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항소인】 원고 1 외 3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해마루 담당변호사 장완익 외 1인)
【피고, 피항소인】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주한일 외 2인)
【제1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4.3. 선고 2005가합16473 판결
【주 문】
1. 제1심 판결 중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금원에 해당하는 원고들 패소부분을 각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3. 6. 19.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원고들의 나머지 항소를 각 기각한다.
3. 소송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4. 제1항의 금원지급부분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이 유】
1. 인정사실
다음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 내지 4, 6, 22, 24, 25, 47 내지 55, 62, 71 내지 76, 78 내지 92, 97, 98, 99호증(가지번호 있는 경우 각 포함, 이하 같다), 을 제1, 2, 6, 7, 31, 32호증의 각 기재, 제1심의 원고 4에 대한 당사자 본인신문결과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가. 원고들의 동원, 강제노동 및 귀국경위
1) 원고들은 1923년부터 1929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평양, 보령, 군산 등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이고, 일본제철 주식회사(이하 ‘구 일본제철’이라 한다)는 1934. 1.경 설립되어 일본 가마이시(釜石), 야하타(八幡), 오사카(大阪) 등에서 제철소를 운영하던 회사이다.
2)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군수물자 생산에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1938. 4. 1. ‘국가총동원법’을 제정, 공포하고 1942년 ‘조선인 내지이입 알선 요강’을 제정·실시하며, 한반도 각 지역에서 소위 ‘관 알선’을 통하여 인력을 모집하고, 1944. 10.경부터는 ‘국민징용령’에 의하여 한국인에 대한 징용을 실시하였다. 한편, 기간 군수사업체에 해당하는 구 일본제철을 비롯한 일본의 철강생산자들을 총괄 지도하는 일본 정부 직속기구인 철강통제회가 1941. 4. 26. 설립되었는데, 철강통제회는 한반도에서 노무자를 적극 확충하기로 하고 일본 정부와 협력하여 노무자를 동원하였고, 구 일본제철은 사장이 철강통제회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철강통제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3) 구 일본제철은 1943년경 평양에서 오사카제철소의 공원모집 광고를 냈는데, 그 광고에는 오사카제철소에서 2년간 훈련을 받으면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훈련 종료 후 한반도의 제철소에서 기술자로 취직할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원고 1(대판: 소외인), 원고 2는 1943. 9.경 위 광고를 보고, 기술을 습득하여 우리나라에서 취직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응모한 다음, 구 일본제철의 모집담당자와 면접을 하고 합격하여 위 담당자의 인솔 하에 구 일본제철의 오사카제철소로 가서, 훈련공으로 노역에 종사하였다.
원고 1, 원고 2는 오사카제철소에서 1일 8시간의 3교대제로 일하였고, 한 달에 1, 2회 정도 외출을 허락받았으며, 한 달에 2, 3엔 정도의 용돈만 지급받았을 뿐이고, 구 일본제철은 임금 전액을 지급하면 낭비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원고 1, 원고 2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위 원고들 명의의 계좌에 임금의 대부분을 일방적으로 입금하고 그 저금통장과 도장을 기숙사의 사감에게 보관하게 하였다. 위 원고들은 화로에 석탄을 넣고 깨뜨려서 뒤섞거나 철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서 석탄찌꺼기를 제거하는 등 화상의 위험이 있고 기술습득과는 별 관계가 없는 매우 고된 노역에 종사하였는데, 제공되는 식사의 양이 매우 적었다. 또한 경찰이 자주 들러서 위 원고들에게 ‘도망치더라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말하였고 기숙사에서도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위 원고들은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하였는데, 원고 2는 도망가고 싶다고 말하였다가 발각되어 기숙사 사감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체벌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일본은 1944. 2.경부터 훈련공들을 강제로 징용하고, 이후부터 원고 1, 원고 2에게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았다. 오사카제철소의 공장은 1945. 3.경 미합중국 군대의 공습으로 파괴되었고, 이때 훈련공들 중 일부는 사망하였으며, 원고 1, 원고 2를 포함한 나머지 훈련공들은 1945. 6.경 함경도 청진에 건설 중인 제철소로 배치되어 청진으로 이동하였다. 원고 1, 원고 2는 기숙사의 사감에게 일본에서 일한 임금이 입금되어 있던 저금통장과 도장을 달라고 요구하였지만, 사감은 청진에 도착한 이후에도 위 통장 및 도장을 돌려주지 아니하였고, 위 원고들은 청진에서 하루 12시간 동안 공장건설을 위해 토목공사를 하면서도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원고 1, 원고 2는 1945. 8.경 청진공장이 소련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자 소련군을 피하여 서울로 도망하였고 비로소 일제로부터 해방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4) 원고 3은 1941년 대전시장의 추천을 받아 보국대로 동원되어 구 일본제철의 모집담당관의 인솔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구 일본제철의 가마이시제철소에서 코오크스를 용광로에 넣고 용광로에서 철이 나오면 다시 가마에 넣는 등의 노역에 종사하였다. 위 원고는 심한 먼지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었고 용광로에서 나오는 불순물에 걸려 넘어져 배에 상처를 입고 3개월간 입원하기도 하였으며 임금을 저금해준다는 말을 들었을 뿐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노역에 종사하는 동안 처음 6개월간은 외출이 금지되었고, 일본 헌병들이 보름에 한 번씩 와서 인원을 점검하며 일을 나가지 않는 사람에게 꾀를 부린다며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위 원고는 1944년이 되자 징병되어 군사훈련을 마친 후 일본 고베에 있는 부대에 배치되어 미군포로감시원으로 일하다가 해방이 되어 귀국하였다.
5) 원고 4는 1943. 1.경 군산부(지금의 군산시)의 지시를 받고 모집되어 구 일본제철의 인솔자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구 일본제철의 야하타제철소에서 각종 원료 및 생산품을 운송하는 선로의 신호소에 배치되어 선로를 전환시키는 포인트 조작과 열차의 탈선방지를 위한 포인트의 오염물 제거 등의 노역에 종사하였는데, 도주하다가 발각되어 약 7일 동안 심한 구타를 당하며 식사를 제공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위 원고는 위 노역에 종사하는 동안 임금을 전혀 지급받지 못하였고, 일체의 휴가나 개인행동을 허락받지 못하였으며, 일본이 패전한 이후 귀국하라는 구 일본제철의 지시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 일본제철의 해산 및 제2회사, 피고의 설립
1) 구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의 지시로 1947. 3. 18. 오사카공탁소에 원고 1(창씨개명은 ○○○○으로 되었으나 강제노동 당시에 사용한 △△△△으로 공탁됨)을 피공탁자로 하여 급료 50.52엔, 예저금(預貯金) 445엔 합계 495.52엔을, 같은 날 원고 2(창씨개명 □□□□)를 피공탁자로 하여 급료 57.44엔, 예저금(預貯金) 410엔 합계 467.44엔을, 1946년경 원고 3(창씨개명 ◇◇◇◇)을 피공탁자로 하여 예저금 23.80엔을, 1946년경 원고 4(창씨개명 ☆☆☆☆)를 피공탁자로 하여 급료 40엔, 퇴직수당 10.20엔 합계 50.20엔을 각 공탁하였다.
2) 구 일본제철은 일본의 회사경리응급조치법(1946. 8. 15. 법률 제7호), 기업재건정비법(1946. 10. 19. 법률 제40호)의 제정·시행에 따라 위 각 법에서 정한 특별경리회사, 특별경리주식회사로 지정되어 1950. 4. 1.에 해산하였고, 구 일본제철의 자산 출자로 야하타제철(八幡製鐵) 주식회사, 후지제철(富士製鐵) 주식회사, 일철기선(日鐵汽船) 주식회사, 하리마내화연와(播磨耐火煉瓦) 주식회사(이하 위 4개 회사를 ‘제2회사’라 한다)가 설립되었다.
회사경리응급조치법은 “특별경리회사에 해당될 경우 그 회사는 지정시(1946. 8. 11. 00:00을 말한다. 제1조 제1호)에 신계정과 구계정을 설정하고(제7조 제1항), 재산목록상의 동산, 부동산, 채권 기타 재산에 대하여는 「회사의 목적인 현재 행하고 있는 사업의 계속 및 전후산업의 회복진흥에 필요한 것」에 한하여 지정시에 신계정에 속하며, 그 외에는 원칙적으로 지정시에 구계정에 속하고(제7조 제2항), 지정시 이후의 원인에 근거하여 발생한 수입 및 지출을 신계정의 수입 및 지출로, 지정시 이전의 원인에 근거하여 발생한 수입 및 지출은 구계정의 수입 및 지출로 경리처리하며(제11조 제1, 2항), 구채권에 대해서는 변제 등 소멸행위를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변제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구계정으로 변제하여야 하고, 신계정으로 변제하는 경우는 특별관리인의 승인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일정한 금액의 한도에서만 가능(제14조)”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구 일본제철은 회사경리응급조치법, 기업재건정비법에 따라 1946. 8. 11. 오전 0시를 기준으로 하여 신계정과 구계정으로 구분 경리하여 이후의 기업활동은 오직 신계정에서 행하고 사업의 계속 및 전후산업의 회복진흥에 필요한 기존 재산을 신계정에 속하도록 한 뒤, 신계정에 속하는 재산을 제2회사에 현물출자하거나 자산과 영업을 양도하여 1950. 4. 1. 제2회사를 설립하였고, 그 외 그때까지 발생한 채무를 위주로 한 구계정상의 채무를 구 일본제철의 해산 및 청산절차에 맡겼다. 그 결과, 구 일본제철이 보유하고 있던 야하타, 와니시, 가마이시, 후지, 히로하타의 각 제철소 자산 중 야하타 제철소의 자산과 영업, 이사 및 종업원은 제2회사인 야하타제철 주식회사가, 나머지 4개 제철소의 자산과 영업, 이사 및 종업원은 다른 제2회사인 후지제철 주식회사가 각각 승계하였다.
3) 구 일본제철은 해산과 동시에 청산절차를 진행하였고, 1963. 11. 28. 개최된 주주총회 이래 재외재산에 관한 청산업무만을 남겨 두었다고 보아 그 업무를 특수관재인에게 위임하였으며, 특수관재인은 현재 청산업무를 정지한 상태이다.
한편 야하타제철 주식회사는 1970. 3. 31. 상호를 ‘일본제철 주식회사’로 변경하고 1970. 5. 29. 후지제철 주식회사를 합병하였으며, 2012. 8.경 스미토모 금속공업(住友金屬工業) 주식회사를 합병한 후 2012. 10. 1. 상호를 ‘신일철주금 주식회사’(피고이다)로 변경하였다.
다.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조약과 부속협정의 체결
1)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1951년말경부터 국교정상화 및 전후 보상문제를 논의하였고 마침내 1965. 6. 22.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그 부속협정의 하나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청구권협정’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는데, 청구권협정은 제1조에서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10년간에 걸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기로 한다고 정함과 아울러 제2조에서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3. 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 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또한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은 위 제2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a) “재산, 권리 및 이익”이라 함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
(e) 동조 3.에 의하여 취하여질 조치는 동조 1.에서 말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취하여질 각국의 국내조치를 말하는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g) 동조 1.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측으로부터 제출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소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위 합의의사록에 적시된 대일청구 8개 요강에는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 한국인의 일본정부 또는 일본인에 대한 개별적 권리행사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2) 청구권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일본은 1965. 12. 17.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일본국과 대한민국간의 협정 제2조의 실시에 따른 대한민국 등의 재산권에 대한 조치에 관한 법률’(법률 제144호, 이하 ‘재산권조치법’이라 한다)을 제정·시행하였는데, 그 내용은 “대한민국 또는 그 국민의 일본국 또는 그 국민에 대한 채권 또는 담보권으로 협정 제2조의 재산, 이익에 해당하는 것을 1965. 6. 22.에 소멸한 것으로 한다.“는 것이다.
라. 원고 1, 원고 2의 일본에서의 소송
원고 1, 원고 2는 1997. 12. 24.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피고와 일본국을 상대로 국제법 위반 및 불법행위 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금과 강제노동기간 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 등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2001. 3. 27. 원고청구기각 판결을 선고받고, 오사카고등재판소에 항소하였으나 2002. 11. 19. 항소기각판결을 선고받았으며, 2003. 10. 9. 최고재판소의 상고기각 및 상고불수리 결정으로 위 판결들이 확정되었다(이하 이와 같은 일본에서의 소송을 ‘이 사건 일본소송’이라 하고, 그 판결들을 ‘이 사건 일본판결’이라 한다). 한편 원고들은 원고 1, 원고 2의 이 사건 일본소송이 종료한 이후인 2005. 2. 28. 대한민국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피고를 상대로 국제법 위반 및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금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원고 1, 원고 2가 이 사건 소송에서 주장하는 청구원인은 모두 이 사건 일본소송에서 주장한 청구원인에 포함되어 있다.
마. 민관공동위원회의 개최
대한민국 정부는 원고들이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기 직전 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일부 문서를 공개한 후, 이 사건 소송이 제기된 후인 2005. 8. 26.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이하 ‘민관공동위원회’라 한다)를 개최하고,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으며, 사할린동포 문제와 원폭피해자 문제도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공식의견을 표명하였다.
2. 본안전항변에 관한 판단
가. 청구권협정에 따라 권리보호자격이 소멸하였다는 주장
피고는 원고들이 주장하는 피고에 대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정한 재산, 권리, 이익 또는 청구권에 포함되어 모두 소멸하여 원고들이 권리보호자격을 상실하였으므로,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피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말하는 재산, 권리, 이익 또는 청구권에 피징용 한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어 있어 그 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가정하더라도 위 청구권협정의 규정이 그 손해의 배상을 구하는 제소 자체를 금지하여 권리보호의 자격까지 박탈하는 것이라고는 보이지 아니하고 이는 본안에서 청구의 당부에 관하여 판단할 사항이라고 보이므로,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나. 원고 1, 원고 2에 대하여 기판력에 저촉된다는 주장
피고는 다시 원고 1, 원고 2가 이미 동일한 내용의 이 사건 일본소송에서 패소한 이 사건 일본판결을 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었으므로 이 사건 소 중 위 원고들의 청구는 기판력에 저촉되어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일본판결에 기판력을 인정할 수 있어서 이 사건 소송이 이 사건 일본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러한 경우 법원으로서는 이 사건 일본판결과 모순되는 판단을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구속력에 따라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본안판결을 하여야 하는 것이고 원고들의 청구를 부적법하다고 하여 각하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 부분 주장 역시 이유 없다.
3. 본안에 관한 판단
가. 당사자들의 주장 요지
1) 원고들
일제강점 아래에서 피고의 전신인 구 일본제철의 모집담당관이 원고들에게 기술습득, 귀국 후 안정적인 일자리 보장, 충분한 식사와 임금 제공 등을 보장한다면서 원고들을 회유하거나 행정기관을 통하여 모집한 후 일본으로 동원하였으나, 실제로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의 여러 공장에서 원고들의 의사에 반하여 자유를 박탈당한 상황에서 강제노동에 혹사당하고 임금마저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였으므로, 구 일본제철과 사실상 동일한 법인으로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승계한 피고가 원고들에게 각 100,000,000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2) 피고
원고 1, 원고 2는 이미 동일한 청구를 한 이 사건 일본소송에서 패소확정판결을 받았으므로 이 사건 소 중 위 원고들의 청구는 기판력에 저촉되어 기각되어야 하고, 피고는 구 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다르고 구 일본제철의 원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승계하지도 않았으며, 원고들이 주장하는 손해배상채권은 청구권협정 및 그 후속조치로 인하여 소멸하였고,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위 손해배상채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거나 제척기간이 도과하였으므로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다.
나. 구 일본제철의 불법행위책임의 성립
1) 이 사건에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성립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준거법은 법정지인 대한민국에 있어서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적용될 준거법의 결정에 관한 규범(이하 ‘저촉규범’이라 한다)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앞서 본 사실에 따르면 피고의 행위 및 그 결과발생이라는 불법행위는 구 섭외사법(1962. 1. 15. 법률 제996호로 제정된 것, 이하 같다)이 시행된 1962. 1. 15. 이전에 발생하였다. 이와 같이 1962. 1. 15. 이전에 발생한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은 1912. 3. 28.부터 일왕(日王)의 칙령 제21호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의용(依用)되어 오다가 군정 법령 제21호를 거쳐 대한민국 제헌헌법 부칙 제100조에 의하여 “현행법령”으로서 대한민국 법질서에 편입된 일본의 ‘법례(法例)’(1898. 6. 21. 법률 제10호)이다. 위 ‘법례’에 의하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과 효력은 불법행위 발생지의 법률에 의하는데(제11조), 이 사건 불법행위지는 대한민국과 일본에 걸쳐 있으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 판단할 준거법은 대한민국법 또는 일본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미 공동원고들인 원고 1, 원고 2가 일본법이 적용된 이 사건 일본소송에서 패소한 점에 비추어 불법행위의 피해자들인 원고들은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한 준거법으로 대한민국법을 선택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추인되는 점이나 이와 같이 준거법이 될 수 있는 여러 국가의 법이 있을 경우 법정지의 법원은 당해 사안과의 관련성의 정도, 피해자의 권리보호의 필요성과 가해자의 준거법에 대한 예측가능성 및 방어권보장 등 당사자 사이의 공평, 형평과 정의, 재판의 적정성 등을 함께 고려하여 준거법을 선택·결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인데 위와 같은 요소를 모두 고려할 때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함이 옳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하여 판단하기로 한다. 나아가 제정 민법이 시행된 1960. 1. 1.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의 판단에 적용될 대한민국법은 제정 민법 부칙 제2조 본문에 따라 ‘구 민법(의용 민법)’이 아닌 ‘현행 민법’이다.
2) 위 인정사실을 준거법인 현행 민법에 비추어 보면,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의 제철소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였고, 핵심적인 기간 군수사업체의 지위에 있던 구 일본제철은 철강통제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일본 정부의 위와 같은 인력동원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인력을 확충하였는데, 원고들은 당시 한반도와 한국민들이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 아래에서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환경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와 구 일본제철의 위와 같은 조직적인 기망에 의하여 동원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더욱이 원고들은 성년에 이르지 못한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였고, 구체적인 임금액도 모른 채 강제로 저금을 당하였으며, 일본 정부의 혹독한 전시 총동원체제 하에서 외출을 제한당하고 상시 감시를 당하여 탈출이 불가능하였으며 탈출시도가 발각된 경우 혹독한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구 일본제철의 원고들에 대한 행위는 당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
따라서 구 일본제철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들의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
다. 원고 1, 원고 2에 관한 이 사건 일본판결의 기판력 인정 여부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불법행위책임을 그대로 부담하는지에 관하여 살펴보기에 앞서 원고 1, 원고 2에 관한 이 사건 일본판결이 기판력을 가지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법정지의 절차법인 우리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3호는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아니하여야 한다는 점을 외국판결 승인요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외국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 즉 외국판결을 승인한 결과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지 여부는 그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에서 외국판결의 승인이 우리나라의 국내법 질서가 보호하려는 기본적인 도덕적 신념과 사회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외국판결이 다룬 사안과 우리나라와의 관련성의 정도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하고, 이때 그 외국판결의 주문뿐 아니라 이유 및 외국판결을 승인할 경우 발생할 결과까지 종합하여 검토하여야 한다.
을 제2, 6, 7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앞서 본 이 사건 일본판결은 원고 1, 원고 2가 주장하는 청구권 발생 당시 위 원고들을 일본인으로 보고, 위 원고들이 거주하던 한반도를 일본 영토의 구성부분으로 봄으로써 위 원고들의 청구에 적용될 준거법을 외국적 요소를 고려한 국제사법적 관점에서 결정하지 않고 처음부터 일본법을 적용한 사실, 나아가 일본의 한국병합 경위에 관하여 “조선은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국의 통치하에 있었다.”고 전제하고, 위 원고들에 대한 징용경위에 대하여 “당시 일본국 정부, 조선총독부 등이 전시 하의 노무동원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내세우고 있었던 것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위 원고들은 모두 노동자 모집 당시의 설명에 응하여 그 의사에 의하여 응모함으로써 오사카제철소에서 노동하기에 이른 것이고, 이들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연행한 것은 아니”라고 보아, “위 원고들이 응모한 1943. 9.경에는 이미 ‘조선인 내지이주 알선요강’에 따라 사업주의 보도원(補導員)이 지방행정기관, 경찰, 그리고 조선노무협회 등이 연계된 협력을 받아 단기간에 목적한 인원수를 확보하고, 확보된 조선인 노무자는 사업주의 보도원에 의해 인솔되어 일본의 사업소로 연행되는 ‘관 알선 방식’으로 징용이 실시되었는데, 이것은 일본국 정부가 후생성과 조선총독부의 통제 하에 조선인 노동력을 중요기업에 도입하여 생산기구에 편입하려는 계획 하에 진행된 것으로서 실질적인 강제연행이나 강제징용이었다.”는 위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사실, 또한 이 사건 일본판결은 구 일본제철이 사전 설명과 달리 위 원고들을 오사카제철소에서 자유가 제약된 상태로 위법하게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한 점, 실질적인 고용주로서 위 원고들에 대하여 일부 임금을 지급하지 아니하고, 안전배려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한 점 등 위 원고들의 청구원인에 관한 일부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구 일본제철의 위 원고들에 대한 채무는 구 일본제철과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고 있는 피고에게 승계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청구권협정과 일본의 재산권조치법에 의해 소멸하였다는 이유로 결국 위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청구를 기각한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이 사건 일본판결의 이유에는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하여,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반도와 위 원고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그 전문(前文)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상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하고, 부칙 제100조에서는 “현행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고 하며, 부칙 제101조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현행헌법도 그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 헌법의 각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强占)에 지나지 않고, 일본의 불법적인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 일본판결 이유는 침략전쟁의 수행을 위한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더구나 당시 일본 정부가 ‘국가총동원법’ 등의 비상수단까지 동원하여 수행하였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국제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침략전쟁이었다는 점에 대하여는 국제사회가 인식을 함께 하고 있고, 이런 침략전쟁 및 이를 수행하는 행위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은 세계 문명국가들의 공통적인 가치이며 뒤 라.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본국 헌법 역시 그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에 반하는 판결 이유가 담긴 이 사건 일본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위 민사소송법에서 말하는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가 국제성까지 고려한 개념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헌법 등 국내법 질서가 근거하고 있고 지키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도덕적 신념과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것임이 분명하다(민사소송법의 위 조항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의 의미는 외국 중재판정을 승인하거나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삼을 때 고려하는 대한민국의 ‘공서’와 동일한 것인데, 위의 각 경우에 관한 기존 대법원 판례인 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6다20290 판결, 대법원 2006. 5. 26. 선고 2005므884 판결 등도 ‘공서’의 의미를 이와 동일한 취지로 보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이 사건 일본판결을 승인하여 그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으므로, 이 사건 일본판결이 대한민국에서 승인될 수 있음을 전제로 원고 1, 원고 2의 청구가 이 사건 일본판결의 기판력에 반하여 인정될 수 없다는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라.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부담하는지 여부
1) 피고와 구 일본제철을 법적으로 동일한 법인으로 볼 수 있어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그대로 부담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구 일본제철의 해산 및 분할에 따른 법인격의 소멸 여부, 제2회사 및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승계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준거법 역시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데, 그 법률관계가 발생한 시점은 구 섭외사법이 시행된 1962. 1. 15. 이전부터 그 이후까지 걸쳐 있다. 그 중 1962. 1. 15. 이전에 발생한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은 앞서 본 ‘법례’이다. 위 ‘법례’는 구 일본제철과 제2회사 및 피고의 법적 동일성 여부를 판단할 법인의 속인법에 대하여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았지만, 법인의 설립준거지법이나 본거지법에 의하여 이를 판단한다고 해석되고 있었고, 구 일본제철과 제2회사 및 피고의 설립준거지와 본거지는 모두 일본이므로, 구 일본제철의 해산 및 분할에 따른 법인격의 소멸 여부, 채무 승계 여부를 판단할 준거법은 일단 일본법이 될 것이고 여기에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편, 위 ‘법례’ 제30조는 “외국법에 의한 경우에 그 규정이 공공의 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때에는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으므로,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에 따라 준거법으로 지정된 일본법을 적용한 결과가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위반되면 일본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법정지인 대한민국의 법률을 적용하여야 한다. 또한, 1962. 1. 15. 이후에 발생한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구 섭외사법에 있어서도 이러한 법리는 마찬가지이다.
2) 이 사건에서 외국법인 일본법을 문언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채권을 피고에 대하여 주장하지 못하게 된다.
구 일본제철이 피고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영업재산, 임원, 종업원을 실질적으로 승계하여 회사의 인적, 물적 구성에는 기본적인 변화가 없었던 사실은 위에서 본 바이다. 또한 갑 제89, 90호증, 을 제31 내지 36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면,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은 일본 정부가 불법적인 침략전쟁을 수행하면서 일본 기업으로부터 공급받은 전쟁물자 등에 대한 전시보상금의 지급을 정지하면서 그로 인한 일본 기업의 경영상의 손실을 주주와 채권자의 손실로 처리하여 전후 일본경제의 갱생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인 사실, 위 각 법률은 지정시 이전에 생긴 채무는 원칙적으로 구계정에 속하도록 하면서 종업원의 급여채권 등의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 한 변제를 금지하고, 변제하더라도 구계정에서 변제하며, 특별관리인의 승인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일정 금액 한도 내에서만 신계정에서의 변제가 가능하게 제한을 가한 사실, 특별경리회사가 부담하는 특별손실을 그 범위에 따라 주주와 채권자가 분담하도록 하고 생산활동에 필요한 실질적 가치가 있는 재산은 신계정에 속하도록 해서 이를 출자받은 제2회사를 설립하고 제2회사가 기존 채무의 부담 없이 생산 및 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서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이해관계인의 이의신청에 대하여 주무대신이 결정하는 등 정비계획에 대하여는 주무대신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한편으로 위와 같은 갱생절차를 거치면서 비록 이의제기가 없더라도 구 일본제철이 알고 있는 채권자에 대한 절차관여권 보장을 위한 통지나 이들을 위한 일부 재산의 유보 등의 권리보호를 위한 절차적 또는 실체적인 장치를 거의 두지 아니한 사실, 구 일본제철 역시 구 계정에 대한 청산절차를 진행하면서 알고 있는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아니한 채 다만 신고하지 아니한 채권은 제척된다는 취지로 공고만 한 사실 역시 인정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위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은, 패전이라는 비상상황에서 일본경제의 회생이라는 목적으로 제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채무자인 구 일본제철이 이미 알고 있고 더구나 그 채무의 발생원인이 반인도적이고 고의적으로 자행된 불법행위에 기한 것에 이르기까지 채권자에 대한 거의 아무런 보호절차를 두지 아니하여 당시 국교가 단절된 상태이어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대한민국 기타 피침략국의 국민 등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과 관련한 피해자들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권리행사를 봉쇄하는 효과를 가지게 되는바 위 각 법 제정의 배후에 이러한 의도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앞서 본 구 일본제철이 일본 정부의 지시에 따라 구계정에서 출연하여 공탁한 원고들에 대한 임금, 예저금의 규모가 원고들의 노역기간의 장단에 비례하지 않는 등에 비추어 정당하게 산출된 것으로 보이지 아니하는데, 이 역시 위 공탁이 피해자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의 채무를 면하고자 하는 의도 아래 이루어졌다고 의심하게 하는 하나의 징표이다). 한편으로 일반적인 기업도산절차에서 구 채무를 부담하지 아니하는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거나 영업을 양수한 새로운 법인이 종전의 사업을 계속하도록 하는 방법이 세계적으로 널리 취하여지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권에 대한 추급효를 박탈하는 위 각 법에 의한 갱생절차를 문명국가에서 시행되는 도산법제 아래에서의 채무의 정리와 단순 비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세계 각국이 취하는 도산절차는 채권자의 동의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고(예를 들어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237조, 제242조 등) 알고 있는 채권자에 대하여는 개별적인 통지를 하는 등으로 절차관여권을 두텁게 보호하고 있다. 또한 갑 제106, 111호증, 을 제13, 14, 15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면, 패전 후 독일은 ‘소멸 중인 I. G. Farbenindustrie 주식회사의 채권자에 대한 최고 관련 법’을 제정하면서 기한 내 채권자들이 등록하지 아니한 청구권은 소멸하는 것으로 정하면서도 위 회사가 알고 있는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고 정하였고, 비록 독일연방대법원과 연방헌법재판소가 위 회사에 대한 강제징용 노동자의 손해배상청구를 불허한 바 있으나, 독일은 패전 이후 소위 나치 치하의 비인도적 범죄 피해자들에 대하여 자발적인 보상을 실시하였고, 과거 강제노동자 개인들에 대한 보상이 처음부터 계획되지 있지 않았던 이유로 미국에 소재지를 둔 독일 기업에 대한 강제노동자들의 집단소송이 줄이어 제기되자 미국 등 세계 각지의 나치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다수의 대리인과 함께 장기간의 논의 끝에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을 설립하는 법을 마련하여 위 재단을 통해서 피해자 개인들이 보상금을 지급받도록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거기에다가 헌법을 정합성을 갖춘 규범 체계로 구성, 해석하고 이런 틀 위에서 법률을 포함한 각종 규범을 헌법합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법원의 의무이고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함에 있어서도 그 외국의 헌법 내용까지 고려하여 외국법을 해석하여야 할 것인데, 일본국 헌법의 경우에도 제9조에서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으로 인한 전쟁, 무기에 의한 위협과 무력의 행사를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원히 포기한다.”고 규정하는 등 과거 일본 정부가 일으켰던 침략전쟁의 참화에 대한 반성에 기초하여 영구적인 평화를 염원하며 국제사회에서 명예로운 위치에 설 것을 헌법적인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의 필요에 부응하여 이루어진 기망적인 모집이나 징용을 통해 인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군수업체에게까지 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사실상 면탈하게 하는 내용의 법률 기타 규범의 효력을 그 문언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준거법으로 고려되는 일본법 중 최상위의 효력을 가진 일본국 헌법의 가치에 부합하는 해석이라고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 각 법 등 당시의 일본법이 정한 기존 채무의 정리에 관한 절차는 문명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방법에 의한 갱생절차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위 각 법은 결국 전후처리 및 배상채무 해결을 위한 일본 국내의 특별한 목적 아래 부당한 채무면탈이 예견됨에도 이를 용인하는 방식으로 제정된 기술적 입법에 불과하여 이러한 일본 국내법을 이유로 구 일본제철의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무가 면탈되는 결과를 수긍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법률이 외국법을 적용할 때 고려하도록 정하고 있는 국제적 강행법규 내지 공서에 반한다.
일본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당시의 대한민국 법률을 적용하여 보면, 구 일본제철이 제1항에서 본 바와 같이 책임재산이 되는 자산과 영업, 인력을 제2회사에 이전하여 동일한 사업을 계속한 점 등에 비추어 구 일본제철과 피고는 그 실질에 있어서 동일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여 법적으로는 동일한 회사로 평가하기에 충분하고, 일본국의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구 일본제철이 해산되고 제2회사가 설립된 뒤 흡수합병의 과정을 거쳐 피고로 변경되는 등의 절차를 거쳤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청구권을 피고에 대하여도 행사할 수 있다.
3) 피고는 원고들이 구 일본제철의 청산절차에서 채권을 신고하지 않아 제척되었으므로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채권을 주장할 수 없어 결국 피고에 대한 채권도 소멸하였다고 주장하나, 위 각 법 등 일본법이 이 사건의 준거법이 될 수 없고 피고가 구 일본제철과 동일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아서 구 일본제철의 청산절차가 적법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와 다른 전제의 위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마.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하였는지 여부
1)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서, 청구권협정 제1조에 의해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은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 대가관계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 점,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청구권협정의 일방 당사자인 일본 정부가 스스로 불법행위의 존재 및 그에 대한 배상책임의 존재를 스스로 부인한 이상 그 후 위 협정을 해석하면서 배상책임이 모두 이행되었다거나 그 청구권이 포기되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하여는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아니하였음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아니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나아가 국가가 조약을 체결하여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함에 그치지 않고 국가와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직접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근대법의 원리와 조화되기 어렵고, 국가가 조약을 통하여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이 국제법상 허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와 국민 개인이 별개의 법적 주체임을 고려하면 조약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한 조약 체결로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 이외에 국민의 개인청구권까지 소멸하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인데, 청구권협정에는 개인청구권의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한 근거가 없다. 여기에 일본이 청구권협정 직후 일본국 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권리를 소멸시키는 내용의 재산권조치법을 제정·시행한 조치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음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점 등을 함께 고려해 보면, 설령 원고들의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는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됨으로써 일본의 국내 조치로 해당 청구권이 일본국 내에서 소멸하여도 대한민국이 이를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하게 될 뿐이다.
따라서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원고들은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피고에 대하여 위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2) 피고는 위와 같이 청구권협정을 해석하는 것이 대법원 2012. 5. 10.자 2012다12863 심리불속행 판결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위 판결의 사안은 청구권협정 체결과 관련한 대한민국 공무원의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관한 것으로 이 사건과 사안을 달리하는 것이고, 심리불속행 판결은 상고이유의 주장이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이 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이거나 또는 그러한 주장이 있더라도 원심판결과 관계가 없거나 원심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할 때에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위 판결이 청구권협정에 관하여 피고의 주장과 같은 해석을 하고 있는 판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바. 소멸시효 또는 제척기간 주장에 관한 판단
1) 원고들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권의 소멸 여부에 관한 준거법 역시 앞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대한민국법이 되는데, 현행 민법에 의하면 불법행위에 관하여는 소멸시효만이 규정되어 있어 일본법이 준거법이라는 전제 아래서 제척기간이 도과되었다는 피고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2) 다음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주장에 관하여 본다.
소멸시효는 객관적으로 권리가 발생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동안은 진행하지 않지만 여기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라 함은 그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 예컨대 기간의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상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사유는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다1381 판결 등 참조).
한편,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 판결 등 참조).
위에서 채택한 증거 및 갑 제11호증, 을 제17, 47 내지 53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면, 구 일본제철의 위와 같은 불법행위가 있은 후 1965. 6. 22. 한일 간의 국교가 수립될 때까지는 일본국과 대한민국 사이의 국교가 단절되어 있었고, 따라서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판결을 받더라도 이를 집행할 수 없었던 사실, 1965년 한일 간에 국교가 정상화되었으나,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모두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구권협정 제2조 및 그 합의의사록의 규정과 관련하여 청구권협정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한 개인청구권이 포괄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견해가 대한민국 내에서 널리 받아들여져 온 사실, 일본에서는 청구권협정의 후속조치로 재산권조치법을 제정하여 원고들의 청구권을 일본 국내적으로 소멸시키는 조치를 취하였고 원고 1, 원고 2가 제기한 이 사건 일본소송에서 청구권협정과 재산권조치법이 이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부가적인 근거로 명시되기도 한 사실, 그런데 원고들의 개인청구권,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원고 1, 원고 2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1990년대 후반 이후에야 서서히 부각되었고 마침내 2005. 1. 한국에서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된 뒤, 2005. 8. 26.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민관공동위원회의 공식적 견해가 표명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
여기에 앞서 본 바와 같이 구 일본제철과 피고의 동일성 여부에 대하여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일본에서의 법적 조치가 있었던 점을 더하여 보면, 적어도 원고들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할 시점인 2005. 2.까지는 원고들이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원고들과 유사한 지위에 있던 일부 대한민국 국민이 미쯔비시중공업 주식회사를 상대로 2000. 5. 1. 대한민국 내에서 소송을 제기한 사정만으로는 원고들에 대한 위 장애사유가 그 무렵 해소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구 일본제철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법적 지위에 있는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원고들에 대한 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사.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판단
피고는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을 위하여 침략전쟁을 수행하고자 하는 일본 정부에 적극 협력하여 면밀한 계획 하에 원고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가혹행위를 하면서 강제노동을 강요하였다. 이로 인하여 원고들은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가족으로부터 보호를 받거나 가족을 부양할 기회를 빼앗기고, 교육의 기회나 직업선택의 자유도 박탈당한 채 오로지 일본국이 패전할 때까지 피고가 강제하는 일정과 규범에 따라 노동에 종사해야 하였다. 이와 같은 침해행위의 불법성의 정도와 기간 및 그 고의성, 피고가 이러한 불법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및 그 관여 정도, 그로 인한 원고들의 피해의 정도, 그럼에도 불법행위 이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책임을 부정한 피고의 태도 등의 당심 변론종결 당시까지 발생한 일체의 사정과 함께 이 사건 불법행위 시와 당심 변론종결 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함에 따른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치의 변경 등을 고려하고, 이와 같이 불법행위 시와 변론종결 시 사이의 통화가치 변경 등을 고려한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예외적으로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사실심 변론종결 당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 함에 따라 불법행위 시로부터 변론종결 시까지 장기간 동안 배상이 지연됨에도 그 기간에 대한 지연손해금이 전혀 가산되지 않게 된다는 사정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대법원 2011. 7. 21. 선고 2011재다19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피고가 지급할 위자료의 액수는 적어도 100,000,000원 이상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아. 소결론
그러므로, 피고는 원고들에게 원고들이 구하는 바에 따라 각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당심 변론종결일인 2013. 6. 19.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각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각 기각할 것인바, 제1심판결은 이와 일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제1심판결 중 위에서 지급을 명한 금원에 해당하는 원고들 패소부분을 각 취소하고 피고에게 그 지급을 명하며, 원고들의 나머지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각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