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결과 보고서
2017.12.27.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 결과
I.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 출범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의 외교장관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이하 ‘위안부 문제’)에 관한 양국의 합의 내용(이하 ‘위안부 합의’)을 발표하였다. 이로써 한·일 양국의 중요한 외교현안이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주목하여 온 위안부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 직후 비판 여론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피해자 및 관련 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반발이 두드러졌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뒤 치러진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야 주요 정당 후보들이 합의의 무효화 또는 재협상 공약을 내놓았다.
▲ 2017년 12월 27일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 결과 발표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 2017년 12월 27일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 결과를 발표하는 오태규 TF 위원장
2017년 5월10일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였다. 외교부는 7월31일 장관 직속으로「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이하 ‘위안부 티에프’)를 설치하여, 위안부 합의의 경위와 내용을 검토·평가하도록 하였다. 위안부 티에프에는 오태규 위원장을 비롯하여 한일관계, 국제정치, 국제법, 인권 등 다양한 분야의 위원 9명이 참여하였다.
<위안부 티에프 위원 명단>
○ 위원장
▸ 오태규 전 관훈클럽 총무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장)
○ 부위원장
▸ 선미라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 민간 위원
▸ 김은미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 손열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 양기호 성공회대학교 일어일본학과 교수
○ 외교부 위원
▸ 백지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
▸ 유기준 국제법률국 심의관
▸ 황승현 국립외교원 교수
시민사회, 정치권, 언론, 학계 등은 위안부 합의 이후, 피해자의 참여, 이면 합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등과 관련해 다양한 의혹과 비판을 제기하였다. 위안부 티에프는 이러한 의문과 관심에 답하려고 노력하였다.
위안부 티에프는 2014년 4월16일 위안부 문제 관련 제1차 한·일 국장급협의부터 2015년 12월28일 합의 발표까지를 검토기간으로 하였다. 또 사안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해당 검토기간 앞뒤의 경과와 국내외 동향도 살펴보았다. 티에프는 모두 20여 차례 회의와, 집중 토론을 하였다.
티에프는 외교부가 제공한 협상 경위 자료를 우선 검토한 뒤, 이를 토대로 필요한 문서를 외교부에 요청하여 열람하였다. 외교부가 작성한 문서를 주로 검토하였고, 외교부가 전달받거나 보관하고 있던 청와대와 국정원 자료를 보았다. 문서 및 자료로 파악이 부족했던 부분에 관해서는 협상의 주요관계자들을 면담해 의견을 들었다.
위안부 티에프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경위를 파악하고 내용을 평가하였다.
첫째,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본질적으로 ‘가해자 대 피해자’ 구도에서 피해 여성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데 있다. 피해 구제과정에서 피해자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정부는 피해자의 의사와 입장을 수렴하여 외교 협상에 임할 책무가 있다.
둘째, 전시 성폭력인 위안부 문제는 반인도적 불법행위이자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다. 국제사회는 전시 성폭력 문제에 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해결 노력을 하면서, 피해 구제를 위한 국제규범을 발전시켜 왔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한·일 양자 차원뿐 아니라 국제적인 차원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셋째,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의 외교는 정부 관료의 손에 전적으로 맡겨진 것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하는 것이어야 한다. 더욱이 위안부 문제와 같이 국민의 관심이 큰 사안은 국민과 더불어 호흡하는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통해서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
넷째,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뿐만 아니라 한국 외교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다. 따라서 관계부처 사이, 협상 관계자 사이의 유기적 협력체계와 긴밀한 소통을 통해, 전반적인 대외정책과 균형을 이루는 협상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안부 티에프는 보고서에서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진 경위를 살펴보고, (1)합의 내용, (2)합의의 구도, (3)피해자 중심 해결, (4)정책 결정과정 및 체계로 나누어 평가를 하였다.
위안부 티에프는 위안부 합의의 경위와 내용에 관한 검토와 평가로 임무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위안부 합의의 향후 처리 방향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위안부 티에프 회의 개최 일시>
※ 12월 1일부터 12월 16일까지 집중토론
II. 위안부 합의 경위
1. 국장급 협의 전 단계(~ 2014년 4월)
1991년 8월 김학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최초 공개 증언은 한·일 양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3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일본에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을 직접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조사할 것을 요구하였다.1)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 위안소의 설치와 관리 등에 일본군이 관여했으며 일본군위안부의 모집과 이송 등이 총체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음을 인정하는 고노 관방장관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를 계기로 한국 정부는 같은 날 위안부 문제를 한·일 양자 차원의 외교협상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1995년 7월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하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 총리 명의의 사죄 편지와 함께, 인도적 조치로 금전을 지급하였다.2)
1) 1993년 3월 한국 외무부는 정부의 자체적인 구호 대책을 마련하고 일본 쪽에 대해 성의있는 진상조사를 촉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같은 해 6월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이 제정되어 피해자에게 1인당 5백만원의 생활보호 기본금이 지급되었고, 생활보호법, 의료보호법 등에 따라 생활지원금 지급(월 15만원), 의료 혜택 등 지원이 이루어졌다. 1998년 4월 김대중 정부는 피해자에 대한 생활보호 기본금을 4천3백만원으로 확대하는 등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였다.
2)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금전을 수령한 한국인 피해자는 공식적으로 7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2014년 6월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고노 담화 검토보고서에서는 아시아여성기금이 한국인 피해자 61명에게 1인당 위로금 200만엔과 의료복지지원금 300만엔을 지급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이미 해결되어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반인도적 불법행위인 위안부 문제가 양국 사이의 재정적, 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다룬 청구권협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사안이라는 입장이다.3) 한·일 양국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2011년 8월 한국 헌법재판소가 위안부 문제에 관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는지에 관해 한·일 양국 사이에 해석상의 분쟁이 있으며, 한국 정부가 이를 청구권협정 분쟁해결 절차4)에 따라 해결하지 않고 있는 것이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2011년 9월, 11월 두 차례 청구권협정 제3조 제1항에 따른 양자협의를 일본에 요청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응하지 않았다.
3) 2005년 8월26일 총리실 산하의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고 발표하였다.
4) 청구권 협정에 따르면 협정의 해석 및 이행에 관한 양국 사이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고(제3조 제1항), 외교상경로로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중재에 의하여 해결(제3조 제2, 3항)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1년 12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였다. 일본 쪽은 2012년 3월 ‘사사에 안’으로 알려진 인도적 차원의 해결구상5)을 비공식으로 제안하였으나, 한국 정부는 국가책임 인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2012년 후반 한·일 양국 정부는 물 밑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협의를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5) 2012년 3월 일본 외무성의 사사에 사무차관이 제시한 구상으로 ①총리 사죄 표명, ②정부 예산에 의한 의료비 지원 등 인도적 조치 실시, ③주한일본대사의 피해자 방문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3년 2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일본을 설득하여 성의 있는 조치를 끌어낸다는 방침을 세우고, 일본 쪽에 위안부 문제를 논의하는 실무협의를 개최하자고 지속적으로 요구하였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역사인식에 관한 양국 정상의 이견 때문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2. 국장급 협의를 통한 해결 노력(2014년 4월~2015년 2월)
2014년 3월 24일-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렸다. 미국은 한·미·일 협력 차원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고, 3월 25일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별도로 개최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국장급 협의를 개시하기로 합의하였다.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 국장급 협의는 한국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일본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사이에 2014년 4월 16일부터 2015년 12월 28일 합의발표 하루 전까지 모두 12차례 열렸으며, 중간에 비공개 협의도 있었다.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 국장급 협의 개최 일시 및 장소>
국장급 협의가 개시된 뒤에도 양쪽이 기본 입장만 되풀이하면서 좀처럼 교섭에 진전이 없자, 협상 대표의 급을 높여 정상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고위급 비공개 협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양쪽에서 나오기 시작하였다.
3. 고위급 협의를 통한 합의 도출(2015년 2월~2015년 12월)
(1) 고위급 협의 개시
한국 정부는 국장급 협의의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2014년 말 고위급 협의를 병행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하였다. 이때부터 협상의 중심이 고위급비공개 협의로 옮겨가게 되었다. 일본 쪽이 협상 대표로 국가안전보장회의사무국장을 내세움에 따라 한국 쪽은 대통령의 지시로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이 대표로 나섰다.6)
6) 이병기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위급 협의 대표로 참여하였다. 1차 협의 때는 국정원장이었으나, 2차 협의 직전인 2015년 2월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다.
(2) 고위급 협의를 통한 잠정 합의
제1차 고위급 협의는 2015년 2월 열렸고, 같은 해 12월 28일 합의 발표 직전까지 8차례의 협의가 있었다. 양쪽은 수시로 고위급 대표 사이의 전화협의와 실무급 차원의 협의도 병행하였다. 주무부처인 외교부는 고위급 협의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고위급 협의의 결과를 청와대로부터 전달받은 뒤 이를 검토하였고,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하였다.
한국 쪽은 제1차 고위급 협의에 앞서 2015년 1월 열린 제6차 국장급 협의에서 핵심적인 요구사항으로 ‘도의적’ 등의 수식어가 없는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이전보다 진전된 내용의 공식 사죄 및 사죄의 불가역성 담보, 일본 정부의 예산을 사용한 이행조치 실시를 제시하였다.
일본 쪽은 제1차 고위급 협의에서 일본 쪽이 취할 조치와 함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 해결, 국제사회에서 비난·비판 자제 등 한국 쪽이 실시할 조치를 제시하였다. 일본 쪽은 이를 공개 부분 및 비공개 부분으로 나누어서 합의에 포함시키기를 원하였다.
양쪽은 고위급 협의 개시 약 2개월 만인 2015년 4월 11일 제4차 고위급협의에서 대부분의 쟁점을 타결하여 잠정 합의하였다. 합의 내용은 일본정부의 책임 문제와 사죄, 금전적 조치와 같은 세 가지 핵심 사항은 물론,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소녀상 문제,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비판 자제의 항목을 포함하고 있었다. 또한 관련 단체 설득, 제3국 기림비, ‘성노예’ 용어에 관한 비공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3) 고위급 협의의 교착 및 최종 합의
2015년 4월 잠정 합의 내용에 관하여 양국 정상의 추인을 받는 과정에서 일본 쪽은 비공개 부분인 제3국의 기림비와 관련하여, 기림비 설치 움직임을 한국 정부가 지지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추가하기를 희망하였다. 한국 쪽은 그러한 내용을 추가하는 것은 이미 타결된 내용에 관한 본질적 수정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런 가운데 2015년 6월 말 이른바 ‘군함도’를 비롯한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로 양국 정부의 갈등이 커지면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협의도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2015년 11월1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중단되었던 고위급 협의를 재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11월 2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정상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위안부 문제를 타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내타결에 강한 의욕을 보였으며, 2015년 12월 23일 제8차 고위급 협의에서 합의가 최종 타결되었다.
한·일 외교장관은 2015년 12월28일 서울에서 회담을 열어 합의 내용을 확인한 데 이어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발표하였다. 같은 날 양국 정상은 전화 통화로 합의 내용을 다시 확인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최종 합의 내용은 제3국 기림비와 소녀상 부분이 일부 수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잠정 합의 내용과 동일하였다.
III. 위안부 합의 평가
다음에서는 합의 내용, 합의의 구도, 피해자 중심 해결, 정책 결정과정 및 체계로 나누어 평가하였다.
1. 합의 내용
(1) 공개 부분
가. 일본 정부 책임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일본 쪽 발표 내용)
▪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책임 부분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수식어 없이 명시하도록 한 것은 책임에 관한 언급이 없었던 고노 담화와, 책임 앞에 ‘도의적’이 붙어 있었던 아시아여성기금 당시 일본 총리 편지와 비교하여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일본 정부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는 데 더하여, 총리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 표명, 그리고 일본 정부의 예산 출연을 전제로 한 재단 설립이합의 내용에 포함된 것은 일본이 법적 책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으므로 법적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일본 쪽은 협상의 전 과정과 협상 타결 직후 정상 사이의 전화 통화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반복적으로 이러한 입장을 밝혔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확고한 법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법적 책임 인정을 이끌어내는 것은 어렵다고 보고,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하는 현실적인 방안을 추진하였다. 한국 쪽은 “소모적인 법리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생각하면서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도출한다는 자세로 창의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하였다.
법적 책임 인정은 피해자 쪽의 핵심 요구사항의 하나였다. 외교부도 내부 검토에서 법적 책임은 국내설득에서 핵심적인 사안이며 단순히 ‘일본정부 책임’으로 할 경우 국내 설득에 난항이 예상된다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일 양쪽은 이 부분이 논란이 될 것을 예상하여 ‘발표 내용에 관한 언론 질문 때 응답 요령’에서 “합의 문안 중 ‘책임‘의 의미에 대한 문의 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준 문제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음』이라는 표현 그대로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답변하기로 조율하였다.7)
7) ‘발표 내용에 관한 언론 질문 때 응답요령’에는 위의 내용 이외에도 아래와 같은 내용이 함께 들어 있다.
(질문) 이번 합의에 따라 실시하려는 구체적인 사업 내용이 있는지, 또한 본 사업에 수반되는 예산규모는 어느 정도를 상정하고있는지?
(응답) 한국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여기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실시하기로 함. 구체적으로는 ▴모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에 기여하는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조치, ▴의료 서비스 제공(의약품 지급 포함), ▴건강관리 및 요양, 간병 지원, ▴상기 재단의 목적에 비추어 적절한 기타 조치를 생각하고 있는데, 사업은 앞으로 한일 양국 정부 간 합의된 내용의 범위 내에서 실시함. 일본 정부가 거출하는 예산 규모에 대해서도 향후 조정해 나갈 예정인데, 대략 000엔 정도를 상정하고 있음.
한국 쪽은 협상에서 종래 일본의 ‘도의적 책임 통감’보다 진전된 ‘책임통감’의 표현을 얻어내었다. 그러나 ‘법적’ 책임이나 책임 ‘인정’이라는 말은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한국 쪽은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피해자 방문 등피해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조치를 일본 쪽에 요구하였으나 합의에 포함시키지 못하였다.
나. 일본 정부 사죄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일본 쪽 발표 내용)
▪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아베 총리는 내각총리대신 자격으로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였다. 과거 아시아여성기금 당시 피해자에게 전달된 일본 총리의 편지에도 ‘사죄와 반성의 마음’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었으나, 위안부 합의에서는 좀 더 공식적인형태로 이러한 뜻을 밝혔다는 점에서, 이번 사죄와 반성 표명은 종래보다는 나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피해자 및 관련 단체는 일본 정부의 ‘되돌릴 수 없는’ 사죄를 요구하여왔고, 한국 정부도 협상 과정에서 불가역적이고 공식성이 높은 내각 결정(각의 결정) 형태의 사죄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내각 결정을 통한 사죄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또 형식이 피해자에게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용도 아시아여성기금의 총리 편지 중 ‘도의적’ 용어만 빼고 동일한 표현과 어순을 그대로 되풀이하였다.
다. 일본 정부의 금전적 조치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일본 쪽 발표 내용)
▪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본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에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함.
구체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전(前) 위안부 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한 일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함.
금전적 조치 부분에서 아시아여성기금과 달리, 일본 정부가 예산으로 전액 출연한 돈을 사용하여 한국 안에 재단이 설립되었다.8) 그리고 위안부합의 당시 생존 피해자 47명중 36명과 사망 피해자 199명의 유가족 68명이 이 재단을 통하여 돈(생존자 1억원, 사망자 2천만원)을 받았거나 받을 의사를 밝혔다(12월 27일 현재).
8) 고위급 협의에서 합의된 ‘재단 설립에 관한 조치 내용’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 모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 국내의 적절한 재단에 대해 일본 정부는 그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여, 사업의 재원으로 함.(※ 일본 정부 예산에 의한 거출은 1회에 한함.)
- 동 재단의 활동은 이하와 같음. ▴목적: 모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 ▴대상: 모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분들, ▴사업: ①모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에 기여하는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조치, 의료 서비스 제공(의약품 지급을 포함), ②건강관리 및 요양‧간병 지원, ③상기 재단의 목적에 비추어 적절한 기타 조치, ▴실시 체제: 재단은 양국 정부 간 합의된 내용의 범위 내에서 사업을 실시함. 재단은 양국 정부에 대해 사업의 실시에 대해 정기적으로 통보하는 것으로 하며, 필요시 양국 정부 간 협의함.
- 재단 설립 방법: 한국 정부는 공익법인의 설립 절차에 따라 정부 등록 공익재단의 형태로 추진함.
- 재단 설립 및 일본 정부 예산의 거출 절차는 아래와 같이 추진함: ①한국 내 재단설립준비위원회 발족, ②양국 정부 간 재단의 사업내용 및 실시방식 등을 포함한 구상서 교환, ③준비위원회-한국 정부 간 재단 사업 등 권한 위임을 위한 서한 교환, ④준비위원회-일본 정부 간 자금 거출을 위한 서한 교환, ⑤일본 정부의 재단에 대한 자금 거출.
위안부 문제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어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일본을 상대로 일본 정부의 예산만을 재원으로 하여 개인에게 지급될 수 있는 돈을 받아낸 것은 이제까지 없었던 일이다.9)
9) 고위급 협의에서 합의된 ‘재단 설립에 관한 논의 기록’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 현금 지급과 관련, 한국 쪽 대표로부터 사용처를 묻지 않는 현금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분들에게 배포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정말로 필요한 경우에 그 사용처에 따라서 현금 지급을 하는 경우를 배제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미의 발언이 있었음을 감안하여, 일본 쪽 대표는 그 전제로서 “현금의 지급은 포함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의 삭제에 동의함.
- “재단은 양국 정부에 대해 사업의 실시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통보하며, 필요시 양국 정부 간 협의한다”는 문안에 대해, 일본쪽 대표로부터 동 문안으로 동의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의도에 반해서 재단 사업이 실시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기 바란다고 언급한 점에 대해, 한국 쪽 대표로부터 그렇게 한다는 취지의 응답이 있었음.
그러나 일본 쪽은 합의 직후부터, 재단에 출연하는 돈의 성격이 법적 책임에 따른 배상은 아니라고 하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과 관련 단체들도 배상 차원의 돈이 아니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이렇듯 피해자들 입장에서 책임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피해자들이 돈을 받았다하더라도 위안부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가 내는 돈이 10억 엔으로 정해진 것은 객관적 산정 기준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한·일 외교 당국의 협상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피해자로부터 돈의 액수에 관해 의견을 수렴하였다는 기록은 보지 못하였다.
또, 한국에 설립된 재단을 통해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돈을 주는 과정에서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었다. 이로 인해 한·일 갈등 구도인 위안부 문제가 한국 내부의 갈등 구도로 변한 측면이 있다.
라.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일본 쪽 발표 내용)
▪ 일본 정부는 상기를 표명함과 함께, 이상 말씀드린 조치(외교장관 회담 때는 ‘상기 ②의 조치’)10)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발표를 통해 동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한국 쪽 발표 내용)
▪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조치를 평가하고, 일본 정부가 앞서 표명한 조치(외교장관 회담 때는 ‘상기1.②의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함.
※ 밑줄 추가는 위안부 티에프
10) 양쪽이 고위급 협의에서 합의한 내용은 ‘일본 정부는 상기를 표명함과 함께, 상기 ②의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였으나, 일본 쪽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이상 말씀드린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로 발표하였다. 한국 쪽은 사전에 합의된 내용인 ‘일본 정부가 상기 1.②의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를,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가 앞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라고 발표하였다.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표현이 합의에 들어간 것은 위안부 합의 발표 뒤 국내에서 논란이 큰 사안이었다.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이 합의에 들어간 경위를 보면, 2015년 1월 제6차 국장급 협의에서 한국 쪽이 먼저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한국 쪽은 기존에 밝힌 것보다 진전된 일본 총리의 공식 사죄가 있어야 한다면서, 불가역성을 담보하기 위해 내각 결정을 거친 총리 사죄 표명을 요구하였다.
한국 쪽은 일본의 사죄가 공식성을 가져야 한다는 피해자 단체의 의견을 참고하여, 이러한 요구를 하였다. 피해자 단체는 일본이 그간 사죄를 한 뒤 번복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고 하면서, 일본이 사죄할 경우 ‘되돌릴 수 없는 사죄’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2014년 4월 피해자 단체들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시민사회의 요구서」에서 “범죄사실과 국가적 책임에 대해 번복할 수 없는 명확한 방식의 공식인정, 사죄 및 피해자에 대한 법적 배상”을 주장한 바 있다.
일본 쪽은 국장급 협의 초기에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만 말하였으나, 한국 쪽이 제6차 국장급 협의에서 사죄의 불가역성의 필요성을 언급한 직후 열린 제1차 고위급 협의부터 ‘최종적’ 외에 ‘불가역적’ 해결을 함께 요구하였다.
2015년 4월 제4차 고위급 협의에서 이러한 일본 쪽의 요구가 반영된 잠정 합의가 이루어졌다. 한국 쪽은 ‘사죄’의 불가역성을 강조하였는데 당초취지와는 달리, 합의에서는 ‘해결’의 불가역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맥락이 바뀌었다.
외교부는 잠정 합의 직후 ‘불가역적’ 표현이 포함되면 국내적으로 반발이 예상되므로 삭제가 필요하다는 검토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하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불가역적’의 효과는 책임 통감 및 사죄 표명을 한 일본 쪽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이 들어 있는 문장 앞에 ‘일본 정부가 재단 관련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라는 표현을 넣자고 먼저 제안한 쪽은 한국이었다. 한국 쪽은 위안부 합의 발표 시점에는 일본 정부의 예산 출연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행을 확실하게 담보하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제안하였다.
이 구절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의 전제에 관한 논란을 낳았다.
일본 정부가 예산을 출연하는 것만으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고 해석될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쪽은 협의 과정에서 한국 쪽의 의도를 확실하게 반영할 수 있는 표현을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결국 양쪽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면서 ‘법적 책임’ 인정은 해석을 통하여서만 할 수 있는 선에서 합의하였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일본 쪽의 희망에 따라 최종 합의에서 일본정부의 표명과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또, 일본 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한다고도 언급하였다.
마.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한국 쪽 발표 내용)
▪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
일본 쪽은 소녀상 문제에 관하여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합의 내용은 외교장관이 공동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부분과 발표하지 않은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소녀상 문제는 양쪽에 모두 포함되었다.
소녀상 문제 등과 관련하여 양쪽이 비공개로 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일본 쪽은 “이번 발표에 따라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므로, 정대협 등 각종 단체 등이 불만을 표명할 경우에도 한국정부로서는 이에 동조하지 않고 설득해 주기 바람.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어떻게 이전할 것인지, 구체적인 한국 정부의 계획을 묻고 싶음”이라고 언급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 쪽은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의 착실한 실시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문제는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하고, 관련 단체 등의 이견 표명이 있을 경우 한국 정부로서는 설득을 위해 노력함.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 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이라고 하였다.
일본 쪽은 협상 초기부터 소녀상 이전 문제를 제기하였고, 합의 내용의 공개 부분에 포함시키기를 희망하였다. 한국 쪽은 소녀상 문제를 협상 대상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우려하여 이 문제가 합의 내용에 포함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결국 이를 비공개 부분에 넣자고 제안하였다.
양쪽이 협상에서 구체적인 표현을 둘러싸고 밀고 당기기를 한 끝에, 최종적으로는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이라는 표현이 합의 내용의 공개 부분과 비공개 부분에 동시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 쪽은 이것이 소녀상 이전을 합의한 것이 아니며, 발표 내용에 있는 ‘노력한다’ 이상의 약속은 따로 없다고 설명하여 왔다. 특히, 국회, 언론 등이 공개된 내용 외의 합의가 있는지를 물은 데 대해 소녀상과 관련해서 그런 합의는 없다는 취지로 답변하여 왔다.
그러나 한국 쪽은 공개 부분에서 소녀상 관련 발언을 한 것과 별도로, 비공개 부분에서 일본 쪽이 소녀상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대응하는 형식으로 같은 내용의 발언을 다시 반복하였다. 특히, 비공개 부분에서 한국 쪽의 소녀상 관련 발언은 공개 부분의 맥락과는 달리, “소녀상을 어떻게 이전할 것인지, 구체적인 한국 정부의 계획을 묻고 싶음”이라는 일본 쪽의 발언에 대응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소녀상은 민간단체 주도로 설치된 만큼 정부가 관여하여 철거하기 어렵다고 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쪽은 이를 합의 내용에 포함시켰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소녀상을 이전하기로 약속하지 않은 의미가 퇴색하게 되었다.
바.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일본 쪽 발표 내용)
▪ 또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함.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한국 쪽 발표 내용)
▪ 한국 정부는 이번에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실시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함.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난·비판 자제와 관련하여 한국 쪽은 이 문제 역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일본 쪽은 이러한 내용을 계속 포함하기를 원하였다. 한국 쪽은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실시된다는 것을 전제로’, 비난·비판을 ‘상호’ 자제하는 것으로 동의하였다.
위안부 합의 이후 청와대는 외교부에 기본적으로 국제무대에서 위안부관련 발언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마치 이 합의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는 오해를 불러왔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는 한·일 양자 차원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 사죄, 보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인권문제, 역사적 교훈으로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것을 제약하는 것은 아니다.
(2) 비공개 부분
위안부 합의에는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발표 내용 이외에 비공개 부분이 있었다. 이런 방식은 일본 쪽 희망에 따라 고위급 협의에서 결정되었다. 비공개 부분은 ①외교장관회담 비공개 언급 내용, ②재단 설립에 관한조치 내용, ③재단 설립에 관한 논의 기록, ④발표 내용에 관한 언론 질문때 응답요령으로 되어 있다.11)
11) 고위급 협의 때 논의되었던 ‘재단 설립에 관한 조치 내용’과 ‘재단 설립에 관한 논의 기록’ 등에 기초하여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되었고, 관련 사업이 실시되었다. ‘재단 설립에 관한 조치 내용’은 보고서 14쪽 각주 8), ‘재단 설립에 관한 논의 기록’은 15쪽 각주 9), ‘발표 내용에 관한 언론 질문 때 응답요령’은 12쪽 각주 7)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공개 언급 내용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등 피해자관련 단체 설득,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제3국 기림비, ‘성노예’ 용어 등 국내적으로 민감한 사항들이다. 비공개 언급 내용은 일본 쪽이 먼저 발언을 하고, 한국 쪽이 이에 대해 대응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일본 쪽은 (1)“이번 발표에 따라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므로, 정대협 등 각종 단체 등이 불만을 표명할 경우에도 한국 정부로서는 이에 동조하지 않고 설득해 주기 바람.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어떻게 이전할 것인지, 구체적인 한국 정부의 계획을 묻고 싶음”, (2)“제3국에 있어서 위안부 관련 상(像)·비(碑)의 설치에 대해서는, 이러한 움직임은 제(諸) 외국에서 각 민족이 평화와 조화 속에서 공생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는 가운데,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함”, (3)“한국 정부는 앞으로「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함”이라고 언급하였다.
이어서 한국 쪽은 (1)“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의 착실한 실시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문제는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하고, 관련 단체 등의 이견 표명이 있을 경우 한국 정부로서는 설득을 위해 노력함.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 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 (2)“제3국에서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관련 석비(石碑)·상(像)의 설치 문제와 관련, 한국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발표에 따라 한국 정부로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지원함이 없이 향후 한일관계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함”, (3)“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한 공식 명칭은「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임을 재차 확인함”이라고 대응하였다.
한국 정부는 공개된 내용 이외의 합의사항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소녀상과 관련해서는 그런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정대협 설득, 제3국기림비, ‘성노예’ 표현과 관련한 비공개 내용이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한국 쪽은 협상 초기부터 위안부 피해자 단체와 관련한 내용을 비공개로 받아들였다. 이는 피해자 중심, 국민 중심이 아니라 정부 중심으로 합의를 한 것임을 보여준다.
일본 쪽은 정대협 등 피해자 관련 단체를 특정하면서 한국 정부에 설득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 쪽은 정대협을 특정하지는 않고, ‘관련 단체 설득 노력’을 하겠다고 일본 쪽의 희망을 사실상 수용하였다.
또, 일본 쪽은 해외에 기림비 등을 설치하는 것을 한국 정부가 지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으려고 하였다. 한국 쪽은 제3국 기림비 설치는 정부가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며 일본의 요구를 거부하였으나, 마지막 단계에서 ‘지원함이 없이’라는 표현을 넣는 것에 동의하였다.
일본 쪽은 한국 쪽이 성노예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도 원하였다. 한국 쪽은 성노예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인 점 등을 이유로 반대하였으나,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 명칭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이라고 확인하였다.
비공개 언급 내용은 한국 정부가 소녀상을 이전하거나 제3국 기림비를 설치하지 못하게 관여하거나 ‘성노예(sexual slavery)’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나, 일본 쪽이 이러한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2015년 4월 제4차 고위급 협의에서 잠정 합의 내용이 타결된 뒤 외교부는 내부 검토회의에서 네 가지의 수정·삭제 필요사항을 정리하였다. 여기에는비공개 부분의 제3국 기림비, 성노예 표현 두 가지가 들어 있고, 공개 및 비공개 부분의 소녀상 언급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외교부가 비공개 합의 내용이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합의 성격
위안부 합의는 양국 외교장관 공동 발표와 정상의 추인을 거친 공식적인 약속이며, 그 성격은 조약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이다.
한·일 양국 정부는 고위급 협의의 합의 내용을 외교장관 회담에서 구두로 확인하였고 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발표하였다. 그리고 사전에 약속한 대로 양국 정상이 전화통화로 추인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양쪽이 발표 내용을 각각 공식 웹사이트에 게재하면서 서로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생겼다. 한국 외교부는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내용을, 일본 외무성은 양쪽이 사전 합의한 내용을 공식 웹사이트에 게시하였다. 또 양쪽이 각기 공식 웹사이트에 올려놓은 영어 번역문도 차이가 있어 혼란을 더했다. 그래서 실제 합의한 내용이 무엇인지, 발표된 내용이 전부인지 등에 관해 의혹과 논란을 낳았다.
2. 합의의 구도
그간 피해자 쪽의 3대 핵심 요구 사항, 즉 일본 정부 책임 인정, 사죄, 배상의 관점에서 보면, 위안부 합의는 아시아여성기금 등 종래와 비교하여 나아졌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특히, 아베 정부를 상대로 이 정도의 합의를 이루어낸 것을 평가하는 일부 시각도 있다.
3대 핵심 사항은 일본 쪽이 다른 조건을 걸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였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소녀상 문제의 적절한 해결 노력,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난·비판 자제 등 일본 쪽의 요구를 한국 쪽이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타결되었다.
한국 쪽은 처음에는 고노 담화에 언급된 미래세대 역사교육, 진상규명을 위한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설치 등 일본 쪽이 해야 하는 조치를 제시하며 맞대응을 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일본 쪽의 구도대로 협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3대 핵심 사항과 한국 쪽의 조치가 교환되는 방식으로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3대 핵심 사항에서 어느 정도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조차도 그 의미가 퇴색하였다.
게다가 공개 부분 외에도 한국 쪽에 일방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비공개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 드러났다. 그것도 모두 시민사회의 활동과, 국제무대에서 한국 정부의 활동을 제약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사항들이다. 이 때문에 공개된 부분만으로도 불균형한 합의가 더욱 기울게 되었다.
3. 피해자 중심 해결
위안부 합의에 관하여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문제의식은 이 합의가위안부 피해자 및 관련 단체와 유엔 등 국제사회가 강조해온 피해자 중심적 접근과 그 취지를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문제를 전시 성폭력 등 보편적 가치로서 여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다루어 왔다.
전시 여성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피해자 중심적 접근은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구제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2005년 12월 유엔 총회결의에 따르면, 피해자가 겪은 피해의 심각성 정도 및 피해가 발생했던 정황의 역사적 맥락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완전하고 효과적인 피해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국민 눈높이에도 맞고 국제사회도 수용할 수 있는” 해결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외교부는 국장급 협의개시 결정 뒤 전국의 피해자 단체, 민간 전문가 등을 만났다. 2015년 한해에만 모두 15차례 이상 피해자 및 관련 단체를 접촉하였다.
피해자 쪽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공식 사죄, 개인 배상의 세 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여 왔다. 외교부는 이들의 의견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수식어 없는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일본 총리의 공식 사죄, 개인 보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협상안을 마련하여 국장급 및 고위급 협의에 임하였다.
외교부는 협상에 임하면서 한·일 양국 정부 사이에 합의하더라도 피해자단체가 수용하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므로 피해자단체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졌다. 또, 외교부는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쪽에 때때로 관련 내용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등 한국 쪽이 취해야할 조치가 있다는 것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돈의 액수에 관해서도 피해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이해와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였다.
피해자 단체는 합의 발표 직후 성명서를 통해 “피해자들과 지원단체, 그리고 국민들의 열망은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범죄에 대해 국가적이고 법적인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이행함으로써 피해자들이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다시금 이러한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다”고 반발하였다. 이들은 또 최종적·불가역적 해결과 소녀상 문제 등이 포함된 데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였다.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일본 정부의 정례보고서에 관한 2016년 3월의 최종견해에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주장한 발표는 ‘피해자 중심적 접근’을 완전하게 채택하지 않았다”고 평가하였다. 또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뜻을 충분히 고려하고, 진실, 정의, 배상에 대한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일본 정부에 촉구하였다.12) 고문방지위원회13) 등도 위안부 합의에 관하여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결여되었다고 지적하였다.
12) CEDAW/C/JPN/CO/7-8(2016).
13) 2017년 5월 고문방지위원회는 피해자의 권리와 국가책임을 규정한 고문방지협약 제14조의 이행에 관한 일반 논평에 위안부 합의가 충분히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위안부 합의의 수정을 권고하였다.(CAT/C/KOR/CO/3-5).
4. 정책 결정과정 및 체계
위안부 문제를 외교 사안으로 다룰 때는 인류 보편 가치를 추구하는 동시에 대외정책 전반과 적절한 균형을 고려하여야 한다. 인화성이 큰 위안부 문제를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을 경우 대일 외교뿐만 아니라 외교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한일관계개선의 전제로 삼았고 경직된 대응으로 여러 가지 부담을 초래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3.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면서 대일 강경책을 주도하였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정상회담 개최를 연계함에 따라 역사 갈등과 함께 안보, 경제, 문화 등 분야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정부 차원의 갈등이 상호 과잉반응과 국제무대에서 과도한 경쟁을 빚으면서 양국 국민 차원의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한일관계 악화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전략에 부담으로 작용함으로써 미국이 양국 사이의 역사 문제에 관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외교 환경 아래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협상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조속히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았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안보·경제 부문 등을 분리해 대응하지 못하고 ‘위안부 외교’에 매몰되었다. 또,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을 통해 일본을 설득한다는 전략을 이끌었다. 몇 차례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일본 지도층의 역사관으로 인하여 한일관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되풀이하여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오히려 미국 안에 ‘역사 피로’ 현상을 불러왔다.
위안부 협상과 관련한 정책의 결정 권한은 지나치게 청와대에 집중되어있었다.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은 대통령의 강경한 자세가 대외관계 전반에 부담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과 연계해 일본을 설득하자는 대통령의 뜻에 순응하였다. 더구나 대통령이 소통이 부족한 상황에서 조율되지 않은 지시를 함으로써 협상 관계자의 운신의 폭을 제약하였다.
주무부처인 외교부는 위안부 협상에서 조연이었으며, 핵심 쟁점에 관해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였다. 또, 고위급 협의를 주도한 청와대와 외교부 사이의 적절한 역할 분담과 유기적 협력도 부족하였다.
IV. 결론
위안부 티에프는 지금까지 피해자 중심적 접근, 보편적 가치와 역사문제를 대하는 자세, 외교에서 민주적 요소, 부처 사이의 유기적 협력과 소통을 통한 균형 잡힌 외교 전략 마련이라는 차원에서 합의의 경위를 파악하고 내용을 평가하였다.
위안부 티에프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전시 여성 인권에 관해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자리 잡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위안부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일반적인 외교 현안처럼 주고받기 협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살아 있는 동안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협의에 임하였다. 그러나 협의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정부 입장을 위주로 합의를 매듭지었다. 이번의 경우처럼 피해자들이 수용하지 않는 한, 정부 사이에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하였더라도, 문제는 재연될 수밖에 없다.
위안부 문제와 같은 역사 문제는 단기적으로 외교 협상이나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가치와 인식의 확산, 미래세대 역사교육을 병행하여 추진하여야 한다.
둘째,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진전 없는 정상회담 불가’를 강조하는 등 위안부 문제를 한일관계 전반과 연계해 풀려다가 오히려 한일관계를 악화시켰다. 또 국제 환경이 바뀌면서 ‘2015년 내 협상 종결’ 방침으로 선회하며 정책 혼선을 불러 왔다. 위안부 등 역사문제가 한일관계 뿐 아니라 대외관계 전반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균형 있는 외교 전략을 마련하여야 한다.
셋째, 오늘날의 외교는 국민과 함께하여야 한다. 위안부 문제처럼 국민의 관심이 큰 사안일수록 국민과 같이 호흡하는 민주적 절차와 과정이 더욱 중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고위급 협의는 시종일관 비밀협상으로 진행되었고, 알려진 합의 내용 이외에 한국 쪽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대통령과 협상 책임자, 외교부 사이의 소통이 부족하였다.
이 결과 정책 방향이 환경 변화에 따라 수정 또는 보완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 위안부 합의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폭넓은 의견 수렴과 유기적 소통, 관련 부처 사이의 적절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교는 상대방이 있는 만큼, 애초에 세웠던 목표나 기준, 검토과정에서 제기되었던 의견을 모두 반영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 협상의 특성과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위안부 티에프는 위와 같은 네 가지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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