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정상회담 추진 배경
현대그룹은 亡 정주영 명예회장(2001.3.21. 사망)이 1989. 민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여 금강산 관광사업 등을 협의하고 향후 남북경제협력사업의 모태가 되는 의정서를 체결한 이후로 지속적으로 남북경제협력사업에 관심을 가져 왔고, 1998.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2차례의 소떼 방북을 시작으로 대북사업을 본격 추진하게 되었다. 현대는 1998.부터 본격 추진하기 시작한 금강산 관광사업 등 일련의 대북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1999. 2.경 현대상선, 현대건설 등 8개의 현대 계열사들이 4,500억 원을 출자하여 현대아산을 설립하였고, 정주영의 아들인 정몽헌이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으로 취임하여 대북사업을 총괄하게 되었으며, 김윤규는 현대아산의 대표이사를 맡게 되었다.
정몽헌·정주영은 대북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남북한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남북정상간의 직접 만남이 절실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으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의 정부'도 정부 출범 초기부터 '햇볕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하자, 정몽헌은 2000. 초순경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한 여건이 어느 정도 조성된 것으로 판단하고, 금강산 관광사업 등을 추진하는 데 도움을 준 바 있고 북한측 인사와 친분이 두터운 조총련계 일본인 사업가인 '요시다'를 통해 북한측에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했고, 북한측으로부터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다.
정몽헌은 요시다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요시다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의 남한측 대표가 국정원 소속이 아니면 좋겠다는 북한측의 의사를 전달해 오자, 2000. 초경 당시 문화관광부장관이던 박지원을 만나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관심이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우리 정부에서는 북한의 의사를 여러 경로로 확인하여 남북정상회담의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2002. 2. 하순경 박지원을 대통령 특사로, 실무를 담당하여 특사를 돕기 위하여 국정원 대북전략국장(제5국장)이던 A씨를 특사 보좌관으로 각각 임명하여 북한과 정상회담과 관련된 예비접촉을 하겠다는 취지로 정몽헌에게 알려 주었고, 이에 따라 정몽헌은 요시다를 통하여 우리 정부의 입장을 북한에 전달함으로써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이 시작되었다.
○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한 대표의 접촉과 대북송금에 관한 합의
위와 같은 준비과정을 거쳐 요시다의 주선으로 2000. 3. 9. 싱가폴에서 우리 정부를 대표하여 박지원, 국정원 대북전략국장 A씨와 실무자인 서훈 등이, 북한을 대표하여 아태위원회 부위원장 송호경, 황철 참사와 실무자 1-2명이 참석하여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을 가졌으나 그 자리에서는 양측 대표간에 구체적인 정상회담의 조건 등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고, 상견례를 하면서 앞으로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양측이 서로 노력하자는 덕담 수준의 대화만 하고 2000. 3. 17. 중국 상하이시에서 접촉을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그 과정에서 현대에서는 정몽헌, 이익치 등이 회담장에 같이 참석하여 양측 대표를 소개해 준 후 퇴장하여 사실상 양측을 소개해 주는 역할을 했다(*이하 3번의 접촉에서도 현대는 회담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더라도 항상 회담 장소 부근에서 머물면서 우리 정부측 인사와 북한측의 소개 및 의견 전달의 매개체 역할을 맡아 수행하였다).
2000. 3. 17.부터 3. 18.까지 상하이시에서 개최된 1차 접촉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하면 쌀,비료 등과 같은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고, 아울러 향후 20-30억 달러에 상당하는 사회간접자본시설(SOC)지원도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했으나, 북한측에서는 그들의 입장을 드러내기보다는 주로 우리 정부측의 제안을 듣는 정도였다.
2000. 3. 23. 베이징시에서 개최된 2차 접촉에서 우리 정부측은 종전과 같이 인도적 지원과 함께 20-30억 달러 상당의 SOC 지원을 다시 언급했고, 북한측에서는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 외에 현금으로 5억 달러를 지원하여 줄 것을 요구했고, 우리 정부측은 현금 지원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자 북한은 현대를 상대로 그 무렵 북한과 협의 중에 있던 여러 가지 대북사업에 대한 대가로 현금 10억 달러를 지급하여 줄 것을 요구했고, 정몽헌은 대북사업권 대가로 현금 2억 달러 이상은 주기 어렵다고 말하며 북한의 제의를 거부하자 현대와 북한의 협상이 결렬되었고, 우리 정부와 북한측과의 협상도 결렬되어 3차 접촉의 날짜와 장소에 대하여도 합의하지 못하였다.
2차 접촉이 결렬된 이후에 현대와 요시다의 중재로 2000. 4. 8. 베이징시에서 다시 개최된 3차 접촉에서 우리 정부와 북한 양측 대표는 종전과 같은 입장만을 되풀이하다 또다시 협상이 결렬되려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으나, 그런 상황에서 북한측은 현대에게 사업권 대가로 현금 7억 달러를 달라고 요구하면서, 그 같은 제안을 거부하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고집했고, 현대는 3억 달러를 주장하며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4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최종 합의하면서 3억 5,000만 달러는 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5,000만 달러는 평양체육관 건립 및 북한측에 이미 제공한 트럭 등으로 갈음하기로 했으며, 다만 북한측의 긴급한 자금필요 등을 이유로 3억 5,000만 달러를 정상회담 전에 송금해주기로 하였다. 그렇게 되자 북한측은 현대와의 협상이 타결된 이후에 다시 우리 정부측과의 정상회담에 대한 협상을 재개하여, 결국 우리 정부측을 대표한 박지원이 아태위원회의 송호경과 사이에 남북정상회담 개최 전에 우리 정부가 북한측에 현금 1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합의하고 최종합의서를 교환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송호경은 정몽헌에게 우리 정부에서 1억 달러를 주지 않을 경우 현대가 그 지급을 보증할 것을 요구하여 정몽헌은 북한측이 현대에 제공하기로 한 사업권 전부에 대해 독점권을 주고 사업권의 내용에 통신사업을 포함시키는 조건으로 이를 수용하였고, 구체적 사업권 내용은 현대아산의 대표이사인 김윤규와 아태위원회 관계자들이 추후 협상을 통해 구체화하기로 하였다.
우리 정부와 북한 양측은 위와 같이 2000. 4. 8. 베이징시에서 최종 합의서를 교환한 후 귀국하여 2000. 4. 10.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공동보도문을 통해 2000. 6. 12.부터 2000. 6. 14.까지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 정부 부담분 1억 달러 현대가 송금하게 된 경위 및 박지원에 자금 지원요청
박지원, 임동원, 이기호는 2000년 4월과 5월에 4-5 차례 만나 남북회담 전 북한에 전달하기로 한 정부 부담분 1억 달러의 조달 방법 등에 대하여 논의하였으나 공개적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서 남북경제협력기금으로 북한측에 송금하는 등의 방법은 당시로서는 힘들다고 판단하고 그 1억 달러에 대하여도 현대에 송금을 부탁하기로 결론을 내고 이러한 내용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박지원은 2000. 5. 중순경 정몽헌을 만나서 우리 정부에서 부담하기로 약속한 1억 달러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니 현대에서 이를 대신 지급해달라고 요청했고, 정몽헌은 이를 수락하는 대신 박지원에게 당시 현대의 자금사정이 어려운 것을 설명하면서 현대에 대한 자금지원을 요청하였다.
정몽헌은 2000. 5. 23.부터 2000. 5. 25.까지 금강산 고성항 부두 준공식 참석을 위해 금강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측 관계자로부터 대북송금에 필요한 북한측 계좌내역을 전달받았고, 2000. 5. 31.과 2000. 6. 1. 사이에 김충식 현대상선 대표이사, 김윤규 현대건설 대표이사, 현대전자 대표이사 H씨 등을 개별적으로 불러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현대의 대북사업에 필요하니 현대상선은 2억 달러, 현대건설은 1억 5,000만 달러, 현대전자는 1억 달러를 마련하여 아태위원회가 지정한 북한측 계좌로 송금하도록 지시했고, 김윤규에게는 북한측 계좌내역을 전달하면서 각 계열사가 그 계좌로 나누어 돈을 송금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박지원은 정몽헌으로부터 현대에 대한 자금지원 요청을 받고 2000. 5. 중순경부터 2000. 5. 31.까지 사이에 이기호, 임동원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인 이기호에게 현대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였다.
○ 한국산업은행의 현대상선에 대한 대출
이기호는 박지원 등의 요청을 받아들인 후 현대에 대한 지원방법을 모색하던 중에, 고등학교·대학교 동기로 당시 한국산업은행 영업1본부장인 박상배에게 2000. 6. 2. 전화하여 현대에 대한 여신지원이 가능한지 여부를 문의한 결과 박상배가 동일차주 신용공여한도의 문제가 있으나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과 한국산업은행 총재의 승인이 있으면 대출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이기호는 당시 한국산업은행 총재인 이근영과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이던 이용근에게 연락하여 이근영에게 현대에 대한 지원을 조속히 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용근에게는 한국산업은행에서 현대에 대출을 해줄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동일차주 신용공여한도' 등 금융감독원 관련 업무를 잘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용근은 선뜻 수용하지 않았다.
이근영은 박상배와 상의하여 현대계열사 중에서 비교적 자금 사정이 좋았던 현대상선에 대하여, 신용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지 않고 본부장 전결로 처리하여 신속히 대출을 해 줄 수 있고 대출한도에 대하여 별도로 사정하지 않아서 대출한도의 설정이 비교적 용이한 일시당좌대월로 자금지원을 해주기로 결정하고, 그 사실을 이기호에게 알려 주었고, 이기호는 그 사실을 임동원과 현대측에 알려 주었다.
현대상선 대표이사 김충식은 2000. 6. 5. 오전경 이익치로부터 한국산업은행에 대출 부탁을 해 두었으니 한국산업은행에 찾아가 보라는 말을 듣고 이근영, 박상배를 찾아가서 북한측에 송금할 2억 달러를 포함하여 일부는 현대상선의 운영자금으로 쓸 생각에(실제로는 현대건설에 1,000억 원 이상을 기업어음 인수 방법으로 빌려 주었다) 4,000억 원의 대출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였고, 실무적인 절차는 현대상선의 김종헌 재정담당상무가 찾아가서 처리하기로 했다.
김종헌은 2000. 6. 5. 15:00경 한국산업은행을 찾아가서 현대계열Ⅱ팀장인 이강우와 4,000억 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자금에 대한 대출을 신청했으나, 이강우는 이미 2000. 5. 18. 현대상선에 1,000억 원의 자금이 일시당좌대월로 지원되어 현대상선에 추가적인 유동성 위기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동일차주 신용공여한도 초과 등의 문제로 사실상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박상배에게 보고했으나 실무자가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며 대출을 지시했다.
이강우는 박상배의 대출 지시가 있은 후 현대상선이 부채현황표를 제출하지 않아 현대상선의 채무상환능력, 긴급한 자금의 필요성에 관해 분석하지 못한 상태로 2000. 6. 7. 오전에 현대상선에 대하여 4,000억 원을 2000. 6. 30을 만기로 하여 아무런 담보나 보증없이 일시당좌대월로 대출해 주었다.
- 일시당좌대월의 경우 만기연장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만기일인 2000. 6. 30.에 일시당좌대월로 신규승인(만기를 2000. 9. 28)하여 대환조치 하였으며, 2000. 9. 27. 300억 원을 상환받고 나머지는 같은 방법으로 만기를 2000. 10. 26.까지 연장하고, 2000. 10. 26. 1,400억 원을 상환받았으며 나머지 대출금에 대해 그 날 외화자원운영자금 1,000억 원과 일시당좌대월 1,300억 원의 신규대출로 대환한 후에 만기연장을 거듭하다가 2003. 1. 16. 전액 상환받았다.
현대상선은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억 원을 대출받은 후에 1,000억 원은 차입금으로 처리했으나, 나머지3,000억 원은 회계처리를 하지 않고 있다가 2000. 6. 10. 700억 원을 가수금 계정으로, 2000. 6. 15. 65억 원을 가수금 계정으로 각각 기표했으며, 2000. 10. 26. 2,170억 원을 자동차 선박 2척과 유조선 1척을 구입한 것으로 처리하였고,나머지 130억 원은 운항비(가수금에 기표한 65억 원을 포함하여)로 기표하는 등 회계를 분식하였다.
○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김종헌 현대상선 상무는 2000. 6. 7. 한국산업은행측으로부터 1개 지점에서 4,000억 원을 전액 인출하면 외부에 쉽게 노출될 수 있으니 3개 지점에서 분할하여 당좌를 개설한 후 인출하라는 요청을 받고, 한국산업은행 구로지점에서 1,000억 원, 여의도지점에서 2,000억 원, 본점 영업부에서 1,000억 원 등 합계 4,000억 원을 인출한 후에, 그 날 오후 김충식의 지시로 현대건설의 기업어음(CP) 1,000억 원을 매입하고 나머지는 일단 금고에 보관하였다.
정몽헌, 김윤규, 이익치 등은 현대상선에서 북한측으로 2억 달러를 바로 송금할 경우 여러 가지 법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파장이 있을 것을 예상하여 국정원의 협조를 얻어 송금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고, 김윤규가 국정원 대북전략국장 A씨를 통해 국정원에서 2억 달러의 환전 편의를 제공해 줄 것을 제의했으며, 임동원은 A씨로부터 그와 같은 내용의 보고를 받은 후에 당시 국정원의 자금관리 등 행정지원업무를 담당하던 최규백 기획조정실장을 통하여 기획조정실 예산관 B씨, 지출관 C씨에게 현대측에 협조하여 환전편의를 제공할 것을 지시하였다.
김윤규, 김충식이 2000. 6. 8. 서울 서초구 양재동 소재 교육문화회관에서 B씨, C씨를 만난 자리에서 국정원에서 환전뿐만 아니라 송금 편의도 제공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최규백을 통해 보고를 받은 임동원은 송금 편의도 제공해 줄 것을 지시하였다. 한편 최규백은 그 날 오후 B씨와 C씨로부터 송금 절차가 어려워서 외환은행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보고를 받고 자신의 사무실에서 당시 외환은행장인 D씨를 만나 협조를 구했으며, D씨는 외환업무부장 F씨, 영업부장 E씨로부터 아태위원회가 지정하는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에 개설된 북한측 계좌로 2000. 6. 9.까지 송금하기 위해서는 중국은행 서울지점을 통해서 송금하는 수밖에 없다는 보고를 받고서는 F씨로 하여금 C씨를 2000. 6. 9. 14:00경에 외환은행 본점에서 만나 중국은행 서울지점을 통해 아태위원회가 지정하는 계좌로 송금하는 것을 도와주도록 지시하였다(*당시 국정원에서는 실무자인 C씨가 보안유지 등 제반 문제로 인해 국정원의 명의로는 송금이 힘들다고 보고하자, 국정원 직원 5명의 실명으로 송금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점에 대해 C씨는 F씨를 만나서 미리 협조를 부탁해 두었다).
김윤규, 김충식은 2000. 6. 8. 서울 서초구 양재동 소재 교육문화회관에서 B씨, C씨를 만나 북한측에 송금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한 후, 김충식은 금고에 보관하고 있던 3,000억 원 중 2,240억 원(100억 원 수표 22장, 10억 원 수표 4장)을 준비하여 2000. 6. 9. 오후에 외환은행 본점 앞 상호불상 커피숍에서 C씨를 만나 그 돈과 아태위원회가 지정하는 계좌번호 5개가 적힌 서류를 전달했고, C씨는 혼자 외환은행 본점으로 들어가서 F씨, E씨, 윤근철(실무자로서 당시 외화송금계 과장)의 도움으로 김충식이 건네 준 돈을 2억 달러로 환전한 다음 국정원 직원 5명의 명의로 3,700만 달러, 3,800만 달러, 4,300만 달러, 3,700만 달러, 4,500만 달러로 분산하여 중국은행 서울지점을 통해 아태위원회가 지정한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 계좌 중 3개 계좌로 송금하였다.
위와 같이 송금된 2억 달러 중 4,500만 달러 부분이 수취인의 계좌명과 계좌번호가 일치하지 않아 제대로 송금되지 않아서(이러한 사실은 국정원에서 먼저 알고 외환은행측에 알려 주었다), 김충식과 C씨가 2000. 6. 12. 다시 만나 계좌명과 계좌번호를 정정하여 송금하였다(*그러한 과정 중에 북한측에서는 2000. 6. 10. 국정원에 전화통지문 형식으로 정상회담을 하루 연기한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 현대건설의 대북송금
현대건설은 북한측에 송금할 1억 5,000만 달러를 자체적으로 마련하기가 어려워서 현대상선이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000억 원 중에서 1,000억 원을 기업어음(CP) 발행의 형식으로 빌리고 643억 원 상당은 자체자금으로 충당하여 1억 5,000만 달러를 마련한 후 2000. 6. 8. 현대건설 싱가폴지사 계좌로 1억 달러, 2000. 6. 9. 현대건설 런던지사 계좌로 5,000만 달러를 각각 송금하였고, 싱가폴지사는 2000. 6. 9. HSA USA의 RNNY지점 등에 개설된 아태위원회 지정의 8개 계좌로 1억 달러를, 런던지사는 2000. 6. 9. Raiffcisen Zentral Bank의 Wien지점 등에 개설된 아태위원회 지정의 2개 계좌로 5,000만 달러를 각각 송금하였다.
○ 현대전자의 대북송금
현대전자 대표이사 H씨는 당시 현대전자가 채권단에게 일일보고를 해야 하고 외국계 은행에서 실사를 하고 있어서 직접 북한측 계좌로 송금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현대건설 관리본부장 G씨 협의하여 현대건설에서 현대전자 대신 1억 달러를 북한측에 송금해 주기로 하고, 2000. 6. 9. 현대전자 일본법인에서 2,000만 달러, 현대전자 미국법인에서 8,000만 달러를 각각 현대건설 런던지사로 송금하도록 하였다(현대전자 미국법인에서 송금한 8,000만 달러는 2000. 6. 12.에 이르러서야 입금처리 되었다). 현대건설 런던지사는 Raiffcisen Zentral Bank의 Wien지점 등에 개설된 아태위원회 지정의 3개 계좌로 2000. 6. 9. 2,000만 달러, 6. 12. 8,000만 달러를 각각 송금하였다.
※현대건설은 현대전자로부터 송금받은 후에 북한측에 송금한 1억 달러에 대하여는 회계처리하지 않았고, 자체적으로 조달하여 송금한 1억 5,000만 달러에 대해여는 본지사 계정처리하여 본사와 지사 사이에 채권·채무관계가 발생한 것처럼 허위로 기표하였다.
○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그 이후의 경과
현대가 4억 5,000만 달러를 모두 북한측에 송금한 후 2000. 6. 13.부터 2000. 6. 15.까지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그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시나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회담대표단·선발대가 방북할 때에도 모두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증명서를 발급받고 북한 주민 등 접촉승인절차를 밟았다), 그 후 현대는 대북사업권 협상을 본격적으로 진행시켜 2000. 8. 22. 공업지구 건설 및 북쪽 사회간접자본시설 사업 등에 관한 포괄적인 '합의서'를 체결함과 동시에 이를 구체화하는 '금강산, 통천, 원산지구 협력사업에 관한 합의서', '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 '경제협력사업권에 관한 합의서' 및 '철도, 통신, 전력 등 7대 사업에 관한 부속 합의서', '문화, 체육 교류에 관한 합의서', '일반 협력사업에 관한 합의서' 등을 체결하여 남북경제협력사업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에 있고, 우리 정부는 2000. 12. 16. 북한과 상호간의 투자자 및 투자자산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보장하고 상대방의 과세권을 인정하며 중재판정에 대하여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남북 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 '남북 사이의 소득에 관한 이중과세방지 합의서', '남북 사이의 상사분쟁 해결절차에 관한 합의서', '남북 사이의 청산결제에 관한 합의서' 등을 체결하였으며, 우리 국회는 2003. 6. 30. 우리 정부와 북한의 위 각 합의서 체결동의안을 가결하였다.
□ 대북송금 자금마련 상황 요약 (* 자세한 내용은 위 본문 참조)
○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조건으로 북한에 대해
- 김대중 정부는 정부차원 1억 달러 지급을 약속하였고, 박지원은 이 1억 달러를 현대에서 대신 지급해 달라고 정몽헌에게 요청하였고, 정몽헌은 이를 수락하였다.
- 현대는 4억 달러 지급을 약속했고, 3억 5,000만 달러는 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5,000만 달러는 현물로 갈음하기로 했다. 이 현금 부담분 3억 5,000만 달러에 대해 정몽헌은 현대상선은 2억 달러, 현대건설은 1억 5,000만 달러, 현대전자 1억 달러로 각 분할하여 부담하게 지시했다. (* 이 3개 계열사 모금 총 4억 5천만 달러는 현대가 북에 약속한 현금 3억 5천만 달러와 현대가 대신 지급하기로 한 정부의 북에 대한 1억 달러를 포함한 금액의 합이다)
○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대상선은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억의 부당대출을 받은 자금으로 2억 달러를 송금했고, 현대건설은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 대출받은 위 4,000억원에서 1,000억 원을 빌리고 643억 원 상당은 자체자금으로 충당하여 1억 5,000만 달러를 마련한 후 송금했으며, 현대전자는 일본법인에서 2,000만 달러, 미국법인에서 8,000만 달러를 마련해 송금하였다.
※ 정부 및 현대의 대북 송금 총 금액은 5억 달러이다.
· 정부 1억 달러 + 현대 4억달러(현금 3억 5천만 달러 + 현물 5천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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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공산주의자’ 고영주는 “3000만원 배상하라" (0) | 2016.09.30 |
[대북송금·현대비자금]주인없는 돈 121억원, 박지원이 아니라니… 임자를 찾다 (0) | 2016.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