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동학원 재단이 운영하는 웅동중학교의 전신은 경남 진해시의 계광학교다. 1908년 개교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다. 아일랜드인 선교사 심익순과 문세균, 배익하, 김창세 등이 설립했다. 계광(啓光)이란 '빛을 연다'란 뜻으로 을사늑약으로 주권을 일제에 빼앗기고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 신교육(과학기술)을 통해 국가를 재건하고 국권을 회복하자는 뜻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실제 계광학교는 진해 지역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했다. 1919년 4월 3일 진해 웅동면 웅천 3·1만세운동을 주도한 것 역시 계광학교 교사와 학생들이었다. 1930년 8월 독립정신을 드높이자는 격문을 뿌린 ‘항일격문사건' 때는 여러 교사들이 구속돼 고초를 겪었다. 이 교사들 중에는 조국의 종조부(從祖父: 조부의 형제) 조맹규가 있었다. 조맹규는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에 참여한 '민주주의민족전선' 출신 좌익인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동자의 책'이라는 사이트에는 조맹규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조맹규(曺孟奎, 생몰년 미상) : 경남 적색농조운동 참가자, 민전 중앙위원
경남 창원군 웅동면에서 결성된 웅천(熊川)적색농민조합에 참여했다. 1932년 4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었다가 1933년 2월 예심이 종결되어 공판에 회부되었다. 그후 진해 동양제사공장, 부산 조선방직회사에서 여성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 노력했다. 1934년 10월 진해경찰서에 검거되어 1935년 1월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45년 11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상임위원회 문화부장을 맡았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전평 대표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남조선노동당 노동부장을 지냈다.
이 사건으로 계광학교는 휴교했고, 1933년 결국 폐교됐다. 학교는 인근 서당 등에서 명맥을 근근이 이어가다가 해방 후인 1946년 9월 '웅동 고등공민학교'로 다시 태어났다. 전쟁 중이던 1952년 마침내 현재의 웅동중학교 설립인가가 났다. 6.25 때 교사 1명과 학생 46명이 학도병으로 출정하기도 했다. 이중 18명이 전사했다고 돼 있다.
● 계광정신
■ 계광(啓光)이란 "빛을 열다."라는 뜻으로 ‘계몽(啓蒙)’과 상통하는 말이다. 곧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교육을 통해서 나라를 구하기 위한 웅동지역 선조들의 피나는 노력이 담긴 말이라 할 수 있다.
이 계광정신으로 웅동땅에 ‘계광학교(1912년)’가 세워졌고, 계광학교의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웅동4·3독립만세운동(1919년)'이 일어났다. 그래서 계광정신이란 "문화적·민족적 선구자의 투쟁정신"으로서, 이는 곧 “국난극복을 위한 웅동지역 선조의 애국애족 정신”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으며, 아울러 웅동땅에 맥맥이 이어져오는 웅동인의 정신적 지주요 자부심이다. 우리는 그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길이 보전하는 자랑스러운 ‘계광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계광(啓光)정신과 웅동중학교
웅동중학교 역사에 보면, “일정 속박에서 민족 해방을 얻게 된 것은 3·1정신의 구현인 계광정신이 출발의 원동력을 이룬 것이다.”고 한 부분이 있다. 이것은 본 지역 교육 기관의 모태가 계광학교이고, 이는 경남 제일의 인재양성의 산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광학교는 웅동지역의 인재와 국권회복을 위한 지도자를 양성하였고, 1919년 4월 3일 웅동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4, 5개월 동안 문을 닫기도 했지만, 무지한 사람들을 깨우치는데 앞장서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1933년 폐교되었다. 하지만, 월하 김달진 선생을 비롯한 여러 교사들은 향리의 모교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등, 외양은 폐교되었으나 내면으로는 계광학교의 정신이 도도히 전승되어 왔다.
이 정신을 이어받아 광복 직후 고등공민학교(교장 장영실)가 설립되었고,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교사 1명과 재학생 46명이 학도병으로 출정하였다. 이 학교가 모태가 되어 1952년에 웅동중학교(교장 정윤호)가 설립되었으며, 이러한 웅동인의 헌신적인 교육열정이 곧 계광정신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훌륭한 교육환경도 향토 출신 조변현 이사장의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는 곧 웅동인의 교육 철학적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웅동 지역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계광학교 교사였던 주기용을 필두로 김병진, 배명국, 허대범, 정의화 등 국회의원 5명, 정일천, 신상철, 배길기 등 대학교수 36명, 배수기, 이상해, 반순렬 장군과 대령급 등 많은 인사들이 배출되었다. 또한, 김동진 집안은 3대 법관이 탄생할 정도이고, 배명인 법무장관이 자란 곳도 이곳이며, 구상진 변호사도 소사 출신이다. 이와 같이 경남 제일의 훌륭한 명사가 웅동땅에서 많이 배출된 것은 바로 숭고한 ‘계광정신’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 학교법인 웅동학원 현황
웅동학원은 1985년 조국의 부친 조변현(2013년 7월 사망)이 인수해 가족들이 운영해 오고 있다. 2010년부터 조국의 모친 박정숙이 현재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조국은 1999∼2009년 웅동학원 이사로 있었다.
2019년 7월 기준 웅동학원 임원은 이사장 1명, 이사 7명, 감사 2명 등 총 10명이다. 이 중 조국 가족은 모친 박정숙(이사장)과 조국 부인 정경심(이사) 등 2명이다.
○ 이사장 박정숙 약력
∙ 2010.3.13. ~ 현재 : 학교법인 웅동학원 이사장
∙ 학력 : 부산의대 간호학과 졸업(現 간호대학)
∙ 교직 경력 : 부산 토성, 남부민, 동신 초등학교 재직
∙ 2004.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등(다수 입상), 現 여류화가
■ 웅동중학교 현황
▪ 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의로116번길 50(두동)
▪ 지번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두동 1166-4 웅동중학교
- 관련지번(학교부지 필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두동 1162-3, 1166-6, 1166-8
1. 웅동중학교는 1952.07.08. 소사동에서 마천동 99번지로 교사이설
2. 웅동중학교는 1998.04.18. 마천동에서 두동 1166-4번지로 교사 이설(신축 교사 준공)
○ 창원시 행정 구역(4개의 區) : 의창구, 성산구,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진해구
○ 진해구의 행정구역(15동 285통 2,079반) : 중앙동, 태평동, 충무동, 여좌동, 태백동, 경화동. 병암동, 석동. 이동, 자은동, 덕산동, 풍호동, 웅천동, 웅동1동(웅동1동의 관할구역은 남양동, 마천동, 소사동, 대장동, 두동으로 구성되어 있음), 웅동2동
○ 현 웅동1동 · 웅동2동의 연혁
- 1983.2.15 : 창원군 웅동면이 진해시로 편입
- 1983.2.19 : 웅동면이 진해시 웅동1,2동으로 분동
- 2010.7.1 : 법률 제10052호 통합 창원시 출범으로 창원시 진해구 웅동1동·웅동2동으로 각 변경
※ 1983년 2월 15일에 창원군에서 진해시로 편입되었고, 편입 4일 뒤인 2월 19일 웅동면이 진해시 웅동1동·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2010년 7월 1일 통합 창원시 출범으로 창원시 진해구 웅동1동·2동으로 변경되었다.
○ 웅동1동 유래
웅동1동은 1914년 창원군이 마산부에서 분치되어 진해면, 웅읍면(웅천면), 웅동면이 창원군에 속함. 웅동의 명칭 유래는 웅천(熊川)의 서쪽은 웅서(熊西), 가운데는 웅중(熊中), 동쪽은 웅동(熊東)으로 구획 명명하여 사용하게 되었으며 1983.2.15 창원군 웅동면이 진해시로 편입되어 1983.2.19 진해시 웅동1동과 웅동2동으로 분동됨.
웅동1동은 남양동, 마천동, 소사동, 대장동, 두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양동은 월남리와 산양리가 합쳐져 남양동으로 명명되었으며, 마천동은 북쪽의 마봉산 서쪽 기슭으로 흐르는말내동쪽에 있는 마을에서 붙여진 지명, 소사동은 마천동의 서쪽에 위치하여 말내 건너 벌판에 사람이 살게 된 동네에서 유래되었으며, 대장동은 마천동에서 서북쪽 성흥사로 오르는 길 양쪽에 '굴암산'을 뒤로 사람이 살게 된 동네이며, 두동은 웅동1동 동쪽에 자리한 자연마을로 안평, 부곡, 양덕 등이 있음.
● 웅동중학교 연혁
∙ 2019.03.04 입학식(신입생 87명 입학)
∙ 2019.03.01 10학급에서 11학급으로 학급증설
∙ 2019.01.11 제67회 졸업식(졸업생 74명, 졸업생 총수 7,591명)
∙ 2018.03.01 9학급에서 10학급으로 학급 증설
∙ 2018.02.08 제66회 졸업식(졸업생 75명, 졸업생 총수 7,517명)
∙ 2017.02.09 제65회 졸업식(졸업생 68명, 졸업생 총수 7,442명)
∙ 2016.02.04 제64회 졸업식(졸업생 84명, 졸업생 총수 7,374명)
∙ 2015.09.01 제9대 조종호 교장 취임
∙ 2015.02.04 제63회 졸업식(졸업생 87명, 졸업생 총수 7,290명)
∙ 2014.02.05 제62회 졸업식(졸업생 70명, 졸업생 총수 7,203명)
∙ 2013.03.01 8학급에서 9학급으로 학급 증설
∙ 2012.03.02 7학급에서 8학급으로 학급 증설
∙ 2011.03.01 제8대 김경혜 교장 취임
∙ 2010.03.13 웅동학원 박정숙 이사장 취임
∙ 2006.09.01 제7대 정능기 교장 취임
∙ 2001.09.01 제6대 류춘우 교장 취임
∙ 1998.04.18 마천동에서 두동 1166-4번지로 교사 이설ㅣ현 신축 교사 준공
∙ 1996.03.01 제5대 김종상 교장 취임
∙ 1991.03.01 제4대 김진건 교장 취임
∙ 1985.05.23 웅동학원 조변현 이사장 취임
∙ 1965.09.01 제3대 성창근 교장 취임
∙ 1955.07.15 제2대 박응섭 교장 취임
∙ 1952.07.08 소사동에서 마천동 99번지로 교사이설
∙ 1952.05.05 웅동중학교 개교
∙ 1952.04.30 초대교장 정윤호 취임
∙ 1952.04.18 웅동중학교 설립인가
∙ 1950.07.23 6. 25사변을 맞아 교사 1명과 학생 46명의 학도병 출정(전사 18명)
∙ 1946.09.02 웅동 고등공민학교 설립(12월 10일 인가) - 장영실 초대교장
∙ 1919.04.03 웅동, 웅천 지역 독립만세운동 주도
∙ 1908.10.20. 계광학교 설치- 심익순(아일랜드인), 문세균, 배익하, 김창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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