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23 원문
대통령 시절 못 건드렸던 대선자금·당선축하금 주목
검찰, 광범위한 계좌추적·세무조사로 샅샅이 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그 배경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2002년 대선자금’이 주목받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직전 서초동 검찰 청사 주변에서 검찰이 2002년 대선자금과 당선축하금의 ‘꼬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말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또한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민주당 내 ‘이명박 정권 정치보복진상규명특위’가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주변에 광범위하면서도 세밀한 수사망이 펼쳐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2002년 대선자금’에 대한 의혹이 골격을 갖추기 시작한 것. 2004년에도 지금도 ‘여지’를 남기고 있는 노 전 대통령 대선자금에 관한 시선을 쫓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관측이 제기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수그러드는 주장과는 달리 ‘2002년 대선자금’에 대한 부분은 날이 갈수록 탄탄한 뼈대 위에 살을 붙여나가고 있다.
● 진짜는 서거 직전 수사에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도중 서거하면서 그의 서거가 검찰 수사와 관련이 깊다는 것은 이미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원인이라고 보는 시선은 적다.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수사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진술에만 의존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측근과 친인척들의 비리가 포착되면서 ‘도덕적’ 궁지에 몰리기는 했지만 “모르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친인척들의 혐의와 노 전 대통령과의 직접적인 연계성은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발표에서 ‘공소권 없음’으로 내사종결한다고 밝혔다. ‘공소권 없음’은 수사 대상자가 숨지거나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기소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검사가 불기소 처분하는 것을 말한다.
뒤집어보면 혐의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도 이러한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수사에 노 전 대통령이 박 전 회장에게서 640만 달러를 건네받은 의혹을 포함한 것.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혐의는 이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일 것이라는 목소리가 여의도 정가와 서초동 청사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2002년 대선자금’이 조심스레 수면위로 떠올랐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전 서초동 청사 주변에서는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을 파고 있다는 말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당선축하금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규명 특검팀이 노 전 대통령의 당선축하금으로 의심했던 40억여 원 상당의 무기명 채권 40여 장에 대한 수사를 재개했다는 것.
특검팀은 당시 이 채권이 2005년 명동 사채업자를 통해 모두 현금화된 사실을 확인했다. 사채업자는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부탁을 받아 현금으로 바꿔 준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금화된 기록과 유통경로 추적에 실패하면서 무혐의 종결처리됐다. 검찰이 이 부분을 다시 끄집어냈다는 것이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내사종결하면서도 밝히지 않았던 데는 대선자금이나 당선축하금에 대한 부분이 포함됐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어리는 부분이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는 2003년 시작돼 2004년까지 정국을 흔든 핫이슈였다. 검찰은 전현 정권에 사정의 칼날을 드리웠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823억원과 114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대선자금과 당선축하금에 대한 의혹은 당시에도 일말의 ‘의혹’을 남겼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03년 12월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안희정 여택수 선봉술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남김없이 철저히 수사했다”라면서도 “수사 결과가 측근 비리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운을 남겼다.
● 예전에도, 지금도 대선자금 의혹 솔솔
“이번 수사의 초점은 대통령 측근들이지만 노 대통령이 관여된 부분도 있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고 예우를 해야 된다고 본다. ‘지금은’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 것.
2004년 대선자금 수사에서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 캠프의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사퇴하겠다”고 강수를 뒀다. 검찰은 한나라당에 823억원, 노 캠프에 114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이 흘러들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대선자금의 10분의 1이 넘는 액수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도 뒷말이 돌았다. 당초 10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만 밝혀졌으나 ‘일부러 맞췄다’는 말이 나올까봐 추가로 30억을 더 밝혔다는 것.
당시 검찰 수장이었던 송광수 검찰총장은 퇴임 후 한 강연에서 “검찰이 10분의 2, 3을 찾아냈더니 대통령 측근들이 ‘검찰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다”고 털어놓아 의혹을 키웠다. 송 총장의 발언에 따르면 최소 160억에서 240억 이상의 대선자금이 사용됐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대선 당시 선관위에 신고한 법정 선거비용이 260억~280억원 규모인 걸로 알고 있다. 신고하지 않은 불법자금을 합쳐도 350억~400억원 규모를 넘지 않는다”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대선을 마치고 선관위에 신고한 선거비용은 274억1800만원이다. 그러나 이후 사용된 선거자금은 여전이 ‘?’ 마크를 달고 있다.
문제는 정권교체 후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아낼 정도로 촘촘한 검찰의 수사망이 노 전 대통령 주변을 훑었다는데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에는 ‘묻혀’ 있던 것들이 ‘박연차 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파헤쳐졌을 수 있다는 것.
검찰 관계자들은 “역대 대선자금 수사는 측근 비리부터 시작됐다”면서 “정권이 바뀌고 나면 제보가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전 정권에 대한 수사가 수월한 편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내용이 얼마만큼 커질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언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표적수사 의혹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은 검찰 개혁을 목표로 ‘이명박 정권 정치보복진상규명특위’를 발족했다.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주선 최고위원은 “이명박 정권 시절 권력기관에 의한 계좌추적이 참여정부 시절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났다”면서 “이는 정치보복 수사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박 최고위원은 “2008년 수사기관이 요구한 금융거래 정보는 8만600여 건으로 참여정부 시절보다 3배 많다”면서 “2009년에도 1~3월까지 6만4700건 요구했고, 국세청도 이 기간 3개월 동안 참여정부 때보다 5배나 많은 1만800여 건의 계좌추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 정권 인사들에 수사와 구속이 집중된 이유”라면서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은 본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검찰이 10만원 이상 결제한 사람을 모두 조사했다는 진술을 했는데 이것과 맞아떨어지는 결과”라고 강조했다.
현 정권이 전 정권을 죽이기 위해 계좌추적과 세무조사를 통해 작은 먼지 하나까지 털어냈다는 것이다.
특위 간사를 맡고 있는 박영선 의원도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 중 대통령 임기시절 청와대에 출입한 적이 있는 재계 인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계좌추적 및 세무조사가 이뤄졌다는 제보가 접수돼 진상을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배후로는 이인규 중수부장이 지목되고 있다. 검찰은 2002년 대전자금 수사에 손을 대고 있다는 말이 서초동 인근에 파다하게 퍼지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축하금이나 대선 자금은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일축한 바 있다.
그러나 소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검찰 내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있던 이 중수부장이 ‘대어’를 낚기 위해 나섰다는 관측도 제기됐었다.
이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과는 질긴 악연으로 이어진 인물이다. 2003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 시절 SK그룹 비자금을 수사한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SK로부터 당선 축하금을 받았다는 단서를 확보, ‘노무현 측근비리 수사’의 단초를 마련했다. 또한 2004년 원주지청장으로 재직할 땐 노무현 캠프의 대선자금을 추적하기도 했다.
● 물샐 틈 없는 수사망에 잠들어있던 ‘증거’ 잡혔나
반면 이명박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기도 하다. 지난 1999년 이 대통령이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검찰 파견직으로 워싱턴 영사관에서 일하며 인연을 맺은 것. 이후 이 대통령 측근 그룹인 워싱턴 골프 클럽 3인방의 하나로 활동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명박 정권 정치보복진상규명특위’도 검찰의 대청와대 창구로 이 중수부장을 지적, 즉각적인 파면을 요구했다.
정치권은 ‘입’을 다문 검찰에 의혹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는 참여정부 인사 등 최측근들을 겨냥했지만 ‘2002년 대선자금’으로 인한 파장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을 ‘핵폭탄급’인데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주변에 철저한 저인망 수사를 펴면서 찾은 ‘혐의점’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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