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었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하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정치적 역학관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쉽게 납득될 수 없는 일이다. 그 동안 국회 내에서 여소야대의 현상이 나타난 예는 적지 않았지만 여당이 재적의원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경우는 찾기 어려우며, 여소야대 국회에서도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를 강행할 정도의 정치적 갈등을 보인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국회의 탄핵소추가 있었던 요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에는 국회를 통과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2004년 당시의 국회에서 의결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세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될 수 있다.
첫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 약칭)의 후보로 출마하여 2002년 12월 19일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에도 노무현은 민주당 내에서의 입지가 약한 편이었으며, 당지도부와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을 탈당하였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2003년 11월 11일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었다. 이러한 민주당의 분당사태로 인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선거에서 대립하였던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속정당이었던 민주당과도 매우 불편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 결과 국회의 압도적 다수세력이 탄핵소추에 찬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국회 내에서 반 노무현 세력이 커지게 된 것에는 이와 같은 열린우리당의 창당으로 인한 민주당의 반발 이외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독특한 정치색깔과 그로 인하여 야기된 정치적 갈등이 적지 않게 작용하였다. 과거의 정치계보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하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인 한나라당 중심의 보수계층과 정치적 색깔을 달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비주류였으며, 이러한 사정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는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어 한국의 기존 정치집단들과 충돌하고 언론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여 언론과의 관계도 순탄치 않아 집권기간에도 끊임없는 정치적 갈등을 겪어야 했다.
셋째, 국회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주도에 의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발의되고 의결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반대여론이 매우 뜨겁게 끓어올랐으나, 국회의 다수의원들은 이를 무시하였다. 이렇게 국민의 의사를 외면하고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평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던 국민들까지도 탄핵소추에 반대하는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등 반대여론이 더욱 격렬해졌고, 이러한 반대여론 속에서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참패하고 열린우리당이 과반의 의석을 차지하는 등 이른바 탄핵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이러한 결과가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국회의원들의 국민 의사에 대한 무지 내지 무시가 탄핵소추 의결을 가능케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과정과 탄핵소추의 사유
국회는 2004.3.12. 제246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유용태·홍사덕 의원 외 157인이 발의한 ‘대통령(노무현)탄핵소추안’을 상정하여 재적의원 271인 중 193인의 찬성으로 가결하였다. 소추위원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김기춘은 헌법재판소법 제49조 제2항에 따라 소추의결서의 정본을 같은 날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여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청구하였다.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를 통해 확인되는 탄핵소추의 사유는 가. 국법질서 문란, 나. 권력형 부정부패, 다. 국정파탄의 세 가지로 정리된다.
가. 국법질서 문란
(1) 특정 정당을 지지한 행위 등
㈎ 피청구인은 ① 2004. 2. 18. 경인지역 6개 언론사와의 합동기자회견에서,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발언하고, ② 같은 달 24.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4년 제대로 하게 해 줄 것인지 못 견뎌서 내려오게 할 것인지 국민이 분명하게 해줄 것”,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 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발언하여,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이하 ‘공선법’이라 함) 제9조 제1항, 제60조 제1항, 제85조 제1항, 제86조 제1항, 제255조 제1항을 위반하였다.
㈏ 피청구인은 ① 2003. 12. 19. 이른바 노사모가 주최한 ‘리멤버 1219’ 행사에 참석하여 “시민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나서달라.”고 발언하고, ② 2004. 2. 5. 강원지역 언론인 간담회에서 “‘국참 0415’ 같은 사람들의 정치참여를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허용하고 장려해 주어야 한다.”고 발언하여, 공선법 제9조 제1항, 제59조, 제87조 및 헌법 제69조를 위반하였다.
㈐ 2004. 2. 27.자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17대 총선 열린우리당 전략기획’이라는 문건에는 총선후보 영입을 위해 ‘당, 정부, 청와대가 함께 참여하는 컨트롤 타워 구성’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고, ‘先당·中청·後정’이라는 총선 위주의 국정운영 순위를 매겨놓고 있는바, 이는 청와대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을 확인하는 것으로서 피청구인이 이와 같이 특정 정당의 총선전략을 지휘한 것은 공선법 제9조 제1항, 제86조 제1항 제2호를 위반한 것이다.
㈑ 피청구인은 ① 2004. 1. 14. 연두기자회견에서, “개혁을 지지한 사람과 개혁이 불안해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갈라졌고, 대선 때 날 지지한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을 하고 있어 함께 하고 싶다.”고 발언하고, ② 2003.12.24. 측근들과의 회동에서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다.”고 발언하여, 공선법 제9조 제1항, 헌법 제8조 제3항, 제11조 제1항을 위반하였다.
㈒ 피청구인은 국민을 협박하여 특정 정당 지지를 유도하고 총선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언행을 반복함으로써 공선법 제237조 제1항 제3호, 헌법 제10조, 제19조, 제24조를 위반하였다.
(2) 헌법기관을 경시한 행위 등
㈎ 피청구인은 2003. 4. 25. 국회인사청문회의 고영구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판정을 묵살함으로써 헌법 제66조 제2항, 제69조, 제78조, 국가정보원법 제7조 제1항을 위반하였다.
㈏ 피청구인은 2003. 5. 8. 대국민 인터넷 서신을 통하여 현직 국회의원들을 ‘뽑아버려야 할 잡초’라는 취지로 표현함으로써 헌법 제66조 제2항, 제69조, 국가공무원법 제63조, 형법 제311조를 위반하였다.
㈐ 피청구인은 2003. 9. 3.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 해임건의안 의결을 수용하는 것을 해태하여 거부하는 듯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헌법 제63조 제1항, 제66조 제2항, 제69조를 위반하였다.
㈑ 피청구인은 ① 2004. 3. 4.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하여 선거중립의무의 준수를 요청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② 같은 날 현행 선거관련법에 대해 ‘관권선거시대의 유물’이라고 폄하하고, ③ 같은 달 8. 자신의 공선법 제9조 위반행위를 ‘경미한 것’, ‘미약하고 모호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함으로써, 헌법 제40조, 제66조 제2항, 제69조를 위반하였다.
㈒ 피청구인은 2004. 3. 8. 국회의 탄핵 추진에 대하여 ‘부당한 횡포’라고 발언하여 헌법 제65조 제1항, 제66조 제2항, 제69조를 위반하였다.
㈓ 피청구인은 2003. 10. 10. 기자회견에서 최도술의 SK비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하여 “수사가 끝나면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해 그 동안 축적된 국민 불신에 대해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발언하고, 같은 달 13. 국회에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국민투표는 법리상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면 현행법으로도 가능할 것”, “정책과 결부시키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지만 그렇게 안 하는 것이 좋겠고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겠다.”, “재신임을 받을 경우 연내에 내각과 청와대를 개편하고 국정쇄신을 단행할 계획”이라고 발언하여, 헌법 제66조 제2항, 제69조, 제72조를 위반하였다.
나. 권력형 부정부패
(1) 썬앤문 관련 불법정치자금 수수 등
㈎ 피청구인은 2002. 6. 안희정으로 하여금 썬앤문(대표 문병욱)에 대한 감세청탁을 국세청에 하도록 하여 썬앤문의 세금 171억 원이 23억 원으로 감액되었는바, 이는 형법 제129조 제2항,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3조를 위반한 것이다.
㈏ 피청구인은 2002. 11. 9. 서울 리츠칼튼호텔 일식당에서 이광재의 주선으로 문병욱과의 조찬 자리에 참석하였고, 피청구인이 조찬을 마치고 나간 직후 이광재는 문병욱으로부터 1억 원을 수수하였는데, 이는 정치자금에관한법률(이하 ‘자금법’이라 함) 제30조, 형법 제32조 위반에 해당한다.
㈐ 피청구인은 2002. 7. 7. 김해관광호텔에서 문병욱으로부터 돈뭉치 2개(1억 원 정도로 추정)를 받아 수행비서 여택수에게 건네줌으로써 형법 제129조, 국가공무원법 제61조, 자금법 제30조를 위반하였다.
(2) 대선캠프 관련 불법정치자금 수수
노무현 대선캠프의 정대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9억 원, 이상수 총무위원장은 7억 원, 이재정 유세본부장은 10억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각각 수수, 이를 노무현 대선캠프에 전달하였는데, 피청구인은 여기에 관여하였으므로 자금법 제30조 위반에 해당한다.
(3) 측근비리 연루
㈎ 최도술과 관련된 비리
최도술은 ① 2002. 5. 장수천과 관련한 피청구인의 채무변제를 위해 새천년민주당 부산지역 선거대책위원회 계좌에 남아 있던 지방선거 잔금 중 2억 5천만 원을 횡령하여 장수천 대표 선봉술에게 전달하였고, ② 2002. 12.부터 2003. 2. 6. 사이에 장수천 채무변제를 위해 불법자금 5억 원을 모아 선봉술에게 전달하였으며, ③ 2002. 3.부터 같은 해 4. 사이에 피청구인의 대통령후보 경선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차명계좌를 통해 1억 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하였고, ④ 대통령선거 이후 넥센타이어 등에서 2억 9,650만 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하였으며, ⑤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삼성 등으로부터 4천 7백만 원을 수수하였고, ⑥ 대통령선거 직후 SK로부터 11억 원 가량의 양도성예금증서를 받았는바, 이러한 최도술의 행위는 피청구인의 지시나 묵인이 없으면 불가능하므로, 피청구인의 이러한 행위는 국가공무원법 제61조 제1항, 자금법 제30조, 범죄수익은닉의규제및처벌등에관한법률 제3조, 형법 제129조, 제356조, 제31조, 제32조 위반에 해당한다.
㈏ 안희정과 관련된 비리
① 2002. 8. 29.부터 2003. 2. 사이에 강금원은 이기명 소유의 땅을 위장 매매하는 방식으로 19억 원의 불법자금을 제공하였고, ② 안희정은 2002. 9.부터 같은 해 12.까지 7억 9천만 원의 불법자금을 모아 선봉술 등에게 전달하였으며, ③ 안희정은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5천만 원, 대통령선거 당시 삼성으로부터 30억 원, 2003. 3.부터 같은 해 8. 사이에 10억 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하였는데, 피청구인은 이를 지시, 방조하였으므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2조, 국가공무원법 제61조 제1항, 자금법 제30조, 형법 제31조, 제32조를 위반한 것이다.
㈐ 여택수와 관련된 비리
여택수는 청와대 행정관으로 재직 시 롯데로부터 3억 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하여 그 가운데 2억 원을 열린우리당에 창당자금으로 제공하였는데, 피청구인은 여기에 관여하였으므로 국가공무원법 제61조 제1항, 자금법 제30조, 형법 제129조, 제31조, 제32조를 위반한 것이다.
㈑ 양길승과 관련된 비리
청와대 부속실장이던 양길승은 2003. 6.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던 이원호로부터 향응을 제공받고 수사무마 청탁 등을 하였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4) 정계은퇴 공언
피청구인은 2003. 12. 14. 청와대 정당대표 회동에서 피청구인 측의 불법정치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할 것이라고 공언하였고, 2004. 3. 8. 현재 검찰수사 결과 7분의 1 수준에 이르고 있는데도 은퇴공약을 무시함으로써 헌법 제69조, 국가공무원법 제63조, 정치자금법 제30조를 위반하였다.
다. 국정파탄
피청구인은 국가원수이자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국민을 통합시키고 국가발전과 경제성장에 모든 역량을 결집시킴으로써 국민의 행복추구권 보장과 복리증진을 위하여 성실히 노력하여야 할 헌법상의 책무를 저버린 채, 성장과 분배 간의 정책목표에 일관성이 없고, 노사 간의 권리의무관계에 대하여는 뚜렷한 정책방향 없이 흔들려 산업현장의 불확실성을 가중시켰으며, 정책당국자 간의 혼선과 이념적 갈등을 야기하여 경제 불안을 가중시켜왔고,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과 노력을 특정 정당의 총선 승리를 위하여 쏟아 붓는 등 불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여 왔으며, “대통령 못 해 먹겠다.”는 발언을 하거나 재신임국민투표를 제안하고, 정계은퇴를 공언하는 등으로 무책임하고 경솔한 국정운영을 함으로써 국민을 분열시키고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하여 헌법 제10조, 제69조를 위반하였다.
3. 피청구인의 답변 요지
가. 적법요건에 대하여
첫째, 국회가 탄핵소추의 사유와 증거가 미비한 상태에서 탄핵소추를 졸속으로 의결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키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의 사유와 증거를 조사하려고 하는 것은 탄핵소추권의 남용이다.
둘째, 의사절차와 의결절차의 문제이다.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은 탄핵소추안의 의결에 참여하지 않는 소속 국회의원들을 출당시키겠다고 협박하였고, 의결과정에서도 공개투표가 행해졌으며 본회의 개의시각을 일방적으로 변경하였다.
셋째, 탄핵소추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표결권, 질의 및 토론권을 침해하였으며, 피청구인은 국회의 탄핵소추절차에서 아무런 고지나 의견제출 기회를 받지 못함으로써 적법절차를 위반하였다
나. 탄핵소추사유에 대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심판권의 행사는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른 견제와 균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대단히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 제65조 제1항의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는 너무 모호하여 어떤 종류의 위법행위를 어떻게 범해야 탄핵할 수 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헌법의 기본질서와 가치, 그리고 권력기관들을 둘러싼 제도적·현실적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대통령 탄핵사유는 ‘헌법적 가치와 기본질서를 침해하였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하고도 명백한 헌법과 법률 위배’로 한정하는 것이 옳다.
이 사건 탄핵소추는 실질적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국회가 임기만료를 목전에 두고 국민이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 당리당략과 감정만을 앞세워 한 것이며, 탄핵을 할 정도의 실체적 사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신중한 조사와 숙고, 민주적 토론, 국민에 대한 설득과정 등을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처리되었다.
탄핵소추의 첫째 사유인 ‘선거법 위반’의 경우, 대통령은 정당가입이 허용되는 정치적 공무원으로서 공선법 제9조의 적용대상이 아니며, 그렇지 않더라도 그 발언내용들은 공선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소추사유인 ‘측근비리’는 상당수가 취임 전의 일이며 대통령은 이를 교사하거나 방조하는 등 가담한 일이 없고 그러한 사실이 밝혀진 바도 없어 탄핵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셋째 소추사유인 이른바 ‘국정파탄’ 부분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사실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의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 잘못은 탄핵사유가 되지 않는다.
4. 탄핵소추 이후의 반대 여론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전격적으로 발의될 당시만 하더라도 탄핵소추안이 실제로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국민들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탄핵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의 제지 의사 또한 강력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력저지에 나섰던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은 의장의 경호권 발동으로 퇴장당한 상태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었다.
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의결되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탄핵소추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에 대한 비판, 그리고 탄핵반대 집회 등으로 이어지면서 한동안 탄핵정국이 계속되었다. 국민들은 거리에 나와 촛불집회로 반대의견을 표명하였고, 일각에서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한동안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반대여론의 직접적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았던 것은 2004년 4월 15일 실시되었던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정치권의 지각변동이라고 일컬어질 정도의 큰 변화를 야기하였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탄핵소추 이전까지는 한나라당과 경합을 벌이던 수준이었으나 탄핵소추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확산되면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도가 급격히 높아졌으며 선거 결과 152석을 확보하여 국회재적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거대정당으로 변모하였다. 선거 이전에 최대 의석을 보유하고 있던 한나라당은 탄핵소추안의 통과 이후 지지도가 급락하였으나 영남 지역의 지지를 기반으로 121석의 의석을 확보하여 참패는 면하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전통적인 지지기반이었던 호남지역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함으로써 9석을 차지하는데 그치는 참패를 겪었다. 자유민주연합은 4석에 그침으로써 김종필 총재가 정계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지역구에서 2석, 비례대표에서 8석을 차지하여 민주당을 제치고 제3당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선거결과는 탄핵소추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고스란히 표현된 것으로 분석되며, 선거일로부터 1개월 후에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 부분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들이 있다.
Ⅱ. 주요 쟁점
1. 최초의 탄핵심판과 쟁점들의 복잡성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로서 최초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상 최초의 탄핵소추였다. 임시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1925년 3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탄핵 의결로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면직되었던 예가 있지만, 1945년 해방되고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로는 최초의 탄핵소추였던 것이다.
최초의 탄핵소추에 따른 최초의 탄핵심판이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는 수많은 쟁점들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쟁점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로 탄핵심판의 대상 및 절차에 관한 쟁점들이 있었고, 둘째로 탄핵심판의 요건과 관련한 쟁점들이 있었으며, 셋째로 탄핵심판의 기준 및 결정의 방식과 관련한 쟁점들이 있었다.
2. 탄핵심판의 본질 및 대상과 절차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최초의 탄핵심판이었기 때문에 법적 쟁점들이 무수히 제기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검토될 수밖에 없었던 쟁점들은 탄핵심판의 본질 및 대상범위와 절차에 관한 것들이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는 일차적으로 탄핵심판절차에 헌법재판소에 의한 판단의 대상이 무엇인지가 쟁점이 되었다. 이는 탄핵심판의 유형이 결정의 효력과 관련하여 징계처분적 성질을 갖는 것과 형사재판적 성질을 갖는 것으로 나누어질 뿐만 아니라, 심판의 주체와 관련하여 사법기관형과 정치기관형이 각기 다른 특징을 갖는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직접 연결되는 문제가 헌법 제65조의 탄핵소추 및 탄핵심판절차의 본질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헌법 제65조의 해석에 따라 국회의 탄핵소추 및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갖는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 해석 여하에 따라 국회의 탄핵소추절차에 적법절차원칙을 직접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으며, 헌법재판소에 의한 탄핵심판의 범위 및 탄핵심판의 기준과 방식 또한 다르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3. 탄핵심판의 요건
탄핵심판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탄핵심판의 요건에 관한 판단이다. 즉, 탄핵심판의 요건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내려야 할 결정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제도 전체의 운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 쟁점들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먼저 헌법 제65조에 의한 탄핵사유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문제되며, 그와 관련하여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에서 제시한 여러 사유들의 적합성 여부가 검토되어야 했다.
일차적으로 국회 탄핵소추의결서에서 탄핵사유로 지적된 「국법질서문란행위」와 관련하여 선거에서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의 헌법적 근거가 무엇이며, 대통령이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9조의 ‘공무원’에 해당하는지 여부, 기자회견에서 특정정당을 지지한 대통령의 발언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위반되는지 여부, 기자회견에서 특정정당을 지지한 대통령의 발언이 공무원의 선거운동금지를 규정하는 공선법 제60조에 위반되는지 여부 등이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또한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의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위반 결정에 대한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행위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 등이 쟁점이 되었다.
또한 국회 탄핵소추의결서에서 또 다른 탄핵사유로 제시된 「권력형 부정부패」의 경우 대통령 측근의 권력형 부정부패와 관련하여 대통령의 법위반이 인정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고, 탄핵사유 「국정파탄」의 경우에는 불성실한 직책수행과 경솔한 국정운영으로 인한 정국의 혼란 및 경제파탄이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4. 탄핵심판의 기준 및 결정의 방식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 내지 탄핵요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의미를 가졌던 것은 어느 정도의 중대한 법위반이 있을 경우에 탄핵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으며, 관련 쟁점들의 판단에 헌법재판소는 매우 큰 비중을 두었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의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때’란 중대한 법위반의 경우에 한정되는지 여부, 그리고 ‘법위반의 중대성’에 관한 판단기준이 무엇인지 등에 관하여 고찰하였으며, 이를 기초로 하여 대통령의 구체적인 법위반행위에 있어서 헌법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인정할 수 없는 이 사건의 경우 파면결정을 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것은 결정의 방식과 관련하여 여타의 헌법소송에서와는 달리 탄핵심판절차에서는 반대의견을 밝히지 않는 것이 정당한지 여부였다.
Ⅲ. 결정 요지
1. 결정 주문과 그 의미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사건에서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결정은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아들이지 않는 결정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이 그 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탄핵심판의 구체적 쟁점들에 관하여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결정이기도 하다.
2. 탄핵심판의 본질 및 대상과 절차에 관한 판단
가. 탄핵심판의 본질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이 헌법 및 법률의 위반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현행법상의 탄핵심판은 정치기관이 이를 담당하는 국가들과는 달리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담당하는 사법절차이며, 정치적 기준이 아닌 법적 기준에 따라 심판이 행해져야 한다는 점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65조는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위공직자에 의한 헌법위반이나 법률위반에 대하여 탄핵소추의 가능성을 규정함으로써, 그들에 의한 헌법위반을 경고하고 사전에 방지하는 기능을 하며, 국민에 의하여 국가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이 그 권한을 남용하여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하는 경우에는 다시 그 권한을 박탈하는 기능을 한다. 즉, 공직자가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에 위반한 경우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탄핵심판절차의 목적과 기능인 것이다.”라고 확인하고 있다.
나. 탄핵심판의 대상범위
탄핵심판의 본질에 대한 이와 같은 이해는 탄핵심판의 대상범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헌법재판소는 사법기관으로서 원칙적으로 탄핵소추기관인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에 기재된 소추사유에 의하여 구속을 받기 때문에 탄핵소추의결서에 기재되지 아니한 소추사유를 판단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탄핵소추의결서에서 그 위반을 주장하는 ‘법규정의 판단’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구속을 받지 않으므로, 청구인이 그 위반을 주장한 법규정 외에 다른 관련 법규정에 근거하여 탄핵의 원인이 된 사실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헌법재판소는 소추사유의 판단에 있어서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에서 분류된 소추사유의 체계에 의하여 구속을 받지 않으므로, 소추사유를 어떠한 연관관계에서 법적으로 고려할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달려 있다”고 확인하였다.
다. 탄핵소추에서의 의견진술기회와 적법절차원칙
또한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탄핵소추과정에서 대통령 의견진술의 기회를 갖지 못한 점은 적법절차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적법절차원칙이란, 국가공권력이 국민에 대하여 불이익한 결정을 하기에 앞서 국민은 자신의 견해를 진술할 기회를 가짐으로써 절차의 진행과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 법원리”인데, “이 사건의 경우, 국회의 탄핵소추절차는 국회와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 사이의 문제이고,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에 의하여 사인으로서의 대통령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으로서의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되는 것”이므로 “국가기관이 국민과의 관계에서 공권력을 행사함에 있어서 준수해야 할 법원칙으로서 형성된 적법절차의 원칙을 국가기관에 대하여 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탄핵소추절차에는 직접 적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3. 탄핵심판의 요건에 대한 판단
가. 탄핵심판의 본질과 탄핵사유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의 본질을 사법적 판단으로 이해하였고, 그에 따라 헌법 제65조에 규정된 탄핵심판의 요건 또한 위헌 또는 위법한 행위인지의 여부에 초점을 맞추어 판단하였다.
헌법 제65조 제1항에서는 탄핵사유에 관하여 “大統領·國務總理·國務委員·行政各部의 長·憲法裁判所 裁判官·法官·中央選擧管理委員會 委員·監査院長·監査委員 기타 法律이 정한 公務員이 그 職務執行에 있어서 憲法이나 法律을 違背한 때”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의 해석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여기서 말하는 ‘직무’란, 법제상 소관 직무에 속하는 고유 업무 및 통념상 이와 관련된 업무를 의미하는 것”이며,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때”에서 말하는 “‘헌법’에는 명문의 헌법규정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하여 형성되어 확립된 불문헌법도 포함된다”고 보았다. 또한 “‘법률’이란 국회가 제정한 형식적 의미의 법률 및 그와 등등한 효력을 가지는 국제조약,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이와 같은 탄핵심판의 요건에 대한 해석을 전제로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에서 제시되고 있는 탄핵사유에 대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나.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의무 내지 선거중립의무 위반 여부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또한 공직선거법 제9조의 선거중립의무의 대상자가 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공선법 제9조의 공무원이란 “‘자유선거원칙’과 ‘선거에서의 정당의 기회균등’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공무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좁은 의미의 직업공무원은 물론이고,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통하여 국가에 봉사하는 정치적 공무원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다만,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은 정당의 대표자이자 선거운동의 주체로서의 지위로 말미암아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될 수 없으므로, 공선법 제9조의 ‘공무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시하였다. 이런 기준에 따를 때,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공정한 선거가 실시될 수 있도록 총괄·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당연히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지는 공직자에 해당하는 것이고, 공선법 제9조의 ‘공무원’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국민의 의사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면, 정당과 후보자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기초로 하는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형성과정에 개입하여 이를 왜곡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지난 수년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하여 꾸준히 지속해 온 정당과 후보자의 정치적 활동의 의미를 반감시킴으로써 의회민주주의를 크게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공정한 선거관리의 궁극적 책임을 지는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대통령직의 정치적 비중과 영향력을 이용하여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은,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로써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반면에 공선법 제58조 제1항은 ‘당선’의 기준을 사용하여 ‘선거운동’의 개념을 정의함으로써, ‘후보자를 특정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선거운동의 요건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발언이 이루어진 시기인 2004. 2. 18.과 2004. 2. 24.에는 아직 정당의 후보자가 결정되지 아니하였으므로, 후보자의 특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발언을 한 것은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으며, 문제의 대통령 발언들은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형식으로 수동적이고 비계획적으로 행해진 점을 감안한다면, 대통령의 발언에 선거운동을 향한 능동적 요소와 계획적 요소를 인정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선거운동의 성격을 인정할 정도로 상당한 목적의사가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특정 후보자나 특정 가능한 후보자들을 당선 또는 낙선시킬 의도로 능동적·계획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다. 대통령의 준법의무 위반 여부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라고 지적하고 있다. 헌법 제66조 제2항 및 제69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의무’는 헌법상 법치국가원리가 대통령의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구체화된 헌법적 표현이며, 그것은 법치국가원리에서 파생되는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헌법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대통령의 막중한 지위를 감안하여 제66조 제2항 및 제69조에서 이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의무를 지는 대통령이 현행법을 ‘관권선거시대의 유물’로 폄하하고 법률의 합헌성과 정당성에 대하여 대통령의 지위에서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준수해야 할 의무와 부합하지 않는 것이며, 대통령이 선거법위반행위로 말미암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 현행 선거법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법률을 존중하는 태도라고 볼 수 없는 것으로서 법치국가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자,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현행헌법 제72조에서 신임투표가 아닌 정책투표만이 허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국민투표의 형태로 묻고자 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부여받은 국민투표부의권을 위헌적으로 행사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국민투표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대통령이 위헌적인 재신임 국민투표를 단지 제안만 하였을 뿐 강행하지는 않았으나,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재신임 국민투표를 국민들에게 제안한 것은 그 자체로서 헌법 제72조에 반하는 것으로 헌법을 실현하고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라. 측근비리 및 정책적 과오에 대한 평가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이 법적 요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헌법 제65조 제1항은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라고 하여, 탄핵사유의 요건을 ‘직무’집행으로 한정하고 있으므로, 위 규정의 해석상 대통령의 직위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범한 법위반행위만이 소추사유가 될 수 있다. 썬앤문 및 대선캠프 관련 불법정치자금 수수 등에 관한 소추사유들은 피청구인이 2003. 2. 25.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에 일어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어서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집행과 무관함이 명백하므로, 탄핵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또한 대통령 취임 이후에 일어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측근비리의 경우에도 최도술 등의 불법자금 수수 등의 행위를 지시·방조하였다거나 기타 불법적으로 관여하였다는 사실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이에 관한 소추사유는 이유 없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헌법 제69조는 대통령의 취임선서의무를 규정하면서, 대통령으로서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언급하고 있지만, 이 의무는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와는 달리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있는 성격의 의무가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헌법 제65조 제1항은 탄핵사유를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때’로 제한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절차는 법적인 관점에서 단지 탄핵사유의 존부만을 판단하는 것이므로, 이 사건에서 청구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서 소추사유가 될 수 없어,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4. 탄핵심판의 기준 및 결정의 방식에 대한 판단
가. 탄핵심판에서 법위반의 중대성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65조 제1항의 탄핵사유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직무상의 사소한 법위반이 있을 경우에도 모두 파면해야 한다면, 이는 피청구인의 책임에 상응하는 헌법적 징벌의 요청 즉, 법익형량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하면서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의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때’란, 모든 법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단지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의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법위반이 중대한지’ 또는 ‘파면이 정당화되는지’의 여부는 그 자체로서 인식될 수 없는 것이므로, ‘법위반이 어느 정도로 헌법질서에 부정적 영향이나 해악을 미치는지의 관점’과 ‘피청구인을 파면하는 경우 초래되는 효과’를 서로 형량하여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지의 여부, 즉 파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은,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다시 박탈하는 효과를 가지며, 직무수행의 단절로 인한 국가적 손실과 국정 공백은 물론이고, 국론의 분열현상, 즉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 간의 분열과 반목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에 대한 파면효과가 이와 같이 중대하다면, 파면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도 이에 상응하는 중대성을 가져야 한다.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이 어떠한 것인지’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나,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은 정당화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서 인정되는 대통령의 법위반이 헌법질서에 미치는 효과를 종합하여 본다면, 대통령의 구체적인 법위반행위에 있어서 헌법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파면결정을 통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손상된 헌법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요청될 정도로, 대통령의 법위반행위가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고, 또한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다시 박탈해야 할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경우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없으므로,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 소수의견의 공개 여부
이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또 하나의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것은 반대의견의 공개 문제였다.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에 의하면 헌법재판소 평의는 공개하지 아니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개별 재판관의 의견을 결정문에 표시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평의의 비밀에 대해 예외를 인정하는 특별규정이 있어야만 가능한데, 탄핵심판에 관해서는 평의의 비밀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법률규정이 없다. 따라서 이 탄핵심판사건에 관해서도 재판관 개개인의 개별적 의견 및 그 의견의 수 등을 결정문에 표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법정의견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동법 제36조 제3항은 탄핵심판에 있어 의견을 표시할지 여부를 관여한 재판관의 재량판단에 맡기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므로 반대의견도 표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Ⅳ. 분석 및 평가
1. 결정의 헌법상 의의
헌법재판소의 2004헌나1 사건 결정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탄핵심판결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이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결정의 파급효 또한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당시 여당의 분당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으로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가 의결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앞으로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또 있을 수 있는지는 매우 불투명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사건 결정이 갖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 결정의 헌법적 의미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 결정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탄핵심판결정으로서 현행법에 의해 구체화되지 않은 수많은 쟁점들을 검토하는 가운데 탄핵심판의 본질과 기능, 탄핵심판의 대상과 절차, 판단기준 등과 관련한 기준을 세웠다고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결정의 중요 논거들은 향후의 탄핵심판에서도 중요한 선례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둘째,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결정을 통해 정치적 갈등을 사법적으로 해결하는 중요한 선례가 마련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정치적 갈등을 빚는 사안들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맡겨진 예가 적지 않았지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과 같은 의미와 비중을 갖는 사건은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셋째,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통해 헌법의 규범력이 강화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위헌적 활동을 할 경우 탄핵될 수 있을 보여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회가 탄핵소추권을 남용할 경우의 문제점 또한 잘 보여주었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결정을 둘러싼 논란 또한 적지 않았으며, 헌법재판소의 결정 내용에 대한 찬반은 매우 날카롭게 대립되었다. 한편으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당시의 정치적 역학관계, 특히 탄핵후폭풍으로 인하여 열린우리당의 압승으로 끝났던 제17대 국회의원선거의 결과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지나치게 형식논리에 빠져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 자체가 갖는 의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으며, 그만큼 국가질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결정이기도 하였다.
2. 학계의 평가
가. 탄핵심판의 본질과 기능에 관한 이해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의 본질을 법적 기준에 따른 사법적 판단으로 이해하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헌법학자들이 공감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탄핵심판제도는 각국에서 다양한 유형으로 발전되었으며, 그에 따라 성격 또한 달리 이해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처럼 하원이 탄핵소추권을 갖고 상원에서 탄핵심판권을 행사할 경우에는 탄핵심판 자체가 정치적 심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독일과 유사하게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권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는 헌법제정권자 내지 헌법개정권자의 의사가 탄핵심판을 정치적 심판이 아닌 사법적 판단으로 구성하고자 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나. 탄핵소추의 절차에 관한 입장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을 사법적 판단으로 이해하였지만, 탄핵소추까지 사법적 판단으로 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엄격한 법원칙의 적용보다는 정치적 판단의 여지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권력분립의 원칙 내지 국회의 자율성에 대한 존중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탄핵소추절차상의 하자가 일부 있지만 헌법과 법률에 위반하여 탄핵소추를 각하할 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국회에서의 충분한 조사와 심사가 전제되지 않은 점, 충분한 질의와 토의가 결여된 점, 탄핵소추사유별로 의결되지 않은 점은 탄핵소추절차에 요구되는 내재적 한계를 벗어난 소추권 행사로서 권력분립의 원칙을 무시하는 권한남용으로 보았어야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또한 국회법 제93조에서 ‘본회의는 사안을 심의함에 있어 질의·토론을 거쳐 표결한다’는 국회법 제93조 규정을 위반한 것은 소수에게 최소한의 조건, 즉 질의·토론을 통하여 다수를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으로서 의회민주주의의 근본원칙에 대한 침해라고 보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러한 비판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으며, 일부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질의권 내지 의결권 침해의 위헌성을 문제 삼는 권한쟁의심판으로 다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좀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서는 국회의 탄핵소추 자체를 부적법한 것으로 각하하는 것은 적절치 못했다는 점도 아울러 고려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측면들을 고려할 때,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 가운데 객관적이고 공정한 법적 판단이라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 보완을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 탄핵소추요건에 대한 평가
헌법재판소가 헌법 제65조 제1항의 탄핵사유와 관련하여 직무상의 위헌, 위법한 행위로 한정하여야 하며,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에서 제시되고 있는 측근비리, 국정파탄 등을 탄핵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점에 대해서는 학설상으로도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헌, 위법한 행위의 범위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이견들이 발견된다.
먼저 ‘대통령의 직무집행’의 범위를 재직중의 기간으로 한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대통령의 선거에 관련된 행위를 포함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대통령당선자 기간 동안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등의 위법행위가 형사소추의 대상이 되므로 탄핵소추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통령 재직 중에는 이에 대한 형사소추가 불가능하므로 직무관련성이 인정되는 이 기간 동안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탄핵소추가 가능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도 탄핵의 실효성이라는 측면에서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입법론적으로는 몰라도 법해석론적으로 볼 때에는 법적 성질 및 요건에서 형사소추의 문제와 탄핵심판의 문제는 구별된다는 점에서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 밖에 대통령의 경우 다른 탄핵대상 공무원과는 다른 특별한 헌법상의 지위에 비추어 탄핵소추요건 자체에 있어서 위법행위의 중대성이 요청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역시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만을 특별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라. 대통령의 헌법준수의무 위반에 대한 평가
헌법재판소의 판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위법행위에 대한 평가였고, 이와 관련한 학계의 비판 또한 많이 있었다. 이러한 비판들은 대부분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헌법준수의무 위반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판단하였다는 점에 집중되었다.
첫째,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과도하게 요구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비록 대통령이 선거과정의 자유와 공정성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지만, 대통령도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의원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발언을 한 것이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대통령직의 정치적 성격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둘째, 대통령의 선거법 폄하 발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국가권력작용의 유기적 관계를 간과한 편협한 형식논리라는 비판이 있었다. 법률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집행권을 부여받은 대통령으로서 충분히 가능한 것이며, 법률에 대한 이견을 “폄하”라는 주관적 용어로 규정한 다음 헌법수호의무위반으로 인정하여 탄핵사유가 된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는 것이다.
셋째, 국민투표를 제안한 것만으로도 헌법을 실현하고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에 관해서는 헌재의 표현처럼 “제안만을 하였을 뿐 이를 강행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헌법 제72조의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재신임의 문제가 포함되는지 등 그 해석과 관련하여 학계에서도 논란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권력의 행사도 아닌, 아직 구상단계에 있는 계획만으로 가장 궁극적인 헌법위반이라 할 수 있는 헌법준수의무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비판들은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의 행위에 약간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통령직의 정치적 성격 내지 대통령의 법위반이 실질적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점(선거법을 경시하는 발언과 선거법 위반의 구별 / 신임투표의 제안과 신임투표 강행의 구별)을 고려할 때 이를 탄핵사유로 본 것이 무리라는 것이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그 위법성을 인정하되 중대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국회의 탄핵소추를 기각하였기 때문에 결론에 있어서의 차이는 크게 눈에 띠지 않겠지만, 법논리적으로는 이러한 비판들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의 경우 정치적 갈등을 사법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지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엄격한 법논리에만 의존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결론에 있어서는 법논리를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지만, 탄핵소추의 절차상 하자와 관련하여서도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탄핵사유들의 평가에 있어서도 정치적 갈등의 조정과 봉합이라는 측면을 적절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마. 반대의견 비공개에 대한 평가
헌법재판이 가지는 중대성과 역사성에 비추어 볼 때 재판관의 의견을 헌법재판소법에서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재판관들의 의견을 공개하느냐, 공개하지 않느냐 문제는 재판관들의 판단에 달려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비공개할 경우 그 이유는 헌법재판소법이 이를 금지하고 있고 공개의 근거조항이 없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비공개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근거의 제시라는 비판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대통령 탄핵재판이란 중대한 국가적 사안에 대해서 국민들은 한 점의 의혹이나 의무도 갖지 않아야 하며, 그래야 헌재 결정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굳이 소수의견과 재판관들 이름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헌재의 결정은 여러 가지 불필요한 추측과 의혹을 증폭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공개재판이라고 해도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의 토론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지만, 결론을 법적으로 성립시킨 핵심 요소들에 대한 정보는 반드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입장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을 평가하면서 반대의견의 비공개를 똑같이 비판하는 것은 헌법재판관들이 자신의 의견에 대해 보다 확실하게 책임을 질 수 있기 바라는 것이다. 또한 이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처럼 정치적 파급효가 큰 사안에서도 헌법재판소 내지 헌법재판관들의 객관성과 공정성 및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반대의견의 비공개는 재고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외국 유사 판례와의 비교 검토
가. 탄핵심판제도의 유형과 외국 판례 비교의 한계
탄핵심판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의 아이잔젤리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하지만, 근대적 탄핵제도의 기원은 14세기 영국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왕은 불법을 행할 수 없다”는 법원칙이 확립되어 있던 군주국가에서 국왕이 선출한 각료들이 의회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탄핵제도는 의회주권 내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초석이었다. 이후 영국의 탄핵제도는 미국을 비롯한 각국으로 전파되었으며, 이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각국의 정치적 상황 내지 권력분립의 체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탄핵심판제도를 구체화하였다.
따라서 탄핵심판의 구체적 운용방식은 각국의 제도에 따라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하원에서 탄핵소추권을 가지며, 상원에서 탄핵심판권을 갖는 미국의 경우 정치적인 이유로 탄핵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반면에 독일의 경우처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사법적 절차에 따른 사법적 판단으로 이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의 탄핵심판제도는 미국보다는 독일에 가까운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탄핵심판 중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갖는 특별한 의미와 비중을 생각하면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취하고 있는 독일에서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과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탄핵심판제도는 부분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가 하면, 독일의 탄핵심판과 유사한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대통령의 헌법상 지위 내지 권한, 그리고 이를 통제해야 할 사유의 인정 내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정치적 파급효 등에 있어서는 미국과 유사한 반면에 탄핵심판의 법적 요건과 절차, 심판기준 등에 있어서는 독일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 미국에서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례
미국의 탄핵심판제도는 연방헌법의 제정과정에서 많은 논의를 통해 도입되었으며,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의회의 통제수단으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탄핵제도 역시 정치적 보복수단 내지 당파적 무기로 악용된 사례가 없지 않으며,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 또한 끊이지 않고 지적되고 있다. 특히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소추(내지 소추절차의 진행)는 세 차례 있었으나 상원의 탄핵결정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1) Andrew Johnson 사건
미국에 있어서 최초의 대통령탄핵사건은 제17대 대통령 존슨에 대한 탄핵이었다. 당시 의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공화당의 급진파는 링컨 대통령의 암살에 의해 부통령이었다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남부 출신의 존슨 대통령이 남부에 대한 유화정책을 펼치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였고, 1867년에는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임기법(Tenure of Office Act)을 통과시키게 되었다.
1868년 2월 존슨 대통령은 이 법률에 위배하여 육군장관 스탠턴(Edwin M. Stanton)을 해임하였고, 이 법률에 대한 위반행위를 주된 이유로 하여 하원에서 대통령탄핵소추가 의결되었다. 상원에서의 탄핵재판의 결과는 유죄 35표, 무죄 19표로 되었고, 출석 상원의원의 3분의 2에 불과 1표 부족하여 존슨 대통령의 무죄가 확정되었다.
존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공화당 급진파의 정치적 보복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며, 탄핵 자체가 의회의 당파적 권력남용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2) Richard Nixon 사건
존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는 달리 대통령의 권력남용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닉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다. 1974년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하원 사법위원회가 채택하였던 세 가지 탄핵사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닉슨 대통령은 정치적 정보를 획득하기 위하여 행해진 워터게이트사건의 조사에 대하여 사법방해행위를 하였으며, 이러한 방해행위는 사인으로서가 아니라 집행권한의 남용을 통하여 행해졌다.
둘째, 닉슨 대통령은 정적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집행권한을 남용하였다. 예컨대 국세청(Internal Revenue Service)에서 불법적인 목적으로 소득세신고에 관한 비밀정보를 빼내려 한 것, 연방수사국을 비롯한 다른 집행부의 직원을 위법한 수사에 악용한 것, 중앙정보국을 악용하여 위법한 비밀활동을 지시한 것 등이 문제되었다.
셋째, 닉슨 대통령이 사법위원회의 조사나 소환에 정당한 이유 없이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로 되었다.
결국 닉슨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의 권한과 특권을 남용함으로써 재선을 쉽게 하고, 정적에게 손해를 주며, 자기의 비행에 대한 조사를 위법하게 방해하려 한 것이 탄핵의 대상으로 된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는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탄핵소추가 발의된 이후 하원 본회의에서 탄핵소추가 의결되기 이전에 대통령이 사임하였기 때문에 그 단계에서 사건이 종결되었다.
(3) W. J. Clinton 사건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건은 좀더 복잡한 배경을 갖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아칸소 주지사 시절의 비리가 문제되어 특별검사의 조사를 받고 있던 가운데 대통령과 백악관 실습생 르윈스키(Monica Lewinsky)와의 관계가 문제되었고, 클린턴 대통령은 아칸소 주의 직원인 존스(Paula Jones)의 성희롱 사건 피고가 되어 소송이 진행되었으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대통령이 존스 사건의 증언과정에서 위증을 하였는지, 르윈스키나 다른 인물에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허위의 증언을 시켰는지가 문제되었으며, 1999년 하원에서는 위증과 사법방해를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였다. 그러나 상원의 표결 결과 클린턴 대통령의 무죄가 확정되었으며, 이로써 사건이 종결되었다.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경우 그 탄핵소추와 탄핵심판의 진행과정 및 표결과정에서 각 정당의 당론에 따른 당파적 태도가 극명하게 드러났으며, 탄핵소추 및 탄핵심판의 정치적 성격이 잘 드러난 것으로 평가된다.
다. 독일에서의 탄핵심판 사례
독일은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상 지위 내지 권한이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반면에 미국과는 달리 헌법재판소에서 사법절차에 따른 사법적 판단으로 탄핵심판을 하도록 정하고 있는 점은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가 몇 차례 있었던 것과는 달리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부터 현재까지 한 건도 제기된 바 없으므로 탄핵심판의 사례를 우리의 경우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4. 헌정질서에 미친 영향
가. 헌법재판소 결정의 정치적 파급효와 헌법재판소의 중립성
헌법재판소 결정 중에는 정치적 파급효가 큰 사건들이 많다. 그 때문에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또는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지만, 정치적 갈등의 상당 부분이 헌법과 법률에 대한 오해 내지 무시에서 비롯되는 것을 고려할 때 ─적어도 위헌성이 명확한 경우에 대해서는─ 정치과정을 헌법적으로 통제하는 헌법재판의 필요성이 부정될 수 없다.
이미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심판의 형태로도 정치적 파급효가 큰 사건들은 많이 있었지만, 2004년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사건이 갖는 정치적 의미 내지 파급효는 역대 어떤 헌법재판소 결정과도 비교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순히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서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은 자칫 국가질서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이러한 정치적 고려 때문에 국회의 탄핵소추를 기각하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학계에서도 탄핵소추의 사유 내지 정당성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헌법재판소의 결정문 속에서도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들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결정을 내려서 그 직을 상실케 할 정도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법리적으로 분석·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정치권 일각에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을 매우 강력하게 기대 내지 주문하고 있었고, 그로 인하여 국회 일각에서 주장되었던 탄핵소추 철회가 무산되었던 것도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매우 복잡하게 교차되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이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법적 판단임을 명확히 하는 가운데 법리적 분석과 정리를 통해 결정을 내린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 사건 결정을 통하여 헌법재판소의 위상이 한층 더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중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헌법재판소의 발전에 중요한 기초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능성이 갖는 상징적 의미
이 사건 결정은 향후 대통령과 국회의 국정운영에 매우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대통령도 헌법과 법률에 위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에 탄핵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회가 그러한 탄핵소추권을 오남용할 경우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되는지도 잘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능성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정당의 의원에 대한 기속력이 강하게 나타나는 현대의 정당국가에서 여당 의원의 수가 국회 재적의원수의 3분의 1만 넘는다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여당 의원의 수가 국회 재적의원수의 3분의 1에 미달하는 경우는 ─그 동안 여소야대 국회가 적지 않았지만─ 찾기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언제 또 가능해질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의 선례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는 거의 사문화된 규정처럼 인식되던 탄핵심판규정이 실제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고, 더구나 가중된 의결정족수를 요구하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있었다는 것은 그 밖의 고위공직자에 대한 탄핵소추도 ─더구나 대통령이 아닌 고위공직자의 경우 소추의결의 정족수가 과반수로 완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훨씬 수월하게 국회를 통과할 수 있으므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탄핵심판이 자주 행해진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독일의 경우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아직까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을 자랑으로 여기듯이, 탄핵소추가 필요할 정도의 고위공직자 비리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행사되지 않은 위헌정당해산제도를 여전히 존치시킬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로서 탄핵심판제도는 유지되어야 하며, 그 실효성을 위해서라도 고위공직자들이 탄핵의 가능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저항권에 대한 명문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 일종의 교육적 내지 경고적 의미를 갖는 것처럼, 탄핵심판제도의 존재 자체가 탄핵심판의 대상이 되는 공무원들의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는 것에 대한 교육적 내지 경고적 효과를 갖는 것으로 작용할 수 있고, 2004헌나1 결정은 그러한 경고의 현실감을 크게 높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 탄핵심판요건의 구체화와 그 의미
이 사건 결정을 통하여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의 요건에 관해 구체적인 기준들을 제시하였다. 비록 아직도 구체화되지 않은 부분들이 적지 않고, 입법적 해결이 요망되는 사항들 또한 많이 남아 있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통해 구체화된 부분들은 탄핵심판의 향후 운영 내지 제도의 개선, 그리고 국회의 탄핵소추권 오남용 내지 대통령의 권한남용에 대한 통제라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이 사법절차에 따른 사법적 판단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소추기관인 국회의 정치적 성격을 감안할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단순한 정치적 비난의 의미를 담아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심판과정에서 모두 기각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명백해짐에 따라 국회가 탄핵소추권을 정치적 투쟁의 수단으로 오남용할 우려를 크게 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헌법준수의무를 분명히 하면서 법위반행위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였다. 개별적 기준의 적정성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대통령도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여야 하며, 정치적 갈등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지지는 않지만 헌법과 법률의 위반에 대해서는 사법적 판단에 따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하게 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탄핵심판에 있어서 사소한 위법행위와 중대한 위법행위의 구별이 필요하다는 점이 이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이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합리성뿐만 아니라 법의 합리성 자체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높이는 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던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5. 향후 전망 내지 개선 요망사항
가. 향후의 탄핵소추 가능성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요건은 매우 엄격한 것이다. 정치적 책임이 아닌 법적 책임만을 물을 수 있으며, 국회의 탄핵소추를 위해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향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여야의 합의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보인다. 2004년 당시 국회의 무리한 탄핵소추에 의한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에 유사 사태의 재발을 막고자 하는 것은 이해될 수 있지만, 당시의 정치적 상황 자체가 매우 특별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를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자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법개정의 정당화 사유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대통령의 최고헌법기관으로서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헌법 제65조 제1항에 규정된 다른 피탄핵권자들과 구분하여 규정되어야 하고, 그 형식적·실질적 탄핵사유도 강화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헌법 제65조 제1항의 개정이 요구된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제도의 존재의미를 사실상 상실시키는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나. 탄핵소추요건 및 소추절차의 구체화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 이래 지금까지 탄핵심판이 단 한 건도 없었기 때문에 탄핵에 관한 규정들은 매우 추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탄핵에 관한 규정들의 구체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으며, 특히 탄핵사유 및 소추절차의 구체화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이 있었다.
첫째, 탄핵소추의 요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헌법 제65조 제1항은 탄핵사유로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무원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를 들고 있다. 이 규정을 문구대로 해석할 경우에는 경미한 법위반의 경우에도 탄핵사유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해 내지 오남용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미국 헌법 제2조 제4항이 탄핵사유로 “반역죄, 수뢰죄 기타 중대한 범죄나 중대한 비행”을 규정하고 있듯이 우리도 법률에서 탄핵사유에 해당될 수 있는 범죄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후 ‘기타 이에 준하는 범죄’를 포함하도록 하는 수준으로 탄핵사유를 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있다.
둘째, 탄핵소추절차에서도 적법절차가 확실하게 적용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국회의 탄핵소추의결 이전에 국회가 일정한 기간 청문절차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탄핵소추로 인한 권한행사의 정지 자체가 갖는 의미와 파급효를 고려하여 탄핵소추의결 이전에 그 대상자가 청문을 통한 “변명과 방어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탄핵사유가 여러 개일 경우에는 각각의 탄핵사유에 대해서 개별적 의결을 하도록 명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 중에는 특정한 사유에 대해서는 탄핵에 찬성하지만 다른 사유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통하여 탄핵사유를 추가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명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탄핵소추를 철회하는 것에 대해서도 명문의 규정을 두는 것이 가장 확실할 것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법의 경우에는 탄핵소추의 철회에 관한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으며, 우리 헌법재판소법에서도 이를 참고하여 명문의 규정을 두는 것이 이에 관한 논란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다. 심리절차에 관한 규정의 보완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법과는 달리 우리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심판의 구체적 절차에 관한 규정이 부족한 편이다. 물론 일반심판절차에 관한 규정들이 탄핵심판절차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 제2문에 따라 탄핵심판의 경우에는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으나,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첫째, 소추절차의 경우 적법절차원칙의 적용과 관련한 혼란이 있었던 것처럼 탄핵심판의 경우에도 그 절차의 기준과 방식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필요할 것이다. 예컨대 소추위원의 역할 내지 활동범위, 특히 피청구인에 대한 신문의 방식 등에 관하여는 구체적인 규정이 필요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변론의 방식과 관련하여서도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법처럼 구체적인 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탄핵심판의 과정에서 헌법재판소가 사실관계의 확인과 관련하여 어떤 범위에서 증거조사를 할 수 있는지, 그 방식은 어떠해야 하며 관련 국가기관들은 어떻게 협조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규정이 필요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법 제31조에 따른 일반적인 증거조사 규정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의 경우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기에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헌법 제65조 제3항과 헌법재판소법 제50조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의 의결이 있으면 그 대상자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 권한행사가 정지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가 그 권한을 계속 행사할 경우에 발생될 수 있는 권한 오남용의 우려에 기인한 것이지만, 국회에 의한 탄핵소추가 정치적으로 남용될 우려가 있고, 부통령제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 밖에 탄핵심판의 실효성과 관련하여 ─이미 학설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지만─ 탄핵의 경우에는 사면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명문을 규정을 두자는 제안도 있다. 또한 탄핵심판 후에 국민투표를 통해 최종결정을 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큰 반향을 얻고 있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라. 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의 개선
탄핵심판과 더불어, 하지만 탄핵심판과 무관하게도 헌법재판소의 정상적인 기능의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인적 구성의 개선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인적 구성을 개선하는 것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하나는 재판관들의 전문분야를 다양화하는 것이다. 중요한 헌법적 분쟁이 있을 때마다 재판관들이 특정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나 그 인적 구성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점(특히 판사 출신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 지적되곤 하였다. 이 사건 탄핵심판결정의 경우에도 그러한 문제제기는 빠지지 않았으며, 재판관들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분석까지도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까지 하였다. 물론 재판관들의 정치적 중립성은 인적 구성의 다양성과 무관하게 제1차적으로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헌법재판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통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판관들이 다양한 전문분야,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통해 헌법재판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헌법재판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이는 탄핵심판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재판관들의 결원을 보충하는 문제이다. 이 사건 결정에서는 9인의 재판관 가운데 결원이 문제되는 상황은 발생되지 않았다. 그러나 2011년 현재 조대현 재판관의 퇴임 이후 후임 재판관이 선출되지 못하여 8인의 재판관이 헌법재판을 수행하는 것은 적지 않은 무리를 낳게 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헌법재판관 중의 일부에 대해 제척 또는 기피등의 사유가 발생하거나 질병 또는 사고로 일정 기간 재판업무를 담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를 위해 예비재판관제도의 도입을 검토해볼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을 개선하는 문제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직접 드러난 문제는 아니었지만, 향후 탄핵심판뿐만 아니라 다양한 헌법소송유형에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들을 방지하기 위하여 시급하게 해결하여야 할 과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