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2
박영선은 누구…강경 이미지 탈피할 수 있을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대선전이 한창이던 2007년 말. 이명박 후보가 박영선 의원과 마주쳤다. 방송사가 주최한 대선후보 토론회가 끝난 직후였다. 악수를 하며 박 의원이 이 후보에게 말한다.
“저 똑바로 못 보시겠죠?”
이 후보가 답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내 박 의원이 응수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진짜.”
이 후보가 뒤돌아서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미쳤나 저게. 옛날엔 안 그랬는데….”
당시 박 의원은 정동영 후보의 측근으로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던 때였다. ‘BBK 저격수’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박 의원은 차기 대통령 당선이 유력했던 이 후보 면전에 대고 직격탄을 날렸던 것이다. 이때 장면은 박 의원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 ‘소신과 강단’이냐 ‘독불장군’이냐
그때의 박영선 의원이 지난 8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됐다. 130석 제1야당의 ‘넘버2’가 된 것이다. 헌정 사상 첫 여성 원내대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 의원에게는 이런 수식어보다 ‘강경하다’라는 이미지가 먼저 따라붙는다. 새누리당에선 이번 야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박영선·노영민·최재성·이종걸 4명의 의원 중 박 의원을 가장 경계했다. 대야(對野) 협상 파트너로선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11일 “워낙 강경 성향이니까 여당 입장에서는 박영선 원내대표가 아무래도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박 원내대표가 그동안 보여줬던 정치 활동을 따라가다 보면 ‘강경파’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밖에 없는 사례가 많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를 ‘원과 소신, 강단이 있다’라고 한다. 하지만 반대 측으로부터는 ‘지나치게 강성(强性)이다. 독불장군이다’라는 비판을 듣는다.
지난해 연말 예산처리 정국에서도 박 의원의 고집은 유명했다. 당시 법사위원장이었던 박 의원은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 개정안’에 끝까지 반대해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켰다. 외촉법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자회사(지주회사의 증손회사)의 주식 100%를 소유해야 한다’는 규정을 외국인 투자자와 함께 공동출자해 설립하는 증손회사의 경우 주식 50% 소유로 완화해주는 내용이었다. 국내투자 활성화와 해외 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통과를 아주 강조했던 법이다.
진통은 있었지만 여야 지도부가 논의 끝에 일부 내용을 수정해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했다.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위원회도 통과했다. 하지만 법사위원장인 박 의원의 반대로 법사위에서 막혔다. 박 의원은 당시 이 법이 “재벌에 대한 특혜”라고 강하게 반대하며 법사위 상정을 거부했다. 박 의원은 18대 국회때부터 꾸준히 대기업을 비판하며 재벌개혁 활동을 해온 터였다. 당시 박 의원은 외촉법에 대해 “돈 받고 법을 팔아먹는 것이랑 똑같은 것”이라는 말도 했다.
새누리당은 “박 의원이 무소불위의 월권을 행사한다” “박 의원 1명 때문에 다른 의원 299명이 볼모로 잡혔다”는 등으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박 의원은 끄떡하지 않았다. 여야는 재협상을 통해 법사위 통과를 위한 합의안을 또 만들었다. 하지만 박 의원은 끝내 ‘자기 손으로 외촉법을 상정할 수 없다’며 사회권을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이춘석 의원에게 넘기고 퇴장했다. 그제서야 외촉법은 법사위를 통과했다.
올 1월1일 새벽 당시 박영선 민주당 의원(가운데)이 법사위 회의장에서 사회권을 이춘석 민주당 의원
(오른쪽)에게 넘기고 나가는 장면.
“인간이야, 인간?”
시끌벅적한 ‘막말’ 논란도 있었다. 지난해 7월25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사건 국정조사특위가 열렸을 때다. 당시 회의에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야당 의원들이 자의적으로 사실을 단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끼어들어 “모욕스러워서 더 이상 못 듣겠어”라고 외친다.
그러자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박범계 의원에게 “사람 취급을 하지 마”라고 했다. 김진태 의원을 두고 한 말이다. 여야간 고성이 오갔다. 잠시 뒤 박영선 의원은 “인간이야, 인간? 나는 사람취급 안 한지 오래됐어요”라고 한번 더 말한다. 김 의원에 대한 박 의원의 이 막말 논란은 며칠동안 계속됐다.
“박근혜, 재벌가 딸들과 뭐가 다른가”
박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권을 향해 날선 언어로 공격한적도 여러 번이다. 2012년 2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던 박 의원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이렇게 비난했다. 당 회의석상에서다.
“박정희 기념관을 둘러보는 박근혜 위원장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호텔이나 빵집을 운영하는 재벌가의 대물림 딸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박 위원장은 누구의 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리더십인 반면 한 대표(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만인의 어머니와 같은 리더십이다.”
2012년 3월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유신시절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자 박 의원은 “박 위원장은 참 편리한 정치인이다. 모든 것을 말 한마디로 해결하려는 듯하다”고 했다.
지난해 8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임명되자 박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 1974년부터 79년까지 유신시절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 유신 공안의 추억? 한여름 납량특집 인사? 국정원 국조 물타기 인사? 소름 끼치네요.”
또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정보지(일명 찌라시)에서 봤다’는 취지로 말하자 박 의원은 “그렇다면 박근혜 정권은 찌라시 정권?”이라고 했다.
‘의원 박영선’과 ‘원내대표 박영선’은 조금 다를까
박 원내대표는 MBC 기자 출신이다. 미국 LA특파원, 경제부장 등을 지냈다. 그러다 2004년 초 MBC 선배였던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에 의해 여당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배지를 달았다. 이후 2008년 18대 총선 때 서울 구로을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고, 2012년 19대 총선 때 3선 의원이 됐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야권 통합경선에서 무소속이던 박원순 시장에게 패해 후보 자리를 내줬다.
박 의원은 2007년 대선을 거치고 18대 국회에 들어서면서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대여(對與) 투쟁에 적극 나섰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를 청문회에서 낙마시키는데 주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금산분리법 통과 등 재벌개혁 문제에도 적극적이었다. 비(非)법조인이면서도 국회 법사위 야당 간사를 맡아 검찰개혁을 강조했다. 이런 과정에서 박 의원은 강경파가 됐고, 19대 국회 들어서도 그 이미지는 변하지 않았다.
이완구(오른쪽)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국회 사랑재 회동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의 강경 성향 때문에 앞으로 여야의 원내 관계가 평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타협보다 충돌이 많을 것이라는 얘기다.
박 원내대표는 이번 원내대표 경선 정견발표 때 이런 말을 했다. “제가 그렇게 센 여자가 아닙니다. 저도 눈물 많은 여자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의원님들께 다가가겠습니다.” 자신의 강성 이미지를 의식한 발언이다.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는 “박 원내대표가 강성이긴 하지만 원내대표가 되기 전과 후는 다를 것”이라며 “박 원내대표가 정치적으로 한단계 더 발돋움하려면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대여 관계에서 강성으로만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 원내대표의 카운터파트(counterpart)인 이완구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는 11일 박 원내대표의 첫인상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두 사람은 특별한 인연이 없다. “10일 한 2시간 30분가량 박 원내대표와 만났다. 소신이 있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서로 소신만 맞으면 일사천리로 갈 수 있지 않겠나.” 이 원내대표의 바람대로 될까. ‘의원 박영선’과 ‘원내대표 박영선’이 얼마나 다를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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