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 실패하는 를 자주 범하게 되면 원망이 쌓이지만, 그러나 무언가를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면 혐오감으로 置換하는 것은 드물다.

하지만 소통의 부재와 인정머리 없는 일방적 行態가 누적(累積)되면 진의와 관계없이 인간이 혐오하는 獨善獨斷으로 그 인식이 擬律되어, 政派를 떠나 인간의 순수함이 용납할 수 없는 분노로 置換되고, 결국은 극단적 반감에 이르게 된다. 例外를 둔, 일반적으로 지지자들이 떠나는 이유이다.

與野 국민들의 한결같은 대통령에 대한 根本的인 반감을 導出해 보면 인정머리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 그 이해의 폭이 缺乏되어 있다는 것이다. 運身의 폭을 넓히고 선제적인 아량을 취해서 先導를 하게 되면 자존심에 몽니를 부리를 결과를 낳지 않았을 것이다.

쉬운길을 너무나 어렵게 가는, 어떻게 보면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과 度量에 의해서 어렵지 않은 宿題를 스스로가 굳이 초래하여 국가적 難題로 판을 키우는 꼴을 만들고 있으니 이 어찌 어리석고 無知하다 아니할 수 있겠는가?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은 당연히 前提되는 것이고, 그런 선제적 소통이 과감히 이루어진다면 긍정적인 反響은 당연한 것이 될 것이고 萬事亨通이 될 것이다.

나 역시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 연민(憐愍)보다 더한 분노스러운 요즘이다. 正道를 걷는 지지자들의 공통적인 심정일 것이다. 우리는 문창극씨 개인에게 보수의 가치로서 자리매김을 주창(主唱)하고 그 서운함을 대통령에게 전가하는 그런 反感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一連의 과정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인사의 난맥상(亂脈相)이 초래되고 있는 이 한심한 作態를 보면서, 歸結은 설시한 바와 같이 대통령의 未必的 故意傍觀된 자세에 歸着하는 결과로서, 無能하고 無責任하고 無知한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야권에게 怨望과 빌미를 제공하여, 결국은 보수의 가치 그 當爲性弱化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하여, 국가적 積弊一掃하는 동력을 상실하게 하는 그런 우려에 대한 상심이 크다 할 것이다.

이러한 大義대통령을 통해 發現되길 바랐던 그런 믿음이 바로 지지를 통한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동력이 유지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과 신뢰가 前提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러한 바탕하에서 주도적 改革이 이루어 지고 彈力을 받아 그 결과물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信賴를 받는 先導的인 대통령으로서 그 직무를 다 할 때 그의 지지자들의 보람 또한 비로서 達成되는 것이다. 대통령 스스로가 招來한 잘못된 처신은 그 자신의 명예만 失墜되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번영과 안보 그리고 역사적 混沌正立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愛族 국민들의 遠大한 뜻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런 眞意가 실현되고 유지되어야 하기 위해서는 아직은 保守政權再創出로 그 命脈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偏狹한 자기 我執自尊心에 몰입되어 최고의 權座에 서게 한 지지자들의 뜻을 放棄하여 오만과 독선의 自己陶醉에만 빠진다면 그 분노는 하늘을 찌를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그런 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아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