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 태생인 박지원은 1972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뒤, 뉴욕 한인회장, 미주지역한인회 총연합회장을 지냈다. 80년대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망명시절부터 김 대통령을 돕기 시작했고, 92년 대통령선거에 앞서 귀국하여 DJ맨이 돼 정계에 진출했다. 김대중 정부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1년 4개월간 동안 부통령 소리까지 들었다.

박지원은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대북 비밀특사 역할까지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5정상회담(2000.6.13~6.15)이 이루어진 그해 8월에는 국내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을 주도하고 인솔하기도 했다. 이 언론사 사장단 방북은 2000년 8월 5일부터 12일까지 7박 8일간 이뤄졌다. 

▲ 김대중과 김정일의 6.15 남북공동선언 서명(2000.6.15), 옆자리에 배석(陪席)해 있는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

▌46개 언론사 사장단 방북

국내 46개 언론사 사장단 방북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청으로 이뤄졌다. 그동안 일부 언론사가 개별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사례는 있었지만 언론사 사장단이 방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동아일보 오명 사장은 막판에 불참을 결정 했다. 방문단에는 문화관광부 소속 기록 요원 4명과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사무국장 등 행정 요원 5명이 동행했다.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은 2000년 7월 16일부터 18일까지 양측의 실무대표단이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3차례의 실무접촉에서 방북일정과 규모 등을 합의함에 따라 성사되게 됐다.

정부는 8월 5일부터 12일까지 북한을 방문하는 남한 언론사 사장단 명단을 한국신문협회 최학래 회장과 방송협회 박권상 회장으로부터 통보받아 7월 24일 확정 발표했다. 나중에는 불참 결정을 했지만 이때 명단에는 오명 동아일보 사장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명단은 신문·방송협회가 서로 협의해 자율적으로 결정했으며, 정부는 이 명단을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통해 북한에 전달했다.

그러나 동아일보사는 같은 날 24일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에 불참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사도 사장단 명단에서 방상훈 사장을 제외시켜 줄 것을 25일 한국신문협회에 요청했다. 이 명단과 관련하여 조선일보 등 특정 언론사의 북측 거부설 등 말들이 많았다. 이전부터 북한은 특정 언론에 대한 기피현상과 길들이기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당시 KBS와 조선일보에 기피증을 보이면서 뜸을 들인 북한의 남한 언론 길들이기는 2000년 당시 6월 말 금강산 남북적십자회담을 계기로 조선일보 기자의 선별적 입북취재 거부를 관철시킨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 사장단 방북에 조선일보를 제외시킬 것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방문단 일행 56명은 8월 5일 오전 10시20분 김포공항을 떠나 중국 베이징을 거쳐 이날 오후 3시30분께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에 도착해 정하철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장과 강능수 정부공보위원회 위원장 겸 문화상, 최칠남 노동신문사 책임주필, 김기룡 조선중앙통신사 사장 등 정부와 언론기관대표 20여명의 영접을 받았다. 이들은 도착 후 12일까지 8일간 평양에 머물렀다. 8일간의 북한 체류일정을 마치고 12일 오후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해 서해를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 김정일과 박지원 장관 및 언론사 사장단

북, 언론사 사장단 국빈급 예우

북한 측은 방북한 남한 언론사 사장단 46명에게 국빈급 예우를 했다고 한다. 당초 사장단은 6월 평양 정상회담 때 취재기자단이 묵었던 고려호텔에 머물 예정이었으나, 북측은 외국 원수들이 평양 방문 때 머무는 평양 교외 ‘봉화초대소’에 묵도록 했다. 9일부터 2박 3일간의 백두산 등정 때도 사장단 숙소는 ‘백두산호텔’로 예정됐으나, 북측은 ‘백두산 초대소’에서 휴가 중인 노동당 간부들을 철수시키고 사장단을 이곳에 묵게 했다. 북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지시”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또 박권상 방송협회장, 최학래 신문협회장 등에게는 국빈용 벤츠500 차량을 제공했다고 한다.

남북언론 비방중지 합의문 교환

한국 46개 언론사 사장단은 11일 평양에서 최칠남 노동신문 책임 주필 등 북한 언론기관 대표들과 상호 비방 중지 등 5개항을 골자로 하는 합의문을 교환했다. 방북단 공동 단장인 최학래 한국신문협회장(한겨레신문 사장)과 노동신문 최칠남 주필이 서명한 합의문은 ▲민족 단합을 이루고 통일 실현에 도움이 되는 언론 활동 전개 ▲비방 중상 중지 ▲접촉 왕래 등 교류 ▲접촉 창구 마련 ▲북한 언론기관 대표 서울방문 등 5개항으로 돼있다.

방북 언론사 대표단은 이날 합의에 따라 신문협회와 한국방송협회 등 주요 언론단체들이 참여하는 ‘남북 언론교류 협력위원회’를 구성, 북한의 조선기자동맹 중앙위원회와 교류 협력과 관련한 연락·협의 업무를 맡게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정일은 2000년 6·15 정상회담과 같은 해 8월 국내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 면담 등에서도 여러 가지를 약속했었다. 6·15 때 추상적으로 제기된 자주적 통일, 남북연합과 연방제를 조화시킨 통일논의 등을 제외하면, 주요 약속 9개 중 4개 정도가 지켜졌다고 할 수 있다.

○ 김정일위원장 · 방북언론사장단 대화록

방북 언론사 대표단은 12일 낮 12시부터 3시30분까지 평양시 중구 목란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찬을 하고 대화를 나눴다. 오찬에는 북한측에서 당·정·언론계 고위인사 30여명이 참석하고 우리측에서는 방북언론사 대표단 56명 전원이 참석했다. 오찬에 앞서 접견실에서 신문협회와 방송협회 회장단은 김 국방위원장과 약 20분간 환담했다.

≫ 관련 대화록 “김정일 초정 방문, 46개 언론사 사장단과 김정일의 대화록(2000.8.12)

북 월간지, 2000년 남측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 뒷얘기 공개

북한 월간지가 2000년 8월 남측 언론사 사장단 방북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언론사 사장단의 일화와 대화 내용을 몇 가지 소개했다. 북한 월간지 ‘금수강산’ 8월호는 ‘언론사 대표단을 접견하시여’라는 글에서 김 위원장은 당시 중앙일보 사장의 생일을 축하해 주라고 북측 간부에게 특별히 지시했다고 전했다.

남측 언론사 사장단의 백두산 관광 도중 북측 간부가 중앙일보 사장을 찾아와 “영도자(김 위원장)께서 오늘이 선생의 생일이니 가서 축하해 주라고 하셨다”라고 전했다. 이에 중앙일보 사장은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사실에 할 말을 잊고 굳어진 채 움직일 줄 몰랐다”는 것. 그래서 이날 저녁 김 위원장이 태어난 곳으로 북한이 선전하는 ‘백두산 밀영 고향집’이 자리잡은 소백수 기슭에서 중앙일보 사장의 생일축하연이 크게 열렸다는 것이다. 월간지는 당시 중앙일보 사장(금창태씨)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이 월간지는 당시 김 위원장은 현지 지도차 평양에서 먼 지방에 있었으나 사장단을 반드시 만나겠다며 8월 12일 새벽 1시에 평양으로 올라와 낮 12시부터 3시간20분 동안 사장단과 담화하고 오찬을 함께 했다고 전했다.

오찬 중 김 위원장은 남측의 한 언론사 사장에게 “기자 생활을 몇 년 했는가”라고 물었고, 그 사장이 ‘30년간”이라고 하자 김 위원장은 “80%는 반북선전을 해왔겠구만”이라고 호탕하게 웃으면서 “손에 든 술잔을 속죄의 술로 마시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 북과 남이 힘을 합치면 대국이 될 수 있다. 덮어놓을 것은 덮어놓고 조국통일 위업을 실현하기 위해 당면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자”라고 말했다.

월간지는 또 당시 사장단에 포함됐던 한 ‘반공보수’ 언론사 사장이 김 위원장을 가리켜 처음에는 ‘정말 호탕하십니다’라고 했고, 이어 ‘참인간이십니다’, 세 번째에는 엄지손가락을 흔들면서 ‘세계 그 어디에 나서시어도 단연 제일이십니다’라고 격찬했다고 했으나 그 사장이 누군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이 흔히 김 위원장과 관련된 보도를 사실과 다르게 해왔다는 점에서 이 같은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 언론사 방북단 대화 내용 공개 협박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지난 2012년 6월 11일 공개질문장에서 정부·여당 인사들 외에 1998년 방북한 동아일보 회장, 2000년 8월 방북한 국내 46개 언론사(조선·동아 제외) 사장단에 대해서도 "종북 빨갱이가 아니냐"고 했다.

동아일보에 대해서는 "보천보전투 소식을 전한 보도기사 원판을 만들어 갖고 우리를 찾아왔다"고 했다. 보천보전투는 1937년 6월 4일 김일성 항일유격대가 함경남도(현 양강도) 보천보를 습격해 일경(日警) 수명을 사살한 사건이다.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은 1998년 10월 방북 당시 이 전투를 보도한 동아일보 호외를 순금으로 제작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했다.

북한 조평통은 KBS와 SBS, 중앙일보에 대해서는 "우리 최고수뇌부의 접견을 받고 축배 잔까지 들었으며 주체사상탑, 백두산 밀영, 삼지연대기념비, 국제친선관람관 등을 돌아보고 공감을 표시했다"고 했다.

한국 언론의 편향적 보도형태, 박지원과 언론사에 대한 의문

지금까지 이어온 박지원 의원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형태를 살펴보면 너무나 관용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삶의 역사를 살펴보면 너무나도 많은 의혹과 비리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언론들은 이에 관해 강하게 의혹을 제기한 적이 내 기억에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이 정도가 되었다면 지금까지 수 많은 난타를 당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왜 그럴까? 그래서 당연히 떠오르는 생각이 언론이 박지원에게 약점 잡힌 무언가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떠오르게 되는 하나의 예가 바로 이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과 관련한 의구심이다. 이들이 북한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 북한으로부터 어떤 공작을 당하여 코가 꿰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작이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이 약점을 박지원이 알고 있고, 결국 이것이 묵시적인 압박으로 언론사 사주들의 입을 봉하게 되는, 즉 해당 언론사들이 위 설시한 바와 같은 결과의 보도행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각 언론사들이 그렇게 모두가 한결같이 그런 기조를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아시는 분들에게는 유명한, 50여년간을 언론인으로서 수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활동해 오신 ‘인사이드 월드’의 발행인 겸 편집인이셨던 손충무(1940.11.2~2010.10.9) 선생께서 말씀하신 “대한민국 언론인 중에 박지원이 돈 안먹은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고 해” 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또 그 하나의 방증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언론기관 공동합의문≫
남측 언론사 대표단은 2000년 8월 5일부터 12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였다. 남과 북의 언론사들과 언론기관들은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이 조국통일 실현에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인정하고 그 이행에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첫째, 남과 북의 언론사들과 언론기관들은 민족의 단합을 이룩하고 통일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언론활동을 적극 벌여 나가기로 한다.
둘째, 남과 북의 언론사들과 언론기관들은 새롭게 조성된 정세의 흐름에 맞게 민족 내부에서 대결을 피하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저해하는 비방중상을 중지하기로 한다.
셋째, 남과 북의 언론사들과 언론기관들은 언론, 보도활동에서 서로 협력하며 접촉과 왕래, 교류를 통하여 상호이해와 신뢰를 두터 이 해 나가기로 한다.
넷째, 남과 북 언론기관들의 접촉은, 남측에서는 한국신문협회와 한국방송협회를 비롯한 주요 언론단체들의 대표가 참여하는 ‘남북언론교류협력위원회’ 가, 북측에서는 ‘조선기자동맹중앙위원회’ 가 맡아 하기로 한다.
다섯째, 남측 언론사 대표단은 북측에서 초청한 데 대한 답례로 북측 언론기관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초청하였으며 북측은 앞으로 적당한 기회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8월 11일
남측 언론사들을 대표하여 ‘한국신문협회’ 회장 최학래
북측 언론기관들을 대표하여 ‘로동신문’ 책임주필 최칠남

※ 김정일은 2000년 6·15정상회담 후 수차 답방을 할 것처럼 말해 왔다. 6·15 직후 국내 언론사 사장단과의 면담에서 답방을 재확인했고, 2004년 4월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적절한 시기에 남조선을 방문할 것”이라고 중국 지도부에 말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까. 2006년 7월 발간된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저서에는 ‘미국 대선에서 조지 부시 후보가 당선된 뒤 국제 정세의 변화로 답방효과에 대한 예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김 위원장이 직접 밝힌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관계 당국에선 김 위원장이 아직도 자신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의 ‘안전문제’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점을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한다. 그간 서울이 아닌 제주도나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등이 대체 장소로 검토됐던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정보 당국의 한 관계자는 “(답방은) 경호 등 안전문제 때문에 불가능할 것으로 보아왔다”면서 “김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한 후 중국·러시아 등 사회주의 동맹국 외에 방문한 적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46개 언론사 사장단 명단

 문화관광부장관 박지원

 공동 단장

▲ 최학래, 박권상

• 《한겨레》 사장 최학래(신문협회 회장)
• 《한국방송공사》 사장 박권상(방송협회 회장)

 신문 부단장

▲ 이종대, 차일석, 금창태

• 《국민일보》 사장 이종대
• 《대한매일》 사장 차일석
• 《중앙일보》 사장 금창태

 방송 부단장

▲ 노성대, 송도균

• 《문화방송》 사장 노성대
• 《서울방송》 사장 송도균

▮ 단원
• 《경향신문》 사장 장준봉
• 《문화일보》회장 김진현
• 《세계일보》 사장 송병준
• 《한국일보》 사장 장명수
• 《매일경제신문》 사장 장대환
• 《서울경제신문》 사장 김영렬
• 《한국경제신문》 사장 김영용
• 《코리아헤랄드》 내외경제 사장 김경철
• 《전자신문》 사장 김상영
• 《국제신문》 사장 이종덕
• 《부산일보》 사장 김상훈
• 《매일신문》 사장 김부기
• 《영남일보》 사장 김경숙
• 《광주매일》 회장 고제철
• 《광주일보》 회장 김종태
• 《대전일보》 사장 윤종서
• 《경인일보》 사장 우재찬
• 《강원도민일보》 사장 안형순
• 《강원일보》 사장 최승익
• 《충청일보》 사장 서정옥
• 《경남신문》 사장 이문행
• 《제주일보》 사장 김대성
• 《인천일보》 사장 신화수
• 《기독교방송》 사장 권호경
• 《한국교육방송공사》 사장 박흥수
• 《평화방송》 사장 박신언
• 《불교방송》 사장 김규칠
• 《부산문화방송》 사장 유삼렬
• 《대구문화방송》 사장 신대근
• 《전주문화방송》 사장 장영배
• 《춘천문화방송》 사장 심상수
• 《부산방송》 사장 김성조
• 《대구방송》 사장 이길영
• 《한국방송공사》 부산방송총국 총국장 방윤현
• 《한국방송공사》 광주방송총국 총국장 김광석
• 《한국방송공사》 대전방송총국 총국장 이광호
• 《한국방송공사》 청주방송총국 총국장 남선현
• 《연합텔레비젼 뉴스*YTN》 사장 백인호
• 《경인방송》 사장 표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