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경쟁-불신으로 얼룩진 노동개혁20대 국회 어떻게 해야 하나 출처

2016.05.19

 

노동4법 분리 처리, 충분한 대화, 노동계 대안제시 능력 필요

노동법은 시장 변화에 따라 대응해 바꾸는 실용성 갖춰야

 

노동개혁 4법이 결국 19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된다. 이번 노동개혁법은 17년만에 성공한 ‘9.15 노사정 대타협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지만,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한국 경제는 연간 성장률이 2%대에 머무르는 등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라는 난관에 처해 있다. 노동시장의 경직화, 급속한 고령화 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 만큼 성장세를 회복하기 위해 구조개혁은 필수다. 정부 또한 이같은 인식 하에 노사정 대화를 통한노동개혁을 강조해 왔다.

 

정부는 20대 국회에서 다시 노동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일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노동개혁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불신, 여야의 프레임 경쟁(유리한 구도를 선점하는 것), 정부의 일방적 추진 등이 노동개혁 실패 원인이라고 말한다. 애초부터 제대로 된 노동개혁이 아니었다는 지적도 있다.

 

또 전문가들은 20대 국회에서 노동개혁이 단 한발짝이라도 나아가기 위해선 갈등이 비교적 적은 법안들은 빠르게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천천히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독일처럼 노동개혁법이 노동시장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실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열된 프레임 경쟁, 정부의 일방적 추진노사정, 여야 간 불신 깊어져

 

전문가들은 노동개혁에서 유리한 구도를 선점하기 위해 프레임 경쟁에 치우친 노정의 태도가 노동개혁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의 일방적 추진과 이에 따른 노정간, 여야간 불신은 법안 통과를 어렵게 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정 대화 체계에 대한 기존의 고전적 프레임을 넘어서지 못했다노사정은 소모적인 프레임 경쟁에 치중하다 보니 반대를 위한 반대를 낳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노동개혁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프레임 경쟁은 노정간 법안 네이밍(이름짓기) 경쟁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 지침에 공정인사지침이란 이름을 붙여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노동계는 이를 두고 쉬운해고지침이라며 맞섰다. 또 노동계는 35세 이상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늘릴 수 있는 기간제근로자보호법을 두고 장그래법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정적 여론을 형성했다.

 

정부의 일방적 추진또한 문제점으로 꼽힌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노동개혁 테이블을 형성한 만큼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를 이끌어야 했지만,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적절한 추진 방법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 또한 합리적 대화는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정부는 노사정 대화라는 끈을 놓지 말았어야 했다정부 주도적인 노동개혁이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노사정, 여야간 불신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장 연구위원은 “9.15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진 바로 다음 날, 정부와 여당이 노동개혁 5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기간제근로자보호법, 파견근로법 등은 아직 합의가 충분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내놓으니 노동계로선 합의 정신을 존중하고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노동개혁 법안이 애초부터 진정한노동개혁이 아니었다는 지적도 있다. 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개혁 법안이 우리 노동시장의 비정규직 보호, 임금 형평성 등 근본적 문제를 다뤘는지 의문이라며 이 문제들을 제대로 다룬 법안이었다면 상대방 설득에 보다 쉬웠겠지만, 오히려 비정규직을 어렵게 만드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에 상대방은 물론 국민들을 설득할 여력이 없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해 9월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이 노사정 대타협 합의 성공을 발표할 당시의 모습. 완벽한 합의가 아니었던 탓에 이후 노동개혁 법안 처리 과정에서 노정은 갈등을 빚었고, 결국 지난 1월 한국노총은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선언했다.

 

노동개혁의 20대 국회 성공 전략노동법 실용성 제고, 노동4법 분리 처리

 

박근혜 정부는 20대 국회에서도 노동개혁 법안을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인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노동개혁이 20대 국회에서 조금이라도 진전되기 위해선 노사정의 충분한 대화, 노동법의 실용성 제고, 노동4법 분리 처리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사정과 여야가 기본적 신뢰와 합의를 존중하고, 합의를 이행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이미 저성과자 통상해고, 취업규칙 변경요건 등을 행정지침으로 발표하면서 노사정 대화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부와 노동계의 심사숙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노동법이 한 번 통과되면 바뀌기 어렵다는 인식 또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시장이 바뀌면 노동법도 즉각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노동법은 한번 통과되면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노동법의 실용성과도 연관된다. 그는 독일의 경우 경제가 어려울 땐 근로자 보호 등으로 노동시장을 경직시키고, 고용 위기 상황에선 노동법 규제를 풀어나가는 등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우리나라도 노동시장이 바뀔 때마다 맞춤형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장치를 법 규정에 포함하고, 시장의 변화에 따라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실용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4법을 분리 처리할 수 있다는 여야의 유연한 태도도 필요하다. 이번 19대 국회의 경우 야당은 노동4법 중 비교적 갈등이 적은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등 3개 법안을 우선 통과시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여당은 분리 처리될 경우 노동개혁의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며 패키지 처리를 주장해왔다.

 

노동계의 부족한 대안 마련 능력 또한 해결할 과제다. 권 교수는 노동계가 과연 대안 제시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노동계는 대안 제시 노력이 부족했고, 합의에 응할 것인가만 결정하는 역할로 스스로를 축소시켰다고 말했다. 정부의 안에 대해 합의, 또는 거절하겠다는 대안 없는 반대는 결실을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김현숙 고용복지수석이 19일 언론 브리핑을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이날 제19대 국회가 마지막 본회의를 열었지만 그동안 청와대와 정부가 추진해 온 노동개혁 4대 법안이 결국 처리되지 못했다.


*19대 국회가 마지막 본회의를 끝으로 오늘(19) 사실상 마무리됐다. 마지막에도 역시 지각과 조퇴가 속출했고 경제 관련 쟁점 법안은 끝내 폐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