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뱅모의 옥중카페 #1 무엇을 할 것인가 (2017.03.20)
2017.03.25 자유본
3월10일. 헌법재판관들이 탄핵인용을 택함으로써 우리는 자유로워졌다. 무엇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언론, 정치, 법률을 주물럭거리는 제도권(establishment)으로부터! 무엇으로부터? 그들에게 의존했던 희망, 기대의 마지막 한 조각으로부터!
이제 우리는 구역질, 환멸, 분노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존재가 됐다. 조금 노골적으로 표현해 볼까?
"우리는 너희를 이제 더 이상, 사회지도층으로 인정하지 않아. 우리 눈에 너희는, 구역질나는 위선자들, 기생충들일 뿐이야. 너희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 채, 우리 사회를 해체하는 '금수저 폭도'일 뿐이지..."
작게는 '박근혜'라 불리는 여성 지도자의 운명에서부터, 크게는 대한민국과 자유통일의 미래까지, 이제 모든 것이 우리 어깨에 걸려 있다. 우리 어깨에'만' 걸려 있다. 우리밖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가 바로 대한민국과 자유통일의 미래, 그 자체이다.
조중동포(조선-중앙-동아-포털)가 앞장 선 이번 탄핵 난동 및, 헌법재판관들의 8:0 인용은 우리 사회의 제도권 금수저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타락해 있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 우리는 차라리 자유로워졌다. 이제 그 무엇도 우리를 구속할 수 없다. 이제 그 무엇도 우리의 무조건적 존중과 충성을 받지는 못한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다시 평가하는 최종 평가자가 됐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 역사상 민초시민으로서는 최초로 대한민국을 떠받쳐 끌고갈 수 있는 자유통일 자유민주 공화국의 원칙과 가치를 우뚝 세우는 최초 창조자가 됐다.
이 최종 평가. 최초 창조를 위한 첫 발걸음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의 전략적 목표는 무엇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왓이즈 투 비 던?(What is to be done?)
두 개의 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통일을 지향하는 후보가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때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눈치볼 것 없다. "문재인에게 내주지 않으려면 김무성, 유승민, 안철수 등과 손잡아야 한다" 따위의 소리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그런 합종연횡은 후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우리는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파면 된다.
무슨 우물을 판다? 자유통일, 자유민주주의, 세계시장을 위한 조건, 삶을 위한 토대로 만들어가면 된다. 안철수든 김무성이든 자유통일, 자유민주주의, 세계시장의 원리를 틈만 나면 배신해 온 자들 아닌가! 우리 시민의 관점에서는 '손을 잡을까 말까' 고민할 가치가 없다. 후보가 순수히 '정치공학적 계산'에서 손을 잡으면 모를까......
게다가 문재인, 혹은 평양을 쉴드치는 후보에 대해선 크게 걱정할 일 없다. 평양의 핵과 미사일은 한국사람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미국의 골치거리와 인류의 고민거리이다. 평양의 핵과 미사일을 쉴드치는 후보는 우리 한국인의 문제이기에 앞서 미국의 고민거리와 인류의 골치거리다. 그 같은 후보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북폭 및 평양붕괴 역시 그 만큼 더 가까워진다. [북의 핵과 미사일을 쉴드쳐주는 대한민국]은 미국, 인류, 세계문명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무시무시한 진실이 무엇인지, 노골적으로 표현해 보자.
"북의 핵과 미사일을 쉴드치는 대한민국 - 이거, 미국과 세계문명이 더 걱정해야 하는 일 아니야? 대한민국에 북의 핵과 미사일을 쉴드치는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평양이 무너지는 날 역시 가까워지는 거잖아?"
이 까닭에 우리 - 공화국의 시민 -는 대선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정당정치만 바라봐서도 안 된다. 신당창당만 바라봐서도 안 된다. 그 너머 있는 것 - 자유통일대한민국을 바라봐야 한다. 2천 5백만 북한 주민을, 세계시장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개인들로 재활시켜 대한민국 사회로 통합해내는 위대한 여정을 바라봐야 한다. 정치권, 제도권, 언론에 불세례를 퍼부어 이 위대한 여정을 배신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정당정치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아야 한다. 정당과 정파를 초월해서 오직 '자유통일 자유민주 공화국'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해서, 정당과 정치인 중 '키울 놈 키우고 죽일 놈 죽이는' 게임을 펼쳐야 한다. 이 게임의 이름이 바로 '자유통일유권자본부(www.ubon.kr)'이다.
나는 꿈꾼다. 남들이 나더러 몽상가라 비웃더라도 꿈꾼다. 왜? 언젠가, 조만간 일어나고야 말 일이란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무슨 꿈을 꾸는 것일까? 무엇이 눈에 보이는 것일까?
첫째, 자유통일유권자본부의 뉴스링크를 이메일 혹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매일 전달받는 시민(구독자)이 2017년 12월 안에 천만 명에 육박할 것이다. 2017년 3월말 현재 이 숫자가 약 50만 명 정도, 앞으로 7~8개월 사이에 구독자 수가 20배 정도 늘어난다. 왜 그럴까?
평양 붕괴 및 자유통일을 향해 숨가쁜 변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기존 언론과 정당들이 이 같은 변화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유본에 정기회비 혹은 정기참여를 통해 기여하는 회원의 숫자가 10만 명 이상 결집하게 된다. 정당정치의 발전보다 유권자의 각성이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만 구독자와 십만 회원 - 자유본이든 아니든 유권자 조직이 이 같은 규모와 지능에 도달하면 정치가 바뀐다. 매일 뉴스링크를 받아보는 사람이 천만 명에 달하면 조선-중앙-동아-포털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이 같은 '소통 네트워크'가 십만 조직과 연동하면 어떤 정당, 어떤 정치인에게도 (엉뚱한 짓을 할 때에는)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천만 구독자(소통 네트워크)와 십만 멤버십 - 이것이 우리가 해내야 할 일이다.
□ 뱅모의 옥중카페 #2 뽕쟁이와 인류진화 (2017.03.22)
2017.03.25 자유본
어제 이번에 지은 책 ‘상징의 탄생’이 감방 속으로 드디어 들어왔다. 내가 최종교열, 최종 교정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군데군데 오탈자도 보이고, 주석 중에는 원전 출처 페이지가 표시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래도 제 눈에 안경이라고, 내게는 제법 그럴듯한 책으로 보인다. 하기야 인류진화 6백만 년(침팬지의 조상과 인류의 조상이 갈라선 게 이 무렵이다)을 꿰뚫는 ‘원리’를 제시하고, 그로부터 도출되는 철학적 ‘함의’를 밝힌다고 큰소리 빵빵치는 ‘정신병자’의 눈에는, 지가 지은 책이 성경이나 금강경 다음 다음 다음쯤으로 훌륭한 책이라고 착각되는 법이다.
이 같은 착각에 걸맞게 최초의 열독자 역시 만만치 않다. 스물 아홉짜리 푸릇푸릇한 청년 뽕쟁이다. 체력이 얼마나 좋은지, 미리 뽕주사 열댓 개 준비해놓고 2박3일 스트레이트 섹스를 내달리곤 했다는 젊은이. 이 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20여 년 전 해운대 룸살롱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부산 모 대학에서 교수하는 친구가 끌고간 가게였는데 술에 뽕을 풀어서 먹인 것으로 짐작된다. 2차까지 간 ‘언니’와 밤새 섹스를 했었다. 무려 7~8시간 동안.
뽕은 다른 마약과 달리 육체적 중독보다는 심리적 중독으로 작용한다. 황홀한 몰입- 이게 뽕의 힘이다. 섹스든 예술이든 무엇이든 황홀하게 몰입할 수 있다. 내 경우 20여 년 전 해운대에서 뽕의 힘을 절감했다. 주사로 맞은 것도 아닌데... 분명 나 몰래 술에 타서 먹인 것인데... 7~8시간 논스톱 섹스...
나와 청년 뽕쟁이의 차이는 딱 하나 뿐이다. 나는 뽕이 만들어내는 ‘황홀한 몰입’이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이어서 싫었다. 반면 청년 뽕쟁이는 ‘황홀한 몰입’에 깊게 끌렸던 케이스다. 그게 모든 뽕쟁이들의 비밀이다. 그들은 ‘황홀한 몰입에 굶주린 자들’이다.
“이번에 감옥 살고 나가면 앞으론 뽕 안 한다고? 그렇게 큰소리치지 않는 편이 좋을 걸? 왜 그런 황홀한 몰입에 빠져들었을까? 네 마음속의 무엇이 그런 ‘황홀한 몰입’을 갈망하는 걸까? 너, 니 마음속의 그놈, 똑바로 응시해야 돼. 니 마음속에 있는 그 놈, 그토록 부자연스럽고 인공적이면서도 황홀한 몰입을 갈망하는 놈, 그놈을 넘어서지 못하면 넌, 뽕쟁이 신세를 면할 길 없어.”
이참에 ‘뽕중독 심리치료사’의 길로 나설까? 아서라. 뽕중독자 중에는 범털들이 많다. 기껏 ‘치료’해 줬더니 ‘입막음’ 때문에, 끌려나가 땅에 묻히는 수 있다. 작게 먹고 가늘게 싸면서 오래 살라. 치매 걸릴 때까지. 글 쓰면서 살자. (펜이 총보다 강한 것처럼) “상징이 물질보다 강하다”라고 굳게 믿으면서... ‘(내 스타일의)상징의 탄생’을 갈망하면서...
한라에서 백두까지! 태극기 휘날리는 자유통일 자유민주 대한민국 만만세!
□ 뱅모의 옥중카페 #3 갇혀 있는 자들에겐 그 운명이 허락되지 않았다
2017.03.25 자유본
성인남자 5~87명이 실 평수 3평 남짓한 방에서 지낸다. 칼잠을 자는 것은 아니지만 활개 치며 잘 수는 없다. 갇힌 공간이다. 방귀를 뀔 때에도 일부러 화장실에 들어가서 뀌고 나와야 한다. 이 갇힌 공간 안에서도 탄핵이나 대선과 같은 민감한 주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도망간다. 이야기가 뜨거워지면 이렇게 말한다.
“사회 같으면 씨팔새끼, 조팔새끼, 욕하며 싸우다 헤어질 수 있죠. 여기선 헤어질 수 없어요. 갇힌 공간이죠. 생명을 걸고 상대방을 죽여버릴 생각이 없다면 뜨겁고 심각한 주제는 피하는 게 좋아요.”
세상에! 뱅모가 ‘탈(脫)정치’의 전도사가 될 줄이야! 그런데 과연 “생명을 걸 생각이 없으면 감방 안에서는 뜨거운 정치 논쟁을 하지 말라!”는 입장이 탈(脫)정치일까? 어쩌면 ‘감방의 탈(脫)정치 선언’이야말로 고도로 정치적인 스탠스일지 모른다. 정치는 “그 시기, 그 장소, 문맥에 무엇이 적합한가? 무엇이 요구되고 있는가?”라는 이슈를 둘러싼 게임이다. 프랑스 혁명이 자코뱅에 의한 학살극으로 타락하고, 급기야 사회 해체로 주저앉자, “혁명? ( )까!”라고 외치며 위대한 반동(反動)을 선언하는 지도자가 등장했다. 나폴레옹. 이 까닭에 그의 등장을 두고 ‘테르미도르 반동’이라 부른다.
4.19 역시 마찬가지다. ‘답 없는 마비와 혼란’이 계속되자, ‘5.16 군사혁명’이라 불리는 반동이 일어났다. 이 반동이 위대한지 아닌지, 정당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법률의 형식논리로는 가늠할 수 없다. 오직, 60~70년대의 경제발전에 의해서만 평가되어야 한다. ‘5.16 군사혁명’이라 불리는 반동을 법률적 형식논리로 따지려는 자에게 권한다.
“야! 너! 나폴레옹의 ‘테르미도르 반동’에 대해서 ‘헌정질서 중단’이라 부를래? 니 대가리 속에는 법전만 들어 있냐? 쟈코뱅이 사람 머리를 자른 것은 ‘헌정 질서에 의한 인간 두뇌절단 프로세스’냐?”
아무튼, 우리 감방에서는 나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정치 논쟁이 없다. 이같이 갇힌 세계에서 정치 이슈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 혹은 싸움이 벌어지면 답이 없다. 우리 사회는 이미 너무 심각한 분열과 증오와 내부투쟁이 번져가고 있지만, 이곳 세 평짜리 갇힌 공간 속의 수컷 일곱 마리만큼은 그 운명으로부터 비켜서 있다. 갇혀 있는 자들은 그 ‘분열과 내부투쟁의 운명’을 받을 자격이 없다. 운명에도 자격이 있다. 예를 들어 예수는 체포되던 날 밤 저녁, 겟세마네 언덕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다른 방법이 있다면, 저를 이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벗어나기 원하기 때문에 벗어나도록 만들지는 말아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진정 무엇을 원하시나요?” ("My Father, if there is any way, get me out of this. But please, not what I want. You, what do you want?")
대한민국의 모든 시민이 ‘증오, 분열, 내부투쟁’이라는 운명을 안내받았지만, 갇혀 있는 자들에겐 그 운명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갇힘’ 자체가 운명이다.
□ 뱅모의 옥중카페 #4 확신범에겐 양심이 없다
2017.03.25 자유본
우리 사회엔 ‘양심수’란 단어가 많이 쓰인다. 정치에서 도덕적인 소리를 내세워 완장질하는 피씨(PC : Political C0rrectness) 풍조의 대명사인 국제인권기구 ‘앰네스티’가 퍼뜨린 단어이다. “양심에 따라 행동했기에 감옥에 들어왔다.”는 소린데, 첫째, 감옥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은 죄다 ‘양심이 없는 년/놈’이란 소리가 되며, 둘째, 감옥이야말로 ‘양심의 전당(Temple of Conscience)’이란 말이 된다. 한마디로 개소리.
니 양심을 내가 어떻게 아냐? 내 양심도 모르겠는데! 우리가 ‘양심이 없어진 세상’에서 살기 시작한 지 제법 오래 된다. 지금부터 130년 전인 1880년대에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고? 그의 책 ‘짜라두짜(차라투스트라)’를 읽어 보면 “신은 죽었다”란 소리는 “양심이 없어진 세상이 됐다”를 뜻한다. 니체가 말하는 ‘신’은 (키에르케고르가 밝힌) ‘개인의 신’이 아니라 ‘인민의 신’, ‘공동체의 신’이기 때문이다. 도덕률과 양심은 원래 ‘인민의 것’, 공동체의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률의 정립을 개인이 주도해야만 하고, 도덕률의 선택을 개인이 감행해야만 하는 지평-무도덕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 실존-이 된 지 2백여 년이 됐음에도(유럽 및 미국 기준), 아직도 수많은 인간들이 ’양심‘ 타령을 하고 있다.
이젠 ‘양심수’라는 구역질나는 단어, 그만 좀 쓰자. ‘확신범’이 맞는 용어다. ‘확신’하기에 법률을 ‘의도적으로’ 어긴 자. 이제는 인민이 강요하는 양심, 공동체가 가르치는 양심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 대신 자기 자신의 존재감(자긍심), 자신이 맡은 바 직무에 관한 근성(책임감), 진실 존중(머리의 정직성), 이와 같은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미덕(virtue)이 존재할 뿐이다. 이 같은 개인적 미덕의 출발점은 구역질이다. 세상에 대한 구역질, 인간에 대한 구역질 때문에 ‘나의’ 미덕을 찾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상태(Weltverlorne)’가 인 ‘미덕’의 출발점이다.
이렇듯 인민과 공동체의 도덕이 무너졌기에, 사회의 차원에서는 오직 법률만 남았다. ‘법리와 형벌’만 남았다. 도스토옙스키가 이 같은 사정을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작품의 이름이 ‘범죄와 형벌’이다. 나는 감옥살이 (형벌)의 효과가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형벌이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옥이 가혹하고 비인간적이란 소리가 아니다.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환경은 인간을 마비시킨다. 마비되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요즘 감옥은 제법 인간적이다. 그래서 지옥의 칵테일이 작용한다. 한편으로는 제법 인간적인 대우. 다른 한편으로는 첨단 실시간 소통(스마트폰, 인터넷)의 전면적 차단. 이 칵테일은 정말 고통스럽다. 유비쿼터스 소통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더욱 더 고통스럽다. 그래서 나는 낙관한다. 인민의 도덕, 공동체의 도덕이 수행했던 역할을 형법과 교도소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단, 한 가지만 고쳐지면 좋겠다. 교도소에서 제작되는 물품에는 종종 ‘KPI’라는 브랜드가 붙는다. ‘한국감옥산업(Korea Prison Industries)’이란 뜻이다. 까닥하면 대한민국 전체가 집단노동수용소(Gulag)라고 오해할 판이다. 이왕이면 좀 세련된 브랜드를 붙이면 어떨까? ‘교정과정을 밟고 있는 시민들’이란 뜻에서 ‘CCP(Citizens under Correctional Process)'. 언젠가 CCP 브랜드가 꽤 그럴듯한 명품으로 꼽히는 날이 오기를 빈다.
□ 민주화 유공자 가산점? 뱅모(박성현 자유본 대표)는 거절!
2017.03.26 자유본
학림사건 핵심 관련 보상-재심 거부자 박성현 "민주화 운동이 보상의 대상인가?"
최근 민주화 유공자에 가산점을 주는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계신다. 그렇다면 학창시절 열심히 학생운동했던 뱅모는 어땠을까? 1980년대 대표적 공안 사건인 '학림 사건'은 군사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이 민주화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학생들을 반국가단체 조직범으로 몰아 처벌한 사건이다. 이 때 조직책이었던 뱅모는 재심을 청구하지도,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음은 2012.06.27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민주화보상법개정추진본부>가 주최한 제1차 시민토론회 '민주화운동보상,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에서 박성현 자유통일유권자본부 대표의 발언
"지난 2008년 가짜 진보학자들이 세미나에서 한 얘기를 들어보면 194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애를 한 명 낳으려면 300일 걸린다. 대한민국 국가가 1948년 제헌 헌법 만들 때 만들어진 국가인가. 해방공간 5년 동안 어마어마한 혼란과 월남 400만명의 선택, 6.25 때 수백만명이 죽고 다친 희생. 최소한 1945년에서 54년 사이에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비로서 대한민국 씨앗이 만들어진 것인데. 48년 어느 한 날 헌법 작구를 해석해서 대한민국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고 인민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작년인가 교과서에서 국가 기본 성격을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한 것을 빼자고 해서 나라가 시끄러웠었는데 이런 풍조가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 하면 민주화보상법이란 해괴망측한 곳에서 민주주의가 어느 곳에서 작동하는지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의 근본 원칙과 가치가 흔들린 것이다.
미국 링컨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노예제를 둘지 말지를 민주주의로 결정하자고 한다.그래서 싸운다.
'야! 우리가 민주적으로 노예를 정하면 우리는 노예를 맘대로 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를 다수결로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사회 근본 가치 문제니까 우리 건국 아버지들이 노예제도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보자.'
링컨이 그 때 건국 아버지들의 생각을 다 까본다. 링컨은 건국 아버지들이 노예제를 억제하려고 했다는 것을 밝혀내고. 변경주에서 '노예제를 둘지 말지를 투표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 이를 두자고 하는 얘기는 미국 근본 가치를 훼손하는. 민주주의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래서 10년 이상을 싸운다. 그래서 대통령이 된다. 이 원칙을 세우고 싸워나갔기 때문에... 남부는 독립선언만 했고, 링컨이 온건한 듯이 보이지만 근본가치를 훼손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퇴를 내려 응징한다.
우리 선배 세대가 싸워 이긴 것은? 정말 극악한 전체주의와 싸웠다. 극악한 전체주의와 싸우면서 선배들이 근본 원칙을 세웠다. '나라는 자유민주주의로 가야한다', '나라는 개방사회로 가야한다'는 두 개의 원칙이다. 45년에서 54년 사이에 확정된 것이다. 민보상법이란 이 두개의 원칙에 따라 국가에 의한 보상. 보훈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동일한 잣대에 의해서. 전경. 혹은. 전사자. 의사자. 의로운 일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 이런 분들에 대한 보상내지 보훈. 유니버셜한 논의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하나만 불뚝 따로 하나 뽑아 민주주이가 마치 신성불가침 가치로 여기는 것은 나라를 말아먹는 첩경이다.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에 비해 민주화유공자가 터무니없이 높은 포상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동기 자체가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뱅모의 신간 '상징의 탄생'을 읽고 (허만규)
* 자유본 후원계좌 : 사단법인 역사문화센터 우리은행 1006-101-36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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