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진행과정》

1차 [피징용자 손해배상 청구] 제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2005가합16473(2008.4.3 원고패)

2차 [피징용자 손해배상 청구] 제2심 서울고등법원 2008나49129(2009.07.16. 항소기각)

3차 [피징용자 손해배상 청구] 제3심 대법원 2009다68620( 2012.05.24. 파기환송)

4차 [피징용자 손해배상 청구] 파기환송심 서울고등법원 2012나44947(2013.07.10. 원고 일부승)

5차 [피징용자 손해배상 청구] 파기환송 후 상고심 대법원 2013다61381( 2018.10.30. 상고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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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파기환송심] 서울고등법원 201244947 판결(2013.7.10.) 손해배상()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기업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변론종결일 2013.6.19.

판결선고일 2013.7.10.

【원고, 항소인】 원고 1 외 3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해마루 담당변호사 장완익 외 1인)

【피고, 피항소인】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주한일 외 2인)

【제1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4.3. 선고 2005가합16473 판결

【주 문】

1. 제1심 판결 중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금원에 해당하는 원고들 패소부분을 각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3. 6. 19.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원고들의 나머지 항소를 각 기각한다.

3. 소송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4. 제1항의 금원지급부분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이 유】

1. 인정사실

다음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 내지 4, 6, 22, 24, 25, 47 내지 55, 62, 71 내지 76, 78 내지 92, 97, 98, 99호증(가지번호 있는 경우 각 포함, 이하 같다), 을 제1, 2, 6, 7, 31, 32호증의 각 기재, 제1심의 원고 4에 대한 당사자 본인신문결과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가. 원고들의 동원, 강제노동 및 귀국경위

1) 원고들은 1923년부터 1929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평양, 보령, 군산 등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이고, 일본제철 주식회사(이하 ‘구 일본제철’이라 한다)는 1934. 1.경 설립되어 일본 가마이시(釜石), 야하타(八幡), 오사카(大阪) 등에서 제철소를 운영하던 회사이다.

2)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군수물자 생산에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1938. 4. 1. ‘국가총동원법’을 제정, 공포하고 1942년 ‘조선인 내지이입 알선 요강’을 제정·실시하며, 한반도 각 지역에서 소위 ‘관 알선’을 통하여 인력을 모집하고, 1944. 10.경부터는 ‘국민징용령’에 의하여 한국인에 대한 징용을 실시하였다. 한편, 기간 군수사업체에 해당하는 구 일본제철을 비롯한 일본의 철강생산자들을 총괄 지도하는 일본 정부 직속기구인 철강통제회가 1941. 4. 26. 설립되었는데, 철강통제회는 한반도에서 노무자를 적극 확충하기로 하고 일본 정부와 협력하여 노무자를 동원하였고, 구 일본제철은 사장이 철강통제회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철강통제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3) 구 일본제철은 1943년경 평양에서 오사카제철소의 공원모집 광고를 냈는데, 그 광고에는 오사카제철소에서 2년간 훈련을 받으면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훈련 종료 후 한반도의 제철소에서 기술자로 취직할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원고 1(대판: 소외인), 원고 2는 1943. 9.경 위 광고를 보고, 기술을 습득하여 우리나라에서 취직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응모한 다음, 구 일본제철의 모집담당자와 면접을 하고 합격하여 위 담당자의 인솔 하에 구 일본제철의 오사카제철소로 가서, 훈련공으로 노역에 종사하였다.

원고 1, 원고 2는 오사카제철소에서 1일 8시간의 3교대제로 일하였고, 한 달에 1, 2회 정도 외출을 허락받았으며, 한 달에 2, 3엔 정도의 용돈만 지급받았을 뿐이고, 구 일본제철은 임금 전액을 지급하면 낭비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원고 1, 원고 2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위 원고들 명의의 계좌에 임금의 대부분을 일방적으로 입금하고 그 저금통장과 도장을 기숙사의 사감에게 보관하게 하였다. 위 원고들은 화로에 석탄을 넣고 깨뜨려서 뒤섞거나 철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서 석탄찌꺼기를 제거하는 등 화상의 위험이 있고 기술습득과는 별 관계가 없는 매우 고된 노역에 종사하였는데, 제공되는 식사의 양이 매우 적었다. 또한 경찰이 자주 들러서 위 원고들에게 ‘도망치더라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말하였고 기숙사에서도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위 원고들은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하였는데, 원고 2는 도망가고 싶다고 말하였다가 발각되어 기숙사 사감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체벌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일본은 1944. 2.경부터 훈련공들을 강제로 징용하고, 이후부터 원고 1, 원고 2에게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았다. 오사카제철소의 공장은 1945. 3.경 미합중국 군대의 공습으로 파괴되었고, 이때 훈련공들 중 일부는 사망하였으며, 원고 1, 원고 2를 포함한 나머지 훈련공들은 1945. 6.경 함경도 청진에 건설 중인 제철소로 배치되어 청진으로 이동하였다. 원고 1, 원고 2는 기숙사의 사감에게 일본에서 일한 임금이 입금되어 있던 저금통장과 도장을 달라고 요구하였지만, 사감은 청진에 도착한 이후에도 위 통장 및 도장을 돌려주지 아니하였고, 위 원고들은 청진에서 하루 12시간 동안 공장건설을 위해 토목공사를 하면서도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원고 1, 원고 2는 1945. 8.경 청진공장이 소련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자 소련군을 피하여 서울로 도망하였고 비로소 일제로부터 해방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4) 원고 3은 1941년 대전시장의 추천을 받아 보국대로 동원되어 구 일본제철의 모집담당관의 인솔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구 일본제철의 가마이시제철소에서 코오크스를 용광로에 넣고 용광로에서 철이 나오면 다시 가마에 넣는 등의 노역에 종사하였다. 위 원고는 심한 먼지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었고 용광로에서 나오는 불순물에 걸려 넘어져 배에 상처를 입고 3개월간 입원하기도 하였으며 임금을 저금해준다는 말을 들었을 뿐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노역에 종사하는 동안 처음 6개월간은 외출이 금지되었고, 일본 헌병들이 보름에 한 번씩 와서 인원을 점검하며 일을 나가지 않는 사람에게 꾀를 부린다며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위 원고는 1944년이 되자 징병되어 군사훈련을 마친 후 일본 고베에 있는 부대에 배치되어 미군포로감시원으로 일하다가 해방이 되어 귀국하였다.

5) 원고 4는 1943. 1.경 군산부(지금의 군산시)의 지시를 받고 모집되어 구 일본제철의 인솔자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구 일본제철의 야하타제철소에서 각종 원료 및 생산품을 운송하는 선로의 신호소에 배치되어 선로를 전환시키는 포인트 조작과 열차의 탈선방지를 위한 포인트의 오염물 제거 등의 노역에 종사하였는데, 도주하다가 발각되어 약 7일 동안 심한 구타를 당하며 식사를 제공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위 원고는 위 노역에 종사하는 동안 임금을 전혀 지급받지 못하였고, 일체의 휴가나 개인행동을 허락받지 못하였으며, 일본이 패전한 이후 귀국하라는 구 일본제철의 지시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 일본제철의 해산 및 제2회사, 피고의 설립

1) 구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의 지시로 1947. 3. 18. 오사카공탁소에 원고 1(창씨개명은 ○○○○으로 되었으나 강제노동 당시에 사용한 △△△△으로 공탁됨)을 피공탁자로 하여 급료 50.52엔, 예저금(預貯金) 445엔 합계 495.52엔을, 같은 날 원고 2(창씨개명 □□□□)를 피공탁자로 하여 급료 57.44엔, 예저금(預貯金) 410엔 합계 467.44엔을, 1946년경 원고 3(창씨개명 ◇◇◇◇)을 피공탁자로 하여 예저금 23.80엔을, 1946년경 원고 4(창씨개명 ☆☆☆☆)를 피공탁자로 하여 급료 40엔, 퇴직수당 10.20엔 합계 50.20엔을 각 공탁하였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각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각 기각할 것인바, 제1심판결은 이와 일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제1심판결 중 위에서 지급을 명한 금원에 해당하는 원고들 패소부분을 각 취소하고 피고에게 그 지급을 명하며, 원고들의 나머지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각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윤성근(재판장) 문정일 구자헌

<심급별 판결 및 관련 글>

1. 일제징용피해자의 신일본제철 제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2005가합16473)

2. 일제징용피해자의 신일본제철 제2심 서울고등법원 판결(2008나49129)

3. 일제징용피해자의 신일본제철 제3심 대법원 판결(2009다68620)

4. 일제징용피해자의 신일본제철 파기환송심 서울고등법원 판결(2012나44947)

5. 일제징용피해자의 신일본제철 파기환송 후 상고심 대법원 판결(2013다61381)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강제징용배상 판결(2013다61381) 개요

일제강제징용 피해자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사건 심금별 재판 진행 과정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의 피고] 신일철주금(개명 일본제철)의 변천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