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6 출처 장대홍 명예교수
이민 정책과 자유
이민 문제는 현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가진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골칫거리다. 이들 국가들은 모두가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저출산과 고령화로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기에, 노동력의 수입을 현실적 대안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주요 이민 공급원은 경제적 빈곤이나 정치, 사회적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중남미,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그들은 상대국에 비해 월등하게 젊은 연령층, 높은 출산율을 가진 주민들이다. 또한 그들은 종교적으로 주로 카톨릭계이거나 무슬림 난민들이며, 서구적인 자유주의와는 이질적인 전통과 문화에 배어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정으로 이민 문제는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폐쇄적인 한국이나 일본을 제외하면,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치열한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이민통제 정책은 최근 확정된 브렉시트에서나 미국의 트럼프 현상에서도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이민 옹호론은, 서로 다른 이유로, 좌우 이념 진영에서 나온다. 우선 현재의 이민에 대한 쟁점을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자유주의자들은 주로 경제적 자유의 관점에서 이민통제 정책을 반대한다. 이 주장은 사실상 노동시장 개방론이다. 전통적 이론은 마치 상품무역의 경우처럼 노동력의 이동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교역의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민제한 철폐는 현재 선진국들의 공통적 문제인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구조를 보완하고, 젊은 노동력을 확보함으로써 생산성, 창의력, 투자, 그리고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고, 세수증대로 국가재정을 건실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은 다르다. 노동시장의 구조개편, 정부규제, 국가재정 형편에 따른 마찰이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이민정책이 고숙련, 고생산성의 노동력 유입을 억제하는 경우는 드물다. 문제는 불법이민이나 정치적, 경제적 난민의 대부분이 저숙련, 저생산성의 노동력이고, 이들의 급속한 유입이 국가경제에 실제로 득이 될지는 반드시 분명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들은 미국과 유럽의 경우에서 드러나듯이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선진경제는 예외 없이 급속한 기술발달과 글로벌화로 산업구조가 개편되고 기존의 일자리가 감소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노동력이 저숙련 노동시장에 몰리거나 실업률이 높아지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새 일자리가 창출되고 노동시장이 적응해서 경제성장이 정상화되는 속도는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규제의 수준에 달려있다. 미국과 영국의 경제회복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심한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빠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오늘날 선진국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복지국가, 채무 국가이자 규제 국가들이다. 이런 환경에서 저숙련 노동력의 대거유입은 국내 노동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사회복지 재정과 국가채무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민유입이 국민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흔히 인용되는 OECD 보고서의 추정에 따르면, OECD국가에서 이민자들의 순 경제적 기여도(GDP에 대비 퍼센트 수치)는 평균 0.3퍼센트이다.1) 그러나 개별 국가별 수치는 커다란 차이를 드러낸다. 스위스 1.95, 영국 0.46, 스웨덴 0.2 이지만, 미국은 0.03퍼센트로 미미한 수준이고, 프랑스 -0.52, 독일 -1.13은 오히려 적자로 나타난다. 한편 (비이민 인구들에 대한 파급효과를 포함한) 순 재정수지는 OECD국가의 평균치가 -0.12, 스위스 1.42, 영국 -0.01, 스웨덴 -0.37, 미국 -0.64, 프랑스 -0.52, 독일 -1.93 이다. 이들 데이터는 적어도 이민의 경제적 기여도가 긍정적이라는 가설을 분명히 입증하지 않으며, 해당국가의 사정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좌파 진영의 이민옹호론은 도덕적 정당성, 문화적 다원주의 (multi-culturalism) 또는 문화적 평등주의 (cultural egalitarianism)의 관점에서 국경 개방정책 (open border policy)을 지지한다. 이런 주장의 핵심은 이민 또는 난민정책이 경제적 자유의 문제이기에 앞서 정치,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좌파들이나 미국의 리버럴 인사들은 이민 통제론을 외국인 혐오증, 소수계층 박해, 편협한 인종주의라고 공격하고, 관용의 정신으로 이민을 포용해야한다고 역설한다. 선진국들이 무슬림난민을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란시스 교황, 그들을 자국민의 일부로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한 카메론 영국수상, 메르켈 독일 수상과 같은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이나 지식인들, 전면적인 불법이민의 사면과 이민개방 정책을 내건 미국 민주당의 강령은 모두 이런 입장을 반영한다. 주류 언론들은 개방적 이민정책에 대한 비판 자체를 아예 반이민 정서나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politically incorrect), 언행으로 격하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대규모 난민유입을 인도적 차원의 이민포용 정책으로 대처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거나 정치적 책략이다. 정치적인 동조세력을 확보하려는 계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난민의 집단이주는 단순한 노동력의 이동이나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이질적 인간관, 세계관이나 종교관의 유입이자 상이한 문명의 충돌을 의미할 수 있다. 이주민이 소수에 머무르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볼테르가 극찬한 18세기 런던의 이민사회는 다양한 소수계층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종교적 특성을 보존하면서도 영국의 사회 질서에 적응하는 사회이었다. 그것은 순수한 의미에서 문화적 다원주의가 실현된 사회이었지만, 어느 계층도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사회를 변혁시키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급속한 난민유입은 문화적 다원주의를 실현시키기보다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하며, 그런 이민정책은 탁상론적 이상주의, 또는 일종의 무정부사회주의 (anarcho-socialism)에 그칠 위험도 크다. 이런 사정은 난민유입의 영향을 직접 겪는 일반 시민들이 더 잘 이해한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한결같이 지나친 정부역할의 확대와 복지정책으로 시민의 자유가 제한되고, 과중한 복지비용의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규모 난민들이 주로 독일, 프랑스, 영국, 북유럽국가나 미국에 몰리는 이유는 물론 관용적인 사회 환경과 사회복지제도 때문이다. 좌파 정치인들에게 이민은 든든한 지지 세력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일반 시민들은, 이주민의 급증과 더불어, 테러와 범법 행위가 급증하고,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세력이 커져가는 현실에 경악한다.
거의 모든 미국의 대도시에서 흑인과 히스패닉계 이민의 인구비율과 정치적 영향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들은 인종차별과 취업난에 강한 불만감을 드러내고, 동정적인 여론, 전투적 노조와 리버럴 계층과 합세해서 증세와 복지확대 정책을 강화시키려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 지역의 범죄발생률, 인종 간 갈등, 치안불안,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여타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고, 도시재정의 악화와 치안불안, 주류계층의 도시탈출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근년에 부쩍 늘어난 무슬림계 이민들도 이런 정치성향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종교적 확신과 관습으로 굳어진 이슬람 문화에 갇힌 탓에, 서구적인 자유주의 정신과 자본주의 문명에 반감을 나타내고, 이에 동화되기를 거부한다. 지난 수년간 잇달아 터진 무슬림 과격주의자 테러사건들은 그런 이념적 편향성의 극단적 표출이다. 범인들이 모두, 특정한 이슬람 국가나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이슬람계 미국시민 또는 영주권자라는 사실은 이 점을 아프게 일꺠워 준다.
미국에서 무슬림계는 아직 소수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과 현재 유럽의 무슬림 난민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일단 그들의 수적 열세가 어느 정도 극복되거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면, 커다란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초래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불법이민과 급속한 이민유입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단순한 외국인 혐오증이나 폐쇄적 이민 반대론이 아니다. 그들이 정치 세력화되어 사회적 혼란을 불러오는 사태, 국가의 정체성과 일반시민의 자유가 침해될 위험에 대한 경계심이다.
이런 위험은 유럽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무슬림계 난민유입이 가져오는 정치, 사회적 혼란은 리버럴 미디어의 보도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수년간 급격히 불어난 무슬림계 난민은 주요 유럽국가에서 이미 인구의 5-10퍼센트 선을 넘었고, 증가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가구당 평균 1.3명에 불과한 출산율, 급속히 고령화하는 유럽 국가들의 주민들에 비해 무슬림계 이민은 출산율은 4-6배, 중간 연령층은 10년이나 젊다. 그들의 인구비중은 한 세대 안에 평균 20퍼센트를 넘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인구학적 추세와 유럽경제의 성장둔화는 이미 정치, 사회적 갈등을 위험한 수준으로 몰아가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실업과 사회적 차별에 항의하는 무슬림계 주민의 집단시위, 현지 주민들과의 충돌, 테러행위가 점차 격화되고 있다. 주요 대도시에서는 회교사원과 무슬림계 독립 거주구역이 속속 들어서는 가운데, 무슬림계를 기피하려는 도시 블록화나 탈도시 현상도 잇따르고 있다. 파리는 유럽의 테러 캐피털이 되었고, 런던에서는 이민급증으로 인한 주택난과 도시 불록화가 겹쳐서 주택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스웨덴일 것이다. 스웨덴은 1,000만에 못 미치는 인구를 가진 중간 규모의 국가지만, 20세기 중반 이후에 거둔 눈부신 경제성장의 덕택으로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생활수준과 사회복지제도를 이룩한 나라, 다른 어떤 나라보다 관용적인 사회분위기를 자랑하던 나라다. 또한 1970년대 이후부터 앞장서서 국경개방정책을 실시하였고, 근년에 들어 무슬림 난민들의 정착 희망지 1순위의 나라이자, 가장 활발한 난민 유입국이었다. 그러나 난민유입이 급증하자 사정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스웨덴의 도시에서 난민 범죄 특히 강간 사건이 폭증하고 있고, 유럽에서 가장 급속히 이슬람화하고, 현지 주민과의 갈등이 가장 격심해지는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전문가들은 스웨덴의 장래를 매우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하고 있다. 스웨덴은 올해 초부터 국경개방정책의 잠정 중단과 대규모 무슬림계 난민의 송환을 시행하는 극적인 방식으로 이민정책을 대폭 전환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반 유럽 시민들은 현 추세가 지속되면 반세기 이내에 오늘날의 유럽의 모습은 사라질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에 우려를 금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출산율이라는 무기를 가진 이슬람이 알라의 이름으로 유럽을 지배할 날이 가까워 왔다,”, “유럽의 도시들은 세속적인 이교도의 법에 우선하는 샤리아 법의 적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과격한 선동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는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이나 리버럴 미디어는 문화적 다원주의, 타종교에 대한 관용의 정신과 포용성을 타령하는 이외에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 유럽인들은 그들의 정부가 급속한 난민유입으로 자신들의 생활방식, 자신들의 자유, 자국의 주권이 위협받는 상황이 방치되지 않도록 해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민정책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안이다. 이민정책이 외국인이 혐오나 종교적 편견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인도주의를 앞세워 무분별하게 난민유입을 허용해서도 안 된다. 역사적으로 무분별한 난민유입은 국가체제의 붕괴나 문명의 파괴로 이어졌다는 교훈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로마제국의 몰락에서부터 지중해의 보석으로 일컬어지던 기독교 국가인 레바논의 황폐화에 이르기까지 그런 사례들은 적지 않다. 무절제한 난민유입의 허용이 포용성과 관용의 정신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식인지, 인적 교류의 혜택을 포기하지 않는 현명한 이민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과 연구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1) 이하 자료는 OECD보고서 (OECD, Net Fiscal Impacts of Immigration, % of GDP, 2007-2009)에서 전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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