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역사의 시대구분과 연호(年號)

* 일본은 원호(元号 げんごう)라고 부름
* 서력기원(西曆紀元: 약칭 西紀) ▸일본은 서기(西紀) 대신 서력(西暦)이라 부름
❶ 구석기 시대
❷ 조몬 시대(繩文時代 승문시대)
❸ 야요이 시대(弥生時代 미생시대)
❹ 고훈 시대(古墳時代)
❺ 아스카 시대(飛鳥時代 비조시대)
❻ 나라 시대(奈良時代)
❼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평안시대)
❽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겸창시대)
❾ 겐무 신정(建武新政)
❿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AD 1336년 1573년까지 교토를 중심으로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실정막부)가 실권을 행사한 북조와 고다이고천황(後醍醐天皇)이 요시노에 세운 남조가 대립한 시대인 ❿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를 지나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후기부터 시작된 수많은 세력들의 각축전(角逐戰) 시대인 AD 1573년까지의 ⓫센고쿠 시대(戦国時代 전국시대)가 펼쳐지게 된다.
⓫ 센고쿠 시대(戦国時代 전국시대)
고쓰치미카도 천황(後土御門天皇 일본 제103대 천황 재위: 1464.8.21.~1500.11.21.)
- 이름은 후사히토(成仁)로 그의 치세(治世 나라를 잘 다스려 화평한 세상↔난세)때 센고쿠 시대의 서막을 연 오닌의 대란이 일어났다. 이후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오기마치 덴노때까지 황실은 무로마치 막부의 몰락과 극심한 대전란의 영향으로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⓬ 아즈치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안토도산시대) 또는 쇼쿠호 시대(織豊時代 직풍시대)
⓭ 에도 시대(江戸時代 강호시대 또는 혹은 도쿠가와 시대 徳川時代 덕천시대)
⓮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명치시대)
⓯ 다이쇼 시대(大正時代 대정시대)
⓰ 쇼와 시대(昭和時代)
⓱ 헤이세이 시대(平成 평성)
⓲ 레이와 시대(令和 영화)

일본의 행정구역


▮ 일본의 역사시대 경과

1. 고대

일본은 약 40,000년 전 ~ 38,000년 전 사이 인류가 열도로 유입되어 첫 인류가 등장하는 ❶후기 구석기 시대를 거쳐 중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인 대략 BC 14,000~13,000년부터 1,000~300년까지인 조몬 시대(繩文時代 승문시대)를 지나 AD 3세기 중반까지의 ❸야요이 시대(弥生時代 미생시대)와 AD 8세기 초까지의 ❹고훈 시대(古墳時代)를 거치고 AD 710년까지의 ❺아스카 시대(飛鳥時代 비조시대) 그리고 AD 794년까지의 ❻나라 시대(奈良時代)에서는 율령(律令)을 통한 정치가 시작되어 전성기를 이루었고, 다시 AD 1185년까지는 ❼헤이안 시대(平安時代 평안시대)로 헤이안 초기에는 실질적인 천황(天皇) 통치가 이루어졌다.

2. 중세

이어 AD 1185년~1333년까지는 ❽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겸창시대)로 첫 막부(幕府)에 의한 실질적인 통치가 시작되었다. '막부(幕府)'란 천황은 상징적 존재로 두고 실권은 쇼군(Shogun: 막부의 수장: 首長으로서 일본에서는 천황 다음가는 실질적 최고 권력자인 정이대장군: 征夷大将軍을 말함)이 보유한 무신권력(武臣權力) 체제이다.

AD 1185년부터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겸창막부)가 시작되었는데, 헤이안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시대 초기까지 활약했던 무장(武將)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 원뢰조 1147.5.9. 출생~1199.2.9. 사망)가 제1대 가마쿠라 막부 정이대장군이 되었는데 이때부터 막부정치가 시작되어 에도 막부(江戸幕府 강호막부) 마지막 시기인 AD 1867.11.19.까지 약 700년(683년) 동안 막부 시대가 이어져 오게 된다.

- 일본 첫 막부(幕府)정치의 시작인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겸창막부)에 의한 실질적인 통치가 시작되었던 AD 1185년~1333년까지의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이던 1318년 다이카쿠지 계통의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 후제호천황|일본 제96대 천황·후일 남조 초대 전황)이 즉위한 후 막부와 대립하였고, AD 1331년 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하기 위해 겐코의 변(元弘の変)을 일으켰으나 측근 요시다 사다후사(吉田定房)의 밀고로 발각되면서 교토(京都)의 가사기데라(笠置寺)로 탈출하였다. 이에 가마쿠라 막부는 그를 폐위시키고 지묘인 왕통(持明院統 じみょういんとう)인 가즈히토친왕(量仁親王)을 고곤 천황(光厳天皇 본명: 카즈히토 量仁량인·북조 초대 천황 * 북조의 수도는 교토 京都)으로 즉위시켰다.

고다이고 천황은 탈출 후 병력을 결집하여 대항하였으나 결국 생포되어 천황의 상징인 삼종(三種)의 신기(神機)를 고곤 천황에게 넘겨주고 오키(隱岐)섬에 유배되었다. 유배된 지 2년이 지난 1333년 2월 나와 나가토시(名和長年) 집안의 도움으로 오키섬을 탈출하였다. 이후 반 막부 세력인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교토를, 닛타 요시사다가 가마쿠라(일본 가나가와현 남동부 해안에 위치한 市)를 공격해 가마쿠라 막부를 멸하게 된다.

AD 1333년 6월 교토(京都 현 교토시)로 돌아온 고다이고 천황은 고곤 천황의 즉위 및 재위를 부정하고 고곤 천황의 명으로 이루어졌던 모든 조처들을 무효로 만들었다. 이후 고다이고 천황은 가마쿠라 막부를 폐지하고 왕정복고(王政復古)하여 AD 1334년 연호를 겐무(建武)로 정하고 정권을 ❾겐무 신정(建武新政)으로 하고 1335년 11월까지의 2년 반 동안 친정(親政: 임금이 직접 나라를 다스림)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개혁의 곳곳에 불만이 터지고 정치는 극도로 혼란해졌다.

한편 시나노(信濃)로 도주하여 목숨을 건진 멸망한 가마쿠라 막부 제14대 싯켄(막부의 정무를 총괄하던 직책)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의 아들 호조 도키유키(北条時行)는 시나노에서 은신하면서 호조씨 가문을 다시 부흥시키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AD 1335년 7월 공가(公家 くげ) 세력인 사이온지 긴무네(西園寺公宗)와 협력하여 가마쿠라(鎌倉市 かまくらし 현 일본 가나가와현 남동부 해안에 위치한 市)를 공격하였고, 당시 가마쿠라를 지키고 있던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 후일 무로마치 막부 초대 정이대장군)의 동생 아시카가 다다요시(足利直義 후일 무로마치 막부의 첫 쇼군)는 호조 도키유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가마쿠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AD 1335년 8월 고다이고 천황은 아들 나리요시 친왕(成良親王)을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세이이타이쇼군)에 임명하여 이들을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이전 가마쿠라 막부를 멸한 겐무 신정 고다이고 천황은 가마쿠라에 황자 나리요시 친왕을 장으로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동생 아시카가 다다요시가 보좌하는 형태의 가마쿠라 장군부를 설치하였다. 아시카가 다다요시 등의 가마쿠라 장군부는 대항을 하지만 패전을 거듭한다.

이러한 와중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는 고다이고 천황에게 호조 도키유키 토벌의 허가와 총추포사(국내무사 통솔 역할 담당)와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또는 쇼군)의 직책을 요청하였으나 천황은 이를 거부한다. 다카우지는 천황의 칙허(勅許)도 없이 스스로 정이대장군이라 칭하고 가마쿠라로 진군하여 호조 도키유키의 세력을 진압하고 가마쿠라를 점령하였는데 이 사건을 '나카센다이의 난(中先代の乱)'이라 칭한다.

호조 도키유키를 진압해 가마쿠라를 되찾은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이후 교토(京都)로 돌아가지 않았다. 무가정권의 수립을 염원했던 다카우지는 가마쿠라(현 일본 가나가와현 남동부 해안에 위치한 市)에 머물면서 고다이고 천황에게 본격적으로 대항하였고, 천황은 다카우지를 제압하려 했으나 AD 1336년 미나토(湊川]) 강 전투에서 최종적으로 패해 교토에 유폐됨으로써 겐무신정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 후제호천황)

이후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교토(京都)에 들어와 고묘 천황(光明天皇 광명천황 재위 1336.9.20.~1348.11.18.)을 옹립한 후 1338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를 개창(開倉)하고 초대(제1대) 정이대장군(재임기간 1338.9.24.~1358.6.7.)이 되었다.

* 전술한 겐무 신정(建武新政) 시대 가마쿠라 막부에 의해 추대되고 다시 고다이고 천황에 의해 폐위된 이전 고곤 천황(光厳天皇)이 북조(북조의 수도는 교토 京都)의 초대(제1대) 천황(天皇)이 되고, 이번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무로마치 막부에 의해 옹립된 고묘 천황(光明天皇)이 다시 북조(北朝 교토 京都)의 제2대 천황이 된다. 이 옹립 사건이 남북조 시대(북조와 남조의 대립)를 여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다.

고묘 천황(光明天皇)이 옹립되고 폐위된 고다이고 천황은 AD 1336년 12월 교토를 탈출하여 요시노(吉野 현 나라현 요시노군에 있는 정)로 들어가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남조(南朝) 정권(요시노 조정)을 열고 무로마치 막부의 북조와 대항했다. 이로써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고묘 천황을 옹립한 1336년부터 북조 제6대 고코마쓰 천황(後小松天皇 재위기간 1392.11.19.~1412.10.5.)이 남조 마지막 제4대 고카메야마 천황(後龜山天皇 재위기간 AD 1383~1392.10.21.)에게 삼종의 신기(청동거울·청동검·곡옥)를 넘겨받아 남북조를 통일한 AD 1392년까지는 교토의 조정(北朝)과 요시노의 조정(南朝)이 병립하는 ❿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AD 1336년 1392년)가 지속된다.

① 북조(北朝)의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실정시대 AD 1336년~1573까지 237년간 존속) ② 남조(南朝 AD 1339년~1392년까지 53년간 존속) * 현재의 일본 황실은 북조의 후손 고다이고 천황은 북조와 맞서 싸웠으나 막강한 북조에 계속해서 열세에 몰리게 된다. 시간이 흐른 AD 1339.9.9. 요시노에 와 있던 일곱 번째 아들 노리요시친왕에게 양위(讓位)하고 다음날인 9.10. 5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로써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는 끝이 나고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후기부터 시작된 수많은 세력들의 각축전(角逐戰) 시대인 AD 1573년까지의 ⓫센고쿠 시대(戦国時代 전국시대)가 펼쳐지게 된다.

전국시대의 형세(1560년경)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1336년~1392년)이며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가 일본을 통치하던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후반 1464년 즉위한 고쓰치미카도 천황(後土御門天皇 일본 제103대 천황 재위기간: AD 1464.8.21.~1500.11.21.)의 AD 1466.3.14.~1467.4.8.까지 사용한 연호(元号)는 분쇼(文正 ぶんしょう)이고, 이어 센고쿠 시대(戦国時代 전국시대)에 접어들어 고쓰치미카도 천황의 AD 1467.4.9.~1469.6.7.까지 사용한 연호는 오닌(応仁 おうにん)이었다.

이 오닌의 원년인 1467년 무로마치 막부 제8대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또는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 あしかが よしまさ 재임기간: 1449년~1473년)의 후계자 문제로 무로마치 막부 쇼군 집안 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다툼이 시작되는데, 이 다툼은 일본 열도 전체의 무사 세력에게까지 확산되어 AD 1477년 종료될 때까지 11년에 걸쳐 지속되었다. 이 대란이 시작된 1467년 원년(元年)의 연호인 오닌(応仁)을 사용하여 '오닌의 난'(応仁の乱 1467년~1477년 11년간 다툼)이라 칭하는데, 이전 남북조 시대의 북조와 남조의 대결에서 북조가 남조를 복속시킨 해인 AD 1392년(남북조 시대 종료)으로부터 75년이 지나서 무로마치 막부 시대 제8대 쇼군의 다음 제9대 후계자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다.

AD 1465년 제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 아들 아시카가 요시히사가 태어나고 2년 뒤인 1467년 오닌의 난이 발생하였고, 이로부터 6년 뒤 8세가 되던 1473년 아들 아시카가 요시히사(足利義尚 재임: 1473년~1489년)가 무로마치 막부 제9대 쇼군에 임명되어, 12세가 되던 1477년에 오닌의 난이 종료되었다. 이 당시의 후계자는 막부의 쇼군이 임명하는 직위였다.


오닌의 난의 발생 과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무로마치 막부 제6대 정이대장군(쇼군) 아시카가 요시노리(足利義教)의 적자(嫡子 다섯 번째 아들) 출신인 제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에게는 이복동생 아시카가 요시미(足利義視 1439.3.3.~1491.2.15.)가 있었는데, 그는 서자(庶子 열 번째 아들)로 태어나 4살 되던 해에 승려로 출가해 죠도지(浄土寺 정토사)에 정주(定住)하고 있었다.

후사(後嗣)가 없었던 그는 동생 아시카가 요시마사를 양자(養子)로 요청하였고, 이에 동생 요사미는 25세 때 환속(還俗)하여 교토의 저택으로 옮겨 거주하면서 다음 쇼군 후계자의 길을 굳혀 나가고 있었으나 1465년 12월 형수 히노 도미코가 아들 아시카가 요시히사(足利義尚)를 출생하게 되면서 분위기는 미묘해졌다.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입장 변화가 없었으나 아내 도미코는 아들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골은 깊어지고 히노 도미코 편에 선 서군(西軍)의 야마나 소젠(山名宗全 1404~1473|東軍의 총수 호소카와 카츠모토의 장의 장인)과 요시미의 후견인 동군(東軍)의 호소카와 카츠모토(細川勝元 1430년~1473년|西軍의 총수 야마나 소젠의 사위)와 대립하게 되었으며, 전국의 슈고다이묘(守護大名 무사 지방행정관과 지방영주를 겸하는 자리)들도 두 세력으로 나뉘어 전쟁을 불사하게 된다. 전국은 전란으로 빠져들고 양편의 전투가 수년간 이어지면서 교토는 황폐화 되고, 수많은 건물이 불타고 공가(公家)의 보물과 기록 등이 소실되었다.

오닌의 난(応仁の乱)

1473년 야마나 소젠과 호소카와 카쓰모토가 사망하고 각 야마나 마사토요(山名政豊)와 호소카와 마사모토(細川政元)가 가문을 계승하게 되면서 두 가문이 화의를 맺게 되고, 1476년부터 전투에서 대적했던 서군(西軍)의 하타케야마 요시나리(畠山義就), 오우치 마사히로(大内政弘), 아시카가 요시미(足利義視 이 사건 쇼군 후계 당사자), 도키 나리요리(土岐成賴) 등이 모두 철수하면서 1477년 오닌의 난은 종결되었다. 장장(長長) 11년간의 시간이었다. 실제 전국시대의 시작은 이 난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오닌의 난은 센고쿠 시대(戰國時代)의 서막이었고, 후기 무로마치 막부가 지속되어 AD 1573년 종결까지의 96년간은 또 다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군웅할거의 지난한 시간이었다. 전국의 수많은 세력들끼리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전국 다이묘의 대표적 인물이 등장하여 서로 사투를 거듭함과 동시에 군사력뿐만 아니라 권력 기반의 강화를 목표로 하여 지배 체제를 강화시켰다. 천황과 무로마치 막부의 힘은 약화되었다. 한편으로는 지방장관격인 슈고(守護)와 그 대리인 슈고다이(守護代), 지역 호족인 고쿠진(國人) 등의 출신들이 다이묘(大名)로 거듭나 지방의 영주로써 중앙 분권적 지배구조를 붕괴시키고 자신의 영지를 지역 국가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군웅할거(群雄割據) 패권경쟁에서 다이묘(大名)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통일의 터를 잡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전국을 평정하고 통일을 이룸으로써 아즈치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1573년~1603년까지 30년간 존속) 또는 쇼쿠호 시대(織豊時代)를 여는 1573년은 동시에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즉,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의 센고쿠 시대(戦国時代 전국시대 AD 1467년~AD 1573년까지 106년간 존속)가 종말을 고하는 해였다.

전국시대(센고쿠 시대)의 종말과 관련해서는 제15대 쇼군(將軍)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 무로마치 막부 마지막 제15대 정이대장군 재임기간: 1568.11.6.~.1588.2.9.)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게 쫓겨나 무로마치 막부가 멸망한 1573년경으로 보는 설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전국을 통일한 1590년으로 보는 설 등이 있다.

이 전국시대 중 다이묘(大名 일본의 각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의 한 사람이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직전신장)도 세력을 확장하면서 남북조시대 북조의 무로마치 시대에 일본을 통치했던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를 멸망시키는 등 정벌을 해 나가던 중 AD 1582.6.21. 교토 혼노지라는 절에서 배신한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습격을 받고 혼노지에 불을 지르고 그 속에서 자결하였는데 이것을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이라 한다. 아케치 미쓰히데는 이후 야마자키 전투에서 하시바 히데요시(후일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군에게 패전 후 부하들과 도망가던 중 히데요시가 보낸 낙오병 사냥에 나선 토착 농민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된다.

한편 오다 노부나가에게 중용되어 그의 휘하에서 활약하던 무장(武將)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 후일 도요토미 히데요시: 豐臣秀吉 풍신수길로 이름 변경|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으킨 인물로 이 전쟁은 선조 25년 1592.5.23.~선조 31년 1598년.12.16.까지 약 7년간 지속됨)는 오다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고 실권을 장악해 1590년 반대세력을 모두 굴복시키고 일본을 통일함으로써 ⓬아즈치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안토도산시대)를 열어 AD 1603년까지 유지했다. 이 두 시기를 합쳐 쇼쿠호 시대(織豊時代 직풍시대)라고도 부르는데, 두 사람 이름 앞 글자 織과 豐을 딴 것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丁酉再亂) 부산포해전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풍신수길)


▮ 센고쿠 시대(전국시대) 3영걸(三英傑)
현재의 일본 아이치현(당시 오와리 국, 미카와 국) 출신으로 나고야에 연고가 있고, 전국시대에 천하통일을 이끌었던 ①오다 노부나가 ②도요토미 히데요시 ③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3명의 센고쿠 다이묘(戰國大名)를 주로 아이치 현과 나고야 시에서 표창하는 호칭으로 3영걸(三英傑) 또는 향토삼영걸(郷土三英傑)이라고 부르는데, 나고야 축제에서는 매년 이 3명을 기념하기 위해서 향토 영걸 행렬을 진행하고 있다.


3. 근세

이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를 지난 AD 1868년까지를 ⓭에도 시대(江戸時代 강호시대 또는 혹은 도쿠가와 시대 徳川時代 덕천시대)라 부르는데, AD 1603년~1868년까지 유지한 에도 막부(江戶幕府 강호막부) 또는 도쿠가와 막부(徳川幕府 덕천막부)는 센고쿠 시대부터 활약한 무장(武將)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덕천가강)가 AD 1603.3.24. 에도 막부를 수립하고 초대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또는 쇼군) 수행(遂行)을 시작으로 제15대 정이대장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 덕천경희)가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메이지 천황(明治天皇 명치천황)에게 권력을 반납하는 1867.11.9. 대정봉환(大政奉還)까지의 약 264년간은 일본사의 가장 오랫동안 존속했던 무가 정권이었으며, 또한 일본사의 종지부를 찍은 마지막 막부 시대(幕府時代) 쇼군이었다. 이로써 무신권력(武臣權力)의 실권은 천황(天皇)으로 넘어가고, 이때부터 천황은 신성불가침의 존재로서 막강한 통치권이 부여되었다.


▮ 일본 3대 막부(幕府•ばくふ•Shogunate)
❶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겸창막부 AD 1185년~1333년)
❷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실정막부 AD 1336년 1573년) 또는 아시카가 막부(足利幕府 족리막부)
❸ 에도 막부(江戶幕府 강호막부 AD 1603년~1868년) 또는 도쿠가와 막부(徳川幕府 덕천막부) ▸일본 마지막 막부


4. 근대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단행으로 1867.11.9. 에도 막부(江戸幕府 강호막부) 제15대 쇼군(征夷大將軍 정이대장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가 국가 통치권을 메이지 천황(明治天皇 일본 제122대 천황)에게 반납하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이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천황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게 되는 제정복고(帝政復古)로 전환되고, 이로써 천황의 직접정치가 배제되고 막부(幕府)의 쇼군(실질적 최고 권력자 장군)에 의한 실권이 시작된 AD 1185년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겸창막부)에서 1867년 에도 막부(江戸幕府 강호막부)까지의 약 700년(683년)간의 막부정치(幕府政治)가 종식하게 된다.

1868년~1912년까지 ⓮메이지 시대(明治時代 명치시대)가 지속되고, 메이지 22년 1889.2.11. 근대 입헌주의에 기초한 대일본제국헌법(大日本帝國憲法 The Constitution of the Empire of Japan 약칭 제국헌법)이 제정(공포)되어 메이지 23년 1890.11.29. 시행되었다. 이 제국헌법에서는 천황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규정하고 막강한 통치권을 부여하였다. 이 제국헌법은 후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신헌법인 일본국헌법(日本國憲法)을 제정하면서 쇼와 시대(昭和時代) 쇼와 22년 1947.5.2. 폐지하게 된다.

메이지 천황(明治天皇)

이 제국헌법 이후에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1894.7.25.~1895.4.17. 청일전쟁(淸日戰爭) → 1차 1902.1.30.|2차 1905.8.12. 영일동맹(英日同盟) → 1904.2.8.∼1905.9.5. 러일전쟁(露日戰爭) → 1905.11.17. 을사조약(乙巳條約) 또는 을사늑약(乙巳勒約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일본군을 동원하여 강제로 체결한 조약) → 1910.8.29. 한일합병(韓日合倂) 또는 경술국치(庚戌國恥)

5. 현대

이어 1912년~1926년까지 ⓯다이쇼 시대(大正時代 대정시대)가 지속되고, 이어 1926년~1989년까지는 ⓰쇼와 시대(昭和時代)로, 이 시기의 1937.7.7.~1945.9.2. 일본은 중일전쟁(中日戰爭)을 진행하던 중 → 1939.9.1.~1945.9.2. 제2차 세계대전(第二次世界大戰) 등이 발발하자 전선을 확대해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구실로 동남아시아로 침략을 확장하였고, 1941.12.8. 진주만 기습 공격 감행으로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였다. 1942.6.4.~6.7.까지 미드웨이제도 주변에서 전개된 미국과의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 1945.4.1.~6.23.까지 최초 일본 영토 내에서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과의 전면전에서도 처참하게 패배를 당했다.

쇼와 천황(昭和天皇)

1945.5.7. 프랑스 상파뉴 지방의 랭스 연합군 최고위원회 사령부에서 열린 조인식(調印式)에서 독일 국방군 최고 사령부의 최고 사령관 장군 알프레트 요들은 모든 독일군에 대해 연합군으로 무조건 항복한다고 서명하였다. 하나 이 항복 문서는 소련을 배제하였기에 스탈린이 소련을 포함할 것을 주장했고, 이에 다음 날인 5.8. 10시 43분 경 독일 베를린에서 알프레트 요들의 상관인 빌헬름 카이텔 야전사령관이 다시 항복문서에 서명하여 11시 01분을 기해 발효되었다. 이로써 총 5년 8개월 7일(총 2076일)만에 유럽에서의 전쟁은 끝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동맹국 일본은 끝까지 버티었다.

1945.7.17.부터 8.2.까지 미국의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영국의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 등 연합국 수뇌들이 독일 포츠담에서 동년 5.9. 항복을 선언한 독일의 사후 처리 문제와 유럽 재건 및 태평양 전선 종결을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진행하였다. 7.26. 미국·영국·중국 3개국 수뇌회담의 결과로 발표된 포츠담선언(Potsdam Declaration)에서 일본군대의 무조건항복과 일본 주권은 혼슈(本州)·홋카이도(北海道)·규슈(九州)·시코쿠(四國)와 연합국이 결정하는 작은 섬들에 국한될 것(* 포츠담선언 제8항 한국 독립이 확인됨)이라는 등 13개 항목을 담은 선언을 하였다. 이 포츠담선언을 통해 연합국은 일본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즉각적이고 완전한 파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일본은 묵살하였다.

* 포츠담선언 제8항: "카이로 선언의 요구 조건들이 이행될 것이며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 그리고 우리가 결정하는 부속 도서로 제한될 것이다."

이로부터 10일 후 미국은 1945.8.6. 히로시마시에 한 개의 원자폭탄과 8.9. 나가사키시에 남은 한 개의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1941,4,13, 모스크바에서 맺은 일본제국과의 일소중립조약(日ソ中立条約)으로 인해 형식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던 소련이 1945.8.8.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8.9. 일본제국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을 침공하게 된다. 소련은 만주-한반도 방면, 남사할린(가라후토) 방면, 쿠릴 열도(치시마 열도) 방면으로 크게 3개의 전선에서 공세를 전개했다. 이렇게 진행된 양국 간의 전쟁은 9.2. 소련이 미주리함 항복 조인식에 전승국으로 서명하고 9.4.이 되어서야 최종 마무리되었다.

소련의 침공까지 겹치게 되자 결국 일본은 8.10. 천황제 유지를 조건으로 미국 측에 포츠담선언 수락 의사를 전달하고, 8.14. 무조건 항복 의사를 전달하고, 1945.8.15. 정오에 쇼와 천황(昭和天皇 이름: 히로히토 裕仁유인|일본 제124대 천황 재위기간: 1926.12.25.~1989.1.7.)은 NHK라디오 방송을 통해 항복의 뜻을 국민들에게 전했다.

이리하여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주권을 상실한 일본은 연합군최고사령부(일본 정식명칭: 연합국군최고사령관총사령부 SCAP: 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 또는 GHQ: General Headquarters)의 요구로 메이지 시대에 제정했던 대일본제국헌법(大日本帝國憲法 구헌법)의 개정을 요구해 1946.2.13. 일본국(日本国)이라는 새로운 국명을 발표함에 따라 쇼와 21년 1946년.11.3. 이른바 평화헌법인 일본국헌법(日本國憲法 The Constitution of Japan)을 제정하였는데, 그 내용은 일본국민은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영구히 포기하고, 이를 위하여 육해공군 및 그 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아니한다는 전쟁포기 및 구헌법 신성불가침인 천황의 전제적 권능을 제거해 상징적 지위로만 머물게 하였다. 즉,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로부터 나온다."로 수정하고, 이 외에도 자유권·참정권·사회권 등 기본적인 인권 존중을 보장하고, 행정·입법·사법의 3권 분립을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나루히토(徳仁 덕인) 일본 제126대 천황

이어 일본국 제125대 아키히토(明仁 명인) 천황이 재위했던 1989.1.8.~2019.4.30.까지의 ⓱헤이세이 시대(平成 평성)를 거쳐 일본국 제126대 나루히토(徳仁 덕인|아키히토 천황의 맏아들) 천황이 즉위한  2019.5.1. 자정부터 시작한 ⓲레이와 시대(令和 영화)가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