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운 교수


독일경제, 2005년을 기점으로 회생하다


독일경제 이야기를 쓰다보면 특히 네 가지 통계에 놀라곤 한다. 그것은 노동시장 규제, 성장률, 실업률, 고용률이다. 이 네 가지 통계는 2005년 전후로 색깔이 전혀 다르다. 그러면 이 같은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우리는 변화의 주역이 세 번째 연임 중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라고 가볍게 대답한다. 잘못된 대답이다.

 

독일경제의 변화를 보자. 노동시장은 규제가 심하지 않기로 순위가 2000123개국 가운데 74위였는데 그 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05141개국 가운데 124위로 떨어졌다가 2013157개국 가운데 79위로 크게 개선되었다. 실업률은 1970년대부터 계속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5년 최고치인 11.3%를 기록했다가 201594.5%로 낮아져, 현재 OECD 국가 가운데 세 번째로 낮을 것 같다. 고용률은 200565.5%였는데 20143분기에 74.0%10여년 만에 8.5%포인트나 증가했다. 연평균 성장률은 1970년대에 2.7%, 1980년대에 2.6%, 1990년대에 1.4%로 감소했고, 게르하르트 슈뢰더 통치 기간인 20012005년에는 연평균 0.6%를 기록했지만 2009년 금융위기로 5.6%를 기록한 것 외에는 꽤 좋은 편이다. 이 같은 호전(好轉)은 불과 10여 년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다.

 

500여만 명 실업자 문제는 정치 문제


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 500여만 명에 이르는 실업자 문제로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인이 미래 독일을 맡아야 한다는 전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정도로 실업자 문제는 정치적으로 비중이 컸다. 199816년 만에 좌파 성향의 슈뢰더가 이끄는 사민당이 집권당이 되어 녹색당과의 연정을 통해 등장한 이른바 적록연정(赤綠聯政)의 골칫거리도 실업자 문제였다.

 

설상가상으로 독일경제는 2001년 경기 침체를 겪은 후 16개월 만에 또다시 경기 침체를 겪었다. 슈뢰더는 경기 침체의 주요 원인이 경직된 노동시장,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과 기업 규제, 지나친 사회보장제도, 해법 찾기가 쉽지 않은 통일 후유증 등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고 보았다. 무엇보다도 실업 문제 해결이 급선무였다. 적록연정을 이끌던 슈뢰더는 지지기반인 노동조합을 끌어들여 노동개혁을 추진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슈뢰더는 앞선 헬무트 콜 정부가 도입한, 소위 노··정위원회 격인 일자리 창출 연대(Alliance for Jobs)’를 바탕으로 사회적 협약을 이끌어내려고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노동개혁 합의는 적록연정 1기가 마무리되는 2002년까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민 호응을 이끌어낸 외교 정책에 힘입어 슈뢰더는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 후 분데스방크가 <Ways out of the Crisis>라는 보고서를 발간하여 독일경제의 구조적 문제점과 경제개혁의 필요성, 그리고 이를 위한 정책 및 전락 등을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슈뢰더 정부는 2003314일 연방의회에서 구조개혁안 어젠다 2010을 발표했다. 이 개혁안은 집권당인 사회민주당 내에서 90% 이상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이어 슈뢰더는 어젠다 2010이 의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총리직을 사임하겠다는 정치적 배수진까지 쳐가면서 같은 해 1017일 연방의회 표결에 부쳤다. 야당인 우파 성향의 기민당이 개혁안에 동의하여 아주 근소한 차이로 어젠다 2010이 연방의회를 통과했다. 만성적 경기 침체와 고실업의 원인이, 경쟁과 성장보다는 형평과 분배에, 효율과 공정보다는 복지와 노동권 보호에 치우쳐왔다는 공감대가 의회 내에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개혁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어젠다 2010의 핵심 내용인 하르츠 개혁은 슈뢰더의 위촉을 받고 페터 하르츠가 계획한 노동개혁이다. 어젠다 2010이 연방의회를 통과하자 슈뢰더는 독일 자체가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분배 중심의 사회주의 정책을 버리고 성장 중심의 시장경제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정책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았다. 복지 혜택 축소에 실업자뿐만 아니라 적록연정을 지지했던 노동자들마저 강하게 반발했다.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려 통일의 단초를 제공했던 월요시위2005년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15년 만에 재현되기도 했다. 사민당 내 개혁안에 반대하는 좌파 세력이 떨어져 나와 동독에 뿌리를 둔 민주사회당 계열과 연합하여 통합좌파 정당인 디 링케(Die Linke)’를 창당하기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의 저항은 결국 적록연정 2기를 조기에 마감시켰다. 사민당의 2006년 총선 참패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위기에 봉착한 슈뢰더는 2005년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선거 결과 기민당-자민당의 우파 연합이 승리했다. 정권을 넘겨받은 기민당 앙겔라 메르켈은 좌파 성향의 사민당과 좌우 대연정 정부를 출범시켰다. 메르켈은 프란츠 뮌터페링 사민당 대표를 부총리 겸 노동부장관에 지명하는 등 장관직 14자리 가운데 핵심 8개 부처 장관 자리를 사민당에 내줬다. 기민당의 여러 정책들이 좌파인 사민당 장관 벽에 가로막힐 가능성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연정이 이뤄진 것은 슈뢰더 개혁안을 고수해 경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메르켈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독일경제 회생은 슈뢰더의 정권 패배 대가


메르켈은 슈뢰더가 도입한 어젠다 2010 기조를 유지하면서 구조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250억 유로 규모의 투자 프로그램과 파격적인 출산장려책도 시행했다. 2006년부터 독일경제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특히 메르켈은 어젠다 2010에 포함된 노동개혁안을 그대로 추진하여 독일경제를 살려냄으로써 슈뢰더로부터 노동개혁은 독일경제 회생의 주역이라고 찬사를 받기도 했다. 독일경제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기간에 호전되어 앙겔라 메르켈은 현재 유럽을 호령하면서 네 번째 연임도 긍정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경제 회생의 주역은 게르하르트 슈뢰더다. 그는 20155월 한국에서 가진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정권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정책이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슈뢰더는 정권을 잃고 세 번째 연임에 실패했다. 그 대가로 독일경제는 회생했다. 독일경제 회생은 공짜가 아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는 한국의 정치가들이 마땅히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