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비정규직법 시행을 목전에 두고 이뤄지고 있는 비정규직 논의가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 비정규직법의 기본 취지가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남용 방지에 있음에도 사용기간의 적용 유예라는 미봉책에 매몰되면서다.

근인은 정부·여당이 노동계 등이 줄곧 요구해온 대책을 방치하다가 뒤늦게 법 시행을 앞두고 ‘100만 해고설’ 등을 앞세워 ‘사용기간 연장’ ‘비정규직 기간 제한 조항의 적용 유예’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마지막 ‘출구’로 여야 정당과 민주노총·한국노총이 참여하는 ‘5인 연석회의’가 꾸려졌으나 이 또한 유예 문제를 놓고 입장차가 갈려 진척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유예 기간이 끝나면 똑같은 논란이 재연된다는 점에서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007년 7월1일 시행된 ‘기간제·단시간근로자보호법’ 등 비정규직보호법의 입법 취지는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확산과 남용을 억제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촉진하는 것이었다.

 

노·사·정 합의안은 △기간제근로자의 사용기간 2년 초과 시 정규직화 △파견근로 2년 초과 시 직접고용 의무화 등이 핵심 내용이다.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성 해소에 주안점을 뒀다고 하지만, ‘2년’이라는 고용기간 조항에 대해 노동계의 불만도 제기됐다. 비정규직 확산의 길을 터줬다고 본 것이다. 반면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토록 하는 ‘사용사유 제한’ 문제는 반영되지 않았다.

노동계는 이후 기간 제한 방식은 악용 소지가 있는 만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는 사유 제한 방식으로의 전환 등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법 개정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대책 마련 요구를 외면해온 정부와 정치권은 예정된 2년이 임박하면서 뒤늦게 부산해졌다. 법이 시행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될 노동자들이 계약해지 당할 수 있다는 문제가 예고됐음에도 대책 마련은 뒷전에 놓고 허송세월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비정규직 보호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는 한시도 늦출 수 없는 과제”(5월18일 라디오연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우리 경제력이 비정규직 보호법을 따라가지 못한다”(지난해 12월19일)며 고용 유연성을 강조했다.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과 역행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4월 기간제 및 파견근로의 최대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여당인 한나라당은 ‘비판 여론’을 의식해 정규직 전환 조항의 적용 유예라는 방식으로 우회했다.

비정규직법 대안 마련을 위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여야 교섭단체 간사, 민주노총·한국노총 대표로 구성된 ‘5인 연석회의’도 주된 초점은 비정규직법 적용 유예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비정규직 논의가 본질을 도외시한 채 변질됐다고 비판한다. 비정규직 자체가 가진 고용불안정성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만,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시행할 거냐, 유예할 거냐’라는 ‘이상한 협의’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김성희 한국비정규직센터 소장은 “비정규직은 고용기간과 관계없이 해고가 일상화돼 있다”면서 “실질적으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기준과 절차를 정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유예 문제는 2년이 됐건, 4년이 됐던 결국 또다시 논란이 재연된다는 점에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편,국회 환경노동위 여야 교섭단체와 민주노총·한국노총이 참여하는 ‘5인 연석회의’는 6월29일 협상에서도 최종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오후와 저녁 두차례 협상을 벌이고, 양대 노총 사무총장 대신 위원장으로 격을 높였지만 정치권과 노동계의 입장차는 여전했다. 다만 여야 3당은 일부 의견 접점을 찾아 30일 추가 협상에서 타결 가능성을 남겼다.

이날 회의에서 한나라당은 ‘3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법 시행 2년 유예’를 적용하자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한나라당 조원진 의원은 “2년 시행 유예가 이뤄진다면 기간제법 폐지 등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90% 이상이 300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고 있어 근본적 차이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유예를 반대했다. 그러나 ‘단계적 시행’에 대해 여야 간 어느 정도 논의의 진전을 봤다. 민주당 김재윤 의원은 “대기업을 빨리 시행하고, 작은 기업은 좀 유예하는 등 단계적 시행에 대해 논의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은 비정규직법을 현행대로 시행하고 ‘해고금지’ 등을 법령에 명기할 것, 정규직 전환기금 집행 등 요구안이 반영되지 못하자 ‘사실상 결렬’을 선언하고 퇴장했다. 여야는 별도로 모여 밤샘 협의를 벌였다.

한나라당·민주당·선진과창조모임 등 여야 3당 및 양대 노총은 지난 15일 연석회의 구성에 합의하고 19일부터 협상을 벌여왔다. 여야는 당시 “6월 말까지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 등에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1주일 3차례로 잡혀 있던 회의 일정도 매일 개최로 바꾸며 조속한 합의 도출을 꾀했다.

한나라당은 그간 법 시행 유예 기간을 ‘최장 4년’에서 ‘2년’까지 낮췄고, 민주당도 ‘유예 불가’에서 ‘준비기간 6개월’로 선회했다. 자유선진당은 ‘1년6개월 유예’라는 절충안 들고 나왔다. 하지만 양대 노총은 “정치권이 비본질적 사항(유예시기)에 집착한다”며 반발했다. 추미애 환노위원장도 “5인 합의사항이 아니면 상임위에 상정하지 않겠다”며 노동계에 힘을 실었다.

한나라당은 5인 연석회의 합의 실패를 대비해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30일 본회의에 직권상정해줄 것을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요구해둔 상태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김 의장을 만나 “(7월부터) 실업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 직권상정이라도 해서 처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소속 의원 전원에게도 “오늘내일 중 반드시 본회의를 개최해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다. 양일간 가급적 국회 근처에서 상황에 따라 적극 대처해달라”는 내용을 팩스로 보내 비상대기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