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오련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를 보았다. 눈물이 났다. 사망했다는 소식을 처음 듣고 참 인생이 덧 없다 라고 생각이 들었다. 많은 스타들의 비보를 접하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가? 삶이 창창한 어린 세대들은 깊게 비중을 두지 않을 것이다 .나이 든 세대들은 한번씩 경각심이 들때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야 죽고 사는것인데 죽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왜 죽은것인가 왜 죽을 수 밖에 없었는가와 관련되었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사망이라는 표제만 보았을 때 먼저 떠 오르는 것이 자살로 인한 사망일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가끔씩 비춰진 조오련씨의 행적을 보면서 그의 처절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감내 할수 없었던 시련의 고통을 끝내 자살로 귀결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것 이었다. 그런데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이었다. 나중에 국과수 부검에 의해서는 심근경색에 의한 사망이었다. 만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면 나의 가슴은 더욱 미어졌을 것이다.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 그의 생전의 마지막 모습에서 우리의 슬픈 자화상을 발견하게 된다.

얼마전 대한해협 횡단 30주기 2010년에 또 한번의 도전을 준비하기 위해 부족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누구하나 크게 의미를 두고 후원을 해 주는 사람 없다. 결국 자존심을 버리고 손을 벌리며 구걸아닌 구걸을 해야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한 가난한 영웅의처참함을 보는 것 같았다. 가난한 영웅이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결국 돈이 대접을 받는것임을 다시 한번 실감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초라하게 전락해버린 자신의 처지에서 많이 슬퍼하고 괴로워 했으리라 미루어 짐작이 간다. 가난한 것이 본인의 탓으로 옭아맨다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만은... 그가 예순의 나이에 대한해협에 도전한 것은 거대한 역사에 앞서 기억속에 사라져가는 한 가난하고 외로운 영웅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마지막 희망으로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조오련씨의 4개월전 재혼한 부인의 모습을 보면서 애틋한 부부애에 또 한번 마음을
찡하게 했다. 남편의 죽음을 보면서 자살을 기도하여 죽음을 같이 하려했던 이성란씨를 보면서 참 부부애가 돈독했구나, 그녀의 남편에 대한 애틋한 사랑에 너무나 감명을 받았다. 이성란씨도 홀로 두 자녀를 키우면서 외롭게 살아오다가 조오련씨를 만나 이제 4개월의 시간속에서 그 지나온 세월속에 깊었던 외로움만큼 두 사람의 사랑도 그 만큼 깊이 내재했던 것 같다. 혹 오랜 세월을 같이 했다면 사랑하는 마음보다 원망의 마음이 더 컸을련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어쨌든 어떤 부부도 감히 흉내 낼수 없는 죽음을 초월한 남편에 대한 그 한 없는 마음이 너무나 고맙다.

우리는 쓸쓸하게 그리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그 옛날의 영웅들의 모습을 간간히 본다. 그리고 지금 많은 영웅들이 있고 또 탄생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감히 표현을 해 본다. 박태환아 돈을 많이 벌어라. 돈을 많이 벌었다면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라. 가난한 영웅들의 슬픈 자화상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 김장훈이 수 십억원을 돈을 기부한다. 우리는 그런 그에게 감복하고 그런 그를 영웅으로 부른다. 그러나 그가 만일 후일 가난한 행색의 삶이라면 누가 그의 이름을 선뜻 불러주겠는가? 故 조오련님의 명복을 빕니다. 새로운 뜨락에서 행복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