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은 헌법전문과 본문 제4조에서 발견된다. 헌법전문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려는 국민적 결의를 선언하고 있다.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것을 규정한다. 그리고 동일성 여부가 다투어지고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은 제8조 제4항(정당해산)에서 발견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기초개념으로서의 자유 , 민주 , 질서와 기타 유사개념들은 헌법전 도처에서 발견 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적극 실현되고 침해로부터는 반드시 수호되어야 할 헌법상 최상위의 규범적 가치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헌법상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내지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정확한 개념정의다. 엄밀한 定義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상황 때문에 더욱 절실해 지고 있다. 지난 세기 80년대 이후 휘몰아쳤던 민주화열풍에 영향 받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체적 형성을 에워싸고 일어나는 투쟁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민주화의 양적 성장은 괄목할만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내적 성숙을 위해서 해결되어야 할 수많은 난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 중 심각한 것으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체적 형성을 위한 상대적인 입장의 차이나 이해관계의 갈등에 머물지 않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자체의 상대화에 동조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 한편 우리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두 개의 개념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서로 상이한 것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상대화 경향에 이론적으로 동조한 것으로 보인다. 즉 상이성의 주장은 민주적 기본질서는 수호하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배제할 수도 있다는 주장가능성을 열어 버린다.
물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이건 민주적 기본질서이건 상대화가 가능한 내용을 자신의 외연 안에 담을 수 있다. 그러나 상대화될 수 없는 본질내용을 가지며, 그 본질 내용만을 가지고 보면 양 개념은 결국 동일개념인 것으로 보인다. 이 명제를 엄밀하게 논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헌법학적 과제로 생각된다. 이 과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을 상대화될 수 있는 가변적 내용으로부터 비판적으로 분리해 내서 그 본질만을 엄밀하게 정의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헌법은 우리의 공동생활방식의 총체적 규정이다. 헌법이 규정한 공동생활의 총체적 방식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 하나로 집약된다. 여기의 총체성은 - 물론 사실상으로가 아니라 규범적으로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최고절대성, 불가침성, 불가변성, 대체불가능성, 포기불가능성 등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절대적으로 수호되어야 할 과제로서 부과된 우리의 유일한 생활방식 내지 질서다. 따라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하는 것은 곧바로 위헌․불법이 되고 만다.
이러한 인식에 대한 오늘날의 심각한 도전은 이러한 인식가능성의 한계에 관한 비판적 성찰을 요구한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헌법문헌에는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는 진지한 성찰이 아직은 입문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방어 내지는 수호되어야 한다고는 인정하면서도, 수호의 근거와 한계에 관한 분석은 상당한 정도 미진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헌법판례에서 내려진 정의와 이를 모방한 -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 類似定義를 인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리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나마 행해지고 있는 논쟁과 정의조차 상당한 혼란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혼란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라는 과제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 극복되어야 하는 바, 그래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엄밀한 定義가 부단히 시도되어야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비판적 성찰, 특히 헌법상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및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엄밀한 정의는 방대한 지적 탐구를 필요로 하는데, 본고에서는 한정된 지면상의 이유도 있고 해서, 우리나라 헌법문헌상 발견될 수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및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논쟁들을 소재로 삼아 엄밀한 定議를 간략히 시도해 보고자 한다.
Ⅱ. 헌법판례와 문헌상의 定義
1. 판례상의 정의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과 제5항에 대한 한정합헌결정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자유․ 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국가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고,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체제를 파괴․변혁시키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이것을 사람들은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1952. 10. 23. 사회주의제국당(SRP) 위헌 판결에서 내린 다음과 같은 정의를 거의 그대로 또는 유사하게 수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그때그때의 다수의사에 따른 국민의 자기결정과 자유 및 평등에 기초한 법치국가적 통치 질서를 말한다. 이 질서의 기본적 원리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기본법에 구체화된 인권, 특히 생명권과 인격의 자유발현권의 존중, 국민주권, 권력분립, 정부의 책임성, 행정의 합법률성, 사법권의 독립, 복수정당제와 헌법상 야당 결성 및 활동권을 포함한 모든 정당의 기회균등.”
2. 문헌상의 정의
판례상의 정의에 대하여 비판하고 엄밀한 정의를 논증하는 것은 헌법학의 몫이다. 그런데 국내 헌법문헌은 대체로 판례상의 정의를 인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해석 및 정의를 위하여 필요한 이론으로서의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주의 등에 관한 논쟁이 시도되고는 있다. 덧붙여 루소의 일반의사론과 슈미트의 동일성민주주의론 등을 비판하는 것도 발견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논쟁은 그 자체 체계적 엄밀성에 있어서 문제점이 많으며, - 이 때문이겠지만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판례상의 정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고작해야 판례상의 정의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성요소로 수용된 대의제(간접민주주의)에 대한 옹호에 머무르고 만다.
또한, 독일기본법과는 달리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과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음으로 해서 양 개념의 동일성 여부를 놓고 다투면서 定義 시도가 보인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체계적 엄밀성 면에서 검토되어야할 것이 발견된다. 방어적 민주주의를 다룸에 있어서도 왜 그리고 어디까지 방어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논증도 그리 상세한 것 같지가 않다.
2.1.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와 민주적 기본질서 의 異同에 관한 논쟁
1) 상이한 것으로 정의하는 견해
김철수 교수는 독일기본법상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한국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상이한 개념으로 본다. 그는 “민주적 기본질서 중에서도 서구적 자유민주주의의 개념과 결부된 것만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보고,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등을 내포하는 상위개념이며 그 공통개념”이라고 정의 한다. 그는 이어서 상호 구별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詳細定義를 시도한다.
그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의를 위해서 이념․형태․내용 이라는 범주를 사용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민주적 기본질서(내지 민주정치)의 이념은 “자유․평등․복지”이며, 형태적 특징은 “국민의 지배”, 즉 국민이 치자이며 동시에 피치자라는 “자동성(Identität)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형태라는 제목하에 민주정치의 내용적 개념이라는 하위 명제를 설정하고선, 민주정치란 1) 국민의 국정에의 참여, 2) 다수결, 3) 시민대다수의 참정권 향유, 4) 자유․평등․복지의 보장, 5) 다수의 지배를 내용적 요소로 포함한다고 정의한다. 그리고는 최종적으로 그는 “민주정치는 이념이나 형태에 의하여 개념이 확정되기보다는 그 내용에 의하여 특징 지워지고 있다”고 하면서 Maunz의 학설에 따라 민주적 기본질서 내지 민주정치의 내용적 요소를 다음과 같이 열거 한다: 민주적 기본질서는 국민주권주의, 국민의 국정참여, 다수의 지배(다수결의 원칙과 소수자의 보호), 자유로운 투표에 의한 다수의 확정, 정치적 평등(특히 선거평등), 보통선거, 의견과 반대의견의 자유로운 형성, 국가에서 자유로운 여론의 형성, 자유교육제도의 확립과 교육의 기회균등, 공직취임의 평등과 자유, 자치행정, 이상의 원칙들이 국가 외의 다른 공적 영역에까지 적용될 것.
이러한 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을 평등이념에 포섭하고서는, “민주주의의 다른 요소인 자유와 복지와 결부하여 보다 많은 내용이 각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나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에 포함되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위에서 적시한 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에 “법치적 기본질서가 가미”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 정의한다. 권력분립, 기본권보장, 형식적 의미의 법률(의회입법), 사법과 행정의 합법성, 국가권력 행사의 예측가능성, 사법권의 독립, 사법적 권리구제 등의 법치주의적 요청은 “국가 권력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하여 제한하려고 하는 것”으로서 자유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포함되는 “법치주의는 형식적 법치주의에 입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파악한다. 그리고 사회국가원칙은 자유민주적기본질서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사회적 법치주의를 배척하는 개념”으로 보고 있으며, 자유와 평등만을 이념으로 하고 “복지와 사회정의의 요청을 무시”한다고 본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복합개념인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는 경제적 자유와 독점자본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라 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및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부익부․빈익빈을 조장하는 경제적 자유와 독점 자본주의를 용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란 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에 “사회적 정의․복지와 평화주의를 가미한 것”이며, “자유주의를 배격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정의의 실현, 사회복지의 실현을 위하여 자유에 어느 정도의 제한을 인정하는 것”이라 한다.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에서는 기본권보장에 생존권적 기본권의 보장이 중시되고 법치주 의에 있어서 사회적 법치주의의 원리가 강조되며, 실질적 법치주의에 입각하고 있 다.”
이렇게 정의하고서, 헌법전문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라고 규정한 것과 관련해서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이념으로 지향하지만,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를 배척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만을 이념으로 하는 것은 아니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려는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 보고,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라는 규정은 “인민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을 규정한 북한헌법에 대응하여 서구적 민주주의 하의 통일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와는 다르게 제8조 제4항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뿐만 아니라 사회민주적 기본질서까지 포함하는 것” 이며, “우리 헌법의 현실은” “고전적 자유민주주의”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복지국가적․사회적 법치주의” 내지 “복지의 요소”를 가미하는 방식으로 수정된 것이며, “자유민주적기본질서와 사회민주적기본질서의 택일을 가능하게 하는 공개된 민주질서”라 한다. 이를 종합하여 우리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으로 기본권존중, 국민주권, 권력분립, 정부의 책임성, 법치주의, 사법권의 독립, 복수정당제, 사회정의원리(=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국제평화주의를 들고 있다.
2)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견해
양자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입장이 국내 헌법문헌상의 주류경향이나, 세밀한 논증을 반드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태연교수가 그중 가장 상세하게 논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근대국가는 결코 경험적이 아닌 … 형이상학적 정신적 기초”로서의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하는데, 이러한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그 완미한 발전을 그 이념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닐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동일시가 독일기본법뿐만 아니라 우리 헌법에도 관철되어 있다고 본다. 독일기본법 “제 20조에 있어서의 민주적 라는 용어와 제18조에 있어서의 자유민주적기본질서라는 용어는 동일한 의미, 즉 그것은 전체주의에 대한 방어적 의미와 함께, 민주주의적기본질서 그 자체를 의미한다.” “우리 헌법에 있어서의 이러한 민주주의에 관한 규정은 그 내용에 있어서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이어서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관계 여하에 관하여 형태와 내용이라는 범주적 구별에 기초하여 상세논증을 시도한다. 그에 의하면 “정치개념으로서의 민주주의의 개념은, 우선 그 정치적 내용과는 관계가 없는 하나의 형태적 개념, 즉 사회질서창출의 방법 그 자체를 의미”하며, “국민에 의한 지배,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다수결에 의한 다수자의 지배로 규정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이성의 전능과 개인의 자유영역을 위한 투쟁적 개념으로서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에 있어서와 같은 적극적 구성원리가 아닌 소극적 원리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이러한 자유주의의 원리와 민주주의의 원리가 결합된 정치질서로 간주되고 있다.”
이렇게 일반적인 개념구성을 정리하고 나서 그는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동일한 것인지를 검토한다. 그에 의하면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구별하는 견해는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과 단절된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아니면, 고의적으로 민주주의에 그 어떠한 독재주의적 요소를 씌우자는 전체주의적 견해”라고 비판 한다. 후자의 견해는 특히 사회주의의 입장에서 발견한다. 그에 의하면 사회주의자들은 “이른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역사적 발전단계의 하나로 규정”하기 위하여 상호 구별한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서로 결합된 정치질서로서, 그 역사적 사명은 시민계급의 정치적 해방을 그 임무로 했다고 보고, 무산대중의 정치적 해방을 의미하는 사회민주주의를 그것과 대립”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적 요소를 제거한다고 할지라도 민주주의 그 자체의 본질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견해”라고 그는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엄밀히는 “서로 구별되고 서로 대립될 수 있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이지만, 그러나 “근대사에 있어서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그 대립세력인 절대군주제에 대한 투쟁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결합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념적으로도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요소를 제거하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공히 자유와 평등을 자신의 이념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실의 구체적 민주주의는 오로지 자유주의적 요소를 가진 자유민주주의뿐이며,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는 바로 민주주의 그 자체의 위기를 의미한다.”
그는 형태와 내용이라는 범주를 사용하여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동일한 개념으로 보지만 사회민주주의와는 구별한다. 그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국민의 지배의 정치적 형태”를 의미하며 “국가의사형성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요, 하나의 수단을 의미 한다”. 반면에 “정치질서의 내용을 표준으로” 하여, “경제적 평등과 같은 실질적 평등을 민주주의의 유일한 가치”로 보는 것은 사회적 민주주의라 정의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은 정치적 형태에 있으며, “경제적 문제와 같은 정치적 내용의 문제는 그 보조적 문제는 될지언정 그 기본적 요인은 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본질적 요소인 민주주의의 형태와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는 “기성질서의 전면적 부정과 혁명과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독재를 그 목적으로 하는 마르크스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오로지 사회개혁의 입장에서 점진적으로 경제적 평등과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서구적 의미의 사회주의” - 즉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 라 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적 정치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유재산제, 시장경제, 자유경쟁 등과 같은 최소한의 경제적 자유의 보장”을 필요로 한다.
위에서 인용된 한태연 교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그 밖의 대부분의 문헌에서는 세밀한 논증 없이 비교적 간결하게 동일성을 주장하고 있다. 홍성방 교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전제 아래 국민에 의한 정치가 이루어질 것을 요구하는 정치이념이며, 이는 내용적으로 자유와 평등, 더 정확하게는 평등한 자유를 통하여 확보되는 인간의 존엄과 직결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인간의 존엄에 기여하는 한 그것은 민주주의의 요소로 보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적 정의와 사회적 안전, 곧 실질적 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사회국가원리가 자유민주주의의 구체적 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이념을 자유와 평등 이라고 할 때의 평등은 정치적 평등과 물질적(=경제적) 평등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유와 이러한 의미의 평등은 서로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결합되어 있으며 진정한 자유란 법적 평등을 통하여 보장되는 인간 실존의 최저조건을 보장하는 것을 토대로 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제는 더 이상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적으로 구별할 실익이 없으며”, “그러한 한에서 우리 헌법의 여러 곳에서 혼용되고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같은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계희열 교수도 양자의 동일성을 마찬가지로 간단히 주장한다. “민주주의의 유형은 여러 가지로 세분할 수 있으나 - 인민민주주의를 제외하면 - 모든 유형의 민주주의는 그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다. 민주주의 앞에 붙인 여러 가지 형용사들은, 특히 자유 또는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자유와 평등 중 어느 편을 더 강조하느냐의 문제 또한 다른 유형의 민주주의와 구별하는 문제이지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여기서「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할 때 자유의 의미는 인민민주주의(공산주의)와 구별하려는 의미 이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3) 절충설
권영성교수는 두 종류의 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을 사용한다. 그 중 하나는 헌법상의 민주 , 민주적 , 민주화 등 모든 민주 개념으로 규정된 광의의 민주적 기본질서이며, 또 하나는 헌법 제8조 제4항 상의 협의의 민주적 기본질서이다. 그의 이론에 있어서 후자의 개념은 바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한정적으로 지칭하며, 전자의 개념은 “헌법적 질서의 하나로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비롯하여 모든 민주주의를 그 내용으로 포괄하는 공통분모적 상위개념이다.” 이로써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다르다는 입장과 동일하다는 입장을 절충하고 있다.
전자의 광의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개념정의와 관련하여 그는 민주주의를 생활의 실천원리 와 정치원리라는 양 측면에서 그 의의를 살피고 나서, 정치원리로서의 민주주의를 보다 세분하여 정치형태로 보는 입장과 정치이념으로 보는 입장을 정리한다. 그리고 나서 양자의 입장을 종합하여 “정치형태로서의 민주주의와 정치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동시 조화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보고, 그러나 동시적 실현이 곤란한 경우에는 형태로서의 민주주의가 보다 우선적으로 관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국가의사가 국민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국민 중의 능동적 시민의 총체가 직접 국가의사를 결정하거나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하여금 국가의사를 결정하게 하는 정치원리”로 정의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 내지 이념으로 국민주권, 자유, 평등, 정의를 열거하고 있다.
전자의 개념의 틀 안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을 정의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정의로는 판례상의 정의를 단순히 인용만 한다.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와 관련해서는 “사회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전제로 하면서 사회정의와 국민복지의 실현을 위하여 자유의 체계에 적절한 제한이 가해지는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를 전제로 하여 실질적인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한 유형”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의 관계와 관련하여,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광의의 민주적기본질서안에 포괄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사회민주적 기본질서가 모두 보장되지만, “우리 헌법이 보다 역점을 두고 있는 쪽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한다. 왜냐하면 “전문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라고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제4조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 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 헌법은 전체적으로는 광의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보장하지만, 헌법 제8조 제4항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의미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여기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정당해산사유를 구성하는 바, 만약에 협의가 아니라 광의로 해석하면 정당의 존립과 활동의 자유의 폭이 지나치게 좁혀지기 때문이라 한다. 만약에 광의로 해석하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민주주의에 찬동하지 아니하는 정당(자유주의적․보수주의적 정당 등)까지도 해산의 대상이 되는 불합리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2.2. 위의 정의들이 갖는 논리적 구조
판례상의 定義나 문헌상의 定義에는 모두 그 자체 안에 각각의 논리적 구조가 들어있다. 이 구조를 엄밀히 분석해 내고 또한 헌법상의 논리적 구조를 분석해 내서 후자의 구조를 준거로 전자의 것을 평가할 수 있다. 헌법상의 논리적 구조의 분석은 다음 장에서 하고, 여기에서는 위의 정의들이 갖는 논리적 구조를 대략적으로 분석 하고자 한다.
정의의 논리적 구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는 개념의 내포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행하는 定義이다. 이로써 그 개념의 외연이 또한 명확해진다. 내포를 제시하는 방식의 내포적 정의와 그 개념의 외연에 포섭될 수 있는 것들을 열거하는 방식의 외연적 정의가 있다. 그런데 이때 유념해야 할 것은 정의하는 자가 자의적으로 내포와 외연을 규정하여 객관성과 타당성을 상실한 定義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옳은 정의를 획득하기 위해서 엄밀성이 가능한 한 최대한 제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 정의되는 개념에 따라 다르겠지만 - 정의하는 자의 주관에 따르지 않고 그 자체 인정될 수밖에 없는 본질적 내포만을 가지고 정의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자 한다. 이러한 정의가 가능한 개념을 순수개념 내지 절대개념으로 보고, 주관적인 관심에 따라 우연한 가변적 요소가 부가되어 규정되는 상대개념과 구별하고자 한다. 문헌상에 민주적 기본질서 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느냐 상대적인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구별은 필요하다. 그러나 물론 완벽한 정의란 원래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인정하면서 정의들이 분석되어 야 할 것이다.
1) 판례상의 정의
먼저 독일판례상의 정의를 살펴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일종의 통치질서라고 정의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외연을 한정하고 있다. 즉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타당영역은 국제관계이건 국내관계이건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정 등 인간과 인간의 상호관계가 형성되는 모든 공동생활영역이다. 그런데 판례는 이러한 전체 영역의 일부인 국가의 공권력관계 내지 통치관계의 영역으로 한정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한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규범력을 비통치영역에서 배제하고 있다고 해석할 근거는 없다. 그리고 정의명제를 구성하고 있는 앞부분, 즉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그때 그때의 다수의사에 따른 국민의 자기결정과 자유 및 평등에 기초한 법치국가적”이라는 부분은 내포규정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내포들은 그 타당범위가 통치관계영역에 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을 구성한다 고 할 수 있다. 독일판례상의 정의명제의 뒷부분에서 적시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포함될 원리로서의 “기본법에 구체화된 인권, 특히 생명권과 인격의 자유발현권의 존중, 국민주권, 권력분립, 정부의 책임성, 행정의 합법률성, 사법권의 독립, 복수정당제와 헌법상 야당결성 및 활동권을 포함한 모든 정당의 기회균등”은 앞 명제상의 내포를 상세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과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연적 본질인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이들 중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을 역사 속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경험적인 인간들의 주관적 관심을 반영하여 구체화된 그래서 상대적인 내용요소들이 들어 있다. 예컨대 권력남용금지 원칙은 필연적 요소라 할 수 있겠지만 권력분립은 그렇지 못하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실현하는 경우 실제로 항상 권력분립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은 경험적 보편성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험적 사실로부터 권력분립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필연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본 질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법권의 독립도 마찬가지다.
우리 헌법재판소의 판례상의 정의명제는 더욱 많은 논리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 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라는 부분을 먼저 살펴보면, “즉”이라는 삽입어를 사용하여 반국가 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만이 폭력적 내지 자의적 지배의 유형인 것으로 한정하는 것은 오류라 본다. 국가의 공권력주체에 의한 독재도 폭력적 내지 자의적 지배인 것이다. 구체적 내용요소로 열거하고 있는 것들이 본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경험적 요소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독일판례상의 정의명제와 동일하다. 또한 “우리의 내부체제를 파괴․변혁시키려는 것”이라는 표현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경험적 요소를 포함한 원칙과 제도 등을 열거하고서 “등 우리의 내부체제”라고 함으로써 現체제, 즉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현상을 수호해야 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상을 폭력적으로 변혁시키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과 상합할 수 없다. 그러나 위의 정의명제처럼 방법을 한정하지 않고 변혁을 거부하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합치되지 않는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의 수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2) 상이하다는 정의
김철수 교수의 논증에서 사용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은 초월적 이념으로만 구성된 순수개념이 아니라 역사 속의 경험적 현상을 지시하는 경험적 개념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이념으로 명명된 자유와 평등은 사회 민주적 기본질서상의 자유와 평등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전자에 있어서는 “복지와 사회정의의 요청을 무시”하는 자유와 평등이다. 여기의 자유는 “부익부․빈익빈을 조장하는 경제적 자유와 독점자본주의를 용인하는” 자유이며, 평등에 관해서는 정의 명제 안에서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전체적인 논리구조 속에서 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상의 평등은 복지를 통해서 보장되는 바의 실질적 평등이 아니라 부익부․빈익빈을 용인하는 형식적 평등일 것이다. 그리고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상의 자유는 “사회적 정의의 실현, 사회복지의 실현을 위하여 … 어느 정도의 제한”이 가해진 자유이며, 평등은 실질적 평등이다. 법치주의라는 요소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는 형식적인 것이고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에서는 실질적인 것이다. 또한 사회민주적 기본 질서에는 포함되는 “사회적 정의․복지와 평화주의”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상이한 양 개념의 상위개념과 공통개념을 민주적 기본질서라 정의하는데, 이러한 논리구조 하에서는 민주적 기본질서는 고유한 현상형태를 가질 수 없다.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나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나 혹은 이와 다른 종류의 어떤 것으로 현상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와 위계를 같이 하는 또 하나의 다른 종의 경험적 현상일 수가 없다. 사람과 원숭이는 모두 포유동물이지만 사람과 원숭이와는 달리 포유동물이라는 그 자체의 현상형태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결국 이러한 논리 구조 속의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은 경험적 개념이 아니라 그의 현상형태들이 공유하는 순수이념들로 구성된 순수개념일 뿐이다. 즉 민주적 기본질서의 이념으로서의 “자유, 평등, 복지”는 역사 속에서 형성된 구체적 내용을 그 자체 안에 담고 있지 않은 보편타당한 형식이다. 만약에 내용을 담으면 그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상의 자유나 평등이 되거나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상의 자유나 평등이 되어 버린다.
민주적 기본질서는 그 자체 공동생활의 보편타당한 순수형식이며 따라서 절대적으로 수호되어야 할 절대가치며 규범이 된다. 그러나 경험적 현상으로서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는 그 자체 보편타당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선호를 반영하여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절대화될 수 없다. 이러한 개념의 틀을 가지고 있기에 김철수 교수는 헌법전문상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와 병렬시키고는 헌법제정자가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보며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서양의 역사와 가치를 반영하여 형성된 “서구적 민주주의”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상대화시켜서 전문과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버린다. 제8조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수호해야 하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반드시 수호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적 귀결에 이르고 만다.
3) 동일하다는 정의
김철수 교수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경험적 현상으로만 파악하였다면, 한태연 교수는 근대국가의 “경험적이 아닌 … 형이상학적 기초”라고 정의함으로써 민주주의 내지 민주적 기본질서를 국가적 실존의 보편적 형식으로 보며, 자유민주주의 내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이와 동일한 것으로 본다. 그에 의하면 민주주의의 이념으로서의 자유와 평등은 그대로 자유주의의 이념이며 따라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성립하려면 민주주의,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일련의 개념들이 모두 순수한 보편적 형식이어야만 한다. 한태연 교수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은 김철수 교수의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과 결국 동일하다. 양자의 이동에 관한 논쟁은 각자 사용하는 개념의 틀이 서로 달라서 빚어진 형식 논리적 다툼일 뿐이다.
한편, 한태연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를 형태의 범주에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는 내용 의 범주에 포섭하고 있다. 이로써 자유민주주의는 순수개념으로 규정되지만, 사회민주주의는 그때 그때의 경험적 소여에 제약을 받아 구체적으로 형성되어 그 내용적 가변성이 허용되는 현실적 이데올로기로 규정되어 있다. 이로써 사회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어있는 초역사적 본질로서의 보편적 형식에 관한 분석이 결여되었다. 자유민주주의도 그의 보편적 형식의 현실에서의 구현을 위하여 역사 속에서 형성된 구체적인 내용이 있으므로, 현실적 자유민주주의는 내용의 범주에 포섭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도 일종의 민주주의로 간주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본질적 요소로서의 보편적 형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유민주주의는 형식으로 보고 사회민주주의는 내용으로 규정함으로써 관계설정의 차원에 있어서 문제점을 보유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다른 것으로 보는 한태연 교수와는 달리 홍성방 교수는 인간의 존엄의 개념을 매개하여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를 하나로 통합하고 있다. “사회국가원리가 자유민주주의의 구체적 요소”가 되었으며,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와 평등은 오늘날에는 사회민주주의의 자유와 평등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적으로 구별한 실익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논거로 그는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동일한 것으로 해석한다. 순수이념으로서의 자유와 평등은 물론 동일하다 고 보아야 하지만, 동일한 이념이라도 그의 구현현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지만 현상에 있어서는 반드시 동일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비교의 차원을 간과하고서 그냥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 가 있다. 오늘날 대체로 헌법현상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수렴되고 있다 라는 경험적 명제는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이 절대적으로 수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수호되어야 할 민주적 기본질서와 사회국가원리 내지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포함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계희열 교수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동일성과 차별성을 공히 인정하는데,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본질에 있어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동일하다고 하면서,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할 때 자유의 의미는 인민민주주의(공산주의)와 구별하려는 의미 이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함으로써 자유를 사회민주주의와 구별하는 종차로 삼지 않는다. 이것으로 보아 그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자유라는 개념은 경험적 현상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본질 내지 순수이념으로서의 자유를 지시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동일하다는 명제는 성립한다.
4) 절충적 정의
권영성 교수의 명제 속에 발견되는 두 종류의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 중 광의의 개념은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로 보호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 즉 외연을 규정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는 모두 보호범위 안에 속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이 보호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전체와 그의 일부로서의 자유민 주적 기본질서는 동일할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호범위 안에는 민주적 기본 질서의 본질뿐만 아니라 그의 현상도 들어온다는 것이다. 현상의 차원에서 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기본적으로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와 서로 다르되 동일한 레벨의 것으로 인식된다. 우리 헌법이 보다 역점을 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규정함으로써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외연 안에 속하는 것이라 해서 절대적 불가변성과 불가침성을 갖는 것으로 수호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 그러한 대상이 될 수 없는 본질로만 구성된 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이 있는데, 헌법 제8조의 그것이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은 모든 현상이 민주적 기본질서 안에 포함될 수 있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충족시켜야 할 최소한의 본질만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협의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만을 의미한다고 하므로써, 위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는 다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을 사용한다. 이 후자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우리 헌법이 보다 역점을 두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와 동일레벨에 놓여 있는 그러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니다. 결국 권영성 교수의 정의명제에는 두 종류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절대개념으로서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역사상황 속에서 형성된 경험적 현상으로서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그것이다. 전자의 절대개념으로서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우리 헌법이 절대적으로 수호하려는 질서 내지 법이며 따라서 상대화될 수 없는 것이다.
2.3. 방어적 민주주의론
1962년이래 우리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내지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해야 할 가치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독일의 방어적 민주주의의 수용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헌법규정은 계희열 교수에 의하면 “그 근거와 한계에 관한 이론적 성찰없이 필요에 따라” 운영되었으며, “이로써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며”, 이때에 “방어적 민주주의의 이론은 전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론과 실제의 분리라는 이러한 진단에 대한 동의여부에 앞서, 국내 헌법문헌에 방어적 민주주의의 근거와 한계를 규명하는 이론, 즉 민주주의는 왜 그리고 어디까지 절대로 수호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논증이 어느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는지가 먼저 검토될 필요가 있다.
1) 개요
국내 헌법문헌은 독일의 기본법체제 하에서 전개된 방어적 민주주의론을 수용하여, 그의 敵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개념의 틀을 사용한다. 민주주의라는 개념 하에 가치상대주의, 세계관적 내지 가치적 중립성, 관용, 다원주의, 자유와 개방적 정치과정, 토론과 타협과 평화, 소수자보호 등을 포섭하고 그의 적으로는 전체주의, 절대주의, 인민민주주의, 독재주의, 폭력적 지배 등을 지시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수호되어야 할 절대가치며, 따라서 그의 적에 대해서까지 관용하는 맹목적 상대주의가 아니라, 적에 대항하여 자신의 절대성을 관철시키는 가치 구속적․투쟁적․전투적 태도를 견지하여야 한다고 한다.
자유와 폭력이 적나라하게 맞서는 경우에는 폭력에 대항하여 자유를 수호하는 것은 당위다. 그렇지만 위장된 폭력, 즉 자유와 민주주의로 위장해서 자신의 정체를 의식적으로 은폐하고서 나타난 폭력과 전선을 형성한 경우에는, 외관은 자유와 자유가,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띈다. 또한, 자유와 민주주의는 평화롭게 폭력 없이 자유민주적인 방법 즉 합의로도 폐기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때로는 이러한 대결국면이 발생할 위험이 적지 않다. 국내문헌에서 발견되는 다음과 같은 정의도 이러한 위험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방어적 민주주의라 함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그 자체를 파괴하거나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의 체계 그 자체를 말살하려는 민주적․법치국가적 헌법질서의 적으로부터 민주주의가 자신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그와 투쟁하기 위한 자기방어적․자기수호적 민주주의를 말한다.”
이러한 경우, 수호되어야 할 자유와 민주주의를 배척되어야 할 자유와 민주주의로부터 구별하는 난제가 제기된다. 전자는 민주주의 자체 , 자유체계 자체 또는 민주주의의 본질 , 민주주의의 핵심 등으로 정의되고 있으며, 헌법상으로는 이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내지 민주적 기본질서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후자에 대한 적극적 정의는 국내문헌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즉, 외관상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로 보이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유 및 민주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또한 충돌한다는 정의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이처럼 본질과 외관을 서로 구별하는 것으로부터 후자의 정의를 위한 단서가 발견된다. 민주주의 자체 , 자유체계 자체 또는 민주주의의 본질 , 민주주의의 핵심 , 즉 그 자체 또는 본질이 아닌 것으로서의 외관상의 민주주의란 결국 인간의 경험적 의사를 반영하여 구현된 본질 자체의 경험적․구체적 현상 내지는 실현형태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때문에 본질과 그의 현상으로서의 외관의 충돌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따라서 절대성과 보편타당성을 갖는 이념 내지 본질과는 달리 현상 내지 실현은 조건적으로만 타당한 상대적 가치에 불과한 것이다.
비록 자유민주적인 방법으로 형성된 경우라 할지라도 경험적․현실적 의사를 가지고서 자유민주적 의사결정방식 자체를 처분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방어적 민주주의론은 자유의사의 한계론의 다름이 아니다. 이러한 한계론은 기본권이론에서는 기본권의 한계론으로, 권력론에서는 주권과 헌법제정권 내지 입법권의 한계론으로, 법이론 일반에서는 자연법론으로 전개된다. 즉 방어적 민주주의론은 일종의 자연법론이 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여야 한다는 명제는 일종의 자연법명제다. 그리고 수호 되어야 할 자유와 민주주의는 본질로 엄격히 한정되어야만 방어적 민주주의론은 보편타당성을 갖는 자연법명제가 된다. 이렇게 이해함으로써만 비로소 자유로부터 자유를,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방어한다는 논리의 구조가 해명된다.
2) 근거
방어적 민주주의 이론의 등장 내지 제도의 성립배경에 관한 비슷한 내용의 설명은 국내 헌법문헌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사실적 근거의 규명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필자가 관심을 갖는 문제는 민주주의의 수호의 이론적 내지 논리적 근거다. 즉 민주주의는 왜 무조건 수호되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계희열 교수의 문헌에서 “방어적 민주주의가 그 정당성의 근거를 민주주의의 가치구속성에서 찾는다”라는 명제가 발견된다. 근거에 관한 질문은 이러한 인식에 만족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구속성의 근거를 묻는다: 왜 민주주의는 가치구속성을 갖는가?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는 가치구속적이어야 한다 라는 당위명제의 타당근거는 무엇인가? 가치구속성의 이론적 근거는 일단은 민주주의 자체 안에 내재되어 있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인간의 결의에 있지 않다. 즉, 가치구속성은 민주주의의 고유한 성질 즉 본질이지 외부로부터 민주주의에게 부가된 우연한 성질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사실적-정치적 행위로서의 헌법제정자의 근본결단이나 그의 내용으로서의 헌법상의 근본결단 이나 기본법의 근본결단 에서 이론적 근거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 자체 안에서 가치구속성을 근거지우려는 타당한 시도의 단초가 국내 헌법문헌에서 발견된다. 허영 교수는 “방어적 민주주의이론은 반드시 방어가치가 있는 일정한 민주주의의 실질적 요소를 전제로 할 때에만 그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고 하고, 그 실질적 요소로 국민주권, 자유, 평등, 정의를 들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실질적 요소가 왜 그리고 어느 범위까지 방어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적극적 논증으로 더 이상 연결되지는 않는다.
장영수 교수는 “민주주의의 내용적 가치” 내지 “민주주의의 (침해되어서는 안 될) 핵심”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들고 있으며, 다원성을 민주주의의 본질이라 규정하면서, 이어서 이 양자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구성한다. 즉 “민주주의의 실현은 다원적 의사 및 이해관계들의 경합과 충돌, 조정과 타협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원적 정치과정을 통해 … 이루어지며 …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이념은 다원성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이러한 다원성에 대한 제한으로 기능하게 된다면 그것은 다원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다원성이 실질적으로 가능케 하기 위한 공동의 기초를 확보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 명제가 구성한 논리는 상당히 혼란스러워 분석을 필요로 한다. 이 관계구성의 논리를 분석해 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다원성이 모두 불가침성을 갖는 본질적 가치로 간주되면서 동시에 상호 제한적 관계에 놓여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절대성 차원에서는 양자간의 상호 제한이란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의 양자는 동일물이거나 다원성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적 요소를 구성하기 때문 이다. 제약관계는 일자가 절대성차원(이념 내지 본질)에 머무르고 타자가 상대성차원 (실현 내지 현상)으로 내려오거나 양자가 모두 상대성차원으로 전환된 경우에만 가능 하다. 따라서 장교수의 명제는 이념(본질)과 실현(현상)의 구별이라는 자연법론적 개념의 틀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장교수의 명제에서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다원성이 민주주의의 불가침적 내지 가치구속적인 본질이며 핵심이라는 주장은 발견되지만, 왜 불가침성 내지 가치구속성을 갖는지에 관한 적극적 논증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한태연 교수는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와 동일시하면서 근대국가의 “경험적이 아닌 … 형이상학적 정신적 기초”로 그리고 오류(Maurice Hauriou)의 개념을 빌려 “움직일 수 없는 이념의 블록(bloc des ide´es incontestables)”으로 규정한다. 이어서 그는 자유와 평등을 민주주의의 “이념적 기초”로 정의하며, 민주주의의 세계관적 기초는 - “필연적인 귀결”로서 - 가치상대주의에서 찾지 않으면 안되며, 때문에 민주적인 사회는 다원주의와 관용성을 그의 구조원리로 - “필연적인 경향으로서” -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나서 그는 이러한 “상대주의에 대한 신념은 상대주의 그 자체의 부정에 대한 … 부정의 신념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이해하며, 따라서 방어적 민주주의를 “상대주의의 절대화”로,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절대화를 “상대주의의 한계 또는 민주주의적 관용의 한계”로 규정한다. 이러한 상대주의의 타당근거를 그는 - 켈젠의 논증을 인용하여 -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에 근거하여 전개된 비판주의(Kritizismus)와 실증주의(Positivismus)에서 찾고 있다.
그의 이러한 명제 속에도 논리적 긴장이 들어있다. 상대주의의 절대화와 상대주의의 한계 의 관계, 즉 절대화된 상대주의와 상대화된 상대주의라는 두 개념은 전술한 바와 같이 이념(본질)과 실현(현상)을 구별하는 자연법론적 개념의 틀로 분석해야만 두 개념간의 긴장이 해소될 수 있다. 또한 “경험적이 아닌 … 형이상학적 정신적 기초”와 - 명명백백하여 다툴 수 없다는 의미의 - “움직일 수 없는 이념(idée incontestables)”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과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으로부터 상대주의는 “필연적”으로 귀결되며, 다원주의와 관용성은 “필연적인” 경향이라고 한 점도 그가 자연법론적 개념의 틀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대주의를 켈젠의 비판주의와 실증주의의 논리에 의존하여 논증함으로써 자연법 론과 실증주의와의 대립이 들어 있다. 이러한 대립은 애초에 칸트의 비판철학 자체 안에 배태되어 있다. 이러한 대립은 모순으로 파악되어서는 안 되며, 따라서 자연법론을 선택하고 실증주의를 폐기한다거나 실증주의를 위해서 자연법론을 폐기해서도 안 된다. 아무튼 이러한 대립의 해소, 달리 표현하면 자연법론과 실증주의의 비판적 종합은 현대법철학의 난제중의 난제로서 일단은 본고의 논증대상 밖에 있다. 다만 여기서 간단히 언급하자면, 형이상학적인 이념은 그 자체 인간의 경험적 의사로부터 독립성을 갖지만 스스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의 주체인 인간의 작용에 의 하여 비로소 실현될 수밖에 없다. 실천이성의 필연적 요청인 이념은 절대성을 갖지만, 그의 실현을 위한 경험적인 의사내용은 어떠한 경우든 절대화될 수 없다. 이러한 명제는 - 칸트의 비판철학에 의하면 - 실천이성의 필연적 귀결로서 일종의 자연법론 적 명제에 해당된다. 즉 이념의 소스(source)는 순수실천이성이며 이념실현의 내용의 소스는 경험적 소여 속에서 행사된 자유의지이다. 이념은 자유의지를 통해서만 실현 되지만, 그 실현의 내용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공동생활을 위해서는 경쟁관계에 있는 의견 중에서 언젠가는 부득이 구속력을 갖는 것을 특정할 수밖에 없으며, 그 특정하는 방식의 기본원리는 다원주의 내지 상대주의에 기초한 개방적 다수결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된 것은 일단은 구속력을 갖는다라는 명제는 일종의 실증주의적 명제이다.
민주주의의 가치구속성의 근거에 관한 국내 헌법문헌의 논증을 종합해 보면, 미진한감이 없지 않지만, 비판주의와 실증주의에서 방어적 민주주의의 논리적 근거를 찾으려는 한태연 교수의 시도가 그래도 가장 진지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위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자유와 민주주의 내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반드시 수호되어야 할 이유에 관한 논증은 - 물론 칸트의 비판철학의 정신에 입각하여 엄밀하게 한정된, 즉 독단론이 배제된 - 자연법론일 수밖에 없다. 물론 자연법론의 타당근거는 자연법론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주관적 입장(경험적 합 의)에서 발견되어서는 안 되며, 결국 스스로 타당한 자연법의 존재증명을 통해서 제시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자유와 민주주의 내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효력근거는 이들 가치를 수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결의가 아니라, 이들을 수호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내적 필연성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여야 한다. 그런데 경험적 합의에 의하여 비로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보편타당한 가치이기 때문에 수호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점을 논증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난제이다. 칸트가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자연법증명은 순수실천이성의 과제인데, 종국에는 형이상학적 가정, 즉 인간은 자유의 주체로서 존엄하다는 명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인간 존엄성은 인간자체의 고유한 본성이기 때문에, 존엄성보장의 규범적 근거는 보장하기로 한다는 합의라는 경험적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장하지 않으면 아니 될 내적 필연성에 있다. 따라서 존엄성을 부인하기로 설사 만장일치로 합의했다하더라도 그 합의는 규범적인 관점에서는 무효이며 존엄성 자체의 효력을 조금도 훼손하지 못한다. 이러한 존엄성개념으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방어가 치성은 필연적으로 귀결된다.
루소는 그의 사회계약론 에서 자유와 폭력을 그리고 칸트는 그의 실천이성비판에서 인간과 사물을 범주적으로 구별하고서, 각각 자유와 인간의 개념으로부터 정당한 법 - 즉 자연법 - 의 개념을 도출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법은 인간과 그의 자유를 위하여 존재하며, 자유의사를 부정하는 일체의 모든 폭력과 사물화를 거부한다. 이러한 자연법은 근대법을 형성하는 기초개념이 되었고, 자유인(Person), 즉 존엄한 인간이라는 개념은 근대법의 최고절대의 근본원리며 이념이 되었다. 따라서 이 개념에 근거하지 않은 규범적 가치는 정당한 법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사회규범은 이러한 Person의 개념과 모순되지 않는 범위에서만 비로소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Person과 Person의 관계구조를 사물의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은 일체 불법이다. 민주적 기본질서 내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수호되어야 할 근거는 그것이 Person의 개념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귀결된다는 점 외에서 발견될 수 없다.
3) 수호한계(범위)
민주주의의 절대적 수호범위의 한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정의를 위해서 사활적인 의미를 갖는다. 국내문헌상 이러한 한정을 위한 논증은 민주주의의 본질론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행해지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논증은 문헌에서 발견된 방어적 민주주의의 한계론과는 엄밀히 구별되어야 한다. 방어적 민주주의는 결국 자유와 민주주의에 일체의 모든 침해를 배제하는 모습으로 구현되는데, 특히 자유와 민주주의의 구체적 실현을 통해서 자유와 민주주의 자체가 본질적으로 침해되는 경우에도 역시 불허된다. 그렇지만 방어적 민주주의의 구현을 통한 자유와 민주주의의 구체적 실현의 제한이 조건없이 용인되는 것은 물론 아닌 바, 용인되는 경우의 엄격한 한정을 일반문헌에서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한계라 개념 한다. 즉 방어적 민주주 의의 한계란 방어적 민주주의의 구현상의 한계를 지칭한다. 이러한 의미의 방어적 민주주의의 한계론에 의하면, “첫째로 방어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침해해서는 안되며”, “둘째로 법치국가, 사회국가, 문화국가 및 국제평화주의와 같은 다른 기본원리의 본질을 침해해서는 안되며”, “셋째로 방어적 민주주의를 근거로 한 제한은 엄격한 비례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이에 추가하여 “방어적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소극적․방어적인 것이어야 하고 적극적인 것이거나 공격적인 것이어서는 아니된다”는 주장도 발견된다.
이러한 한계론은 방어 및 수호의 엄밀한 범위한정에 관한 논증을 위해서 실질적 도움은 주지 못하지만, 엄밀한 범위한정을 위한 하나의 계기는 제공한다. 엄밀한 범위한정은 결국 본질에 관한 규정을 말하고, 이로써 민주주의의 본질과 그의 구체적․경험적 실현방안 및 민주주의의 본질을 수호하기 위한 구체적 실현방안으로서의 방어적 민주주의의 실현이 구별될 수 있게 된다. 방어적 민주주의의 한계론은 이러한 구별을 전제하고서만 타당성을 가질 수 있으며, 본질과 실현의 구별의 개념 틀 을 벗어나서 자신의 논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법의 통일성과 전체성 내지 총체성 개념과 상합하기 위해서는 본질과 본질은 결코 충돌할 수 없으며 오로지 본질과 현상간 또는 현상 상호간에만 충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의미의 본질은 결코 제한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비례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며, 본질의 수호는 소극적․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논리적 근거로 살펴보아, 위의 방어적 민주주의의 한계론 은 방어적 민주주의의 실현상의 한계를 지칭할 뿐이다.
방어적 민주주의란 정확히 말하면 방어되어야 할 민주주의를 지칭하는 것이고, 이는 절대적으로 수호되어야 할 범위로 한정된 민주주의의 본질을 지시한다. 그리고 보호되어야 할 실질적 규범가치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내지 민주적 기본질서라 한다면, 이 기본질서는 공동생활의 기본원리로서의 자유민주주의 내지 민주주의의 초월적 본질을 의미한다. 이러한 본질만이 절대적 수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한 한에서만 방어적 민주주의는 무제약적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방어적 민주주의의 보편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절대적 수호범위로서의 민주주의의 본질확정이 절대로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본질에 관한 논쟁이 국내 헌법문헌에서도 발견된다. 허영 교수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규정하기 위해서 먼저 민주주의를 국민이 국가권력의 주체인 통치형태 로 이해하는 이론과 치자와 피치자가 동일한 통치형태로 규정하는 소위 동일성이론과 상대주의에 입각한 다수의 통치형태로 이해하는 H. Kelsen의 상대적 민주주의론을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국민이 국가권력의 주체인 통치형태로 이해하는 이론은 국가와 국가권력은 과정 이전에 선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조직되고 창설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선재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또한 “국민을 전체로서 ‘행위능력 있는 일종의 인간’으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동일 성이론 은 “정치현실과는 거리가 먼 하나의 의제”, 즉 “국민전체가 하나의 ‘통일된 전체’로서 ‘유일한 정치적 의사’를 갖는다는 의제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도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형태라는 점과 민주주의 질서 내에서도 명령․복종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국민의 자기지배형태”보다는 “국가권력의 창설과 그 행사의 정당성을 국민의 의사에 귀착시킬 수 있는 통치형태”의 제도화와 실현을 보다 중요시하고 있다. 상대적 민주주의론은 민주주의를 ‘다수의 지배형태’로 보고 무제한적 다수결을 허용함으로써 “소수에 대한 ‘다수의 독재’”를 용인한다고 비판하면서, “다수결원칙은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고 한다.
위와 같은 비판에 이어서 허영 교수는 자신의 입장을 담아서 민주주의를 “국민의 정치참여에 의해서 ‘자유’․‘평등’․‘정의’라는 인류사회의 기본가치를 실현시키려는 국민의 통치형태”라 규정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3가지 요소, 즉 “‘국민주권’․ ‘자유’․‘평등’․‘정의’등의 실질적인 요소”, “민주주의의 실질적 요소를 실현시키기 위한 기술적인 수단을 뜻하는 일정한 형식원리”, “민주주의의 형식원리가 지켜지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하는 일정한 윤리적․도덕적 생활철학”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형식적 원리로는 “‘법질서’, ‘국민투표 및 선거제도’, ‘복수정당제도’, ‘다수결원칙’, ‘소수의 보호’, ‘기본권보장’, ‘권력분립제도’, ‘사법권독립’, ‘헌법재판제도’, ‘지방자 치제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등”, 생활철학으로는 “‘사랑’․‘관용’․‘공공심’․‘책임감’․‘대아적 자세’․‘순수성’․‘사리사욕을 초월할 줄 아는 생활 태도’․‘협상의 자세’ 등”을 제시한다.
허영 교수가 전개한 민주주의 본질에 관한 이론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세밀한 평가는 본고의 주제 밖에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본고의 주제와 관련되는 범위에서만 간략하게 시도한다. 허영교수는 그의 방어적 민주주의이론에서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자유’․‘평등’․‘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일정한 세계관 내지 가치관과 결부된 통치형태”라고 다시 한번 환기시키면서, “민주주의의 형식원리를 악용해서 민주주의의 이와 같은 일정한 가치내용을 침해하려는 민주주의의 적에 대해서” “방어가치가 있는 일정한 민주주의의 실질적 요소”를 방어할 것을 강조한다59). 그렇다면 방어되어야 할 것은 민주주의의 실질적 요소로서의 “‘국민주권’․‘자유’․‘평등’․‘정의’”에 국한되는 것인지 아니면 민주주의의 실질적 요소인 “‘국민주권’․‘자유’․‘평등’․‘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일정한 세계관 내지 가치관과 결부된” 것으로서의 형식원리와 생활철학까지 포함되는 것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방어적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일종의 자유 내지는 자유의지의 한계론이다. 자유의 한계를 구성하는 것은 객관적 가치, 규범 내지 질서다. 자유의 한계는 주체와 객체의 대립구조를 기저로 한다. 심지어 주체가 자신의 자유의사로서 자신의 자유를 처분하는 경우, 국민이 주권적 결정을 통해서 자신의 주권을 양도하거나 제한하는 경우에도 주객의 대립구조가 들어있다. 전자의 자유와 후자의 자유, 전자의 주권과 후자의 주권은 동일 주체의 것이라 할지라도 일단은 동일물일 수는 없다. 이러한 대립을 주체를 절대화하고 객체를 상대화하는 방식으로 해소하는 절대적 주관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방어적 민주주의의 기본개념이다. 따라서 방어적 민주주의를 논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들은 주객의 대립구조로 재편성되어야 한다. 국민주권, 자유, 평등, 정의만이 객관적 가치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며, 형식 원리와 생활철학도 객관적 가치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주체적 요소로 전환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유와 자유가,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다수결과 다수결이 주객의 관계로 맞설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 점은 분명해진다. 이처럼 다수결원칙도 그리고 복수정당제도도 역시 객관물로 전환될 수 있는 한, 실질(내용)과 형식을 구별하여 다수결원칙이나 복수정당제도를 실질이 아닌 형식의 범주에만 귀속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국민주권, 자유, 평등, 정의도 형식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사회라는 공동생활영역에서 제기되는 공동과 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방식을 의미하는데, 국민주권, 자유, 평등, 정의란 이러한 의사결정방식을 규정하는 최고이념, 다시 말하면 공동과제 해결을 위한 해답인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실질내용을 형성하는 형식을 위한 순수형식으로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철학도 주체의 마음자세와 행태에 관한 규범적 요청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결국에는 형식의 범주에 귀속될 수 있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이러한 생활철학이 지켜져야 할 것으로 설정되는 한, 객관적 가치물로서 실질의 범주에도 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논거로 동일성이론과 다수결원칙을 단순히 형식으로만 보고 방어가치 있는 실질적 요소로의 전환가능성을 간과하고 있는 점도 비판받아야 한다. 아무튼 허영교수의 민주주의 본질의 3요소론은 방어되어야 할 민주주의의 본질을 규정하기에는 논리적 엄밀성 면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다른 한편, 가치상대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궁극에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가치상대주의철학에 기초된 다원성 내지 다원적 개방성과 관용성에서 구하는 입장도 발견된다. 이러한 입장은 제기된 공동과제는 인간에 의해 해결될 수밖에 없는데, 경험의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은 모두 유한하며 따라서 그들에 의해 형성된 의견은 어떠한 경우든 절대화되어서는 안 되며 어느 누구도 공동과제 해결권한을 독점해서 안 된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상대주의, 다원주의와 관용성은 추상적 개념으로서 때로는 형식(의사형성방식과 절차)과 실질내용(형성된 의견 및 의사내용)이라는 양 범주에 중첩적으로 관계될 수 있다. 그렇지만 중점은 형식에 놓여있다. 왜냐하면 공동과제 해결권의 독점, 즉 의사형성과정에서의 소외의 배제는 절대적 원칙으로 간주되며, 이 원칙은 공동의사형성과정 내지 절차의 구체적 형성과정에도 역시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하며, 이 점은 형성의 자유의 절대적 한계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본질을 정치형태에서 찾는 다수의 지배적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를 … 하나의 순수한 정치질서의 원형으로 이해할 때에는, 그 것은 국민에 의한 국민의 지배,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다수결에 의한 다수자의 지배로 규정될 수 있다. 따라서 국민주권과 선거와 다수결의 원리가 민주주의에 있어서 그 본질적 요소로 간주”된다.
민주주의의 본질을 정치형태에서 찾는 이러한 입장을 현대적․실질적 민주주의나 방어적 민주주의의 이름을 가지고서 잘못된 것( 고전적인 것 또는 근대적인 것)으로 배격할 필요가 결코 없다. 그러한 배격은 통합과정론과도 절대로 상합할 수 없다. 형태에서 본질을 찾는 주류입장은 형식을 실질로 전환되지 않는 단순한 형식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거꾸로 형태의 본질 내지 핵심을 방어가치 있는 실질로, 즉 주관적 의사형성의 한계를 구성하는 객관적 가치물로 파악한다. 즉 자유의 구체적 행사로써 자유 자체를, 민주적 의사결정으로써 민주주의 자체를, 주권자인 국민의 주권적 결단으로써 국민주권 자체를, 다수결로써 다수결원칙을 폐기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달리 요약하면 이러한 주류입장은 모든 주체는 어떠한 경우건 의사형성의 자유를 가지고서 내적 필연성을 자체 안에 간직한 객관적 규범과 질서를 절대로 부정할 수 없다는 자연법원리에 대한 신념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민주적인 의사형성방식 및 형식의 본질 내지 핵심만이 방어가치 있는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보아야 하는데, 문제는 그러한 본질 내지 핵심을 무엇 으로 규정할 것인가에 있다. 문헌에서 이런 저런 의미 있는 규정들이 많이 발견되지만, 이들을 종합하기 위해서는 먼저 본질 규정을 위한 방법론에 관한 숙고를 필요로 한다. 본고는 방법론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자의 입장만을 간략히 언급하자면, 본질규정은 규정하는 주체의 우연한 주관적 관심이나 입장이 반영되어서는 안 되고, 대상 자체에 내재된 본질의 인식이어야 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본질규정은 민주적인 공동의사결정방식 자체, 즉 다양한 개별적 의사결정방식들을 민주주의적인 방식이다 라고 규정하는 객관적․내적 필연성을 자체 안에 갖는 기준으로서의 이념, 즉 민주적인 의사결정방식의 이념의 탐색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이 자신을 위하여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허용되는 생활영역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반드시 사회라는 공동생활영역에서만 타당하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공동생활의 실천원리이다. 공동생활의 주체는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관계 당사자 모두이다. 따라서 공동생활을 위해 제기되는 공동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방식의 이념은 우선 공동과제 관련당사자 모두가 -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 주체성을 보장받는 조건하에서 의사결정방식이 규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을 소극적으로 정의하면 단 한 사람이라도 본인의 자유의사에 반해서 이루어지는 소외가 배제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자유의사에 의한 공동의사결정에의 참여가 모두에게 원칙적으로 - 물론 구체적인 방식과 범위는 다양하게 규정될 수 있겠지만 - 보장되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의 이념은 사회 내지 공동체의 구 성원 모두가 공동생활영역에서 자유롭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향유하여야 한다는 이념으로 압축될 수 있다. 이러한 인간, 즉 Person의 개념이 실현되는 공동체의 의사결정방식이 바로 민주주의인 것이다. 따라서 Person의 개념과 상합할 수 없는 의사결정방식은 결코 민주주의적인 것이라 말할 수 없다. 그리고 Person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불가피한 조건에 의해 필연적으로 규정된 공동의사 결정방식만이 민주주의의 본질적 실현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념만이 절대적으로 방어되어야 할 민주주의의 본질을 구성한다.
Ⅲ. 결어 - 비판적 종합
전술한 바와 같이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 본질(이념)과 현상(실현)을 범주적으로 구별하여 - 그의 본질만이 규정되어 있으며, 이로써 한편으로는 그의 구체적 실현은 다양한 주체들 - 기본권주체로서의 개인, 일반사회단체, 정당과 공권력주체로서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여러 기관 - 의 자유로운 형성에 맡겨져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형성의 한계가 규정되어 있다. 헌법상의 본질규정의 차원에서 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적 기본질서는 동일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은 자유와 존엄성을 갖는 공동생활주체로서의 Person의 개념 및 공통적 조건으로부터 논리 필연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공동의사 결정방식에 한정되어야 하며, 이것만이 절대적 보호가치 있는 객관적 가치 내지 규범이 된다.
이러한 개념의 틀을 가지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엄밀한 정의를 시도해 본다면, 우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일방통행적 의사형성구조를 거부하고 쌍방향적 의사소통구조를 본질로 한다. 왜냐하면 쌍방향적 소통구조 속에서만 당사자는 모두 자유로운 공동생활의 주체로서의 Person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과제의 해결을 위한 의사형성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그의 의사에 반해서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경우는 Person의 개념과 절대로 상합할 수 없기에 비민주적인 것으로 배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재는 일종의 폭력으로서 일방통행적 의사형성구조에 해당되며, 따라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본질적으로 모순된다. 따라서 폭력적 지배로서의 독재는 무조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금지되어야 한다.
자의적 지배는 일방적 의사결정구조에서나 쌍방향적 소통구조에서나 모두 가능하다. 일방적 의사결정구조 하에서의 자의적 지배는 자의성 여부를 물을 필요도 없이 - 위에서 제시한 논거로 - 일방적 의사결정구조에 해당되어 민주주의와 상합할 수 없다. 문제는 쌍방향적 소통구조 하에서 자의가 자행되는 경우인데, 자의를 절대적으로 부당하다고 결정할 수 있는 객관적 준거가 없는 경우, 자의성여부는 주관적인 평가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경우의 자의를 반드시 민주주의와 상합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자체로써 보편타당한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규범 및 질서를 부정하는 경우의 자의는 절대로 허용될 수 없는 자유남용으로서 절대적 부당성을 갖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경우에만 보호가치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으로 수용되지 않는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그 자체 보편타당한 객관적 규범이다. 즉 경험적 합의에 의거하여 비로소 규범성을 부여받는 것이 아니다. 공동생활영역에서 누구나 Person으로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의 총합을 법이라 정의하고 있는 칸트에 의하면, 법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절대적으로 타당한 법(자연법)이고, 또 하나는 조건적으로만 타당한, 다시 말하면 경험적 합의에 의거하여 규범성을 부여받은 경험적․상대적․인정법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본질적 차원에서는 전자의 규범에 속하고, 그의 실현을 위하여 주관적 의사를 반영하여 형성된 구체적․경험적 실현제도는 후자에 속한다. 즉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은 자유의사의 밖에 놓여진 것이고, 그의 실현을 위한 구체화는 - 비교적 - 자유로운 형성의 영역에 속한다. 이 형성의 주체와 방법이 자유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형식(과정 및 절차의 규범)이면서 동시에 주체의 형성의 자유를 제약하는 실체적 한계규범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 물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배제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러하지만 - 법치국가의 필연적 요소이며, 동시에 법치국가원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연적 요소가 된다. 쌍방향적 소통구조의 필연적 구성 요소로서의 자율, 자유, 평등, 정의, 개방성, 공정성, 기회균등, 참여 등은 법의 필수적 구성 원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법치국가원리를 구현하기 위하여 이들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부여함에 있어 임의적 형성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이들 원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상합할 수 없다.
물론 쌍방향적 소통구조를 필요로 한다고 해서 모든 과정에 이해당사자 모두가 반드시 직접 참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타자를 통한 간접적 참여로서의 대의제원리가 민주주의와 상합한 것으로 수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의제원리가 대표와 피대표 사이의 쌍방향적 의사소통이 철저히 차단하는 방식 - 절대적․폐쇄적 자유위임 - 으로 조직․운영되면, 그것은 민주주의와 절대로 상합할 수 없다. 물론 피대표의 참여의 방식과 정도는 구체적 형성에 맡길 수 있으나, 참여자체의 전면적 봉쇄는 결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대의제원리는 쌍방향적 소통구조, 즉 민주적인 의사결정방식의 불가피한 요소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의제원리는 경험적 소여 속에서 불가피한 점이 인정되며, 그래서 대체로 민 주주의는 대의제를 통해서 구현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적 타당성과 보편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반드시 대의제를 채택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은 아니다. 대의제를 통하지 아니한 쌍방향적 소통구조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의제원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연적 요소라 볼 수 없다. 따라서 대의제 원리의 폐기를 주장하는 극단적인 경우에도 이것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용인될 수 없는 도전이라 말할 수 없으며, 비록 경험의 세계에서 동의획득가능성은 떨어지겠지만, 그러한 주장 자체는 허용되어야 한다.
선거제도도 마찬가지다. 선거제도가 수행하는 본질적 기능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의제를 위한 대표를 선출하는 기능인 경우에는 자유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위해서 선거제도가 반드시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전술한 바와 같은 의미에서 대의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의 일환으로 대표선출제도로서의 선거제도를 폐지하자는 극단적 주장이라도 헌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주장되는 한 법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위한 하나의 형식으로 기능한 경우, 즉 선택지를 놓고서 행해지는 투표 다시 말하면 표결로서 기능하는 경우에는 선거란 원칙 적으로 다수결을 말하는 것인데, 이러한 의미의 선거제도는 자유민주적 의사결정구조의 필수적 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민주적인 공동의사결정은 다수결 외의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의제를 채택하여 대표를 선출하기로 하는 경우, 반드시 선거를 통해서 선출하여야 하는 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상합한다. 물론 경험적 의사에 의존하지 않는 초월적 규범, 즉 그 자체로써 타당한 절대적 규범은 인간의 임의적인 형성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다수결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절대규범의 실현은 역사적 현상으로서 경험적인 인간의 구체적 형성에 맡겨져 있는 바, 이러한 형성은 쌍방향적 의사소통구조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 때 다수결 외의 다른 형식을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 다수결의 구체적 제도화에 관한 대안을 가지고 다투는 것은 물론 허용되어야 하지만 - 다수결원칙 자체를 부정 하는 것은 공동의사결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되며, 이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절대적 불법이므로 절대로 금지되어야 한다. 다수결원칙 자체의 채택은 정언명령으로서 임의적 선택에 맡겨져 있지 않으므로, 채택여부를 다수결로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복수정당제도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수적 요소로 일단은 간주된다. 이것은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이 쌍방향적 의사소통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하다. 그러나 두개 이상의 정당이 반드시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하나의 정당만이 존재한다 하여, 그것만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복수의 정당이 존재한다하여 그것만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상합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정당이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을 폐쇄적으로 독점한 경우, 정당의 숫자와는 상관없이 모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정당의 존재유무나 숫자가 아니라, 쌍방향적 의사소통이 실제로 보장되어 있느냐 여부인 것이다. 만약에 정당이 국민의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소통을 차단하는 기능만 수행한다면 그러한 정당체제는 해체되어야 마땅한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정 당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모든 정당은 해체되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보호받아야 한다. 복수정당제도보장의 본질은 개방적 의사소통 구조의 보장에 있는 것이지, 이와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정당의 형식적 존립보장도 아니고 정당의 정치과정독점보장은 더더구나 아니다. 정당을 매개하지 않고서도 국민의 공동의사형성과정에의 참여가 보장되는 방법이 가능한 한, 복수정당제도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수적 요소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물론 정당설립의 자유는 원칙적으로 무조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유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상합할 수 없다. 이점을 종합하면, 정당설립의 자유보장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적 요소이지만, 정당 또는 복수정당이 반드시 존립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복수정당제도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수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기본적 인권의 존중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수적 요소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정헌법상의 기본권목록 모두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는 쌍방향적 의사소통을 위해서 불가피한 것만을 본질적 요소라 말할 수 있다. 공적 과제에 관한 공동의사형성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한 최소 필요조건은 의사형성구조 자체가 개방성을 가질 것이다. 즉 공적 과제해결을 위하여 필요한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며 공동체구성원의 정보청구권을 보장해 주어여 하며,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의견형성권이 보장되어야 하며, 나아가 형성된 의견의 표현의 자유와 형성과정에의 자유롭고 평등한 참여보장이 공적생활영역 전반에서 - 물론 불가피한 경우 개별 구체적인 제약이 있겠지만 -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공동생활영역에서 누구나 소외당하지 않고 주체로서 공동생활과정에 참여하는 자유롭고 존엄한 인간 (Person)의 개념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요청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최소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그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통치기관간의 수평적 또는 기관내부의 수직적 권력통제시스템으로 이해되는 한, 권력분립 그 자체로써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수요소라 말할 수 없다. 물론 권력분립은 권력남용을 억제함으로써 폭력적․자의적 지배를 배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나아가 수평적 권력분립과 수직적 권력분립을 통해서 공권력의 행사에 쌍방향적 의사소통구조가 접목된다는 점도 인정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권력분립은 기관간 또는 기관의 내부기관간의 의사소통구조에만 적용되는 것이지, 기관의 지위를 갖지 않은 공동체구성원과의 관계에서는 효력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권력분립은 공동체구성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공동의사형성구조의 전체를 아우르는 구성원리가 되지 못하 고 단지 부분의 구성원리에 불과하다. 이 점 때문에 권력분립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적 요소인지에 관한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통치권과 국민주권의 관계에 관한 엄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국민주권을 그 자체로써의 역동적 주체성을 갖지 못하고 단순히 주동적인 공권력의 허약한 소스나 공권력행사의 정당성의 연원에 그치는 것으로 그 의미를 축소시키고, 국민의 자기지배로서의 동일성원리의 의미를 폄하하면서, 대의제를 선호하는 성향을 취하는 사람들은 통치기관과 그의 작용의 조직화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하여 불가피하며, 따라서 권력분립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수요소라 말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권과 통치권은 분리되어 자유위임을 받은 통치권을 통해서 국민주권은 형해화 되고 주권자인 국민의 공적 의사형성과정에서의 소외가 결과적으로 초래되고 만다. 누구나 존엄한 Person이라는 존엄성개념은 고립된 개인의 지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생 활영역의 당사자로서의 지위에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공동생활의 주체로서 인간개념에 상합할 수 없는 한, 권력분립은 정당성을 갖지 못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수요소로 인정받을 수 없다. 따라서 권력분립은 이와 같은 Person개념과 상합할 수 있는 것으로 조직되고 운용되어야 마땅하다. 국민주권은 소외없는 쌍 방향적 의사소통구조를 요청하는 원리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권력분립은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주체성을 보장하는 개방된 통치원리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상합할 수 있다. 그런데 소외없는 쌍방향적 의사소통구 조는 반드시 통치조직과 작용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설사 개방된 통치 원리로서의 권력분립이라 할지라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수적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순수한 직접민주주의를 선호하면서 대의제를 위한 권력분립을 부정하는 극단적 주장이라 할지라도 - 적법절차에 의해 주장하는 한 - 법적으로는 일단 은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공동체는 자신의 질서를 침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필요로 한다. 경험의 세계에서는 질서유지시스템은 공동체존립의 필수조건이다. 특히 쌍방향적 의사 소통구조 자체의 보존을 담당하는 기능체가 조직 가동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법권의 독립성보장의 중요성이 인정된다. 그렇지만 사법권독립을 전술한 바의 권력 분립의 구성요소로만 본다면, 사법권독립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수요소라 보기 어렵다. 공동의사 형성과정에서 유지되어야 할 질서에 위반하거나 참여당사자간의 분쟁이 발생한 경우, 이를 중립적 입장에 서서 오로지 객관적 규범을 준거로 분쟁을 해결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기능은 반드시 필요하나, 문제는 그러한 기능을 반드시 주권과 분리되는 통치권으로 조직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반드시 통치조직의 일부로서의 사법부에게만 담당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으로는 - 현실화하기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겠지만 -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자신의 공동생활질서의 유지기능을 담당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극단적 주장도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은 공적 과제이며 따라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규범력이 미치는 영역에 귀속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공동체 내에서의 개인, 가계, 기업 등의 사경제주체의 사적 경제생활을 위한 객관적 질서의 형성과 유지는 물론 공적 과제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공동체내의 경제질서의 형성과 유지에 공동체 구성원의 능동적 참여는 정치적 자유권으로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자유민주적인 의사소통구조를 통해서 형성되는 경제질서의 내용으로 반드시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체제가 포함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들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하여 필수적인 요소로서의 의미를 갖는지에 있다. 우선 전자를 살펴보면 경제질서의 내용으로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체제를 수용할 것인지 여부는 내용형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상대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자유민주적 의사형성절차를 통해서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할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체제를 부정하면서, 개인, 가계, 기업 등 의 경제주체성을 완전히 박탈하고 그 대신 공동체의 일부 기관이나 세력에게 경제주 체성을 독점시키는 것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분배적 정의를 왜곡시키는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체제를 부정하고 그 대안으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주체로서 참여하여 모두를 위하여 필요한 재화를 조달하고 가용재화의 분배와 소비를 주관하는 말하자면 공동체 경제체제를 - 물론 이러한 대안이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을 갖는가는 별론으로 하고 - 주장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대안은 현재까지는 역설적으로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체제보다 더욱 인간을 소외시키고 마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유토피아로서 실현가 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건강한 이유는 그러한 대안의 제시 자체는 허용한다는데 있다. 따라서 사유재산제도와 시장 경제체제는 아직까지는 보호가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고수해야 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수요소는 아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헌법재판소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정의는 엄밀성을 갖지 못하며, 경험적인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형성된 제도화의 경험적 내용까지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내포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갖는 우리의 내부체제를 수호하는 것을 정당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라는 헌법정신을 오히려 훼손하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규범력은 현존하는 체제를 그대로 방어하려는 세력을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존체제의 방어세력과 그의 반대세력, 즉 현체제에 대한 비판적 대안제시를 통한 변혁시도를 하는 세력을 동등하게 보호하려는데 있다. 그러나 공동체구성원 모두에게 자유롭고 존엄한 주체(Person)로서 소외당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것, 특히 타방의 공적의사 형성과정에의 참여 자체를 폭력적 방법으로 부정하는 것은 절대 용인되지 않는다. 쌍방향적 의사소통구조를 존중하는 한에서만 모든 세력은 공동의사 형성과정에서 동등하게 보호받아 마땅하다.
이를 결론으로 종합하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공동체 구성원 누구나 존엄한 주체로서 자유로운 토론과 표결에 참여할 기회가 보장된 가운데 이루어지는 쌍방향적․개방적 의사소통의 체계를 통해서 공적 과제의 타당한 해결방법을 형성하고 이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함으로써 공적 과제를 실효성있게 수행하는 방식으로 영위되는 공동생활의 질서를 말한다. 이것의 헌법적 보장은 선택적 창설이 아니라, 인간존엄성 원리의 공동생활영역에서의 관철로서 절대적으로 수호되지 않으면 안되는 보편 타당한 객관규범(절대적․초월적 자연법)의 확인인 것이다. 따라서 개방적 의사소통 체계를 파괴하거나 개방적 의사소통체계를 통해서 형성된 공동의사에 - 물론 비판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 승복하기를 무조건 거부함으로써 공동의사의 구속력을 무력화 시키는 행위는 공동체 자체를 파괴하고 공동생활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로서 절대 금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