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원문   2015.12.11


비정규직 대변한다면서도 기득권 노조 위해 희생양 삼아

비정규직의 도와달라는 요청 외면구조조정때 먼저 내몰기도

비정규직을 희생양 삼아 - 근무시간 변경 등 비정규직에 불리한 요건 수용

무책임한 주장만 반복 - 정규직 전환 가능성 높이는 기간제 근로 연장에 반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10일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이 귀족 노동자 집단에 불과하다면 왜 비정규직 악법을 막기 위해 온갖 탄압을 감수하며 총궐기 총파업을 하겠나"라고 말했다. 이마엔 '비정규직 철폐'라고 쓴 머리띠도 둘렀다. 600만 비정규직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민주노총에 대해 "비정규직을 대변하지 않는 귀족 노조"라고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었다.

 

민주노총은 2000년대 들어 10년 넘도록 '비정규직 보호' 구호를 외치며 비정규직의 대변자가 민주노총인 것처럼 알려왔다. 하지만 이 같은 구호와는 반대로 민주노총이 오히려 그들의 이익을 위해 비정규직을 억압하거나 울리는 사례가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숱하게 목격되고 있다.

 

지난 2013412일 기아차 광주공장 노사는 정규직 노조원들의 자녀를 신규 채용 시 우대하는 내용의 '고용 세습' 조항을 단협에 반영하기로 합의했다. '25년 이상 장기 근속자의 직계 자녀 1인에 한해 서류 전형 시 25% 우대, 면접 시 5% 가점 부여, 동점일 경우 우선 채용' 등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평균 연봉 9900만원으로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 중에서도 대표적인 귀족 노조로 통하는 기아차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사측이 받아들인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이동률 그래프

 

당시 기아차 사내 하도급 비정규직 근로자 500여명은 이 같은 노사 합의에 분노했다. 이들은 "신규 채용 시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노사가 정규직 노조원의 '고용 세습'에는 합의하면서도 이를 무시한 사실이 알려지자 비정규직 근로자 한 명은 이에 항의하며 분신하기도 했다. 노동 전문가 A씨는 "기득권 노조의 이익을 위해 비정규직을 희생시킨 대표적인 사례"라며 "민주노총이 말로는 비정규직과 연대를 강조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정반대 사례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생존 위해 비정규직을 희생양 삼기도

 

민주노총 정규직 노조원들의 '생존'을 위해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한순간에 '사지(死地)'로 내몰린 경우도 있다. 자동차 부품 업체인 세진 노사는 관계회사인 세진글라스 정규직 직원 130여명이 폐업을 앞두고 휴직 처리되자 이들 전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지난해 합의하고 올 1월 실제로 채용했다. 문제는 이 합의로 10년 가까이 이 회사 사내 하도급 근로자로 일해온 비정규직 100여명이 졸지에 계약이 해지됐다는 점이다. 세진과 세진글라스 정규직들은 모두 민주노총 내 최대 산별노조이면서 강성인 금속노조 소속이다. 한 관계자는 "정규직을 채용하면 비용 부담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회사 측은 금속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GM 전북 군산공장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회사는 자동차 판매 물량이 감소하면서 경영이 악화하자 지난해부터 사내 하도급 근로자 약 1100여명을 해고했는데,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 소속 한국GM 정규직 노조가 "연대해서 도와달라"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요청을 외면했다. 또 비정규직 공백으로 인한 생산 차질을 막을 수 있도록 사측에 근무시간 변경 등에 합의해줬다. 노동 전문가 B씨는 "정규직 노조가 자신들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비정규직 대량 해고라는 방패를 동원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금품 상납받기도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들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비정규직 현장 노동자로부터 금품을 상납받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검찰에 의해 집단공갈·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민주노총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 노조원들이 타워크레인 기사로 일하면서 "현장 일용직 근로자들로부터 매달 100~200만원씩 정기적으로 '상납' 받아왔다"는 것이다.

 

타워크레인 업체 사장 C씨는 "작년 10월부터 타워크레인 기사로 일하는 민주노총 소속 D씨에게 월급 285만원과 수당(260만원)을 지급했다"면서 "이와 별도로 (거푸집 공사 등을 맡은) 현장 하도급 업체 직원들이 D씨의 요구로 최근 1년간 약 2400만원의 '월례비'를 건넸다"고 말했다. 일당 15~20만원씩 받는 일용직 현장 근로자들이 "현장 일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해 일정액씩 돈을 갹출해 상납하는 관행이 전국 공사 현장에서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고도 했다.

 

"현실성 있는 대안 제시해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된 기간제법·파견법 등 이른바 비정규직법을 '노동 개악'으로 규정하며 "비정규직의 사용 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기보다 비정규직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민주노총 주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현실성이 없는 대안만 내놓고 있다"고 비판한다.

 

고려대 박지순 교수는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대변한다는 이유로 (노동개혁 법안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민주노총 주장은 현실성이 없고 진정성도 없다고 본다"면서 "비현실적인 구호로는 노동시장이 당면한 문제를 바꿀 수 없고 비정규직의 처우도 개선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현행 기간제법이 오히려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더 줄이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금재호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가 2008~2014'한국노동패널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중 비정규직의 정규직 이동률은 현행 기간제법이 시행된 200837.3%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해엔 24.4%까지 떨어졌다.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겠다며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것이 되려 정규직 전환율을 낮춘 것이다. 반대로 비정규직 근속 기간을 두 배로 늘리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8.7% 높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금 교수는 "민주노총은 노동개혁 입법이 비정규직을 양산할 뿐이라는 주장을 하려면 객관적인 데이터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면 민주노총의 주장과는 반대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능성뿐 아니라 임금 수준까지 올린다는 것은 실제 데이터로 증명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