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롱 !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1. 정보통신망 (명예훼손) --- 혐의 없음 2. 명예훼손--- 혐의 없음 3. 모욕--- 죄가 안 됨

이런 내용입니다. 한 마디로, 지만원씨의 이념적 상상력이 초등학생처럼 앙증맞으며, 자식을 저 모양을 키운 지만원씨 가문이 이른바 빨치산 가문보다 매우 후지며, 낫살 먹고 나이값도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대한민국 검찰의 판단에 따르면, 정보통신망법에 저촉되지 않으며, 명예훼손에도 해당되지 않으며, 모욕이라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어쩌죠?"

- 지난 11월 진중권이 자신의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에 '간첩들의 암호 신윤복 코드 ?' 라는 글을 올려 지만원을 비판했고 이에 지만원이 명예훼손으로 진중권을 고소하였고, 이에 검찰은 무혐의처분을 내렸다. 이 글은 무혐의처분을 받은 후 진중권이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에 올린 지만원에 대한 깐족거린 글이다.

진중권 · 萬47세 · 中央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 政治사회비평지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 前진보신당 당원

"심형래 사기죄?

포탈 사이트에 심형래씨에 관한 뉴스가 걸려 있어 클릭을 해보니, 심형래씨가 고소를 당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좀 황당한 게 '사기죄'로 걸렸다고 합니다. 보아 하니 어디서 돈 빌려놓고 제때 못 갚은 것 같은데, 그게 왜 민사가 아니라 형사소송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심형래씨를 고소한 상대가 하필 영구아트와 그 동안 매우 절친한 관계에 있었던 성신양회랍니다.

그래서 다른 기사를 찾아 보니, 영구아트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게 문제가 된 모양입니다. 돈을 빌려줄 때에는 주당 2만원씩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돈을 빌려 받을 때가되니 주당 5천원씩 밖에 안 쳐준다는 얘기인 것 같은데.... 글쎄요. 가치가 오락가락하는 주식을 어떻게 담보로 잡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새 주식값이 떨어졌다고 해서 그것을 '사기'라고 할 수 있는지... <디워> 열풍 때 그 회사 주식이 최대의 호혜주로 꼽혔던 게 기억나네요.

추측컨대, 성신양회 측에서 영구아트측에 돈을 빌려준 것인지, 아니면 영구아트에 정식으로 투자를 한 것인지 서로 애매모호하게 처리하고 넘어갔던 게 아닐까요? 그래서 한 쪽에서는 빌려준 것이니 모두 다 내놓으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일종의 투자를 한 것이니 그냥 현재의 가치대로만 받으라고 하고... 뭐 그런 상태 같기도 하고... 그 내막을 누가 알겠습니까... 아무튼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하네요.

얼마 전만 해도 국내에서 대박 터뜨리고 해외까지 합쳐 총매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고 요란하게 홍보하더니, 그 많은 돈 다 어디 가고 아직까지 20억을 못 갚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네요. 매출 1억 달러의 절반만 수익으로 잡아도, 순수익 500억 - 제작비 300억 = 200억. 한 마디로 제작비로 빌려온 돈 다 갚고도 200억이 남아서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줘야 할 판이죠. 게다가 그 1억 달러에는 "유럽, 일본 등의 매출은 합산되지 않았다."고 했었지요.

차기작의 제작비가 급해서 그런 것은 아닌 듯합니다. <라스트 갓파더>의 경우 나라에서 제작비용으로 160억까지 대준다고 했지요. 어제 기사를 보니 말론 브란도 초상권의 확보에 실패해 제작 자체가 중단되거나 혹은 미뤄진 상태라고 합니다. 결국 새 영화의 제작비로 몫돈을 퍼부어야 할 상황도 아닌데, 왜 20억을 못 갚는지... 참으로 요상한 일입니다. 아무튼 심형래 감독의 말 앞에서는 산수가 무용해집니다. 영구아트는 좀 투명하고, 심형래 감독은 팬들에게 좀 정직했으면 좋겠습니다."

- 2004년 1월 심형래가 (주)영구아트 주식 20만 주를 담보로 빌려간 40억 원 가운데 20여 억원을 기한 내에 갚지 못했고 이에 지난 2월 10일 성신양회는 영구아트 대표 심형래를 사기혐의로 고소했고, 고소의 내막은 담보로 제공한 (주)영구아트 주식의 가치 때문이다. 담보로 제공할 당시 심 감독이 (주)영구아트의 주식이 주당 2만 원이라 밝혔지만 실제 가치는 주당 5000원이라는 것. 결국 미 변제 금액은 20억 원이지만 담보 가치는 5억 원에 불과해 그 차액인 15억 원을 편취당했다며 사기 혐의로 형사 고소를 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심형래의 형사고소건에 대해 진중권이 역시 자신의 진보신당 당원 게시판에 올린 심형래에 대한 깐족거린 글이다.

◎ 진중권 - 나이 50을 바라보는 어른이자 자식을 둔 부모이며 지식층이며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의 위치에서 설령 존경받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망정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특히나 공인으로서 더 더욱 모범된 행동이 되어야 할진데 '지만원 메롱' 이라니 너무나 유치하고 경망스러운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참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나이 어린 사람도 아니고 적어도 사회적 위치에 있는 어른이 본능적 행동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고 천박한 행동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인격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이 타인의 잘못에 대해 지적하고 비평하는 것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련지 의심스럽다. 누가 누구에게 감히 인격과 도덕을 가르치며 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인가 ?

사실 필자는 진중권이 누구인지를 잘 모른다. 언론매체를 통해 등장하기 때문에 어떤 인물인가해서 살펴보기는 했지만 이지적이지 못한 그의 천박한 언행을 보고 아예 접근조차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필자는 그의 이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또한 알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그가 어떠한 역사를 지닌 인물이었으며 어떻게 진보논객이 되었는지의 과정을 알지 못한다(진보없는 보수가 어디 있으며 보수없는 진보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감정상 획일적인 기준을 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향적 판단에 따라 이 두 용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으리라 본다). 한 두번 TV 토론에서 공방하는것을 보았고 인터넷뉴스에서 그에 대한 기사가 언급이 되어 살펴 보았을 뿐이다.

나는 그의 품성에서 여러가지 인격적 장애가 있는것을 보았다.

인간은 누구나 다 동물적 욕구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 동물적 본능을 자제하며 다스릴 수 밖에 없다. 수 많은 사람들마다 개성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고 서로 각기 다른 품성을 지니고 있다.

만일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모두 외부적으로 표출되어 진다면 혼란과 공포의 세상이 될 것이다. 인간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으며 불안과 초조속에 이 세상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자연발생적인 본능적 행동을 제어시키고 평화적인 삶을 살기 위해 법과 규범으로 규제되어 지는 것이다. 이러한 테두리안에서 우리의 본능적 욕구와 욕망을 스스로 다스리며 가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성적욕구, 재물에 대한 욕구, 분노, 복수심, 자존심... 등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 티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누가 감히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수 많은 변화의 과정을 겪으며 살아간다. 수 많은 일을 겪으며 살아간다. 이런 일 저런 일 수 많은 사건들 속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수 많은 사람들 속에 우리는 살아간다. 

이러한 인간사회에 늘 언제나 평화롭고 평온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어쩔수 없이 우리는 반목과 대립의 구도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지극히 단순한 원칙을 인식하지 못하고 망각하며 살아간다. 또 이렇게 망각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또한 세상살이다.

우리는 법과 규범을 이탈할 때 강제적 제재와 지탄이 가해진다. 그래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이와 같이 인간이 정해 놓은 규칙의 틀에서 그 형식적 정의를 찾는다. 그렇지만 개개인이 느끼는 동정과 분노의 본능적인 주관적 감정의 가치판단은 이 기준과는 달리 평가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추스리며 다스리는 개별적 제어능력의 차이는 그 사람의 환경과 위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즉 사람은 감정의 조절능력이 언제나 완벽하지는 못하다. 그 의지가 언젠가는 한 두번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 무너진 표현방식이 언행으로서 표현이 되기도 하지만 직접적 표현이 되지 않을지라도 자신의 마음속에 순화되지 못하고 격한 격정이 요동친다면 비록 법과 도덕의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이 또한 순수한 것으로 볼수 없는 백지 한장 차이인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누구나 다 마음속 죄를 짓고 살아가는 것이다. 어쩔수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동물적 본능과 욕구를 자의로 막지는 못하는 것이지만 그 본능을 외부적으로 표출시키는 여부는 인간의 의지로써 얼마든지 조절할 수는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성이다. 

원천적인 본능의 근원 자체를 자신의 의지로 봉쇄할수는 없는 것이지만 생성된 그 본능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직접적으로 표출시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그 이성적이지 못함에 대한 비난은 당연히 감수하여야 하며 스스로의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리라 본다. 이것이 또 하나의 진정한 이성이다.

표현에도 분별의 이성이 필요한 것이다. 비평에도 정도(正道)가 있는 분별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타인에 대한 비평을 할때 정도를 지키며 평을 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어른이 되면 어쩔수 없이 어른으로서의 모범과 행동을 보여야 한다. 어쩔수 없이 책임을 져야 한다.

혼자만의 일기장이 아닌 만인에게 공표되는 글은 특히나 그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품위가 있어야 한다. 고매한 품위가 아니라 적어도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 자신이 떳떳하게 나무랄수 있는 표현의 글이어야 한다. 이 당연한 법칙에는 변명과 회피가 있을 수 없다. 이 마저도 기교를 부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는 간교함이다.

진중권에 대한 네티즌의 부정적 시각의 평을 정리해 보았다.

● 초기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의도적으로 글을 써 왔다.
● 이젠 향후 정치에 입문하려는 속셈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 어떤 사안에 대한 논리를 억지로 퍼즐 맞추듯 끼워넣는다.
● 중점적이지 못한 이상한 논리를 끌어와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다.
● 침착성이 없으며 흥분을 잘하고 상대를 약올리는것에 대한 쾌감에 주력하고 있다.
●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면서 항상 반대만을 하는 의견과 주장을 하고 있다.
● 아는것은 많은 것 같은데 실상 들여다 보면 허무맹랑하고 사차원적이다.

자신의 존재가 대중들에게 정도있는 사람으로 출발되고 인식되어 왔다면 그에 걸맞는 행동을 보일텐데 처음부터 망나니 인식으로 자신을 알렸기에 이왕 무너진 인격을 함양시키기보단 자신의 막가파식 컨셉으로 일관시키고 있다. 자신의 글에 사람들이 동조되어지고 옹호하고 영웅인양 추대되어지는 이 마력에 서서히 중독되어 가고 있다. 

이미 그 인기의 맛을 알아 이젠 뗄래야 뗄수없는 심한 중독성 환자가 되었다. 지금의 현상에서 그의 언행이 일부 뜻의 등을 시원하게 긁어 주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행태가 일관되어 진다면 머지않아 그 정도를 다할것이다. 절제와 이성이 없는 인격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은 대중은 떠나기 마련인것이다.

이젠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 이젠 멀지 않아 그도 노인이 된다. 누구를 노인이라며 칭했던 자신의 자각하지 못한 현실이 곧 슬픈 자각이 될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그 때의 자신은 어떤 모습의 자화상일까? 

우리의 정서와 사고로 추론되며 결국 귀결되어 지는것으로 그의 부모에 대한 평가로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 자식의 소양이 부족하면 부모의 인격을 의심하게 된다. 나는 그가 아바를 닮지 않았으리라 본다. 그의 자식이 아바를 닮지 않기를 바란다.

이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싫어도 어쩔수 없이 간접적으로 대면할 수 밖에 없는 필자로서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겠느냐? 불행을 위해서라면 글을 쓸때는 자정능력은 필요없을 것이다. 아마 자신은 결단코 이를 인정하지 않을것이다. 또 다른 이상한 논리를 전개할 것이다. 아니다. 자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철저히 위장된 똑똑한 자존심을 위해 절대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불가능한 일이고 이것이 어쩔수 없는 팔자라면 그것은 할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