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미인도' 위작 논란 수사결과 발표
2016년 12월 1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고 천경자 화백의 차녀가 국립현대미술관 전,현직 관계자 6명을 상대로 고소,고발한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62) 미국 몽고메리칼리지 미술과 교수가 “천 화백이 그리지 않은 미인도를 천 화백 작품이라고 주장했다”며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미술계 인사 6명을 사자(死者) 명예훼손 및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약 5개월간 조사한 결과, 해당 작품을 진품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노승권 차장검사 : “현 시점에서 동원 가능한 거의 모든 감정 방법 통해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미인도'는 진품으로 판단되며, 전 학예실장 1명을 사자명예훼손죄로 불구속 기소하고, 피고소, 고발인 5명을 불기소 처분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5개월 동안 미술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하고, 사건관계자들을 철저히 조사했다.
이 작품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혐의로 사형당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재산을 환수하는 과정에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넘어갔다. 국립현대미술관이 1991년 전시회에서 이 작품이 천 화백 작품이라며 처음 공개했지만, 작품을 직접 본 천 화백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다”며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화랑협회 등 미술계는 자체 감정을 벌여 ‘천 화백 작품이 맞다’고 발표했다. 1999년엔 다른 위작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화가 권춘식(69)씨가 “미인도는 내가 그린 위작”이라고 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천 화백 작품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작년 천 화백이 별세하면서 미인도 위작 논란이 다시 일었고, 천 화백 차녀 김씨는 지난 5월 고소장을 제출했다.
‘미인도’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
배용원 부장검사 : “77년 작 '미인도'는 천경자 화백이 그린 76년 작 '차녀 스케치'를 토대로 그린 진품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검찰은 미인도와 천 화백이 그린 진품 13점, 권씨가 그린 모작 1점 등을 대상으로 조사했다고 밝혔다. 대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카이스트 등에서 X선·적외선·투과광사진·3D촬영, 디지털·컴퓨터 영상 분석, 미인도·김씨·위작주장자 DNA분석, 필적 감정 등이 이뤄졌다.
'미인도'의 제작방식을 분석한 결과, 두터운 덧칠과 '석채' 안료를 사용한 점, 날카로운 필기구로 사물의 외곽선을 그린 압인선이 발견됐고, 이는 천 화백의 여타 그림들에서 발견되는 특징과 같았다.
검찰은 우선 미인도가 천 화백 특유의 작품 제작 방법과 동일하게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천 화백은 ‘D화랑’ 화선지를 배접(褙接·종이나 헝겁 등을 여러 겹 포개어 붙임)한 다음, 그 위에 백반·아교·호분으로 바탕 작업을 하고 수없는 ‘덧칠’ 작업을 거쳐 ‘석채’ 안료로 채색을 완성하는데 미인도에 그 방식이 그대로 적용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육안으로 관찰되지 않는 안입선(날카로운 필기구 등으로 사물의 외곽선을 그린 자국)이 미인도와 다른 진품에서 공통으로 발견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같은 제작 방식은 위작에서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다음으로 미인도 그림 밑층에 숨겨진 다른 밑그림이 존재하는 것도 진품 판단의 근거라고 밝혔다. 천 화백은 수정과 덧칠을 수없이 반복해 작품 밀도와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채색하는데, 이 때문에 그림 밑층에 ‘다른 밑그림’이 존재한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천 화백의 진품 ‘청춘의 문’에서도 동일한 방식이 확인된다. 검찰은 “미인도 화관 풀잎 밑층에서 다른 형태의 풀잎선, 입술 밑층에서 다른 위치·형태의 입술 모양, 머리카락 밑층에서 숨겨진 꽃그림 등이 발견된다”며 “위작의 경우 원작을 보고 그대로 베끼거나 약간의 변형을 가한 스케치 위에 단시간 내 채색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다른 밑그림이 발견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미인도 밑그림이 천 화백의 미공개 작품 ‘차녀 스케치’와도 고도로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차녀 스케치’는 1976년 천 화백이 차녀 김씨를 모델로 스케치한 것으로 2016년에 처음 공개됐다. 미인도는 1977년에 제작됐다. 검찰은 “위작자는 원작 없이 소재와 구도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위작은 원작이 있게 마련인데, 미인도의 원작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며 “미인도 스케치 이미지를 차녀 스케치 이미지와 겹쳐 보면 세부 표현 방식이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원작을 디지털 이미지로 바꿔 작가의 화풍 특징에 따른 세부 항목별로 나눠 수학 알고리즘을 분석하는 컴퓨터 ‘웨이블릿’ 분석을 통해서도 미인도와 다른 진품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발표 내용은 프랑스 감정팀 르미에르 테크놀로지 연구팀의 검증 결과와는 다르다. 프랑스 연구팀은 특수 카메라로 미인도와 진품 9점을 스캔 촬영한 다음, 각 사진 이미지를 수치화하는 방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미인도와 모든 항목에서 진품과 다른 수치가 나왔고, 프랑스 연구팀은 “미인도는 천 화백 1981년도 작품 ‘장미와 여인’을 보고 제작한 위작으로 명암대조의 표준편차값 등을 확률계산식에 대입해 보면 진품 가능성은 0.00002%”라는 감정 의견을 검찰에 제출했다.
하지만 검찰은 “사진 이미지 분석을 통한 수학적 수식 산출 방법은 차이점 파악에는 의미가 있으나, 위조 여부의 판단 근거로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며 “같은 수식에 대입하면 천 화백의 다른 진품도 진품 확률이 4%대로 계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소인·피고소인 측으로부터 추천받은 교수, 화가, 미술평론가 등 9명의 감정위원을 상대로 비공개 감정을 한 결과, 진품이란 의견이 우세했다”며 “위작을 그렸다는 권씨도 미인도 원본 확인 후 자신이 그린 작품이 아니고 진품이라고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향후 미술품 제작과 유통과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등 유관 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실효성 있는 단속방안과 대책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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