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교수

. 사건의 개요

1. 당시의 정치적 역학관계와 탄핵소추의 정치적 배경

2004312일 국회에서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었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하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정치적 역학관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쉽게 납득될 수 없는 일이다. 그 동안 국회 내에서 여소야대의 현상이 나타난 예는 적지 않았지만 여당이 재적의원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경우는 찾기 어려우며, 여소야대 국회에서도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를 강행할 정도의 정치적 갈등을 보인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국회의 탄핵소추가 있었던 요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에는 국회를 통과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2004년 당시의 국회에서 의결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세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될 수 있다.

첫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 약칭)의 후보로 출마하여 20021219일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에도 노무현은 민주당 내에서의 입지가 약한 편이었으며, 당지도부와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을 탈당하였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20031111일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었다. 이러한 민주당의 분당사태로 인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선거에서 대립하였던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속정당이었던 민주당과도 매우 불편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 결과 국회의 압도적 다수세력이 탄핵소추에 찬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국회 내에서 반 노무현 세력이 커지게 된 것에는 이와 같은 열린우리당의 창당으로 인한 민주당의 반발 이외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독특한 정치색깔과 그로 인하여 야기된 정치적 갈등이 적지 않게 작용하였다. 과거의 정치계보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하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인 한나라당 중심의 보수계층과 정치적 색깔을 달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비주류였으며, 이러한 사정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는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어 한국의 기존 정치집단들과 충돌하고 언론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여 언론과의 관계도 순탄치 않아 집권기간에도 끊임없는 정치적 갈등을 겪어야 했다.

셋째, 국회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주도에 의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발의되고 의결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반대여론이 매우 뜨겁게 끓어올랐으나, 국회의 다수의원들은 이를 무시하였다. 이렇게 국민의 의사를 외면하고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평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던 국민들까지도 탄핵소추에 반대하는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등 반대여론이 더욱 격렬해졌고, 이러한 반대여론 속에서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참패하고 열린우리당이 과반의 의석을 차지하는 등 이른바 탄핵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이러한 결과가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국회의원들의 국민 의사에 대한 무지 내지 무시가 탄핵소추 의결을 가능케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과정과 탄핵소추의 사유

국회는 2004.3.12. 246회 국회(임시회) 2차 본회의에서 유용태·홍사덕 의원 외 157인이 발의한 대통령(노무현)탄핵소추안을 상정하여 재적의원 271인 중 193인의 찬성으로 가결하였다. 소추위원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김기춘은 헌법재판소법 제49조 제2항에 따라 소추의결서의 정본을 같은 날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여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청구하였다.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를 통해 확인되는 탄핵소추의 사유는 가. 국법질서 문란, . 권력형 부정부패, . 국정파탄의 세 가지로 정리된다.

. 국법질서 문란

(1) 특정 정당을 지지한 행위 등

피청구인은 2004. 2. 18. 경인지역 6개 언론사와의 합동기자회견에서,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발언하고, 같은 달 24.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4년 제대로 하게 해 줄 것인지 못 견뎌서 내려오게 할 것인지 국민이 분명하게 해줄 것”,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 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발언하여,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이하 공선법이라 함) 9조 제1, 60조 제1, 85조 제1, 86조 제1, 255조 제1항을 위반하였다.

피청구인은 2003. 12. 19. 이른바 노사모가 주최한 리멤버 1219’ 행사에 참석하여 시민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나서달라.”고 발언하고, 2004. 2. 5. 강원지역 언론인 간담회에서 “‘국참 0415’ 같은 사람들의 정치참여를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허용하고 장려해 주어야 한다.”고 발언하여, 공선법 제9조 제1, 59, 87조 및 헌법 제69조를 위반하였다.

2004. 2. 27.자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17대 총선 열린우리당 전략기획이라는 문건에는 총선후보 영입을 위해 , 정부, 청와대가 함께 참여하는 컨트롤 타워 구성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고, ‘··이라는 총선 위주의 국정운영 순위를 매겨놓고 있는바, 이는 청와대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을 확인하는 것으로서 피청구인이 이와 같이 특정 정당의 총선전략을 지휘한 것은 공선법 제9조 제1, 86조 제1항 제2호를 위반한 것이다.

피청구인은 2004. 1. 14. 연두기자회견에서, “개혁을 지지한 사람과 개혁이 불안해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갈라졌고, 대선 때 날 지지한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을 하고 있어 함께 하고 싶다.”고 발언하고, 2003.12.24. 측근들과의 회동에서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다.”고 발언하여, 공선법 제9조 제1, 헌법 제8조 제3, 11조 제1항을 위반하였다.

피청구인은 국민을 협박하여 특정 정당 지지를 유도하고 총선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언행을 반복함으로써 공선법 제237조 제1항 제3, 헌법 제10, 19, 24조를 위반하였다.

(2) 헌법기관을 경시한 행위 등

피청구인은 2003. 4. 25. 국회인사청문회의 고영구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판정을 묵살함으로써 헌법 제66조 제2, 69, 78, 국가정보원법 제7조 제1항을 위반하였다.

피청구인은 2003. 5. 8. 대국민 인터넷 서신을 통하여 현직 국회의원들을 뽑아버려야 할 잡초라는 취지로 표현함으로써 헌법 제66조 제2, 69, 국가공무원법 제63, 형법 제311조를 위반하였다.

피청구인은 2003. 9. 3.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 해임건의안 의결을 수용하는 것을 해태하여 거부하는 듯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헌법 제63조 제1, 66조 제2, 69조를 위반하였다.

피청구인은 2004. 3. 4.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하여 선거중립의무의 준수를 요청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같은 날 현행 선거관련법에 대해 관권선거시대의 유물이라고 폄하하고, 같은 달 8. 자신의 공선법 제9조 위반행위를 경미한 것’, ‘미약하고 모호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함으로써, 헌법 제40, 66조 제2, 69조를 위반하였다.

피청구인은 2004. 3. 8. 국회의 탄핵 추진에 대하여 부당한 횡포라고 발언하여 헌법 제65조 제1, 66조 제2, 69조를 위반하였다.

피청구인은 2003. 10. 10. 기자회견에서 최도술의 SK비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하여 수사가 끝나면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해 그 동안 축적된 국민 불신에 대해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발언하고, 같은 달 13. 국회에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국민투표는 법리상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면 현행법으로도 가능할 것”, “정책과 결부시키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지만 그렇게 안 하는 것이 좋겠고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겠다.”, “재신임을 받을 경우 연내에 내각과 청와대를 개편하고 국정쇄신을 단행할 계획이라고 발언하여, 헌법 제66조 제2, 69, 72조를 위반하였다.

. 권력형 부정부패

(1) 썬앤문 관련 불법정치자금 수수 등

피청구인은 2002. 6. 안희정으로 하여금 썬앤문(대표 문병욱)에 대한 감세청탁을 국세청에 하도록 하여 썬앤문의 세금 171억 원이 23억 원으로 감액되었는바, 이는 형법 제129조 제2,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3조를 위반한 것이다.

피청구인은 2002. 11. 9. 서울 리츠칼튼호텔 일식당에서 이광재의 주선으로 문병욱과의 조찬 자리에 참석하였고, 피청구인이 조찬을 마치고 나간 직후 이광재는 문병욱으로부터 1억 원을 수수하였는데, 이는 정치자금에관한법률(이하 자금법이라 함) 30, 형법 제32조 위반에 해당한다.

피청구인은 2002. 7. 7. 김해관광호텔에서 문병욱으로부터 돈뭉치 2(1억 원 정도로 추정)를 받아 수행비서 여택수에게 건네줌으로써 형법 제129, 국가공무원법 제61, 자금법 제30조를 위반하였다.

(2) 대선캠프 관련 불법정치자금 수수

노무현 대선캠프의 정대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9억 원, 이상수 총무위원장은 7억 원, 이재정 유세본부장은 10억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각각 수수, 이를 노무현 대선캠프에 전달하였는데, 피청구인은 여기에 관여하였으므로 자금법 제30조 위반에 해당한다.

(3) 측근비리 연루

최도술과 관련된 비리

최도술은 2002. 5. 장수천과 관련한 피청구인의 채무변제를 위해 새천년민주당 부산지역 선거대책위원회 계좌에 남아 있던 지방선거 잔금 중 25천만 원을 횡령하여 장수천 대표 선봉술에게 전달하였고, 2002. 12.부터 2003. 2. 6. 사이에 장수천 채무변제를 위해 불법자금 5억 원을 모아 선봉술에게 전달하였으며, 2002. 3.부터 같은 해 4. 사이에 피청구인의 대통령후보 경선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차명계좌를 통해 1억 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하였고, 대통령선거 이후 넥센타이어 등에서 29,650만 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하였으며,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삼성 등으로부터 47백만 원을 수수하였고, 대통령선거 직후 SK로부터 11억 원 가량의 양도성예금증서를 받았는바, 이러한 최도술의 행위는 피청구인의 지시나 묵인이 없으면 불가능하므로, 피청구인의 이러한 행위는 국가공무원법 제61조 제1, 자금법 제30, 범죄수익은닉의규제및처벌등에관한법률 제3, 형법 제129, 356, 31, 32조 위반에 해당한다.

안희정과 관련된 비리

2002. 8. 29.부터 2003. 2. 사이에 강금원은 이기명 소유의 땅을 위장 매매하는 방식으로 19억 원의 불법자금을 제공하였고, 안희정은 2002. 9.부터 같은 해 12.까지 79천만 원의 불법자금을 모아 선봉술 등에게 전달하였으며, 안희정은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5천만 원, 대통령선거 당시 삼성으로부터 30억 원, 2003. 3.부터 같은 해 8. 사이에 10억 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하였는데, 피청구인은 이를 지시, 방조하였으므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2, 국가공무원법 제61조 제1, 자금법 제30, 형법 제31, 32조를 위반한 것이다.

여택수와 관련된 비리

여택수는 청와대 행정관으로 재직 시 롯데로부터 3억 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하여 그 가운데 2억 원을 열린우리당에 창당자금으로 제공하였는데, 피청구인은 여기에 관여하였으므로 국가공무원법 제61조 제1, 자금법 제30, 형법 제129, 31, 32조를 위반한 것이다.

양길승과 관련된 비리

청와대 부속실장이던 양길승은 2003. 6.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던 이원호로부터 향응을 제공받고 수사무마 청탁 등을 하였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4) 정계은퇴 공언

피청구인은 2003. 12. 14. 청와대 정당대표 회동에서 피청구인 측의 불법정치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할 것이라고 공언하였고, 2004. 3. 8. 현재 검찰수사 결과 7분의 1 수준에 이르고 있는데도 은퇴공약을 무시함으로써 헌법 제69, 국가공무원법 제63, 정치자금법 제30조를 위반하였다.

. 국정파탄

피청구인은 국가원수이자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국민을 통합시키고 국가발전과 경제성장에 모든 역량을 결집시킴으로써 국민의 행복추구권 보장과 복리증진을 위하여 성실히 노력하여야 할 헌법상의 책무를 저버린 채, 성장과 분배 간의 정책목표에 일관성이 없고, 노사 간의 권리의무관계에 대하여는 뚜렷한 정책방향 없이 흔들려 산업현장의 불확실성을 가중시켰으며, 정책당국자 간의 혼선과 이념적 갈등을 야기하여 경제 불안을 가중시켜왔고,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과 노력을 특정 정당의 총선 승리를 위하여 쏟아 붓는 등 불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여 왔으며, “대통령 못 해 먹겠다.”는 발언을 하거나 재신임국민투표를 제안하고, 정계은퇴를 공언하는 등으로 무책임하고 경솔한 국정운영을 함으로써 국민을 분열시키고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하여 헌법 제10, 69조를 위반하였다.

3. 피청구인의 답변 요지

. 적법요건에 대하여

첫째, 국회가 탄핵소추의 사유와 증거가 미비한 상태에서 탄핵소추를 졸속으로 의결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키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의 사유와 증거를 조사하려고 하는 것은 탄핵소추권의 남용이다.

둘째, 의사절차와 의결절차의 문제이다.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은 탄핵소추안의 의결에 참여하지 않는 소속 국회의원들을 출당시키겠다고 협박하였고, 의결과정에서도 공개투표가 행해졌으며 본회의 개의시각을 일방적으로 변경하였다.

셋째, 탄핵소추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표결권, 질의 및 토론권을 침해하였으며, 피청구인은 국회의 탄핵소추절차에서 아무런 고지나 의견제출 기회를 받지 못함으로써 적법절차를 위반하였다

. 탄핵소추사유에 대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심판권의 행사는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른 견제와 균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대단히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 제65조 제1항의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는 너무 모호하여 어떤 종류의 위법행위를 어떻게 범해야 탄핵할 수 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헌법의 기본질서와 가치, 그리고 권력기관들을 둘러싼 제도적·현실적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대통령 탄핵사유는 헌법적 가치와 기본질서를 침해하였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하고도 명백한 헌법과 법률 위배로 한정하는 것이 옳다.

이 사건 탄핵소추는 실질적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국회가 임기만료를 목전에 두고 국민이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 당리당략과 감정만을 앞세워 한 것이며, 탄핵을 할 정도의 실체적 사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신중한 조사와 숙고, 민주적 토론, 국민에 대한 설득과정 등을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처리되었다.

탄핵소추의 첫째 사유인 선거법 위반의 경우, 대통령은 정당가입이 허용되는 정치적 공무원으로서 공선법 제9조의 적용대상이 아니며, 그렇지 않더라도 그 발언내용들은 공선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소추사유인 측근비리는 상당수가 취임 전의 일이며 대통령은 이를 교사하거나 방조하는 등 가담한 일이 없고 그러한 사실이 밝혀진 바도 없어 탄핵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셋째 소추사유인 이른바 국정파탄부분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사실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의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 잘못은 탄핵사유가 되지 않는다.

4. 탄핵소추 이후의 반대 여론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전격적으로 발의될 당시만 하더라도 탄핵소추안이 실제로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국민들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탄핵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의 제지 의사 또한 강력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력저지에 나섰던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은 의장의 경호권 발동으로 퇴장당한 상태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었다.

2004312일 국회에서 의결되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탄핵소추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에 대한 비판, 그리고 탄핵반대 집회 등으로 이어지면서 한동안 탄핵정국이 계속되었다. 국민들은 거리에 나와 촛불집회로 반대의견을 표명하였고, 일각에서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한동안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반대여론의 직접적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았던 것은 2004415일 실시되었던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7대 국회의원 선거는 정치권의 지각변동이라고 일컬어질 정도의 큰 변화를 야기하였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탄핵소추 이전까지는 한나라당과 경합을 벌이던 수준이었으나 탄핵소추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확산되면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도가 급격히 높아졌으며 선거 결과 152석을 확보하여 국회재적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거대정당으로 변모하였다. 선거 이전에 최대 의석을 보유하고 있던 한나라당은 탄핵소추안의 통과 이후 지지도가 급락하였으나 영남 지역의 지지를 기반으로 121석의 의석을 확보하여 참패는 면하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전통적인 지지기반이었던 호남지역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함으로써 9석을 차지하는데 그치는 참패를 겪었다. 자유민주연합은 4석에 그침으로써 김종필 총재가 정계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지역구에서 2, 비례대표에서 8석을 차지하여 민주당을 제치고 제3당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선거결과는 탄핵소추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고스란히 표현된 것으로 분석되며, 선거일로부터 1개월 후에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 부분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들이 있다.

. 주요 쟁점

1. 최초의 탄핵심판과 쟁점들의 복잡성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로서 최초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상 최초의 탄핵소추였다. 임시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19253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탄핵 의결로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면직되었던 예가 있지만, 1945년 해방되고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로는 최초의 탄핵소추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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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석 및 평가

1. 결정의 헌법상 의의

헌법재판소의 2004헌나1 사건 결정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탄핵심판결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이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결정의 파급효 또한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당시 여당의 분당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으로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가 의결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앞으로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또 있을 수 있는지는 매우 불투명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사건 결정이 갖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 결정의 헌법적 의미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 결정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탄핵심판결정으로서 현행법에 의해 구체화되지 않은 수많은 쟁점들을 검토하는 가운데 탄핵심판의 본질과 기능, 탄핵심판의 대상과 절차, 판단기준 등과 관련한 기준을 세웠다고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결정의 중요 논거들은 향후의 탄핵심판에서도 중요한 선례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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