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원·이성한·고영태의 한강 둔치 밀담… 30억 5000만원 부탁 거절이 도화선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하고 감옥까지 보내게 된 「박근혜 인민재판」은 2016년 8월 19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부근의 한강 둔치에서 있었던 「4인의 밀담」이 그 시발점이었다.
문제의 4인은 ▲대통령의 40년 지기(知己)라는 최서원(61) 씨와 ▲미르재단 초대 사무총장이었던 이성한(45) 씨, 그리고 ▲최서원 씨의 측근 고영태(41), ▲류상영(41) 씨 등이다. 이날 이성한 씨와 고영태 씨는 각자 자신의 차를 몰고 현장에 나타났고, 최서원 씨는 류상영 씨가 운전하는 SUV 승용차를 타고 나왔다.
이성한, 고영태 씨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하여 최서원 씨가 타고 온 SUV 승용차로 옮겨 앉았다. 이성한 씨는 최서원 씨 왼쪽인 운전석 뒷좌석에 앉고, 고영태 씨는 최 씨 앞자리인 조수석에 올랐다. 당시 이성한 씨는 미르재단 초대 사무총장에서 해임돼 고향인 강원도 춘천에서 낭인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성한 씨는 경희사이버대학 멀티미디어학과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인 2001년, 이 씨는 춘천MBC 보도국에 계약직 일반 사원(컴퓨터그래픽 담당)으로 입사하여 2년가량 근무하면서 언론계의 생리를 익혔다.
춘천MBC에서 퇴사한 뒤에는 도시계획이나 레저 분야와 관련된 대기업의 용역 업무를 담당하는 온에어커뮤니케이션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대표이사가 되었다. 이 씨는 2013년경, 그가 운영계획을 수립해준 골프장(소노펠리체 컨트리클럽)의 고객인 차은택 감독에게 부킹 편의를 봐주면서 친하게 지냈다. 고영태 씨는 차은택 감독과 동행한 골프 멤버여서 자연스레 어울렸다.
이성한 씨는 2014년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팀에서 사업총괄을 맡게 되자 이 사업의 문화컨텐츠개발 자문위원에 차은택 감독을 추천했고, 수협(水協)은 이 씨의 추천을 받아들여 차 감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한다. 그 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된 차은택 감독에 의해 이성한 씨는 2015년 11월경, 미르재단의 조직과 회계를 담당하는 초대 사무총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성한 씨는 미르재단 기금을 유용해 자신의 회사 일을 챙기는 바람에 내부적으로 문제가 되어 2016년 6월말 사무총장에서 직위해제되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이성한 씨는 고영태 씨 주선으로 한강 둔치에서 최서원 씨를 만난 것이다.
이 씨는 최서원 씨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한미약품에서 행사 대행비로 30억 5000만원을 받을 게 있는데, 그 돈을 대신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이 씨는 미르재단 초대 사무총장에 취임하기 2년 전인 2013년 5월경, 의사와 약사 등 수백 명을 강원도의 한 리조트로 초대해 한미약품을 홍보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열었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약품을 처방하거나 팔 때, 가능하면 한미약품 제품을 구입해 달라는 일종의 리베이트성 행사였다. 행사를 주관한 이성한 씨는 수만 명의 의사 명단이 기록된 데이터베이스(DB)를 한미약품에 넘기고 행사 용역비로 30억 5000만원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미약품 측은 “한 일에 비해 요구하는 금액이 과다하다”며 거절했다. 한미약품이 이성한 씨에게 최종 거절 의사를 밝힌 게, 이날 미팅이 있기 18일 전인 8월 1일이다. 이 통보를 한 후부터 한미약품은 법적인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미르재단 사무총장에서 해임된 데다 행사 대행비 마저 받지 못하게 된 이성한 씨에게 구세주로 등장한 사람이 고영태 씨다. 춘천까지 내려가 이 씨를 만난 고영태 씨는 최서원 씨 힘을 빌려 한미약품에서 30억 5000만원을 받아내기로 하고, 성사되면 그 대가로 이 씨에게서 5억원을 받기로 했다.
이렇게 하여 최서원-이성한-고영태 간의 한강 둔치 미팅이 이뤄졌다. 이 미팅은 고영태 씨 계략에 의한 일종의 유인작전이었다. 최서원 씨는 그러나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이성한-고영태 씨는 최서원 씨를 협박하기 위한 새로운 작전을 수립하게 되는데,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인민재판의 시작이었다.
이들의 작전은 3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다. 1단계는 야당 의원, 즉 더불어민주당을 이용하여 최서원 씨를 공격하는 정치적 공세였다. 고영태 씨는 자신의 후배 윤OO을 통해 정치권과 연결되는 줄을 찾았다. 윤OO은 영화 「태양의 후예」에 조연급으로 출연한 배우다.
윤OO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을 출신의 초선 의원인 오영훈(吳怜勳․49) 의원의 비서 박OO 씨를 고영태 씨에게 소개했다. 고영태 씨는 한강 둔치 미팅을 앞두고 박OO 비서를 「세번걸이」라는 카페에서 만났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이 카페는 고영태 씨 집과 가까운 위치다.
고영태 씨는 박OO 비서에게 최서원 씨가 최태민 씨 딸이며, 청와대를 수시로 출입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 때 입을 옷을 만들어 준다는 정보를 흘렸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알려지지 않았다. 야당은 체질적으로 언론에서 크게 보도하기 전에는 나서지 않는다.
작전의 2단계로 이성한 씨가 나섰다. 언론계 생리를 알고 있는 이 씨는 고영태 씨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살을 붙인, 허위정보를 기자들에게 흘리기 시작한다. 이 씨는 9월 7일부터 9월 25일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한겨레신문 기자를 만났다. 김의겸 선임기자와 류이근, 하어영 기자가 그들이다.
한겨레신문은 2016년 9월 20일, 「단독/ ‘권력의 냄새’ 스멀…실세는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를 통해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언론에 최초 등장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최순실 씨는 최태민 씨의 다섯 번째 딸이라는 것, 최태민 씨는 새마음봉사단의 실세로 알려져 있다는 것, 최순실 씨는 1996년 정윤회 씨와 결혼해 승마 선수인 딸 정아무개(20) 씨를 낳았다는 것」등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는 내용의 정리에 불과했다. 한겨레신문 기사는 제목만 요란했지, 왜 최순실 씨가 권력의 핵심 실세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것은 이성한 씨가 갖고 온 정보가 들은 이야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작전의 3단계가 TV조선 활용이다. 고영태 씨는 TV조선 사회부장 이진동 기자와 친하다. 고 씨가 이진동 기자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10월경이고, 소개인은 김수현 씨다. 김수현 씨는 이진동 기자가 조선일보 기자를 사직하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지역구에 출마했을 때, 「이진동 캠프」에서 비서진으로 일했다.
이진동 기자가 총선에서 낙선한 후, 김수현 씨는 최서원 씨 밑에서 고영태 씨와 함께 고원기획을 운영했다. 고원기획 대표였던 김수현 씨는 「고영태 일당」의 국정 농단 음모가 고스란히 녹음돼 있는, 「김수현 녹음파일」을 만들고 보관한 주인공이다.
고영태 씨는 이성한 씨와 함께 이진동 기자를 찾아갔다. 이들은 이진동 기자에게 한강 둔치에서 있었던 최서원 씨와의 밀담 내용을 조작해서 제보했다. 이성한 씨가 최 씨에게 30억 5000만원을 받아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사실은 아예 은폐하고, 최 씨가 이 씨를 회유했다는 식으로 날조했다.
이들의 제보 내용은 TV조선 2016년 10월 18일자에 「단독보도」로 소개되었다. 기사 제목은 「TV조선 단독/ 비밀 첩보영화 장면 같았던 최순실의 행태」다. 내용 중에 익명의 A씨로 처리된 사람이 고영태 씨다.
다음은 TV조선 보도 내용이다. 전부를 인용하는 것은 그 당시 언론의 광란(狂亂)이 얼마나 악랄하게 왜곡, 조작, 날조되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맨 먼저 이하원 앵커의 멘트가 등장한다.
「앵커 : 최순실 씨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을 만나 회유하는 장면은 한편의 첩보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이재중 기자의 단독보도 이어집니다.」
이어 이재중 기자가 등장하여 리포트를 시작한다.
「최순실 씨와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이성한 씨의 만남은 마치 007작전 같았습니다. 최 씨는 차량 주차가 쉽고 CCTV를 피할 수 있는 한강 둔치로 이 씨를 나오라고 요구했습니다. 최 씨는 운전을 한 유 모 씨와 수행원 두 명을 대동했는데, 이들은 이 씨의 몸을 수색해 휴대전화도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다른 녹음장치로 대화 내용을 녹음했습니다. 이날 만남은 최 씨의 요청으로 한때 최 씨의 측근이었던 A 씨의 주선으로 이뤄졌고, 대화 중간쯤 A 씨는 자리를 비켰습니다. 최 씨는 평소 흰색 벤츠를 타고 다니지만 이날은 카니발 승용차를 이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 이 씨는 비선실세와 차은택 씨가 미르재단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가 재단 사무총장에서 해임됐습니다.」
이어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성한 씨는 이렇게 말한다.
“현 정부와 관련돼 있거나 흔히 이야기하는 비선실세라는 권력비리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은 재단 이사직에서 자진 사퇴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이재중 기자의 멘트로 기사는 끝난다.
「이 씨는 미르재단과 관련해 최 씨를 몇 차례 만난 적이 있고, 최 씨에게서 직접 사퇴종용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최 씨가 이 씨의 사퇴를 압박하다가, TV조선의 보도로 미르재단 사태가 알려지자 입장을 바꿔, 회유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TV조선 이재중입니다.」
TV조선 보도가 있은 지 5일 후인 10월 23일, 연합뉴스TV는 「단독보도」로 「두 얼굴의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H약품에 30억원 요구」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H약품이 한미약품이다. 이성한 씨가 한미약품에 30억원을 요구하다 실패로 끝나자 그 이후부터 미르재단에 대한 폭로를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는 이경태 기자가 취재했다. 이경태 기자는 최서원-이성한-고영태 씨 간에 있었던 한강 둔치 밀담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이 부분을 밝히지 않았다. 다음은 연합뉴스TV의 보도 내용이다.
「앵커 :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논란과 관련해 최순실 씨를 비선실세로 지목한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그러나 정작 이 씨의 실체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별로 없습니다. 연합뉴스TV는 그 실체에 접근해 볼 수 있는 과거와 최근 행적을 취재했습니다.
이경태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이경태 기자 :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 논란이 불거지면서 갑자기 부상한 인물이 있습니다. 최근 현 정부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에 대해 폭로전을 이어가고 있는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입니다.
그런데 이 전 사무총장이 이 같은 폭로에 나서기 전, 한 기업체와 돈 문제로 갈등을 빚은 것으로 연합뉴스TV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지난 8월초 H약품을 찾아가 회사의 민감한 업무를 수행한 대가를 요구했고 회사 측이 요구액이 과하다며 이를 거절했다는 겁니다.
이 씨는 미르재단 사무총장을 맡기 전에 광고대행사 대표로 활동했고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미르재단 측 관계자는 밝혔습니다. 이 씨는 2013년 5월, 의사와 약사 등을 강원도 한 리조트로 불러 H약품 홍보 행사를 대행해주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업무와 그에 상응한 대가를 문제 삼은 것으로 보입니다.
미르재단 측이 이 씨의 자필 메모라며 연합뉴스TV에 제공한 문건엔 H약품과의 협상 전략이 담겨있습니다. 이 씨는 의사 수만 명의 DB를 활용하고도 회사 측이 이에 대한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며 30억 5000만원을 요구하겠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H약품 관계자는 수행한 임무에 비해 요구한 금액이 과해 이를 거절한 적이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씨와 H약품 사건이 주목받는 건, 이 씨가 30억 협상에 최종적으로 실패한 시점으로 알려진 8월 10일 이후, 돌연 미르재단에 대한 폭로를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 前 사무총장이 자신이 몸담았던 재단 관련 일을 폭로하기 전, 갑자기 왜 기업을 찾아가 30억원을 요구하며 갈등을 빚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 씨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이 씨는 현재 휴대전화 번호를 바꾼 채 연락두절 상태입니다. 연합뉴스TV 이경태입니다.」
이처럼 2016년 10월 23일 무렵엔 이성한 씨 폭로 내용에 대해 TV조선은 검증 없이 보도하고, 연합뉴스TV는 사실에 접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 다음날인 10월 24일, JTBC가 테블릿PC 보도를 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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