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12
법조계·학계 '종북 지적에 명예훼손 판결’ 한목소리로 비판
“널리 사용되는 修辭적 표현 법원이 제한한다면 누가 정치인 비판할 수 있나”
이정희(45) 통합진보당 대표 부부에 대해 종북(從北) 의혹을 제기한 정치평론가·언론이 명예훼손으로 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법조계·학계 전문가들은 “널리 사용되는 수사(修辭)적 표현을 이렇게 제한한다면 누가 정치인을 비판·견제할 수 있겠느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서울고법 민사13부(재판장 고의영)는 8일 이 대표와 남편 심재환(56) 변호사가 "종북·주사파·경기동부연합 등의 표현 때문에 명예가 훼손됐다"며 정치평론가 변희재(40)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 "종북이라는 용어는 조선노동당을 추종하고 헌법 기본질서를 위협한다는 뜻"이라고 전제하고, "구체적 증거 없이 종북이라고 단정 지어선 안 된다"고 했다.
◇"정치적 논쟁거리지 법적 판단 대상 아냐”
법조계 관계자들은 일단 “종북은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할 만한 단어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종북'이나 '주사파'라는 말은 정치적 대상에 대한 비판적 표현으로,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나 사회적 합의에 따라 사용되는 말이지 명예훼손인지 아닌지를 따질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창우 변호사(전 서울변호사회 회장)는 "공당 대표·공인(公人)이라면 종북이라는 비판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정치인들이 쓰는 표현을 국민은 쓸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구체적 근거가 없더라도 의심이 되는 상황이라면 국민이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이번 판결은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헌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 공동대표도 "문제가 된 사람들(이 대표 등)의 여러 가지 행태를 보고 종북 또는 주사파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며 "이런 상대적 관점에서의 의견 표시를 명예훼손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 종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도 많이 다를 것"이라고 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도 "정치인인 이 대표가 공식적으로 부인하면 될 일이지, 종북이라 비판한 사람들에게 배상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언론 비판·견제 기능 위축 우려”
변씨의 글을 인용 보도한 언론까지 배상 책임을 물은 부분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언론이 이런 말을 못하면 누가 정치인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비판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법원은 변씨의 주장을 인용 보도한 조선일보와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에 각각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종북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전제하면서 "종북이라는 표현이 이 대표 부부의 명성에 해를 미쳤다고 했는데, 언론은 누군가의 명성에 해가 되는 이야기라도 공익(公益)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만 변호사(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는 "종북은 어떤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언론이 이런 표현으로 정치인을 비판했다고 해서 법적 책임을 물으면 표현의 자유가 제약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이정희 대표에 대해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서기도 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상당한 평가를 거쳤다” “종북으로 단정될 근거가 없다"고 평가한 부분을 놓고도 다른 의견이 나왔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 대표가 이끄는 통진당은 '헌법 질서를 문란케 하는 북한 추종 조직'이라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정당해산심판이 제기됐고 그 당의 핵심인 이석기 의원은 내란 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국회의원이고 대선 후보였던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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