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28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27일 오후 210분경. 대법원이 이광재 강원도지사에게 유죄 확정판결을 선고한 직후 황급히 법정을 빠져나와 차에 오르려던 이 지사의 부인 이정숙 씨는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베이지색 코트 차림의 이 씨는 법정을 나서자마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연방 눈물을 닦아냈다.


차한성 대법관이 피고인 이광재와 검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고 주문을 읽은 직후 일말의 희망을 품고 법정 안팎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 지사의 지지자들도 유죄가 확실하냐고 서로 물으며 당혹스러워했다.



이광재 서갑원 울고 박진 이상철 웃어

 

이 지사를 포함해 박연차 게이트관련자 7명에 대한 대법원의 상고심 선고가 열린 이날의 최대 관심사는 이 지사와 서갑원, 박진 두 현직 국회의원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가였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진술의 신빙성을 놓고 대법원 소부(小部)마다 판단이 엇갈린 것처럼 세 정치인의 운명도 희비가 엇갈렸다. 이 지사는 20064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의 한 식당에서 박 전 회장에게서 5만 달러를 받는 등 모두 95000달러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판단돼 지사직을 상실했다. 서 의원도 20067월 미국 뉴욕의 한 식당에서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는 무죄가 났지만 같은 해 5월 박 전 회장 소유의 골프장에서 50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유죄로 인정돼 의원직을 잃게 됐다.


박연차 게이트'의 대법원 선고가 내려진 27일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벌금 80만원으로 의원직 유지

    이광재 강원도지사와 민주당 서갑원 의원은 지사직과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2011.01.27)

 

반면 박 의원은 20083월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박 전 회장에게서 편지봉투에 든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재판부가 박 전 회장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하고 1000만 원의 차명 정치후원금을 받은 부분만 벌금 80만 원을 선고하면서 가까스로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박 전 회장에게서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던 이상철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박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아 무죄를 확정했다.

 

박연차의 ’ 1612

 

이로써 박연차 게이트는 재판에 회부된 21명 중 박 전 회장 본인과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을 제외한 19명이 모두 확정판결을 받으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 착수 22개월여 만에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20081119일 대검찰청 중수부가 세종증권을 압수수색한 이후 27일까지 정확히 800일이 걸렸다. 유죄가 확정된 17명의 추징금과 벌금은 총 1003438만 원. 박 전 회장(300억 원)과 천 회장(71억 원)의 항소심 벌금까지 합치면 무려 471억 원에 이른다.

 

박 전 회장의 진술이 가장 중요한 증거였던 이들의 재판에서 박 전 회장의 돈을 줬다는 진술이 인정되지 않은 것은 박 의원과 이 전 부시장 2명뿐이다. 김정권 한나라당 의원은 이에 앞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법원이 검찰의 법률 적용이 잘못됐다며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은 경우였다. 박 전 회장의 은 이날 박 의원과 이 전 부시장의 무죄 확정판결로 불패(不敗) 신화는 깨졌지만 ‘161(김정권) 2(박진 이상철)’로 사실상 완승을 거뒀다.

 

박연차 게이트는 연루된 인물들의 무게를 놓고 볼 때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권력형 부패사건이었다. 이 도지사와 서 의원을 비롯해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박정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 걸려들었다. 전직 국회의장 2명은 물론이고 이명박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천 회장,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추부길 씨 등 현 정권 인사들도 줄줄이 법정에 서야 했다.

 

수사 도중 터진 노 전 대통령 서거로 거센 후폭풍을 맞긴 했지만, ·현 정권의 실력자들이 재판 과정에서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검찰 안팎에서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성공한 수사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