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9 조갑제닷컴 禹鍾昌 전 월간조선 편집위원
청구된 朴대통령 구속영장을 밑줄 치며 읽었다! ‘증거’는 모자라고 ‘기사’는 넘친다. 誤報도 증거로 제출. 검찰의 논리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질 것이라는 사실을 1년 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는 셈이다. 대한변협은 없고 민변 의견서만 증거로 제출.
검찰이 朴槿惠 전 대통령을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에 범죄사실을 소명하는 구체적인 증거 대신에, 그러한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황 증거들이 잔뜩 나열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황 증거의 대부분이 특검이 법원에 제출하였던, 사실 확인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왜곡되고 조작된 의혹 수준의 언론 기사임이 밝혀졌다. 이는 법원에 제출된 특검의 「증거목록」(증거서류의 제목을 정리한 목록)과 구속영장을 대조해본 결과이다.
이 「증거목록」은 특검(박영수 변호사)이 조사한 내용 가운데 증거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검찰이 선별한 것들을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유·무죄 판단의 중요 근거가 된다. 「증거목록」은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서원 씨를 뇌물죄로 기소하면서(재판에 회부하면서) 공개되었다.
A4 용지로 3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증거목록」에 증거서류라고 기재된 것은 대부분 언론에 보도된 기사였고, 그것도 오보임이 밝혀진 내용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증거목록」 236쪽에 ‘최서원의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설립 및 운영 관련’증거라며 특검이 제시한 것은, ‘K스포츠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시지 센터장(2016년 9월 20일자 한겨레신문)’이다. 특검은 증거서류의 신뢰성 차원에서 기사 제목과 그 기사를 보도한 언론사 이름, 보도 일자를 적어 놓았다.
케이스포츠 재단의 2대 이사장 정동춘 씨를 「마사지숍 주인」으로 표현한 한겨레신문 기사는 명백한 오보(誤報)다. 정동춘 씨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가 운영한 운동기능회복센터는 마사지 숍이 아님이 월간조선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의해 밝혀졌다. 그럼에도 특검은 오보를 증거라고 증거목록에 버젓이 기재해 놓았다.
특검의 「증거목록」에 방대한 양의 언론 보도가 증거서류로 첨부되었다는 것은, 이른바 국정 농단 사건이 언론의 「기획 폭로」에 의해 시작되고 검찰의 「기획 수사」로 이어졌음을 반증하는 증거라 아니할 수 없다.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특검이 증거서류로 채택할 수는 있다. 그것은 불법이 아니다. 그러려면 그 기사가 사실에 근거하여 작성되었는지, 시중에 떠도는 유언비어를 확인하지 않고 기사화했는지를 검증해야 함에도, 그리고 이른바 국정 농단 사건이 언론 보도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보도의 진실성 여부를 밝히는 것이 특별검사의 임무일 것이다.
그러나 특검이 그러한 노력을 했다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특검의 「증거목록」은 온갖 신문 기사를 기계적으로 오려 붙여 놓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증거목록」에 기재된 수많은 언론사 이름을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사 이름만 인용하면 이렇다.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세계일보, 영남일보, 헤럴드경제, 매일경제, 아시아경제, 시사저널, 일요신문, 전자신문, 민족의학신문, 시민사회신문, 법률신문, 머니투데이, 조세일보, 한국경제매거진, 아주경제, 뉴시스, 오마이뉴스, 쿠키뉴스, 뉴스토마토, 더스쿠프, 노컷뉴스, 뉴스웨이, 닥터스뉴스, 헤드라인뉴스, 시사워크, 미디어펜, 지디넷코리아, 이뉴스 투데이, 머니S, 아시아투데이, 뉴스핌, 아이뉴스, 메트로, 팩트올 등이고, 방송은 SBS, 연합뉴스, JTBC 등이다.
작년 10월부터, 이 사건을 수사해 온 검찰과 특검은 그동안 그들의 편을 든 언론을 통해 “증거는 차고 넘친다. 차고 넘치는 증거 보따리를 법원에 풀어 놓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특검이 제출한 「증거목록」을 분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서원씨 측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증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언론 보도는 증거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에 증거채택에 동의할 수 없다”라고 반발했고, 재판부도 검찰을 향해 “증거목록에 왜 이렇게 신문기사가 많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특검 수사를 근거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직권남용귄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사는 한웅재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이다.
한웅재 부장검사 명의로 작성된 구속영장은 A4용지로 122페이지다. 통상적인 구속영장에 비해 양이 엄청나게 많다. 구속영장은 공소장 기재처럼 「범죄의 시일, 장소와 방법을 명시하여 사실을 특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제254조에 근거하여,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범죄를 모의했다」는 식으로 간결하게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281억 9735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데다, 뇌물을 주었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런 진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증거는 없다.
이렇게 되자 특검은 최서원 씨의 딸인 정유라 씨에 대해 승마 지원 문제를 담당한 삼성그룹 관계자와 대한승마협회 박원오 전무 등 제3자의 진술과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도한 각종 추측성 기사들을 정황 증거로 제시하다 보니 양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정황 증거는 직접 증거가 아니다. 때문에 법원은 정황 증거에 대해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해 왔다.
구속영장에 기재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 가운데,
①재단법인 미르, 재단법인 케이스포츠 설립․모금 관련 범행
②현대자동차 그룹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케이디코퍼레이션 관련 범행, ▲플레이그라운드 관련 범행.
③롯데그룹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 강요
④주식회사 포스코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⑤주식회사 KT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⑥GKL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등 여섯 건의 사건은 최서원씨를 기소한 검찰 공소장과 같은 내용이다. 이 사건은 범죄 성립 여부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 간에 치열한 법정 소송이 진행 중이며, 아직 1심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기자가 검찰 수사기록을 검토한 결과, 위 여섯 건의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최서원 씨를 포함해, 「고영태 일당」(고영태, 노승일, 박헌영)과 「차은택 동조자」(차은택, 이성한 미르재단 사무총장, 김성현 미르재단 사무부총장, 김홍탁 모스코스 대표) 등인데, 이들의 일방적인 주장만 있을 뿐, 범죄사실을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검찰이 내세우는 유력한 증거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이다. 이 수첩은 안종범 수석이 가로 8.5㎝, 세로 16.5㎝ 크기의 조그만 수첩에, 「GKL 이기우」라는 식으로 단어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이 나열된 단어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재판의 쟁점인데, 이 수첩이 설령 증거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대통령과 최서원씨의 공모관계를 입증할 직접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게 최서원씨 측 변호인의 주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에서 핵심은 뇌물 혐의다. 이 부분은 검찰이 아닌 특검에서 수사했다.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 혐의를 적용하면서, 특검의 수사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때문에 특검이 법원에 제출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및 최서원 씨의 공소장 내용과 검찰이 박근헤 전 대통령에게 청구한 구속영장 내용은 글자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특검이 「대통령」이라 기재한 부분을 검찰은 「피의자」로 변경했을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검찰청사로 소환해 무려 21시간 가량을 조사한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진술을 구속영장에 단 한 줄도 반영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진술이 거짓이라면, 거짓이라는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검찰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진술을 근거로 일방적으로 묵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혐의로 엮은 특검의 논리는 이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한 2013년 5월부터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이용하여 전방위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도왔다는 것이다.
그 대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삼성그룹으로부터 미르재단 및 케이스포츠 재단의 출연금으로 204억 원의 뇌물을 받았고(미르재단 출연금 486억 원과 케이스포츠 재단 출연금 288억 원은 고스란히 재단에 보관돼 있다), 이와 별도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서원 씨와 공모하여 정유라 씨에 대한 승마 지원비로 삼성그룹에서 77억 9735만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뇌물 총액은 281억 9735만 원이다.
검찰은 삼성그룹이 장시호 씨와 관련된 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 2800만 원은 제3자 뇌물수수에 해당한다고 구속영장에 기재했다.
특검의 출범 목적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을 규명하기 위해서다. 이 사건의 핵심은 미르 및 케이스포츠 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있어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공모 여부다.
검찰의 제1기 특별수사본부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발표했다. 대통령에 대해 파면을 결정한 헌법재판소도 검찰 수사와 같은 맥락에서 결정문을 작성했다.
그러나 특검의 수사 결과는 검찰 및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사뭇 다르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아니라,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도운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특검은 출범 직후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고리 찾기에 집착했다. 국회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노승일 씨(고영태의 한체대 동문으로 케이스포츠 재단 노조위원장)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서원과 삼성그룹이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국회청문회에 출석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는데, 우연인지 그의 주장대로 특검 수사는 진행되었다.
특검의 「증거목록」에는, 「고영태 일당」인 고영태와 노승일, 박헌영 씨 등이 수시로 특검에 출석해 「참고인」조사를 받은 것으로 기재돼 있다. 고영태, 노승일, 박헌영 씨를 조사한 진술조서와 이들이 제출한 각종 자료들이 증거로 첨부돼 있다. 「고영태 일당」이 특검에 출석한 사실은 특검에 우호적인 언론에 보도되지 않을 만큼 은밀하게 이뤄졌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두 개의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김수남 총장의 검찰은 특검의 논리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서 그대로 차용했다. 검찰이 최초 수사했던 결론을 버리고 특검의 논리를 따랐다는 것은 검찰 스스로 무능함을 自認한 것과 다름없는 행위다.
그러면서 검찰은 고육지책(苦肉之策: 제 몸을 상해가면서까지 꾸며내는 방책)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뇌물죄와 함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죄를 적용했다. 법원이 특검의 입증 부족을 이유로 특검 수사 내용과 다른 판단, 즉 뇌물죄가 무죄로 판명 날 경우에 대비한 조치다.
검찰이 이처럼 무리하게 사건을 꿰맞추다 보니,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죄로 이미 기소된 최서원 씨에게 뇌물죄를 추가 적용하는 「이중 기소」가 발생했다. 형사소송법 제327조(공소기각의 판결) 제3항에는 ‘공소가 제기된 사건에 대하여 다시 공소가 제기되었을 때는 공소 기각 판결을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최서원 씨에게 추가로 적용한 뇌물죄는 공소 기각으로 무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최서원 씨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 합의 22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는 형사소송법에 근거하여, 검찰에 범죄혐의에 대한 교통정리를 요구했으나 검찰은 시간을 끌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보고난 뒤, 입장을 정리하려는 의도로 추정된다.
검찰이 이처럼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혐의로 엮은 특검의 수사가 전형적인 견강부회(牽强附會: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그 근거를 살펴보자.
특검이 법원에 제출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신경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 5월경부터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서둘러 진행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친(親) 대기업 성향으로 평가되는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승계작업을 최대한 진행하기로 계획하고, 그 첫 단계로 「중간 금융지주회사 제도」(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는 것이다.
특검이 이렇게 판단한 것은 삼성그룹 관계자의 진술이 있어서가 아니라, 언론 보도를 근거로 지레 짐작한 것이다. 이러한 점을 입증하기 위해 특검은 중간 금융지주회사 도입과 관련된 언론 보도는 모두 증거서류로 첨부했다. 그 양이 A4 용지로 430여 페이지에 이른다.
예를 들면 ▲중간 금융지주회사 대안될까…숨죽인 재계(이데일리 2015년 8월 26일자) ▲이재용의 뉴삼성 탄력받나…힘 실리는 중간 금융지주사(뉴시스 2016년 11월 7일자)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 검토…지배구조 개편 공식화(연합뉴스 2016년 11월 29일자) 등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인 2013년 5월경, 중간 금융지주회사 도입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켰고, 2014년 2월에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포함시켰다. 이처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쓰러지기 1년 전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을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의 권력승계 작업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공소장에 기재했다. 특검의 논리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질 것이라는 사실을 1년 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는 셈이다.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의 두 번째 시도로 꼽은 것은 삼성SDS 및 제일모직의 유가증권 시장 상장이다. 이렇게 하면 막대한 상장 차익을 올려 이재용 부회장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인데,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상장은 불발에 그쳤다.
세 번째 시도가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추진이라는 게 특검의 시각이다. 두 회사의 합병은 주주총회에서 승인되었으나, 두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국민연금공단이 제동을 걸어 무산됐다. 이때부터 이재용 부회장은 승계 작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국민연금공단 등 정부 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네 번째 시도가 삼성테크원 등 4개의 비핵심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는 건이다. 이 시도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에 이어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매각이 완료됐다. 특검은 이것 역시 승계작업의 일환이라고 공소장에 기재했다.
특검이 다섯 번째 시도로 꼽은 것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를 통해 삼성물산이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동시에 지배하는 사실상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도록 계획하였다는 것이 특검의 논리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삼성물산의 주식을 보유한 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하면서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특검은 자신들의 논리를 입증하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는 모든 기사를 증거로 첨부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삼성물산의 주식 11.21%와 제일모직의 주식 4.84%를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이 합병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국민연금공단보다 더 많은 주식을 갖고 있던 소액주주들이 합병에 찬성하는 바람에 통과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럼에도 특검은 국민연금공단이 합병에 찬성한 것은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합병을 찬성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보건복지부의 지시를 받은 국민연금공단이 어쩔 수 없이 따랐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대통령은 그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특검이 그 다음으로 꼽은 것이 경제활성화법(일면 원샷법) 추진이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엘리엇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은 이재용 부회장은 2015년 7월 10일에 열린 전경련 경제정책위원회 회의에 박상진 사장을 보내, “엘리엇과 같은 외국자본의 공격에 대해 경영권 방어를 강화할 수 있도록 기업 간 소규모 합병 시 이사회 결의만으로 가능하게 하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의 신속한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건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건의에 대해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구속영장에 언급돼 있지 않다. 기업활력제고법은 새누리당 이현재 의원을 대표로 하여 발의된 법안인데 2016년에 통과되었다. 국회에서 치열한 논의를 거쳐 합법적으로 통과된 이 건에 대해 특검은 새누리당 총재인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전방위적으로 행사하여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해석했다.
이럴 경우, 특검은 새누리당 이현재 의원을 비롯, 법안에 찬성한 의원들을 상대로 대통령의 압력 행사 등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함에도 국회의원을 조사했다는 기록은 「증거목록」에 없다.
뇌물죄의 전제 조건은 「부정한 청탁」이다. 특검이 부정한 청탁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전경련 보도자료와 언론 보도다. 전경련이 2015년 11월 25일, 경제 5단체와 함께 발표한 성명서(조속한 경제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입법을 촉구한다)와 전경련이 같은 해 12월 21일, 경제 5단체와 함께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서(노동개혁법, 경제활성화법 입법 촉구) 등이다. 전경련의 기본적인 활동을 특검은 로비로 해석했다.
특검은 이 무렵 경향신문, 아시아경제, 뉴스핌, 이데일리 등에서 보도한 ▲원샷법 시행…삼성 사업개편 탄력 전망, ▲정부, 조선 빅2 현대 삼성중 원샷법 지원 검토 등의 기사도 증거로 첨부했다. 전경련의 보도자료와 일부 언론의 기사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한 부정한 청탁이라는 것이 특검의 주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성립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특검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제출한 의견서도 증거자료에 포함시켰다. 민변이 어떤 성향의 단체인지는 모르는 국민이 없을 것이다.
특검이 어느 한쪽에 치우쳐져 있는 민변의 의견서를 증거자료에 포함시켰다면, 대한변협의 의견서도 참고자료로 채택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 태도다. 그러나 대한변협 의견서는 「증거목록」에 없다.
툭검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꼽고 있는데, 이는 삼성이 스스로 포기한 사업이다. 특검의 논리대로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의 뒤를 받쳐주었다면 삼성이 포기할 리 없었을 것이다.
이밖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성공, 메르스 사태 발생 시 삼성서울병원이 소극적으로 대처했으나 제재 수위가 약한 점 등도 특검은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돕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판단했다.
조금이라도 삼성그룹에 유리하게 보이는 사안은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을 엮는 범죄혐의로 표현했다. 특검의 수사는 관계자의 진술이나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예단을 갖고 꿰맞추기 식으로 이뤄졌는데, 검찰은 이러한 특검의 논리를 비판 없이 구속영장에 차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서원 씨와 공모하여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비로 삼성그룹에서 77억 9735만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특검이 증거서류로 첨부한 것은 언론 기사와 삼성전자의 독일 송금내역이다.
증거에 첨부된 기사는 ▲삼성 지원 이유 묻자, 대통령이 정유라 아낀다(2016년 11월 6일자 SBS)」, ▲최서원 딸 독일 연수에 승마협회 거액 지원 중장기 로드맵 수립(2016년 10월 12일자 경향신문), ▲승마협희․삼성 주연의 승마공주 구하기(2016년 10월 13일자 노컷뉴스), ▲승마협, 삼성에 마장마술 186억원 지원 요청 문건 보내(2016년 11월 3일자 쿠키뉴스), ▲최순실·현명관 마사회장 전화 통화하는 사이(2016년 11월 7일자 조선일보) 등이다.
특검은 삼성전자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용역계약서」를 근거로 독일계 회사인 코어스포츠에 77억 9735만 원을 송금했기 때문에 뇌물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최서원 씨 변호인인 오태희 변호사는 “용역계약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서류이며, 돈을 송금받은 독일계 회사는 현지법에 의거해 독일인이 회사 대표이며, 회사에 등록된 독일인 공인 세무사가 세금 문제를 처리해 왔다”고 반박했다.
구속영장에 기재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또 다른 혐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범행 ▲공무상 비밀누설 ▲CJ그룹 관련 강요 미수 ▲KEB 하나은행 임직원 인사 개입 등이다. 앞에 언급한 혐의들과 합치면 총 11개 항목이다.
이 중 하나라도 범죄혐의가 소명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을 피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형사소송법 제70조(구속의 사유) 1항에는 구속의 전제조건으로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라고 명시돼 있다.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주체는 영장 실질심사를 담당하는 판사다. 증거가 되는지, 안 되는지의 판단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판사의 고유 권한이다. 검사나 피고인이 아무리 증거력이 있다고 우겨도 판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효다.
구속영장 발부에서 또 하나 고려하는 점은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3월 27일자 사설에서 「원래 구속은 피의자가 도망가거나 증거를 없앨 우려가 있을 때 불가피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수개월에 걸친 수사로 관련자들이 다 구속돼 증거 인멸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도주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다. 죄가 있다면 유죄판결 확정 뒤에 형을 집행하면 되는데 굳이 구속 수사를 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 포승에 묶여 재판정을 드나드는 걸 봐야 하는 국민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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