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의 페이스북 글 전문(2019.5.2.)

국가기관을 새로이 만드는 문제는 영속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여야 할 문제이다. 특히 그 국가기관이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제한하는 수사권을 다루는 기관일 경우에는 마치 예리한 칼날을 다루는 것과 같아서 고도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법과대학에 입학하면서 법학과 학생들이 제일 많이 듣게 되는 법언 중에 하나가 (이젠 대중에게도 익숙한)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다. 권력이란 그 속성상 전횡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고, 이를 제약할 필요에서 인간의 오랜 경험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 놓은 것이 현재의 문명국가의 형사사법제도이다. 얼핏 별생각 없이 이루어진 것 같은 형사사법제도가 나름의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절대 권력의 출현을 막도록 제도화된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형사사법질서이고, 우리가 이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형사사법의 최전방에서 많은 인력과 광범한 재량으로 업무에 임하는 경찰의 권한행사가 남용되는 것은 검찰의 수사지휘 및 기소독점 등의 제도를 통해 견제한다. 검사 역시 수사와 기소권을 독점하여 통제가 어려운 듯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인력과 업무영역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경찰조직의 수사결과에 상당 부분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면서 법원의 판단을 통한 통제 역시 받아야 한다. 법원도 검찰의 기소 없이는 아무런 사법작용을 할 수 없는 내재적 한계를 가지면서, 동시에 심급을 통해 내부통제를 도모한다. 이처럼 사법기관 상호간 또 각 사법기관 내부의 각각의 견제와 균형장치를 통해 수사권과 형사사법권을 어느 한 기관이 독점해 전횡하는 것을 방지한다.

더해서 형사사법절차가 정치에 의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검찰을 별도의. 조직으로 두고 검찰총장이라는 완충장치를 두어 정치적 입김이 검찰조직 내로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적 안전판을 마련하고 있다. 사법권의 독립도 결국은 법원의 정치화를 방지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더 세부적인 내용까지 언급하자면 지면이 한정 없이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오랜 역사적 과오와 학문적 숙고를 거쳐 정비된 형사사법절차 안에 난데없는 이질 분자가 만들어질 형국에 처해 있다.

이른바 ‘공수처’란 기관이 생겨날 모양인데, 이 기관은 누가 견제하고 통제하나? 독자적인 수사권에 기소권까지 부여할 모양인데, 여기에 그 수사의 주된 대상이 고위직 경찰공무원, 검사, 법관이면 이 세 조직은 공수처의 태생과 더불어 그 신생조직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견제는 고사하고 눈 한번 흘겨볼 수 있겠나.

정치권으로부터의 완충장치도 없어 정치적 입김이 그대로 이 수사기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히려 그 구성에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이나 국회가 상당 부분 관여할 수 있도록 정한 모양이라 정치적 열기의 전도율이 현저히 높다.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처단한다.’고 하면 대중은 환호할 수 있으나, 이러한 명분에 지나치게 천착하면 다분히 선동적일 수 있다. 대중들의 머릿속 이미지에는 고위 공직자가 많은 뇌물을 받고 부정한 청탁을 처리해 주는 모습이 떠오를 수 있으나, 만약 그러한 정도의 문제만 이 국가기관이 다룬다면(그 역시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아마 대부분의 고위 공직자들은 크게 안도할 것이다. 모든 공직자가 청렴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한 정도로 부패한 공직자의 수는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형사사법제도로는 도저히 힘에 부쳐 별도의 국가기관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우리나라의 공직사회가 망가져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마도 추측건대 직권남용, 직무유기, 공무상 비밀누설, 강요 등 다양한 공무원 범죄에 대한 기준이 현저히 높아지고, 오히려 이러한 범죄들이 공무원 대부분을 옥죌 가능성이 있다. 직권남용 등으로 엄청난 숫자의 공무원들이 현재도 사법판단에 내맡겨진 상태이다. 처벌기준을 높이면 다분히 자의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 형벌조항들이다. 시민들은 너희들만의 일이라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떤 민원인의 딱한 사정을 들어 안타까운 마음에 법해석을 다소 완화시켜 적극적으로 처리하였다가는 직권남용으로 처벌될 수 있다. 또 그것이 무서워 법해석을 엄격하게 하여 지극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가는 이번에는 직무유기의 칼날을 들이댈지도 모르겠다. 민원인은 영문도 모르고 춤추는 잣대에 엄청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어딨느냐 과장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는데,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 참 난감했겠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공수처가 그리 기준을 엄하게 적용할까’라는 의문도 있을 수 있다. 나 역시도 공수처가 생기고 어떠한 기준으로 그들이 업무에 임할지 섣부르게 답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려 섞인 상상을 해보면, 정치와의 차단막이 거의 없어 정치권력이 제시하는 기준이 그대로 반영될 우려가 그 하나이다. 또 하나는 이 신생기관이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고, 권한을 확대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기준이 과하게 적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옛날 이야기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그 당부를 판단하였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전해 들은 이야기이지만 처음에 헌법재판소가 들어서고 사건이 없어서 헌법재판관님들 중에는 아는 변호사들을 만나면 헌법사건 좀 만들어 오라는 당부를 했단다. 그리고 전혀 헌법적인 이슈가 없는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해서도 그 권한 범위 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그 무렵 들었다. 기관은 위치가 선명하지 않고 취약하다는 것을 쉽게 견디지 못한다. 다소의 희생양이 생기더라도 기관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기준을 높여도 법원이 그리 쉽게 죄를 인정할 수 있겠나?’라고 또 혹자는 이야기할 것이다. 그 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굳이 유죄의 판단을 받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공무원들이라는 사람들은 지극히 승진과 전보에 민감한 존재들이다. 수사대상에 오르고 수사가 개시만 되어도 그 해당 공무원들을 압박하기에는 충분하다. 더 나아가면, 굳이 수사까지 나갈 필요도 없이 단지 첩보수집 차원에서 불러내도 그 공무원의 운신 폭은 상당히 제한된다.

공무원 중에 비교적 독립성이 잘 보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판사들조차도 언론의 향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헌법과 법률에 앞서 여론의 물리력에 굴복하는 경우들을 볼 수 있는데, 공수처의 의중이나 기준이 그 여론의 물리력보다 과연 약할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공수처의 처장을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고 국무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위치가 족히 검찰총장, 국정원장과 같은 반열에 오르는데, 그 권한은 오히려 그를 능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과거 안기부에서 대공방첩기능을 뺀 것과 그 권한(그나마 이 권한은 비밀리에 행사했다)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 있는데, 그런 안기부조차도 기소권은 전혀 가지지 못하는 존재였다.

제도는 영속적인 것이다. 현 정부 권력의 선의를 믿으라고 말하여 (권력의 속성상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그리한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 또 그 다음 정권의 선의까지 담보할 방법은 없다. 선의에만 의존할 것 같으면 애초 그러한 제도를 만들 필요조차도 없다. 만약에 순수하게 공무원의 부패만을 제동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느 법학 교수님의 말씀대로) 권한을 남용하거나 부패범죄를 저지르기가 상대적으로 불리한 야당에다가 공수처 처장의 선임과 그 구성 권한을 주는 것이 그나마 그 진실성이 다소 담보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리 없다.

참으로 중요한 문제인데, 충분한 논의도 각 형사사법기관들의 의사도 제대로 반영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판검사들이나 고위 경찰공무원들도 나중에 이 기관이 생겼을 때 혹시 미운털이 될까 지레 겁을 먹은 탓인지 별말들이 없다. 이런 와중에 문무일 검찰총장님께서 그 부당함을 지적하면서 의견을 내셨다. 그 후과가 무엇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법조의 어른으로서 보이신 그 용기에 감사한다.

같이 보기▸ 송인택 울산지검장의 검찰개혁 건의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