와 같이 상반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두 가지 사실과 평가 중에서 불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두번째의 사실과 그에 대한 평가를 채택하여 피의자들에 대한 기소를 유예한 것으로 판단된다.
청구인들은 검사가 “기소유예”처분의 이유로 들고 있는 사유들은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1항과 형법 제51조에 의하여 인정되는 소추재량권의 운용기준에 부합하지 아니한 정치적 이유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형법 제51조에 규정된 사항은 예시적인 것이고, 또한 형법 제51조 제4호에 규정된 “범행 후의 정황”에는 범죄 이후의 사회정세의 변화, 시간의 경과, 가벌성 평가의 변화 등의 제반사항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함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으므로, 검사가 불기소이유의 근거로 삼은 두번째의 사실은 형법 제51조에 규정된 “범행 후의 정황”에 속하는 사유들로서 파악하여야 할 것이고 따라서 청구인들의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또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검사가 범행 후의 정치적 사정 등을 고려하여 “기소유예”처분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검사가 인정한 범죄사실로 미루어보면 검사가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치적 이유로 관용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제 검사가 불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참작한 사유가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들에 비하여 객관적으로 보아 현저하게 가벼운 것인지의 여부만이 문제로 남는다.
그러나 앞서 두 가시 사실의 대비에서 본 바와 같이, 충실한 과거의 청산과 장래에 대한 경고, 정의의 회복과 국민들의 법감정의 충족 등 기소사유가 갖는 의미도 중대하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대립과 갈등의 장기화, 국력의 낭비, 국민의 자존심의 손상 등 불기소사유가 갖는 의미 또한 가볍다고만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고, 양자간의 가치의 우열이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가치의 우열이 명백하지 아니한 상반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두 가지 참작사유 중에서 검사가 그 어느 한 쪽을 선택하고 다른 사정도 참작하여 기소를 유예하는 처분을 하였다고 하여 그 처분이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1항에 규정된 기소편의주의가 예정하고 있는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서 헌법재판소가 관여할 정도로 자의적인 결정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점에 대한 청구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이 부분 결론에 관하여는, 이 “기소유예”처분은 공소권을 남용한 것으로서 마땅히 취소되어야 한다는 재판관 조승형, 재판관 고중석의 아래 “8다” “8라” 기재와 같은 반대의견과 이 부분에 관한 심판청구도 공소시효의 완성으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이를 각하해야 한다는 재판관 김문희, 재판관 황도연의 아래 “8나” 기재와 같은 반대의견이 있다.
6. 결론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피청구인의 피의자 전두환에 대한 불기소처분으로서 그 내용은 동인의 내란수괴(형법 제87조 제1호), 내란목적살인(형법 제88조), 내란목적살인미수(형법 제89조, 제88조), 반란목적군용물탈취(군형법 제6조) 및 일반이적(군형법 제14조 제8호)의 점에 대한 각 “혐의없음”의 처분과 기타 군형법위반의 점(반란수괴, 불법진퇴,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상관살해, 상관살해미수 및 초병살해)에 대한 각 “기소유예”의 처분인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중 ①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목적살인미수의 점에 관한 심판청구는 위 각 죄의 피의사실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 할 것이므로 부적법하여 이를 모두 각하하여야 할 것이고, ② 반란목적군용물탈취 및 일반이적의 점에 관한 심판청구는 이유 없는 것이므로 이를 모두 기각하여야 할 것이며, ③ 기타 군형법위반의 점에 대한 “기소유예”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심판청구도 이유 없는 것이어서 이를 모두 기각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청구인들의 이 사건 심판청구 중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목적살인미수죄에 관한 부분은 이를 모두 각하하고 그 나머지 범죄들(군형법위반의 각 범죄)에 관한 부분은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이에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에는 재판관 김진우, 재판관 조승형의 위 다수의견에 대한 아래 “7” 기재와 같은 보충의견이 있는 외에, 위 ①부분 결론에 관하여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의 아래 “8가” 기재와 같은, ②부분 결론에 관하여 재판관 김문희, 재판관 황도연의 아래 “8나” 기재와 같은, ③부분 결론에 관하여 재판관 조승형, 재판관 고중석의 아래 “8다”, “8라” 기재와 같은, 재판관 김문희, 재판관 황도연의 아래 “8나” 기재와 같은, 각 반대의견이 있다.
7. 재판관 김진우, 재판관 조승형의 보충의견
대통령의 재직기간 중에는 내란 또는 외환죄를 제외한 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다수의견에 대한 재판관 김진우, 동 조승형의 보충의견은 다음과 같다.
(1) 민사법상의 시효제도는 유효하게 권리행사를 하는데 장애가 없음에도 권리행사를 하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을 방치하여 권리 위에 잠자는 자보다 오랜 세월 동안 계속된 사실상태 위에 이루어진 법률관계를 보호하자는 제도이고, 형사법상의 시효제도도 유효하게 공소권행사를 하는 데 장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장구한 세월동안 이를 하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을 지낸 경우 그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시효의 진행은 민사법에서는 권리행사를, 형사법에서는 공소권행사를 유효하게 하는데 장애가 없는 것을 요건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소권행사를 유효하게 할 수 없는 장애는 공소시효진행의 소극적 요건이고, 공소권행사를 유효하게 할 수 없는 법률상 장애규정은 바로 공소시효의 진행을 정지시키는 규정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헌법 제84조에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대통령직에 있는 자연인이 범한 내란 또는 외환죄 이외의 죄에 대하여는 공소권행사를 할 수 없는 것으로, 즉 유효한 공소권행사에 대하여 법률 그것도 헌법에 장애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위 규정은 비록 직설적으로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규정하지는 아니하였으나 공소시효의 진행에 대한 소극적 요건을 규정한 것이므로, 공소시효의 정지를 규정한 규정이라고 보기에 족하다고 할 것이다.
(2) 이렇게 볼 때 헌법규정에 근거하여 공소시효의 정지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법률이나 헌법의 근거없이 공소시효의 정지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법률규정을 유추적용하는 것도 아니요, 확대해석하는 것도 아니며 더구나 법률을 소급적용하는 것도 아니므로 죄형법정주의에 반하지도 아니하고, 법치주의에 반하지도 아니한다. 이렇게 보지 아니할 때에는 도리어 대통령직에 있는 자연인이 범한 범죄 중 공소시효기간이 대통령의 임기보다 짧은 범죄나 대통령 재직 전에 범한 죄로서 대통령직 취임 전에 진행하고 남은 공소시효기간이 대통령의 임기보다 짧은 범죄에 대하여는 영영 소추되지 아니하여 대통령은 이러한 범죄를 범하여도 처벌받지 아니하는 결과가 됨으로써 대통령은 이러한 범죄들에 관한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되고 그러한 법 중에는 대통령의 직무에 관한 것도 포함되므로 결국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을 허용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3) 혹은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에게 특권을 규정한 것인데도 대통령 재직중에는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할 때에는 도리어 일반국민보다 공소시효기간이 늘어나는 결과가 되어 오히려 대통령직에 있는 자연인에게 불리하다고 할 지 모르나 헌법 제84조에 의하여 내란 또는 외환죄를 제외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대통령 재직기간 중 정지된다고 하여도 이러한 범죄에 대하여 소추당할 수 있는 기간은 일반국민과 동일하고 더 길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법률상 더 불리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헌법 제11조 제1항의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규정의 모든 국민 속에는 대통령직에 있는 자연인도 포함되는 것이므로 이렇게 보아야만 소추당할 수 있는 기간에 있어 대통령직에 있는 자연인과 일반국민이 동 헌법 조항에 정한바 법 앞에 평등한 것이 된다. 그리고 내란 또는 외환죄를 제외한 범죄에 대하여 공소시효기간이 대통령의 임기보다 짧거나 대통령 재직 전에 범한 범죄로서 공소시효기간이 대통령직 취임 전에 진행하고 남은 기간이 대통령임기보다 짧은 범죄에 대하여도 일반국민과 똑같이 소추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대통령직에 있는 자연인도 일반국민과 법 앞에 평등하다는 위 헌법 조항에 합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헌법 제84조에 의하여 내란 또는 외환죄를 제외한 나머지 죄에 대하여는 대통령 재직기간 중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다수의견을 보충하는 바이다.
8. 반대의견
가.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의 의견
우리는 다수의견 중 내란죄 등에 대한 “혐의없음” 불기소처분의 취소청구부분이 공소시효완성으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각하한다는 의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반대한다.
(1) 우리 헌법재판소가 판례로 확립하고 있는 1993.9.27. 선고 92헌마284 불기소처분취소사건의 결정 중 “헌법소원이 심판에 회부된 경우도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인정함은 허용되지 않는다”라는 판시부분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변경되어야 한다.
첫째, 우리 헌법재판소의 위 판례는 불기소처분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절차에서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느냐라는 문제를 공소시효제도의 법리에서 찾지 아니하고 형사소송법 제262조의2의 유추적용문제로 보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한 것이며 이런 오류는 위 사건의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모두 범한 것이다.
검사의 불기소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의 경우에는 헌법소원 당시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확정적으로 나타나 있고, 헌법소원심판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검사가 기소를 하리라는 것에 대하여 기대가능성이 없다 할 것이므로 비록 형식적 법효력상으로는 헌법소원심판절차가 진행 중에 검사가 기소를 함에 장애사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소추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와 가치적으로 등가로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소추권을 유효하게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듯이 실질적으로 검사의 기소가 기대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도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법리에 따르면 위의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느냐는 문제는 공소시효제도의 법리에서 판단되어질 뿐 형사소송법상의 재정신청에 관한 규정의 유추적용이 문제로 되지 아니한다.
둘째, 위 사건의 다수의견은 공소시효제도의 본질이 국가형벌권의 소멸이라는 점에서 실체법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그 예외로서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 경우는 특별히 법률로써 명문의 규정을 둔 경우에 한하여야 하고 명문이 없는 경우에 형사소송법상의 재정신청에 관한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공소시효의 정지를 인정하는 것은 헌법상의 적법절차주의,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는 견해이나, 현행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3호는 공소의 시효가 완성되었을 때에는 판결로써 면소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다수의견과 같이 현행 형사소송법상의 공소시효제도의 본질이 실체법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을 때에는 반드시 무죄판결을 선고해야 한다고 규정했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면소판결을 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취지는 공소시효제도의 본질이 실체법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임이 명백하다.
따라서 형사소송법상 명문이 없는 경우에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경우를 공소시효제도의 법리에 따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형사소송법은 죄와 형을 정하는 실체법이 아니므로 헌법상의 죄형법정주의나 적법절차주의에 반하지 아니한다.
셋째, 공소시효제도의 법리는 프랑스판례에서 “시효는 유효하게 소추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하여 진행하지 아니한다”라는 법언을 적용하고 있듯이 국가의 소추권이 유효하게 행사될 수 있는 경우에만 공소시효가 진행된다 할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 경우는 형사소송법이 공소시효정지제도 자체를 인정하고 있는 이상 명문에 그 정지규정이 있는 여부를 가리지 아니하고 공소시효제도의 법리에 따라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 경우를 인정할 수 있고 형사소송법에 명문규정을 두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위 법리를 확인함에 불과하다 할 것이므로, 검사의 불기소처분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청구가 적법요건의 심사를 거친 후 심판에 회부되었다면 그때부터 불기소처분에 대한 취소결정이 있을 때까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봄이 마땅하다. 그렇다면 앞서 본 우리 헌법재판소의 결정 중 위 판시사항은 우리의 견해대로 변경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2)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를 보면
“혐의없음” 불기소처분이 된 내란죄 등은 1994.11.29. 우리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회부되었으므로 그 때부터 동죄 등의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 할 것이고, 1979.12.13. 기수에 이른 동죄 등의 공소시효기간인 15년이 1994.11.29. 현재까지 경과되지 아니하였음이 명백하므로 동죄 등에 대한 “혐의없음” 불기소처분의 당부·위헌여부 등 본안심리에 들어갈 것이지 청구각하의 결정을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나. 재판관 김문희, 재판관 황도연의 의견
우리는, 청구인들의 이 사건 심판청구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으므로 부적법하여 모두 각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주문기재의 “각하” 부분에는 찬성하지만, 그 “기각” 부분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이다. 즉, 앞서 본 바에 의하면, 피의자 전두환의 이 사건 피의사실은 그것이 형법상의 “내란의 죄”에 해당하는 것이든 군형법위반의 죄에 해당하는 것이든 모두 그 죄의 법정형에 “사형”이 선택형이나 단일형(單一刑)으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그 공소시효의 기간은 모두 15년이고(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1호, 제250조), 이 사건 수사기록에 의하면 위 모든 범행은 1979.12.12. 또는 그 다음날인 12.13.에 각 종료되었다고 인정되므로 그로부터 15년이 경과된 1994.12.11. 또는 그 다음날인 12.12.에 각 그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 할 것이며, 이러한 경우에는 그 범행에 대한 불기소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은, 그 공소시효의 완성시점이 헌법소원의 제기 전이든 또는 제기 후든 막론하고,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는 것이 우리재판소의 판례이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모두 부적법하여 각하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의견이다.
그런데, 이 점에 관한 다수의견과 우리의 의견이 갈리는 점은 피의자 전두환의 이 사건 군형법위반의 각 범죄에 대하여 다수의견은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한 기간 동안 이들 범행에 대한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는 것이고 우리의 견해는 정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러한 견해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우리 헌법 제84조의 해석론과 공시시효제도 및 그 정지제도에 관한 인식이 피차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여지므로, 이 점에 관한 우리의 견해와 그 논거를 밝히기로 한다.
(1) 공소시효제도의 본질과 공소시효의 정지
(가) 공소시효제도는 범죄행위가 종료한 뒤 공소가 제기되지 아니하고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사실상의 상태를 존중하여 국가의 형벌권의 행사를 못하게 하는 제도이다. 공소시효제도는 위와 같이 범죄행위가 종료한 뒤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사실상의 상태를 존중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그 기간이 경과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가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그 제도의 존재이유가 범죄행위가 종료한 뒤 시간의 경과로 말미암아, 범죄의 사회적 영향력이 미약하게 됨에 따른 가벌성의 감소에 있든, 증거가 흩어지고 없어짐에 따라 공정한 재판의 실현이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든, 위 두 가지 이유가 모두 보태어져 그런 것이든, 결국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사실상의 상태를 존중하여 국가의 형벌권의 행사를 못하도록 함으로써 형사피의자의 법적·사회적 지위의 안정을 부여하려는 제도임에는 틀림이 없다.
위와 같은 기능을 가진 공소시효제도는 기본적으로는 죄를 범한 자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는 범인필벌(犯人必罰)의 요청과 비록 죄를 범한 자라고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소추에 관하여 불안정한 상태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법적 안정성의 요청을 정책적으로 조화시킨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시시효제도의 중핵을 이루는 것은 요컨대 처벌의 필요성과 범인의 법적 안정성을 어느 선에서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 할 것이고, 따라서 그 조정선(調整線)의 결정은 앞서 본 공소시효제도의 존재이유 외에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형사사법제도, 범죄 및 그 처벌에 관한 국민의 정서, 인권의식의 정도, 형사정책적 고려 등 제반사정을 참작하여 입법자가 이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어떤 범죄가 공소시효의 적용대상이 되는지의 여부(즉, 공소시효의 적용대상을 모든 범죄로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중 일정한 범죄는 이를 제외할 것인가의 문제)와 그 시효기간의 장단이라든가 또는 그 중단 또는 정지사유 등은 모두 입법자의 입법형성의 자유에 속하는 사항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공소시효의 기간은 물론 그 정지사유도 나라마다 그 내용이 다른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어떠한 사유가 그 정지사유가 되는지의 여부는 오로지 그 나라의 실정법 체계 안에서 밝힐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다.
(나) 형사법상의 시효제도는, 제도사적(制度史的)으로 볼 때, 한편으로는 민사법상의 시효제도의 법이론·법기술에 의존하여 발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형사법의 독자성을 기초로 하여 민사법에의 의존에서 벗어나 현재와 같은 제도로 발전한 것이다. 민사법상의 시효이든 형사법상의 시효이든 모두 “시간의 경과”를 “일정한 법률관계의 소멸”과의 사이에 원인·결과의 관계로 결합시키고 있는 점은 공통되나, 이 둘 사이의 실질적 내용은 형식의 유사성과는 달리 대조적인 면이 많다.
한마디로 말하면, 민사법상의 소멸시효가 주관주의적인 입장에서 있음에 반하여, 형사법상의 공소시효는 객관주의적인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사법의 소멸시효는 소멸되는 대상인 법률관계가 개인의 일정한 “재산적 청구권”이고, 청구권자의 주관적 지위를 주된 착안점으로 하여 시간의 경과를 파악함을 그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소멸시효제도의 근거는 청구권자가 청구권의 행사를 게을리 하였다는 데에 있고, 그 당연한 결과로 법률상 권리행사의 장애사유는 바로 소멸시효의 중단 또는 정지의 사유가 된다.
이에 반하여, 형사법상의 공소시효의 대상이 되는 권리는 일정한 범죄에 대한 국가의 “소추청구권”으로서 공공적인 권리이고, 공소시효의 기간을 결정하는 기준은 객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소추권자가 그 소추권의 행사를 게을리 한 것이라든가 범죄사실에 따르는 특수사정, 예를 들면 범행의 동기·정상 등의 사실이나 범죄자의 인격에 관련되는 주관적 사정 등은 공소시효의 기간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지 아니하고, 오로지 법정형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므로 시효의 기산점 또한 민법이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민법 제166조 제1항)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형사소송법은 “시효는 범죄행위의 종료한 때로부터 진행한다.”(형사소송법 제252조 제1항)라고 규정하여, 공소시효가 객관적인 기준에 서 있음을 밝히고 있다.
(다) 공소시효제도는 범죄행위가 끝난 뒤 공소가 제기되지 않고 일정한 기간이 경과되면 국가의 소추권행사를 못하도록 한 제도이므로 그것이 피의자의 법적 지위에 안정을 가져다 주는 이로운 제도인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공소시효가 완성되면 소추를 금지하도록 한 것은, 피의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지 결코 불이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은 시효기간의 계산에 있어서 기간의 초일은 시간을 계산함이 없이 1일로 산정하고, 기간의 말일이 공휴일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그 기간에 산입하도록 규정(형사소송법 제66조 제1항 단서, 제3항 단서)함으로써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공소시효제도가 범인필벌이라는 공공의 이익과 형사피의자의 법적 안정이라는 인권보장적인 측면을 서로 조화시킨 정책적 제도인 점을 생각할 때, 공소시효의 정지사유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의 문제 역시 입법정책의 문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 경우에는 그 정지된 기간 만큼 바로 시효기간을 연장하는 것으로 되어 피의자가 공소시효제도에 의하여 보장받는 법적이익(즉, 자기의 범행에 대한 소추와 처벌을 면제받는 이익)을 침해당하는 결과가 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헌법 제37조 제2항의 정신에 비추어 반드시 법률로써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는 명문의 규정을 둔 경우에 한하여 정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그러하지 아니하는 한 공소시효의 진행은 방해받지 아니한다고 하여야 함이, 법치주의원칙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형사소송법을 비롯한 우리의 실정법은 공소시효의 정지사유를 원칙적으로 “공소의 제기에 의하여서만” 비로소 시효가 정지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을 뿐, 공소의 제기가 법률의 규정으로 말미암아 제한을 받는 경우 즉 검사가 법률상의 장애사유로 인하여 소추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도 이를 공소시효의 정지사유로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다.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1항은 “시효는 공소의 제기로 진행이 정지되고 공소기각 또는 관할위반의 재판이 확정된 때로부터 진행된다”라고 규정하여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재정신청(형사소송법 제262조의2), 소년보호사건의 심리개시결정(소년법 제54조)에 의하여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재정신청의 경우에는 심리의 결과 법원의 심판에 부하는 결정이 있으면 공소의 제기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며, 소년보호사건의 심리개시결정 역시 공소의 제기에 준하는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에 위 원칙을 존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라) 이 점에 관하여, 다수의견은 “시효제도의 근본적인 존재이유가 오랜 동안 권리의 행사를 게을리 함으로써 생긴 새로운 사실 상태를 존중한다는 데 있는 것이므로, 검사가 법률상의 장애사유로 인하여 소추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소시효의 정지에 관한 “일반원칙” 또는 “당연하고도 정당한 법리”라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에 찬동할 수 없다.
우선 다수의견의 위 전단부분 설시는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민법 제166조 제1항)든가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민법 제162조 제1항)는 민법규정에서 보듯 민사법상의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를 설명한 것으로서, 그것이 어떻게 형사법상의 공소시효정지제도에 적용될 법리가 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이러한 민사법상의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를 근거로, 중세 유럽에서는 “소를 제기할 수 없는 자에 대하여는 시효가 진행하지 아니한다.”는 법원칙이 광범위하게 인정되어 왔으나, 이러한 원칙이 확대적용된 결과 법적 안정성의 침해가 문제되었고 점차로 이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대두하자 입법자들은 근대 민법전을 제정함에 있어 민사상의 소멸시효에 대한 정지사유도 개별적으로 법률로 정하고, 그에 따라 법률에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소멸시효의 정지를 인정하지 아니하게 된 것이 근대 민법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유럽제국의 입법연혁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수의견의 위 설시는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대하여 법률적 장애가 있으면 곧바로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것이 공소시효제도의 원칙이라고 판단함으로써, 우선 근대 민법전의 제정에 의하여 폐기된 중세법상의 민사상 시효제도에 관한 원칙을 곧바로 현대 형사법상의 공소시효나 그 정지제도의 일반원칙이나 법리로 착각하고 있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할 것이고, 또 앞서 본 바와 같이 객관주의적인 입장에 서 있는 공소시효제도의 성격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할 것이다.
(2) 헌법 제84조의 뜻
(가)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을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위 헌법조항의 입법목적이 다수의견이 지적한 것처럼 국가의 원수로서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직책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하고, 그 권위를 확보하여 나라의 체면을 유지해야 한다는 실제상의 필요에 있음은 분명하고, 그렇기 때문에 위 조항에 의한 대통령의 형사상의 불소추특권은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동안에만 인정하여야 한다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위 헌법조항의 뜻은 글자 그대로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한 다른 범죄에 대하여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것을 밝힌 것일 뿐, 위 헌법조항으로 말미암아 소추가 금지된 범죄에 대하여 대통령으로 재직한 기간 동안은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것인지의 여부에 관하여는 아무런 답을 하고 있지 않다고 풀이한다. 다시 말하면 헌법은 그 어느 조항에서도 공소시효의 정지는 물론 공소시효 자체에 관하여 어떠한 규정도 하고 있지 아니하여,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으로 인한 공소시효의 정지 여부에 관하여 중립적이며, 그 어느 편에도 서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위 헌법조항에 대한 가장 평명(平明)한 해석이다. 따라서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소추가 금지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정지 여부는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서는 이를 밝힐 수가 없으므로, 앞서 우리가 여러 차례 강조한 바와 같이 오로지 공소시효와 그 정지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등 우리 실정법체계 안에서 밝힐 수밖에 없고, 우리 형사소송법은 “공소의 제기”가 바로 공소시효의 정지사유임을 밝히고 있을 뿐 “법률상의 장애사유로 말미암아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경우”를 공소시효의 정지사유로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헌법 제84조의 뜻을, 우리의 의견과 같이 재직중 소추가 금지되는 범죄에 대하여도 재직기간 동안 시효가 정지되지 않고 진행한다고 본다면, 대통령은 재직 전이나 재직중에 저지른 상당수의 범죄에 관하여 공소시효의 완성이라는 특별한 혜택을 받게 되는 결과 일반국민이 누릴 수 없는 형사상의 특혜를 받게 되어 특권적 지위를 인정받는 것으로 되고, 나아가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일부 불합리한 결과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이는 위 헌법조항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데 주목하여야 한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 형사소송법이 공소시효의 정지사유를 공소의 제기와 이에 준하는 사유로 한정하고, 법률상의 장애사유로 말미암아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기간 동안 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는 규정을 하고 있지 아니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바로 잡는 길도, 위 헌법조항의 뜻을 바로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것으로 문언에 표현된 내용을 넘어 무리하게 넓혀 해석할 것이 아니라, 형사소송법의 공소시효의 정지에 관한 규정을 개정함으로써 바로 잡는 것이, 바른 길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만일 헌법 제84조의 뜻을 다수의견과 같이 풀이할 때에는, 공소시효제도의 실질이 형사피의자의 이익을 위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그 진행을 정지시킬 수 있는 예외적인 사유를 법률로써 명문으로 규정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헌법이나 법률의 해석을 통하여 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되어, 앞서 본 바와 같이 공소시효제도에 의하여 보장되는 피의자의 법적 이익을 법률의 근거 없이 침해하는 것으로 되어 우리 헌법의 기본이념의 하나인 법치주의에 반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고, 이러한 결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새로운 공소시효의 정지사유를 신설하는 내용의 적극적인 입법을 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른 헌법재판제도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끝으로 다수의견은 헌법 제84조가 적용되는 사람은 오로지 대통령 1인뿐이므로 설사 헌법이나 법률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위 헌법조항 자체의 해석만으로 공소시효의 정지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일반국민의 법적 안정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수의견의 이 부분 설시를 이해할 수가 없다. 법은 언제 어떠한 경우에도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 상황에 따라 자리를 옮겨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헌법이나 법률의 해석은 그 적용대상인 사람의 지위가 높고 낮다거나 그 적용대상인 사람의 수가 많다거나 적다 하여 그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헌법 제84조에 해당하는 사람이 대통령직에 있었던 사람으로 국한된다 하더라도 그 사람 역시 국민의 한 사람임에 다름 아니고, 그 해석에 따른 결과는 일반국민에게도 당연히 미친다는 점을 유의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다수의견에 의하면 헌법 제84조의 해석은 결국 “법률상 소추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불가능한 기간 동안은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되는데, 그러한 경우는 헌법 제84조의 경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한 뒤에 치외법권을 가지게 된 사람의 경우 등에도 당연히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대해석은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법률상 소추 불가능한 경우”를 “사실상 소추의 불가능” 또는 이에 준하는 경우에까지 확대의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다) 요컨대 우리는, 헌법 제84조는 공소시효의 정지 여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조항이라는 것이고, 위 헌법조항을 대통령 재직중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해석하지 아니한다 하여 법치주의에 반하거나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아니한다.
시효제도는 본래 그 적용을 받게 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사이에 차별이 생기기 마련인 제도이고, 형평에 반하는 결과의 근본원인이 위 헌법조항의 탓이 아니라 바로 공소시효와 그 정지사유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등 관계법률에 있음은 이미 앞서 밝힌 바이다. 따라서 헌법 제84조를 우리와 같이 풀이한다 하여 조금도 법치주의에 반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다수의견과 같이 풀이하는 것이 바로 법치주의에 반한다고 우리는 보고 있다.
(3) 결론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공소시효는 법률로써 명문규정을 둔 경우에 한하여 정지된다. 그런데 헌법 제84조는 공소시효의 정지에 관한 명문규정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헌법에는 물론 형사소송법이나 우리 실정법 체계의 다른 어느 법률에도 대통령 재직중 그의 범행에 대한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한 명문규정이 없다. 따라서 대통령 재직중 그의 범행에 대한 공소시효는 정지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피의자 전두환의 이 사건 피의사실에 대하여는 그 공소시효가 모두 완성되었음이 앞서 본 바에 의하여 명백하므로 결국 청구인들의 이 사건 심판청구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모두 각하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반대한다.
다. 재판관 조승형의 의견
나는 다수의견 중 반란수괴죄 등에 대한 “기소유예”처분이 타당하여 이 부분에 관한 심판청구를 기각한다는 의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반대한다.
(1) 피청구인의 “기소유예” 이유 요지는, 다수의견이 설시하고 있는 바와 같다.
(2) “기소유예”처분의 당부를 살피면, 검사의 기소유예처분은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1항과 형법 제51조에 근거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1항은 “검사는 형법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다음 사항을 참작하여야 한다. 1.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2. 피해자에 대한 관계, 3.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4. 범행 후의 정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검찰사건사무규칙 제54조 제1항은 이 사건 피의자인 전두환이가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인 1981.12.24. 법무부령 제230호로 제정한 것으로서 “검사가 기소유예의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피의자를 엄중히 훈계하고 개과천선할 것을 다짐하는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 다만 경미한 사건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명문의 법령규정들은 검사가 기소유예처분을 함에 있어서 그의 자의적인 재량으로 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취지이며, 그 재량행위가 비록 기속재량행위라 인정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고도의 합리적 판단을 요하는 법에서 자유로울 뿐인 제한적 자유재량행위라 할 것이며, 현실도 검사의 재량에는 합리적인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1988.1.29. 선고, 86모58 판결 참조).
따라서 검사가 기소유예처분을 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위와 같은 법령들의 명문규정을 지키면서 그 규정의 범위 안에서도 합리적인 기준을 초월하지 아니함으로써 비로소 처분할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 피청구인이 “기소유예”처분을 하면서 들고 있는 앞의 사유들은 그 어느 것이나 위 법령들의 명문규정에 합당한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위 규정들에 좇아 피의자 전두환의 정상을 살피면,
(가) 범인의 연령은 60대 초반이며 성행은 불명이나 지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대장으로 진급하기까지 주요 군지휘관의 경력을 쌓았으며, 이 사건으로 정권을 탈취하여 무려 7년여 동안이나 대통령자리를 지켜 왔고 현재는 전직대통령예우에관한법률의 혜택을 받으면서, 풍요로운 생을 영위하고 있는바, 그 어느 조건도 그를 단죄함에 부적절함을 인정할 수는 없다.
(나) 피해자에 대한 관계
이 사건이 발생한지 14년이 경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인 정승화 등 고소인 전부는 아직도 분을 참지 못하여 1993.7.19. 검찰총장에게 이 사건 고소를 제기하고, 1994.12.24. 이 사건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있는바, 비록 고소인들이 국가 장래를 위한 공분심에서 이와 같이 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피의자가 피해자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정리하지 못한 사정만은 명백하다 할 것이다.
다) 범행동기
피청구인의 이 사건 불기소처분 결정서에 따르면, 1979.10.26. 속칭 김재규사건이 발생한 이후 같은 해 11.8.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정치발전을 약속하고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유신체제의 폐지가 기정사실화 되고 대다수 국민들이 같은 해 12.6. 선출된 최규하 대통령의 점진적인 민주화 조치에 기대를 하는 등 정국이 점차 안정국면에 들어서고 있는데, 고소인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과 소장군부의 리더인 피의자간에 군인사 등 문제로 서로 마찰을 일으키고, 같은 해 12월 초경에는 위 고소인이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에게 피의자를 보안사령관직에서 한직으로 좌천시킬 것을 건의하였다는 풍문이 나돌자, 피의자는 자신에 대한 인사조치를 차단하고 군내입지를 보전할 목적으로 위 고소인을 위 10·26 김재규사건에 연루시켜 연행·조사하여 제거하고 군주도권을 장악할 것을 결심한 끝에 이 사건을 일으킨 것임을 살필 수 있다. 따라서 범행의 동기는 오로지 피의자 자신의 사욕에서 비롯되었을 뿐 결코 국가자존이나 국민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공분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인정할 수 있다.
(라) 범행의 수단
위 결정서에 따르면 그 수단은 다음과 같다.
당시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인 위 고소인을 연행조사하려면 의당 군통수계통에 따라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과 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사전재가나 적법한 군 관할관 발부의 구속영장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병기를 휴대한 병력을 동원하여 총격함으로써 위 고소인 주변의 수행·경호요원을 사상케 하여 연행하였으며, 남북이 휴전선을 두고 군사대치를 하고 있는 긴장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안위에 관하여는 아랑곳함이 없이, “수경사” 제30경비단장실에 당시 수도권 주요부대지휘관인 청구외 유학성 국방부군수차관보, 황영시 육군 제1군단장, 차규헌 수도군단장, 노태우 육군 제9사단장, 박준병 육군 제20사단장, 백운택 육군 71방위사단장, 박희도 “특전사” 제1공수여단장, 최세창 “특전사” 제3공수여단장, 장기오 “특전사” 제5공수여단장, 김진영 “수경사” 제33경비단장, 장세동 “수경사” 제30경비단장을 집결시켜 두고,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병력출동을 차단하는 한편, 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2회에 걸쳐 위 고소인에 대한 연행·조사를 재가하지 아니하자 피의자는 당시 대통령이 집무하고 있던 총리공관의 경비병력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자파인 청구외 정동호 준장으로 하여금 종전의 대통령경호실 병력으로 총리공관을 장악하여, 위 공관의 출입자를 일일히 통제하게 하는 등 사실상 최대통령에 대하여 위협을 가하였으며,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이 미8군 영내의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전화로 피의자에게 같은 사령부로 직접 와서 위 고소인 연행에 대한 결재를 받으라고 하여도 피의자는 오히려 자신의 직속상관인 동인에게 “보안사”에 와서 결재하라 하는 등 노골적으로 군지휘계통을 문란시켰으며, 동인이 “그러면 자신이 국방부로 들어가겠으니 장관실까지 직접 와서 결재를 받으라”고 하자 사술을 농하여 그렇게 할듯이 대답한 후, 즉시 청구외 박희도 “특전사” 제1공수여단장에게 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고 노장관을 체포한 후 “보안사”로 연행하라고 지시하였으며, 동 여단장이 국방부를 점령하고 청구외 김종환 합참의장, 유병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을 무장해제시키고, 이건영 육군 제3군사령관과 노국방장관을 체포하고 노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하자 피의자는 그를 강압하여 위 결재를 하게하고, 한편으로는 청구외 최세창 “특전사” 제3공수여단장에게 그의 상관인 청구외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라고 지시하여 그의 예하 병력으로 하여금 총격전 끝에 동 정병주를 체포하고, 청구외 조홍 “수경사” 헌병단장에게 그의 상관인 청구인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동 사령부에 육군본부지휘부를 이동한 육군수뇌 장성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하여 그의 예하 병력으로 하여금 총격전 끝에 위 청구인과 청구외 윤성민 육본참모차장, 문홍구 합참본부장을 체포하게 하였다. 또한 피의자는 청구외 노태우로 하여금 육군 제9사단 제29연대, 1,390명의 병력을 출동시켜 중앙청을 점령하게 하고 청구외 황영시로 하여금 그 예하의 기갑여단소속 제16전차대대(고폭탄·대전차포탄 적재의 전차 35대 병력 180명)를 출동시켜 중앙청 광장에 진주시키고, 박희모 육군 제30사단장의 예하 1개 연대병력을 고려대학교에 진주시키고, 앞서 본 최세창으로 하여금 그 예하의 제3공수여단 640여명의 병력을 경복궁과 국립박물관에 진주시키고, 청구외 장기오 “특전사” 제5공수여단장으로 하여금 그 예하의 480여명의 병력을 효창운동장에 진주시켰다. 이와 같이 군지휘권을 사실상 탈취한 뒤, 이와 같은 상황을 직간접으로 최대통령에게 알려 피의자의 실력을 은근히 과시하는 가운데 1979.12.13. 05:10경 피의자는 위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앞세워 최대통령을 상면하여 동 장관으로 하여금 “참모총장공관과 국방부에서의 총격사태 등 부득이한 사정”을 보고하게 하고 “사태가 더이상 확대되지 아니하도록 재가함이 옳다”고 건의하게 하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 최대통령이 사후재가를 거절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는 실로 피의자가 이 나라의 모든 헌법기관을 좌지우지하는 순간이었다.
(마) 범행의 결과
고소인의 당시 수행부관 이재천, 경호장교 김인선, 육본 작전참모부장 하소곤, 특전사령관 정병주, “특전사” 김오랑 소령, 국방부 초병 등을 총격하여 사상에 이르게 하였으며,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이희성, 육군참모차장에 황영시, 육군 제3군사령관에 유학성, 수경사령관에 노태우, 특전사령관에 정호용, 육군 제1군단장에 김윤호, 육군 제9사단장에 백운택, 육군사관학교장에 차규헌 등 피의자와 이 사건 반란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거나 그에 동조한 자들을 피의자 의사대로 보임하는 등 일체의 군권을 장악하고 피의자 자신은 보안사령관에 계속 있으면서 중앙정보부장을 겸임하고 이후 정부조직법상 아무런 근거도 없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임의로 설치하여 그 상임위원장에 취임하여 사실상 대통령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는 등 권부조차 장악하였다. 그 후 5·17 3김 제거작업, 5·18 광주사태를 야기하여 무수한 민주시민을 폭도로 몰아세워 학살하거나 내란죄의 굴레를 씌워 중형에 처하는 등 정치권마저 장악하기에 이르고 하늘에 이르도록 그 악명이 높았던 속칭 삼청교육대사업을 벌여 이를 빌미로 피의자에 대한 반대세력을 제거하는가 하면, 최규하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의 뜻에 반하여 하야하게 한 후 자신이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속칭 잠실운동장선거로 대통령에 당선하여 명실상부한 대권을 손아귀에 쥐는가 하면,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켜 헌법상 근거도 없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설치하는 등 3권을 장악하였고, 그의 재임기간 중 그의 독재체제에 대한 학생·재야단체의 반독재 민주화투쟁과 박종철 고문살해 등 극심한 인권탄압이 상호반복되면서 사회는 극도로 불안하였고, 국가는 발전보다는 퇴락일로에 처하여 결국 1987.6.10. 국민저항에 굴복하여 속칭 노태우의 6.29. 선언이 있기에 이르렀다.
(바) 범행 후의 정황
앞서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피해자들과는 지금까지도 원만하지 못하며, 피해자들은 피의자에 대한 엄단을 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피의자가 개과천선한 흔적이 있는지를 보면, 피의자는 6공정부가 들어서자 피의자를 구속하라는 학생·재야단체의 끈질긴 요구가 정국을 불안하게 하자, 6공정부의 요청에 따라 구속처형을 면할 목적으로 그가 대통령 재임시에 모았던 정치자금과 연희동 자택을 국가에 헌납하고 백담사에서 은둔하였던 바는 있으나, 이는 그가 개과천선하여 스스로 행한 것이 아니라 그의 구명과 교환조건이라는 6공정부의 요청에 못이겨 행한 것이고, 후일 국회 5공청문회가 종료되어 백담사에서 연희동으로 귀환하게 되자, 자신의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착각한 끝에 변심하여 국가에 헌납하기로 한 연희동 자택을 현재까지도 헌납하지 않는 등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이 어기고 있다. 국회회의록에 따르면 그는 1989.12.31. 국회 5공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선서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허위증언을 하다가 5공비리조사특별위원회위원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위원들로부터 수차 경고와 야유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동 회의록과 피청구인의 불기소결정서를 비교하여 살피면 피의자가 위증을 하고 있음이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수사결과(피의자)
국회증언(피의자가 증인으로)
⑴ 피의자 자신에 대한 인사조치의 차단과 군내 입지보전의 목적으로 10·26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씌워 정총장을 제거하고 군주도권을 장악하려고 결심하였다.
⑴ “증인에 대한 전보발령설이 이 사건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도 있는 모양이지만 증인은 그 당시에는 일체 그와 같은 일은 들은 바 없읍니다”(제147회 국회폐회중 5공특위·광주특위 회의록 제1호 28쪽 우측란 21행-24행) 인사조치의 차단 목적이 없고 정총장을 제거할 제거할 결심이 없었다는 듯이, “정총장을 수사할 적기를 포착하기 위해 정국의 추이를 주시하는 한편 군내부의 여론을 수집하였습니다”(위 회의록 27쪽 우측란 15행-17행) “본인은 본인의 신념과 군전체의 총의가 일치된 것으로 느끼는 12월 초순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내각이 새로 발족한 후 김재규 재판과의 관련으로 보아 정총장에 대한 수사를 연기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12·12 임무를 결행하기로 했읍니다”(위 회의록 27쪽 우측란 31행-36행)
⑵ 피의자의 정총장 연행시간은 1979.12.12. 19:00이고, 피의자가 처음으로 최대통령에게 재가받기 위하여 총리공관을 향발한 시간이 동 18:43이었다.
⑵ “그날(12·12) 증인은 총리공관으로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 뵙고 정승화총장을 연행하여 조사하겠다는 보고를 드린 바 있읍니다”(위 회의록 27쪽 우측란 40행-42행)라 증언하여 마치 사전에 보고한 듯이 보고시간 진술을 고의로 누락시키고 있다.
수사결과(피의자)
국회증언(피의자가 증인으로)
⑶ 정총장을 연행조사 하려면 군통수계통에 따라 국방부장관과 대통령의 사전결재·재가가 있어야 하고 관할관의 구속영장이 있어야 한다.
⑶ “그때 시해사건에 대한 수사권은 대통령의 사전결재를 받지 않아도 되는 합수부장의 포괄적인 고유권한이었읍니다”(위 회의록 28쪽 좌측란 3행-5행)
⑷ 1979.12.12. 18:30에 “수경사” 제30경비단장실에 유학성·황영시· 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 최세창·장기오·장세동 등 수도권 주요부대지휘관들을 집결시킨 이유는 반란의 지휘부 역할과 육군정식지휘계통의 반격출동에 대비하여 병력출동을 하기 위한 것이다.
⑷ “증인은 그날(12·12)밤 18:30 경복궁에 있는 30단으로 평소 정총장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군의 중진장성들과 그밖의 몇몇 장성들을 초청해 놓고……정총장이…… 군지휘계통에서 물러나는 용단을 내리도록 허심탄회하게 건의토록 하기 위해서였다”(위 회의록 28쪽 좌측란 14행-22행) “당시 30단에 모여 있던 장성들이 병력을 출동시킬 계획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태를 수습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위 회의록 28쪽 우측란 18행-20행)
⑸ 1979.11.경 피의자가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정총장의 연행조사를 건의하거나 그후 사전에 최대통령에게 건의한 흔적도 없고 노재현 국방장관이 두고 보자고 말하거나 최대통령이 국방장관과 상의하라고 말하였다는 흔적은 없다(다만 1979.12.12. 18:43에 1차로, 동일 21:30에 2차로 피의자와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백운택·박희도가 집단으로 최대통령에게 재가를 건의 하였다가 2회 모두 거절당한 사실밖에 없다)
⑸ “11월(1979년)경 증인은 모든 상황을 노국방장관에게 보고하고 정승화 총장의 연행조사를 건의하였더니 좀더 두고 보자고 했고 그 후 최대통령에게 건의드렸더니 국방장관과 상의하라고 말씀하시어 증인으로서는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읍니다”(위 회의록 27쪽 좌측란 16행-21행)
수사결과(피의자)
국회증언(피의자가 증인으로)
과연 이러하다면 피의자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 앞에서 자신의 범죄를 은폐함에 급급하여 위증도 불사하겠다는 내심을 가지고 국민 앞에 섰을 뿐 추호도 국민에게 사죄하는 자세가 아니었음을 살필 수 있는바, 그 증언 당시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아니하였음이 분명하다.
또한 그는 위 청문회 증언 모두에서 국민에 대한 심심한 사죄를 하기로 한 당시 4당 대표와의 약속을 어기고, 세모에 아물어가던 과거사를 증언하게 된 것 자체만이 자신의 잘못인 양 “저 스스로에서 비롯된 것임을 되새길 때 새삼 제 부덕을 뉘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원칙적으로 저로 인해서 초래된 하나의 업보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국민과 역사 앞에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위 회의록 4쪽 좌측란 1행-21행)라 하여 언어의 유희를 농하였을 뿐 자신의 범행에 대한 사죄나 무고하게 학살·학대를 받았던 수많은 민주영령과 민주인사들에 대한 명복이나 사죄를 비는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였다.
가사 이와 같은 죄책감 운운을 국민에 대한 사죄라고 간주한다 하더라도, 피의자는 그 후 이 사건 수사에 있어 수사기관에 대하여 비협조적이며, 오히려 그의 수하들로 하여금 청구인 등을 무고로 고소하게 하는 등 자신의 사죄를 번복하는 처사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검찰에 출석하여 진술할 것을 거부하고 서면으로 갈음하여 검사의 추문을 회피하고 범행을 순순히 자백하지 아니하는 등 아직도 자신이 대통령의 특전을 누리고자 함이 분명한바 그가 개과천선하기를 기대하기란 연목구어격이다.
(사) 피청구인의 “기소유예”처분의 이유에 관하여 본다.
① 피청구인은 “기소유예”처분의 이유의 하나로 “피의자들을 기소하는 경우, 재판과정에서 과거사가 반복 거론되고 법적 논쟁이 계속되어 국론 분열과 대립 양상을 재연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고, 이러한 혼란상은 결국 장래적으로 국가안정을 저해하고, 자칫하면 국가발전에도 지장을 초래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아니할 수 없음”이라고 하고 있다.
첫째, 모든 형사사건이 과거에 발생한 혐의사실에 대하여 사실인정과 법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므로 과거사의 반복거론을 우려하여 기소를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과거사를 사법부의 판단 없이 불명하게 묻어두자는 주장에 불과하여 부당하다.
둘째, 이런 재판의 과정은 국론 분열과 대립 양상을 재연하여 국력이 소모될 우려가 있고, 장래적으로 국가안정을 저해하며 국가발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은 객관적인 자료가 뒷받침되지 아니한 매우 주관적인 주장에 불과하여 부당하다. 즉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어떤 사건이든 그 사건을 보는 시각은 로 다를 수 있고, 자연 여기에는 의견의 차이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국론을 분열시킨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며 특히 피청구인이 “기소유예”처분을 한 후 여론상 나타난 대다수의 국민의사는 12·12사건을 기소하여야 한다(중앙일보 1994.11.2.자 1쪽, 한겨레신문 1994.11.25.자 3쪽, 한겨레신문 1994.12.2자 22쪽 참조)는 것이므로 오히려 피청구인이 국가형벌권의 합리적인 행사를 하지 아니함으로써 문제를 야기시켜 국민을 분노하게 하였고 국가의 안정을 해하였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피청구인의 처분은 한편으로 국회의 정상적인 활동에 나쁜 영향을 미쳐 국회의 정상적인 업무에 국회의원들이 종사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 사건이 기소되면 그 다음 절차는 법원이 관장하게 되므로 국회의원들이 정상적인 업무를 밀쳐두고 12·12 사건에 대하여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피청구인이 “기소유예”처분을 함으로 말미암아 국회의원들이 이를 문제삼아 속칭 12·12 기소관철 장외투쟁에 나서고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소추결의안을 제출하는 등 국회의 정상적인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다. 결국 피청구인의 이러한 주장은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것으로서 자의적인 견해에 불과하여 부당하다.
② 피청구인은 “기소유예”처분 이유의 하나로 “검찰이 이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그것이 범법 행위이었음을 명백히 인정한 이상 불행하였던 과거를 청산하고 불법적 실력행사를 경고하는 냉엄한 역사적 교훈을 남겨 역사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므로,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후세에 맡기고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이번 검찰의 결정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며, 대다수 국민들도 더 이상 지난 일로 갈등과 반목을 지속하여 국가적 혼란을 초래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지장을 주는 것을 바라지 아니할 것임”이라고 하고 있다. 살피면,
첫째, 피청구인은 피청구인이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였다는 것과 그것이 범법행위이었음이 명백히 인정되었다고 하나, 형사사건의 실체가 어떠한 것인지는 법원의 형사재판절차를 통하여 밝혀지는 것이며 법원의 확정판결에 의하여서만 확정되고 기판력이 생기는 것이다. 법원의 재판절차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시될 수도 있고 기존의 증거가 탄핵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진상이 피청구인의 수사로 철저히 규명되었다고 하는 것은 국가형벌권 행사의 법리와 형사재판의 법리를 무시한 독단적 견해에 불과하여 부당하다.
둘째, 이 사건의 피의자들의 행위가 범법행위이었음을 피청구인이 명백히 인정한 이상 이에 대한 평가는 후세에 맡기고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피청구인의 결정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나, 검찰의 혐의사실인정이 유죄임을 확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견해 역시 부당하다. 즉 피청구인이 군사상반란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기소를 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일 뿐, 해당 피의자들의 행위가 군사상 반란죄에 해당되는 것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과연 해당 피의자들의 행위가 내란죄가 되는지 군사상 반란죄가 되는지 하는 문제는 형사재판과정을 통하여 확정되고, 그때까지 해당 피의자들은 헌법 제27조 제4항에 의해 무죄로 추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 피의자들은 검찰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현상태에서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무죄임을 주장할 수 있고 이는 헌법에 의해 추정이 보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은 “사법적 판단”도 아닐 뿐 아니라, 법적 판단을 회피하는 것이 되고, 결국 “역사적 평가를 후세에 맡긴다”라 함은 검찰이 법원의 형사재판권의 행사까지 봉쇄하고, 기소를 하지 아니함으로써 진실 여부를 둘러싼 국론분열상태를 영원히 방치해 두자는 논리에 불과하여 부당하다.
셋째, 대다수 국민들도 더 이상 지난 일로 갈등과 반목을 지속하여 국가적 혼란을 초래함으로써 국가발전에 지장을 주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예단까지 서슴치 않고 있으나, 이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대다수 국민들이 기소할 것을 바라고 있는 바를 알고 있을 피청구인이 이를 고의로 외면한 예단에 불과하여 부당하다. 즉 국민들이 일상사에서 지난 일로 갈등과 반목을 지속하는 것이거나 그로 인해 국가적 혼란을 초래하여 국가발전에 지장을 주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군병력을 불법적으로 동원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그 과정에서 앞서 본 바와 같은 결과가 발생하고, 아직도 피해자들의 피해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대다수 국민들이 법원의 형사재판을 통한 진상규명을 바라고 있음이 현실(전술 언론기관의 여론조사 참조)이므로 피청구인의 위와 같은 예단은 부당하다.
③ 피청구인은 또 하나의 이유로 “피의자들이 지난 14년간 우리나라를 통치하면서 나름대로 국가 발전에 기여한 면이 있음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고, 이 사건이 선거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이 사건의 주역의 한 사람인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고, 이른바 5공청문회를 거치는 등으로 이미 국민적 심판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으며, 특히 전직 대통령 등을 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우에는, 그 동안 형성된 제반 기성질서와 관련하여 국민들에게 심정적으로 혼돈을 느끼게 할 우려가 있는 점 등 여러 가지 정황도 참작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라는 극히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형용사를 구사하여 아무런 논증을 제시함이 없이 국가발전에 기여했다 함은 피의자와 그 동조세력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발전을 가로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한 수 많은 행적에 비추어 볼 때(앞서 본 범행의 결과 참조) 이를 뒤집을 만한 구체적인 행적을 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오히려 반증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적 심판이 끝났다 함은, 앞서 본 5공청문회에 있어서의 피의자의 태도를 보아서도 그 심판이 끝난 것이 결코 아니며 제13대 대통령선거의 결과가 곧 국민의 심판이라고 볼 적법한 논증이라고 인정하기도 어려우므로, 허황된 변명에 불과하다. 또한 피의자를 단죄할 경우에 이미 형성된 기성질서와 관련하여 국민들에게 심정적 혼돈을 느끼게 한다 함은, 앞서 본 대다수 국민의사에 비추어 볼 때에 불필요한 노파심에 불과하다.
④ 피청구인은 다른 하나의 이유로 “지금은 전국민이 힘을 합하여 치열한 국제경쟁을 이겨내고 숙원인 남북통일에 대비해야 할 시기이고, 이러한 시기에 그 어떤 명제보다도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국민화합을 토대로 정치와 사회의 안정을 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여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며, 이러한 시점에서 과거에 집착하여 미래를 그르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아니하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피청구인의 위 적시이유에 의하면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는 사건의 경우에는 모두가 그런 이유로 법원의 재판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사람은 언제나 법적인 논거가 불충분할 때 애매모호한 말을 사용한다. 피청구인이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는 “국민화합”, “국가경쟁력”, “사회의 안정”, “국론의 분열”등의 수사적 표현이 그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이와 같이 수사적 낱말을 동원하고 그 의미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피청구인이, 증거를 바탕으로 피의자의 군사상 반란죄 혐의를 인정하고, 또 이런 행위가 사법적 심사에서 배제될 수 없음을 명백히 했음에도 법원의 형사재판의 개시를 봉쇄하고 그 상태에서 이 사건을 방치해 두는 것이, 고소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냐 아니냐에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피청구인이 “기소유예”처분의 이유로 든 내용들은 결국 구체적인 논증이 없는 것들로서 오히려 피청구인이 검찰권을 남용한 전형적인 실례에 해당할 뿐 고소인의 기본권 침해 여부에 관하여는 전혀 무관심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 어느 이유도 이 사건 기소를 유예하는 합리성을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의 경우에 경계해야 할 점은 앞으로 군사상 반란죄나 내란죄와 같은 범죄의 경우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검찰이 동원한 것과 같은 허황된 논리로 법원의 형사재판의 대상에서 배제되는 선례를 만들어 주는 것이 되고, 이는 결국 법이 불법을 용인하고, 불법에 대해 피난처를 마련해 주는 모순에 도달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 다수의견이 내세우고 있는 범행 후 정황 즉 범행 후의 사회정세의 변화, 시간의 경과, 가벌성 평가의 변화 등 제반사정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지 애매모호하다. 범행 후의 사회정세가 어떻게 하여서 현재는 피의자를 기소할 수 없다는 것인지, 범행당시의 가벌성 평가는 어떻게 하였는데 현재는 그 평가를 어떻게 하여 피의자를 기소할 수 없다는 것인지, 공소시효제도가 있음에도 시간의 경과라는 사정이 다시 운위되어야 할 특단의 사정이 있다면 시간의 경과로 인하여 피해자들이나 온 국민이 이 사건을 망각하고 있다는 사정을 말하는 것인지 다수의견은 그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이나 논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사회정세의 변화가 있다면 그 길고 긴 권위주의 군사독재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형식상이나마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고 구시대의 권위주의를 청산하자는 사회가 형성되어 가는 등의 변화가 있었으므로 이 사건 피의자가 구시대의 권위주의의 장본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피의자에 대한 처벌에 관하여 묵비하였던 사회정세가 이제는 처벌하여야 한다는 정세로 변하였다고 보여진다. 가벌성 평가도 변하였다면 사회정세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가벌성을 더 크게 평가하는 쪽으로 변하였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다수의견이 주장하는 변화는 피의자를 기소해야 한다는 사정을 설명할 수 있을 뿐 기소를 유예해야 할 사정을 설명할 수는 없으므로 다수의견은 그 점에서 모순을 범하고 있다 할 것이다.
(자) 또한 다수의견은 개개의 기소유예방향으로 작용하는 참작사유와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참작사유로 양분하여 이 사건의 경우는 양자간의 가치의 우열을 비교한 결과 그 우열이 명백하게 가려지지 아니한 경우로서 검사가 그 중 어느 사유를 선택하여 기소를 유예하는 처분을 하였다 하더라도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1항에 규정된 기소편의주의가 예정하고 있는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서 헌법재판소가 관여할 정도로 자의적인 결정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하나,
첫째, 양자간의 가치의 우열을 비교하려면 양자의 가치라 나열하고 있는 사유들에 대한 설득력이 있는 논증을 충분히 하고난 연후에 그 우열을 비교하여야 할 것이나,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에 대한 논증은 있었으나 기소유예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에 대하여서는 전항에서 본 바와 같이 애매모호하게 “재판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될 어두운 과거사의 재연으로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증폭됨으로써 국민정서의 혼란과 국력의 낭비가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고 하는 등 주관적인 추측만을 설시하고 있을 뿐 아무런 논증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므로, 다수의견이 양자의 가치의 우열을 비교함에 있어 그 자신이 처음부터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과연 과거사의 재연으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된다 함은 피의자가 기소될 때에 피의자를 지지하는 일부세력이 이 사건과 같은 군사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말인지, 국민정서의 혼란이 일어난다면 과연 국가안정이나 사회안정을 해할 정도라는 말인지, 피의자 한 사람을 재판하는 데 얼마나 많은 국력이 낭비된다는 말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피의자가 기소되지 아니하면 어두웠던 권위주의 정권시대에 봉기하였던 극력한 국민의 저항과 동일한 저항이 이어져 국력이 낭비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정하지 아니할 수 없다.
둘째, 가사 기소유예방향으로 작용하는 참작사유에 논증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참작사유의 가치가 위 참작사유의 가치에 비하여 현저히 그리고 명백하게 우월하다.
이 사건에 있어서 대표적인 양자의 가치를 살펴보면, 다수의견도 지적하는 바와 같이 피의자의 범행은 우리 헌정사에는 치유할 수 없는 왜곡과 퇴행의 오점을 남긴 반민족적, 반국민적, 반사회적 대죄(大罪)임에 반하여 다수의견이 들고 있는 기소유예 사유 중 가장 큰 사유는 사회적 대립과 갈등에 대한 우려인 점을 비교할 때 과연 양자의 가치가 그 우월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동일하다는 말인가. 위 사회적 대립과 갈등은 피의자를 기소하지 아니할 때에도 상정할 수 있는 우려이기 때문에 비교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참작사유의 가치가 현저하고 명백하게 우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피청구인은 기소편의주의가 예정하고 있는 합리적인 재량의 한계를 일탈하였음이 명백하다.
(차) 이상에서 살핀 바를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한 기소를 유예할 아무런 정상을 찾을 수 없고 오히려 기소하지 않으면 안 될 정상만이 있으므로 피청구인은 마땅히 피의자를 기소하여야 했다고 판단된다.
(3) 이 사건 심판대상인 “기소유예”처분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였는지 여부를 살피면, 피청구인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피의자는 이 사건 쿠데타로 인하여 국권을 탈취하였고, 이후 정부의 민주적 정통성에 대한 전 국민적인 의문과 저항이 제기되었고, 피의자는 이런 국민들의 의문과 저항을 강제로 억압하였다. 그 과정에서 아직까지 확정되지 못하고 있는 다수의 사상자를 낸 ‘5·18 광주사건’과 이른바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이 생겨났고, 시민, 학생, 근로자 등의 민주화요구와 민주화운동이 극심한 탄압을 받았으며, 다수의 사람이 희생된 것은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기소 여부의 결정은 앞으로 우리의 역사에 있어 또 생겨날지도 모를 쿠데타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법 이상으로 중요성을 갖는 선례를 남기는 의미가 더 클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쿠데타를 경고하고 예방하는 일반예방의 의미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어느 사건에 대한 결정보다도 국가적으로 중대한 결정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어느 고소사건에 비하여 차별 없이 실정법상의 기소편의주의에 충실하여 이 사건의 기소여부를 결정하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통상의 고소사건에 있어서 기소하는 검찰의 관례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피의자에 대한 “기소유예”처분은 어느 모로 보나 형평을 상실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이 사건 고소인은 통상의 고소인에 비하여 현저히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는 바로 공권력의 자의적인 행사에 해당하여 자의금지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조항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고소인이 가지는 헌법 제27조 제5항 소정의 형사절차진술권을 박탈하는 것이 된다(당 재판소 1989.4.17. 선고, 88헌마3; 1989.7.14. 선고, 89헌마10; 1990.4.2. 선고, 89헌마83; 1990.11.19. 선고, 89헌마116; 1990.12.26. 선고, 89헌마198; 1990.12.26. 선고, 90헌마45; 1991.4.1. 선고, 90헌마115; 1991.6.3. 선고 ,90헌마185; 1991.9.16. 선고, 90헌마183; 1992.6.26. 선고, 92헌마7; 1992.6.26. 선고, 92헌마46; 1993.5.13. 선고, 92헌마36; 1993.5.13. 선고, 92헌마155; 1993.9.27. 선고, 92헌마179; 1993.11.25. 선고, 91헌마196; 1993.11.25. 선고, 92헌마278 각 결정 등 참조).
(4)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피의사실 중 반란수괴 등에 대한 피청구인의 “기소유예”처분은 검사의 합리적인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부당한 처분이며 그로 인하여 청구인들(고소인들)의 평등권과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하였으므로 마땅히 취소되어야 할 것이지 기각의 결정을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라. 재판관 고중석의 의견
나는 피의자 전두환의 반란수괴 등 피의사실에 대한 피청구인의 “기소유예”처분을 자의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여 청구인들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없어 다음과 같이 의견을 밝힌다.
(1) 피청구인은 피의자에 대하여 군형법상 반란수괴죄, 불법진퇴죄,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죄, 상관살해죄, 상관살해미수죄, 초병살해죄의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를 내세워 “기소유예”처분을 하였다.
(가) 피의자를 기소하는 경우 재판과정에서 국론분열과 대립양상을 재연함으로써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고 결국 국가안정을 저해하고 국가발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나)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범법행위이었음을 명백히 인정한 것으로서 사법적 판단을 마무리하고 역사적 평가는 후세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며, 대다수 국민들도 이 사건으로 갈등과 반목을 지속하여 국가적 혼란을 초래함으로써 국가발전에 지장을 주는 것을 바라지 아니한다.
(다) 피의자는 이 사건 이후 대통령이 되어 우리나라를 통치하면서 국가발전에 기여한 면이 있고 5공청문회를 거치는 등으로 국민적 심판을 받았으며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경우에는 기성질서와 관련하여 국민들에게 심정적으로 혼돈을 느끼게 할 우려가 있다.
(라) 국가경쟁과 남북통일에 대비해야 할 이 시점에서 이 사건에 집착하여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그르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2) 이에 대하여 다수의견은 이 사건에서는 범행의 동기, 수단과 방법, 범행 후 피의자의 태도, 우리 역사에 끼친 영향 등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와 피청구인이 불기소이유로 채택한 사유가 경합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는 가치우열이 명백하지 아니하므로 피청구인이 그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기소유예”처분을 하였다고 하여도 그것을 자의적인 결정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피청구인의 처분을 지지하였다.
(3) 그러나 검사는 형법 제247조 제1항에 따라 피의자의 범죄혐의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기소유예”처분을 할 수 있는 재량을 갖고는 있지만 그 재량에는 형법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행사하여야 할 한계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검사가 다수의견에서의 이른바 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와 불기소방향으로 작용하는 사유(아래에서는 “기소사유”와 “불기소사유”라고 한다)를 합리적으로 선택하지 아니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재량권의 남용으로서 자의적인 처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4) 그런데 이 사건에서 피청구인은 명백히 “기소사유”와 “불기소사유”의 선택을 잘못하였다.
(가) 피청구인이 인정한 바에 의하더라도 이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유신체제가 사실상 붕괴되고 사회전반에 걸쳐 민주화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시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이던 청구인 정승화와 국군보안사령관 겸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의 합동수사본부장이던 피의자 간에 군 인사문제로 서로 마찰을 일으키고 위 정승화가 국방부장관에게 피의자를 한직으로 좌천시킬 것을 건의하였다는 풍문이 나돌자 피의자는 육군참모총장을 제거하여 군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인사조치를 사전에 차단하고 소장군부세력의 군내입지를 보전할 목적으로 불법으로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군 최고 지휘부를 점령, 육군지휘계통을 무너뜨리고 상관과 초병 등 많은 사상자를 낸 군사반란사건으로서, 위와 같은 범행의 동기, 수단, 결과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은 대단히 중대한 사건임이 분명하고 그 법정형도 군형법상 반란수괴죄와 상관살해죄 및 상관살해미수죄는 각 사형, 초병살해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불법진퇴죄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여 아주 무겁다.
더우기 기록에 의하면 피의자는 그 범행을 뉘우치는커녕 그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면서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청구인 정승화 등 고소인은 피의자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 위에서 지적한 이 사건 범행의 동기, 수단, 결과, 법정형과 범행 후 피의자의 태도, 피해자에 대한 관계 등은 이 사건의 기소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다른 어느 사항보다도 중요하고 크게 참작해야 할 사항이고 또한 이 사항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은 공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임이 분명하다.
(다) 이에 반하여 피청구인이 불기소이유로 들고 있는 사유는 객관적으로 근거가 없거나 기소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기소사유”에 비하여 정상참작사항으로서의 중요성이나 가치가 훨씬 덜하다.
피청구인이 들고 있는 “불기소사유”는 형법 제51조의 참작사항 중 범행 후의 정황에 속하는 것으로서, 첫째 전직 대통령인 피의자를 기소하여 재판할 때에는 국론분열과 대립양상이 재연되어 국가의 안정과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고, 둘째 이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검찰이 명백히 범죄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국가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하며, 셋째 피의자가 이 사건 이후 대통령으로서 국가발전에 기여한 면이 있고 이미 국민적 심판을 거쳐 국민도 더 이상 사법적 판단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으로 대강 요약된다.
그러나 첫째로 위 “불기소사유” 중 피의자를 재판하면 국가안정이나 국가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점은 객관적으로 근거가 확실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범죄인을 재판하는 것이 국가발전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논리로서 형사사법의 정의에 반하는 것이고, 둘째로 검찰의 범죄사실 인정으로 사법적 판단을 마무리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든지 국민도 기소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도 객관적으로 확실하지 아니한 것을 근거로 한 피청구인의 단순한 의견에 불과하여 법률상 정상참작사항이 될 수 없고, 끝으로 피의자가 대통령으로서 국가발전에 기여한 점은 위 “기소사유”에서 지적한 이 사건 범행의 동기, 수단, 결과, 특히 다수의견도 밝힌 바와 같이 이 사건 범행으로 국민들로 하여금 좌절감과 굴욕감을 느끼게 하고 우리 헌정사를 후퇴시킨 점, 피의자가 그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결코 피의자에 대하여 기소유예를 할 만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
(라) 따라서 피청구인은 이 사건 기소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불기소사유”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정상참작사항으로서 중요성이나 가치가 훨씬 큰 “기소사유”를 선택하고 공소를 제기하여 공판절차를 통하여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도록 하였어야 옳았다.
(5) 그런데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이 “검사가 기소유예의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피의자를 엄중히 훈계하고 개과천선 할 것을 다짐하는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검찰사건사무규칙 제54조 제1항을 어겨가면서까지 피의자에 대하여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은 기소편의주의의 재량권 행사의 한계를 벗어난 자의적인 검찰권의 행사라 아니할 수 없고, 그로 말미암아 청구인들은 헌법상 보장되는 재판절차진술권 및 평등권을 침해받았으므로 피청구인의 “기소유예”처분은 마땅히 취소되어야 할 것이다.
1995.1.20.
재판장 재판관 김용준
재판관 김진우
재판관 김문희
주심 재판관 황도연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
재판관 정경식
재판관 고중석
재판관 신창언
[별지 1] 청구인 명단(괄호안은 당시의 계급 및 직위임)
1. 정승화(대장,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서울강남구대치동66, 쌍용아파트2-406
2. 이건영(중장, 제3군사령관)
서울강남구논현동135-1, 우성빌리지111
3. 윤흥정(중장, 전투병과 교육사령관)
서울성북구성북2동15-137
4. 이재전(중장, 청와대 경호실차장)
서울중구필동3가6
5. 문홍구(중장, 합동참모본부본부장)
서울송파구방이동39
6. 신현수(중장, 국방부특명검열단장)
서울강남구대치3동, 쌍용아파트2-1108
7. 전성각(중장, 제3군단장)
서울성북구성북동330-438
8. 최영식(중장, 제2군단장)
서울서초구잠원동64-4, 대림아파트1-506
9. 정형택(소장, 육군본부예비군참모부장)
서울강남구대치2동, 한보미도아파트212-304
10. 최명재(소장, 군수참모부차장)
서울용산구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14-607
11. 안종훈(소장, 육군본부군수참모부장)
서울서초구서초1동산193-3, 삼풍아파트16-809
12. 황의철(소장, 육군본부정보참모부장)
서울용산구효창동5-131
13. 김한용(소장, 육군대학총장)
서울용산구동부이촌동, 반도아파트1-305
14. 신정수(소장, 육군본부민사군정감)
서울용산구동부이촌동301-170, 반도아파트2-201
15. 안철원(소장, 육군본부전술공사통제단장)
서울마포구연남동365-12
16. 한국섭(소장, 육군본부경리감)
서울성동구응봉동100, 대림아파트3-1503
17. 하소곤(소장, 육군본부작전참모부장)
서울동작구흑석2동26, 한강현대아파트111-804
18. 장태완(소장, 수도경비사령관)
서울강남구대치동43, 우성1차아파트2-1002
19. 김계일(소장, 국방통신정보부대부부대장)
과천시과천동산71
20. 김종찬(소장, 38사단장)
서울용산구서빙고동241-21, 신동아아파트8-801
21. 윤흥기(준장, 제9공수여단장)
서울송파구신천동20-4, 진주아파트5-1002
22. 김진기(준장, 육군본부헌병감)
안양시동안구호계동1115, 샘마을아파트308-1601
[별지 2] 대리인 명단
1. 변호사 홍성우
서울 서초구 서초동 1716-3, 서초빌딩304호
2. 변호사 안영도
서울 중구 필동1가 39-1, 국제빌딩3층
3. 변호사 박연철
서울 서초구서초3동 1576-4, 교대빌딩3층
4. 변호사 박인제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56-1, 성재빌딩6층
5. 변호사 이석태
서울 강남구 역삼동 816-3, 창림빌딩2층
6. 변호사 유선호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76-5, 신아빌딩4층
7. 변호사 윤기원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76-5, 신아빌딩4층
8. 변호사 심규철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97-6, 대하빌딩303호
9. 변호사 안상운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91-8호, 건원빌딩401호
10. 변호사 박찬운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76-5, 신아빌딩2층
11. 변호사 백승헌
서울 서초구 서초4동 1689-2, 서흥빌딩601호
12. 변호사 유선영
서울 서초구 서초동 1717-9, 서원빌딩5층
13. 변호사 이찬진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56-1, 성재빌딩6층
[별지 3] 피고소인 명단(괄호안은 사건 당시의 계급 및 직위임)
1. 전두환(소장, 보안사령관)
2. 노태우(소장, 9사단장)
3. 유학성(중장, 국방부 군수차관보)
4. 차규헌(중장, 수도군단장)
5. 황영시(중장, 제1군단장)
6. 박희도(준장, 제1공수여단장)
7. 최세창(준장, 제3공수여단장)
8. 장기오(준장, 제5공수여단장)
9. 백운택(준장, 71방위사단장)
10. 박준병(소장, 20사단장)
11. 장세동(대령, 수도경비사령부 제30단장)
12. 김진영(대령, 수도경비사령부 제33단장)
13. 허삼수(대령, 보안사령부 인사처장)
14. 이학봉(중령, 보안사령부 대공처장, 합동수사본부 수사국장)
15. 허화평(대령,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16. 정도영(준장, 보안사령부 보안처장)
17. 김정룡(대령, 특수전사령부 보안부대장)
18. 우경윤(대령, 육군본부 헌병감실 범죄수사단장)
19. 성환옥(대령, 육군본부 헌병감실 기획과장)
20. 최석립(중령, 33헌병대장)
21. 이종민(중령, 육군본부 헌병대장)
22. 조흥(대령,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장)
23. 신윤희(중령,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 부단장)
24. 정동호(준장, 청와대 경호실장 직무대리)
25. 고명승(대령, 청와대 경호실 작전과장)
26. 박희모(소장, 30사단장)
27. 이상규(준장, 제2기갑여단장)
28. 송응섭(대령, 30사단 90연대장)
29. 서수열(중령, 제1공수여단 제2대대장)
30. 박덕화(중령, 제1공수여단 제5대대장)
31. 박종규(중령, 제3공수여단 제5대대장)
32. 신우식(대령, 특수전사령부 작전참모)
33. 구창회(대령, 9사단 참모장)
34. 이필섭(대령, 9사단 29연대장)
[별지 4] 피의자별 죄명별 처분내용(죄명)
가. 내란수괴
나. 내란모의참여
다. 내란중요임무종사
라. 내란부화수행
마. 내란목적살인
바. 내란목적살인미수
사. 반란수괴
아. 반란모의참여
자. 반란중요임무종사
차. 반란부화뇌등
카. 반란목적군용물탈취
타. 불법진퇴
파.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하. 일반이적
거. 상관살해
너. 상관살해미수
더. 초병살해
<피의자별 죄명>
※ 표시 피의자는 청구인들이 고소한 이 사건(서울지방검찰청 1993년 형제81259호)의 피고소인은 아님
1. 가,마,바,사,카,타,파,하,거,너,더
2. 나,다,마,바,아,자,카,타,파,카,거,너,더
3. 나,다,마,바,아,자,카,타,파,하,거,너,더
4. 나,다,마,바,아,자,카,타,파,하,거,너,더
5. 나,다,마,바,아,자,카,타,파,하,거,너,더
6. 나,다,마,바,아,자,카,타,파,하,거,너,더
7. 나,다,마,바,아,자,카,타,파,하,거,너,더
8. 나,다,마,바,아,자,카,타,파,하,거,너,더
9. 나,다,마,바,아,자,카,타,파,하,거,너,더
10. 나,다,마,바,아,자,카,타,파,하,거,너,더
11. 나,다,마,바,아,자,카,타,파,하,거,너,더
12. 나,다,마,바,아,자,카,타,파,하,거,너,더
13. 나,다,마,바,아,자,카,타,파,하,거,너,더
14. 나,다,마,바,아,자,카,타,파,하,거,너,더
15. 나,다,마,바,아,자,카,타,파,하,거,너,더
16. 나,다,바,아,자,카,타,파,하,너
17. 나,다,바,아,자,카,타,파,하,너
18. 나,다,바,아,자,카,타,파,하,너
19. 다,바,자,카,타,파,하,너
20. 다,자,카,하
21. 다,자,카,하
22. 다,바,자,카,하,너
23. 다,바,자,카,하,너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유학성(兪學聖)
황영시(黃永時)
차규헌(車圭憲)
박준병(朴俊炳)
백운택(白雲澤)
박희도(朴熙道)
최세창(崔世昌)
장기오(張基梧)
장세동(張世東)
김진영(金振永)
허화평(許和平)
이학봉(李鶴捧)
허삼수(許三守)
우경윤(禹慶允)
성환옥(成煥玉)
최석립(崔石立)
이종민(李鍾民)
정동호(鄭東鎬)
고명승(高明昇)
조홍(趙洪)
신윤희(申允熙)
24. 다,자,카,타,파,하
25. 다,자,카,타,파,하
26. 다,자,카,타,파,하
27. 다,자,카,타,파,하
28. 다,자,카,타,파,하
29. 다,자,카,타,파,하
※ 30. 다,자,카,타,파,하
31. 다,자,카,타,파,하
32. 아,마,자,카,타,파,하,더
33. 다,마,바,자,카,타,파,하,거,너
※ 34. 다,자,카,하
35. 다,자,카,하
36. 라,차,하
※ 37. 라,차,하
※ 38. 라,차,하
정도영(鄭棹永)
박희모(朴喜模)
송응섭(宋膺燮)
이상규(李相珪)
구창회(具昌會)
이필섭(李弼燮)
※ 안병호(安秉浩)
서수열(徐守烈)
박덕화(朴德和)
박종규(朴淙圭)
※ 권정달(權正達)
김정룡(金正龍)
신우식(申佑湜)
※ 김진선(金鎭渲)
※ 정호용(鄭鎬溶)
<피의자별 죄명별 처분내용>
(1)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
― 1의 사,타,파,거,너,더
― 2,3,4,5,6,8,9,10,11,12,13,14,15의 각 아,자,타,파,거,너,더
― 16,17,18의 각 아,자,타,파,너
― 19의 각 자,타,파,너
― 20,21,34,35의 각 자
― 22,23의 각 자,너
― 24,25,26,27,28,29,30,31의 각 자,타,파
― 32의 자,타,파,더
― 33의 자,타,파,거,너
(2) “혐의없음” 처분을 한 것
― 1의 가,마,바,카,하
― 2,3,4,5,6,8,9,10,11,12,13,14,15의 각 나,다,마,바,카,하
― 16,17,18의 각 나,다,바,카,하
― 19,22,23의 각 다,바,카,하
― 20,21,24,25,26,27,28,29,30,31,34,35의 각 다,카,하
― 32의 다,마,카,하
― 33의 다,마,바,카,하
― 36,37,38의 각 하
(3)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한 것
― 7
― 36,37,38의 각 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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