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노무현은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48.9%의 득표율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2003년 2월 2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취임 해인 2003년 9월 29일 그 동안 몸 담았던 민주당을 탈당했다. 이후 2003년 11월 1일 열린우리당이 출범했다. 그러나 입당을 하지 않았으며 탄핵이 기각되었던 2014년 5월 중순까지 무당적을 유지했다.

※ 盧대통령의 당적(黨籍) 변화
○ 2003.9.29 민주당 탈당
○ 2003.11.01 열린우리당 출범
○ 2004.02.24 취임 1주년 방송기자클럽 회견 '선거개입' 발언
○ 2004.5.20 열린우리당 입당
○ 2007.2.22 열린우리당 탈당선언
○ 2007.2.28 열린우리당 탈당신고서 제출

이후 국정 운영 동안 노 대통령은 아래와 같은 여러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발언을 거듭함으로써 민주당과 한나라 등 야권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되었고 결국 심각한 정치적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 노 대통령 선거개입 관련 발언들

∙ “민주당 찍으면 한나라당 돕는 것이다.”*2003.12.24
- 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들의 다음 해 2004. 4. 15. 치러지는 제17대 국회의원 총선에 대비한 청와대 총선 출정식에서 내뱉은 말이다. 총선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는 청와대발 총선 포고령이고 총진격을 알리는 나팔소리였다.

∙  “이 활동이야말로 정치발전과 저비용 선거에 기여하는 자발적인 참여인 만큼 허용하고 장려해야 된다.”*2004.02.05
-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참여 0415’, ‘노사모’ 등 친노 단체의 총선 운동을 적극 변호하며 했던 말이다. 이들 운동이 서구의 선진 민주정치에서 볼 수 있는 유권자 운동의 일환이라는 뉘앙스였다.

∙ “선거에 관여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 중앙선관위 의견이고 내 의견도 그렇다.”*2004.02.16
- 당시 노무현 정부의 고건 국무총리가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야당의원들의 노 대통령의 선거개입이 지나치다는 지적에 대해 답변으로 했던 말이다.

∙ “내가 선거에 관심이 많다. 내가 우리당에 표를 줄 수 있는 일이면 합법적인 일은 다 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개가 공천이 됐고 어디가 유리한지, 불리한지 전혀 모르고 있다. 내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이 할 일이다. 그래서 내가 분석을 안해보고 있다. 우리당이 몇석이 될지 모른다. 대통령을 뽑았으면 나머지 4년을 밀어줘서 제대로 하게 해줄 것인가, 아니면 흔들어서 내려오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줄 것으로 본다.”*2004.02.24
- 노 대통령이 2003년 취임 다음 해인 2004년 2월 24일 가진 취임 1주년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특별 회견에서 했던 말이다.

∙ "그냥 묻는 말에 답한 것을 놓고 탄핵 운운하고 있다."*2004.03.03
-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지역 언론 합동회견에서 한 말이다.

노 대통령은 “나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지만 어떤 행정력도, 단 한 사람의 공무원도 선거에 동원하지 않는다”고 맹세한다. 대통령은 정치인인데, 어디에 나가서 누구를 지지하든지 발언하든지 왜 시비를 거느냐”는 말로 야권의 선거개입 공세를 맞받아쳤다. 이어 “내가 무슨 선거개입을 했다는 말이냐. 텔레비전에 나갔을 때 몇 석이나 되면 좋겠냐고 묻기에 많이 되면 좋겠다고 한 것이다. 또 얼마나 될 거라고 보느냐고 묻기에 많이 될 것이라고 답한 거다. 그게 왜 뭐가 어쨌다는 말이냐. 선거중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다”라고 이야기 했다.

노 대통령은 또 야권의 주장을 소개하는 언론 보도를 가리켜 “알면서 무식한 소리를 하는 것도 문제이고, 언론이 왜 또박또박 받아쓰는지는 모르겠다. 언론은 판단하지 않고 뭘 하느냐. 호불호를 떠나서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 데자뷰 박 대통령)

이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7대 총선은 사상 최악의 관권선거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며 맹비난을 했다. 그리고 2004년 3월 5일 두 야당은 노 대통령에 대해 본격적으로 탄핵을 위한 공조논의에 착수했다.

● 2004년 3월 3일 중앙선관위는 오후 6시간반의 격론 끝에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기대 발언과 취임 1주년 방송기자 클럽 회견에서 발언한 내용들이 공무원의 선거운동 금지를 규정한 선거법 60조를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선거와 관련한 공무원의 자세를 규정한 선거법 9조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에 위반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현직 대통령에 대해 선거법 위법 결정을 내린 헌정 사상 첫 사례로 그 동안 노 대통령의 잇단 선거개입 발언에 대해 쐐기를 박은 조치였다.

● 2004년 3월 9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열린우리당은 탄핵저지 국회 본회의장 농성에 돌입했다. 11일 오후 탄핵소추안이 국회상정 첫 시도되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물리적 저지로 인해 탄핵소추안 국회 상정은 무산이 되었다.

● 2004년 3월 12일 오전 박관용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결국 탄핵소추안은 상정이 되어 오전 11시 55분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가결이 되었다. 그리하여 노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가 되었고 고건 국무총리가 직무 권한 대행의 역할을 맡아 국정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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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촛불시위가 시작이 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탄핵무효 부패정치 척결을 위한 범국민행동’(약칭 탄핵무효 국민행동)이 주도하는 촛불 집회가 시작되었다. 가장 많은 인파는 주최 측 추산 10만명, 경찰 추산 5만 명까지 집결되었다. 한편 반대편 보수진영에서도 80여 개의 단체로 이루어진 '바른선택 국민행동'의 탄핵 찬성 맞불집회도 진행되었다.

●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기각했고, 그리고 노 대통령은 직무에 복귀했다.

● 2004년 5월 20일 노 대통령은 그 동안 미루어 왔던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3년 후인 2007년 2월 22일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탈당선언을 하고 28일 탈당신고서를 제출함으로써 그 동안 몸 담았던 열린우리당을 떠났다. 이후 무당적 신분으로 국정을 종료했다.

노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비례의석 23석을 포함한 총 152석의 압도적인 표를 획득하여 제 1당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의 여당은 재·보선에서는 단 한 석도 얻어 본 적이 없다. 김대중 정권도 몇 석은 얻었지만 이겨본 적이 없다. 참여정부에서 치러진 재·보선을 보면 2003.4.24(민주당 0석), 2005.4.30(열우당 0석) 및 동년 10.26(열우당 0석), 2006.7.26(열우당 0석) 및 동년 10.25(열우당 0석), 2007.4.25(열우당 0석)으로 열린우리당은 정권 내 1석도 얻지 못했다.

※ 제17대 국회의원 총선(2004.4.15) 결과

이날 총선 개표결과 광주지역 7개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모두 당선되자 광주 서구갑에서 당선된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열린우리당 염동연 당선자는 노무현 대통령은 또 한번 광주에 큰 빚을 졌다고 밝히고, 이번 결과는 민주의 성지인 광주에서, 광주의 정신이 살아 움직인 것이며 광주시민들의 대통령 탄핵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라고 말했다. (* 데자뷰 박 대통령)

노 대통령 집권말기 한국갤럽이 조사한 국정운영 평가 여론조사 2006년 4년차 4분기의 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긍정평가 14%, 부정평가 79%로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시기에서 마찬가지로 또한 민심이 이반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된다. (* 데자뷰 박 대통령)

또 2007년 7월 1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13.4%, 부정평가는 80.1%로 민심이 바닥을 치게 된다.

※ 노 대통령 탄핵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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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9월 29일 노대통령 민주당 탈당
2003년 11월 1일 열린우리당 출범
▲ 2004년 2월 3일 민주당 조순형 대표, "노 대통령이 계속 선거에 개입한다면 민주당은 탄핵발의도 불사할 것"(불법관권선거 및 민주당죽이기 공작 규탄대회)
▲ 2004년 2월 4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불법 관권선거와 공작정치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 탄핵을 포함해 모든 조치 검토"(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 2004년 2월 5일 민주당 조순형 대표, "노 대통령이 국민분열을 부추기고 민주당 죽이기와 불법 관건선거를 계속한다면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에 직면할 것"(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2004년 2월 24일 노 대통령,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특별회견)
▲ 2004년 2월 24일 민주당 조순형 대표,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법률적 검토를 마쳤다. 국민의 이해를 얻으면 탄핵을 추진 할 것"(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사전 연설문)
▲ 2004년 2월 25일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 관련 탄핵 사유해당 여부 검토
▲ 2004년 3월 3일 노 대통령, "그냥 묻는 말에 답한 것을 놓고 탄핵 운운하고 있다"(제주지역 언론 합동회견)
▲ 2004년 3월 3일 중앙선관위, 노 대통령 선거중립의무 위반 유권해석
▲ 2004년 3월 4일 청와대, "존중하나 납득하지 못하겠다
▲ 2004년 3월 4일 한나라당.민주당, 노 대통령 공개사과 촉구 및 탄핵발의 본격 검토
▲ 2004년 3월 5일 민주당 조순형 대표, ś일까지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본인.측근비리 등에 대해 사과하고 재 발방지를 약속하지 않을 경우 8일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특별 기자회견)
▲ 2004년 3월 5일 한나라당.민주당 '탄핵 공조' 논의 착수
▲ 2004년 3월 6일 청와대, "부당한 정치적, 정략적 압력과 횡포에 굴복안해"
▲ 2004년 3월 7일 한나라당, 선(先) 재발방지 약속 촉구
▲ 2004년 3월 8일 노 대통령, "탄핵사유에 대해서는 굴복할 수 없고 원칙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 2004년 3월 9일 한나라당.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열린우리당 '탄핵저지' 국회 본회의장 농성 돌입
▲ 2004년 3월 11일 오전 노 대통령, 야당의 사과요구 사실상 거부
▲ 2004년 3월 11일 오후 탄핵소추안 국회상정 첫 시도. 열린우리당 물리적 저지로 인한 탄핵소추안 국회 상정 무산
▲ 2004년 3월 11일 오후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투신, 노사모 회원 분신
▲ 2004년 3월 12일 새벽 야당 본회의장 전격 진입. 여야 의원 본회의장 대치
▲ 2004년 3월 12일 오전 노 대통령이 "탄핵정국 국민에게 죄송" 대국민 사과
▲ 2004년 3월 12일 오전 박관용 국회의장 질서유지권 발동, 탄핵소추안 상정
▲2004년 3월 12일 새벽 야당 본회의장 전격 진입. 여야 의원 본회의장 대치
▲2004년 3월 12일 오전 노 대통령이 "탄핵정국 국민에게 죄송" 대국민 사과
▲2004년 3월 12일 오전 박관용 국회의장 질서유지권 발동, 탄핵소추안 상정
▲ 2004년 3월 12일 노 대통령 “탄핵정국 국민께 죄송” 대국민 사과. 오전 11시55분 국회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중앙상임위원회의). 노 대통령 직무정지, 촛불시위 시작
▲ 2004년 3월 18일 헌재, 탄핵 관련 첫 평의 개최
▲ 2004년 3월 21일 청와대 전속 사진단 사진촬영. 탄핵 변론대리인단 11명 만찬
▲ 2004년 3월 30일 1차 재판(노 대통령 불출석)
▲ 2004년 4월 5일 청와대 직원들과의 식목 행사
▲ 2004년 4월 9일 3차 재판(안희정씨 등 4명 증인채택)
▲ 2004년 4월 10일 첫 외출, 광릉수목원 방문
▲ 2004년 4월 1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북악산 등산
▲ 2004년 4월 15일 총선 투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오찬
▲ 2004년 4월 16일 김혁규 전 경남지사 오찬. 열린우리당 영남권 당선자 축하 전화
▲ 2004년 4월 19일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 만찬
▲ 2004년 4월 21일 열린우리당 선대위 지도부 20명 만찬
▲ 2004년 4월 23일 5차 재판(노 대통령측,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 대해 사과)
▲ 2004년 4월 30일 7차 재판(양측 최후 변론).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 면담
▲ 2004년 5월 2일 김대환 노동장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등과 노사문제 만찬 간담회
▲ 2004년 5월 5일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 주최 열린우리당 지도부 만찬 참석
▲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 탄핵기각. 노 대통령 직무 복귀. 노 대통령 수석·보좌관 오찬 및 고건 국무총리와 만찬
2004년 5월 20일 노대통령 열린우리당 입당
2007년 2월 22일 열린우리당 탈당선언
2007년 2월 28일 열린우리당 탈당신고서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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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측근 게이트] 노건평이 저지른 범죄들, 관련자들 심급별 재판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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