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자 동아일보 인터넷판은 <“飮水思源” 시진핑의 뼈있는 말>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지난 5일자 한겨레 신문(인터넷판)은 이렇게 썼다.
<시진핑 주석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중국 국민이 김구 선생을 보호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 장군이 1996년 항저우 인근 하이옌을 찾아 ‘음수사원 한중우의(飮水思源 韓中友誼)’라는 글자를 남겼다”고 소개했다. 음수사원은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나왔는지 근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시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항일 역사를 강조하고 ‘중국의 은혜’를 언급한 것이다. 이는 최근 한국과 일본 정부가 ‘미래’를 강조하며 관계 개선에 나서고, 사드 배치를 매개로 한-미-일 3국 공조가 강화되는 움직임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언론은 시진핑의 역사 왜곡을 이처럼 비판 없이 보도하였을 뿐 아니라 근사한 해석까지 붙여 의미 부여를 하였다. 역사 조작의 앵무새 역할을 자임한 셈이다. 1919년 상해에서 발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군을 피해 10곳을 옮겨다니면서 마지막엔 중경에서 해방을 맞았다. 1932~35년 사이에는 항주(杭州)에 청사를 두었다.
당시 중국은 蔣介石이 지도하던 중화민국이었다. 1930년대 초반,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여 괴뢰 만주국을 세운 뒤 30년대 중반, 중국으로 전쟁을 확대하였다. 장개석이 일본을 상대로 힘겨운 대결을 하는 사이 모택동은 공산반란을 일으켜 장개석 군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장개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보호하였다. 시진핑은 양심이 있는지 차마 중국 공산당이 임시정부를 도왔다는 말을 하지 않고 중국 국민들이 보호하였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사실 왜곡이다. 장개석의 중화민국이 임정을 지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물을 마실 때는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한다'는 말에서 한국인이 감사해야 할 사람은 시진핑도, 모택동도 아닌 장개석이다. 시진핑은 작년 가을 戰勝節 행사를 하였다. 중국이 일본에 이긴 날을 기념한 것이데, 일본의 항복을 받은 이도 모택동이나 공산당이 아니라 장개석이었다. 중화민국의 법통을 잇고 있는 대만에서 전승절을 기념하였어야 했다. 中日 전쟁 승리에 별로 기여한 바가 없는 중국공산당 정부가 전승절 행사를 열고 여기에 가서는 안 될 박근혜 대통령까지 참석, 역사왜곡을 뒷받침하였다.
장개석의 중화민국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도왔다. 장개석은, 뒤에 나오는 유어만-김구 대화록이 증언하듯이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도 김구를 설득, 이승만과 손을 잡도록 하려고 애를 썼다. 김일성이 남침하자 미국에 대하여 한국으로 군대를 보내 돕겠다고 제의하였던 이도 장개석이다.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은 조선인의 공산혁명 활동을 지원하였을 뿐이다.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 소속의 빨치산 부대장이었다. 해방 뒤 모택동은 중국 공산당 八路軍 소속의 조선인들을 북한으로 들여보내 남침 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수만 명의 중공군 출신 조선인들이 인민군이 되어 남침의 주력이 되었다. 인천상륙작전 뒤 유엔군이 북진하자 수십만의 중공군을 불법 개입시켜 북진통일을 막고 이산가족의 비극을 부른 게 중국공산당이다.
한국인은 중국공산당이 판 우물의 물이 아닌 毒을 마신 셈이다. 그러니 중국에 감사할 일이 없다. 원망하면서 복수를 다짐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前後 사정을 국민들에게 설명해주어야 할 언론이 시진핑의 말장난에 놀아나 그가 무슨 심오한 메시지를 던진 것처럼 心理戰을 대행하여준다.
참고로 요사이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선 장개석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
장개석이 근대국가의 기틀을 만들었고, 抗日투쟁의 진정한 영웅이며, 모택동보다 더 도덕적이고, 후계자(장경국)를 잘 길렀으며, 대만을 발전시켜 중국이 지향해야 할 모델을 세웠다는 점을 든다. 진정으로 飮水思源해야 할 대상은 장개석이다. 시진핑에 속지 말자.
↘ 장개석의 以徳報怨(이덕보원)
中日전쟁을 지도하였던 蔣介石(장개석)은 1945년 8월15일 戰勝(전승) 연설에서 수백 만 명의 중국인을 죽인(중국 측 軍民 사상자는 1000만 명으로 추계) 일본인들에 대한 보복을 금지시켰다.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 중국 동포는 '舊惡(구악)을 기억에서 지우고 사람들에게 善을 행한다'는 것이 우리 민족 전통의 고귀한 덕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일관되게 일본국민을 敵으로 삼지 않았고, 다만 橫暴非道(횡포비도)한 武力을 행사한 軍閥(군벌)만을 敵으로 생각한다고 明言하여 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동맹국과 함께 敵軍을 타도하였습니다. 그들이 투항의 조건을 전부 충실하게 실행하도록 엄격하게 독려하여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우리는 보복하여선 안 됩니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모욕을 가해선 안 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과 죄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이 나치스적 軍閥에 의하여 우롱을 당하고 선동당한 점에 대하여 우리는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대할 뿐입니다. 만약 과거 敵이 행한 폭행에 대하여 똑같은 폭행으로 대하고, 그들의 우월감에 대하여 노예적 굴욕을 가한다고 한다면 원한은 또다른 원한을 부르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수행해온 仁義의 전쟁이 목적한 바가 아닙니다. 이 점을 우리 국민 동포 일동은 오늘에 즈음하여 특별히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蔣介石의 이런 태도를, 「以徳報怨(이덕보원)」, 德으로 원수를 갚았다고 한다. 蔣介石은 일본에 대한 피해 보상 요구도 하지 않았다. 1972년 일본과 國交를 열 때 毛澤東도 보상 요구를 하지 않았다.
장개석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 독립을 약속하도록 하고, 임시정부를 보호하여 공산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도록 한 점에 대하여는 한국인들이 크게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다.
↘ 金九에게 매우 불리한 자료: 劉馭萬(유어만) 公使와 나눈 대화록
趙甲濟
金九는 북한군이 반드시 남침할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김구에게 이승만과 협력할 것을 권고한 장개석
*金九-劉馭萬 대화 비망록
유엔한국위원회의 중국대표인 劉馭萬(유어만) 公使(공사)는 1948년 7월11일 오전 11시 金九를 자택으로 방문,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劉 공사는 대화의 내용을 英文으로 요약하여 국회의장 李承晩(이승만)에게 전달하였다. 이 문서는 梨花莊(이화장)에 보존되어 있다. 이 대화는 대한민국 建國에 반대하는 일에 공산주의자들과 손잡은 金九의 심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劉馭萬: 나는 선생님의 어떤 면보다도 정직한 분이란 점에서 존경하여 왔습니다. 나도 비록 외교관이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서울에 부임하게 된 것은 나로선 최초의 외교관 임무입니다. 오늘 선생님을 화나게 만들지 모르지만 정직한 사람과 정직한 사람 사이의 대화를 하기 위하여 방문한 것입니다.
金九: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떡일 뿐)
劉: 유엔 위원단의 한 사람으로 上海를 방문하고 돌아온 후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며느님과 아드님께서 중국에 체류중인 것으로 알고 있고 엄씨도 선생님과 같이 살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 나를 통역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래서 자주 여기에 올 수가 없었습니다.
金: 귀하가 말한 그 사람들이 여기에 없어도 귀하를 위하여 통역할 사람은 있어요.
劉: 나는 오철성이 보내는 편지를 갖고 있는데 공사관에 두고 왔습니다. 중국 외무장관 왕시굴도 직접 편지를 보낼 것입니다. 蔣介石(장개석) 총통께서도 편지를 직접 쓰려고 하였는데, 외무장관이 오늘 대화에 대한 보고를 받고 나서 쓰시도록 건의를 드렸습니다. 저는 이 세 통의 편지가 같은 메시지를 선생께 전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즉, 李 박사와 협력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李 박사와 선생과 金奎植(김규식) 박사가 남한 정권을 수호하는 데 협조해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런 중국 格言(격언)이 있습니다. “집안에서 형제들이 다툴 순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自招(자초)해선 안된다.” 선생들 사이에서 이견이 많다고 해도 소련이 지배하는 세계 공산주의라는 공통의 위협 앞에선 다 형제들입니다. 나는 선생의 아들 김신을 나의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말이 듣기 거북하시더라도 아들이 자신의 아버님에게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만약 선생께서 공산주의를 신봉하고 가담하실 생각이라면, 저는 그렇게는 믿지 않습니다만, 제발 그렇다고 말씀하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정치적 敵手(적수)로서 서로 헤어지고 다시는 만나지 않으면 됩니다.
金: (심각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나는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어요. 사실은 내가 마음에 준비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내 최측근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라 당신에게 털어놓는다는 게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로만 말씀드리지요. 머지않은 장래에 모든 것을 밝히겠습니다. 귀하를 포함한 내 친구들이 좋아하든 않든 간에. 귀하는 기다려주실거죠?
劉: 지금 생각하고 계시는 것을 말씀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오히려 말씀하시지 않도록 권하고 싶어요. 저에게 부과된 메시지 전달은 끝났으므로 허락해 주신다면 선생님께서 고민하고 계시는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실 때 도움이 될 만한 저의 개인적 생각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金: (찬성은 아니지만 예의상 승낙한다는 표정을 지음)
劉: 내가 李 박사에게 선생과의 협조 가능성을 타진할 때마다 그분의 대답은 변함없이 “만약 그가 나와 함께 일할 생각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에게 다가가 환영하겠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李 박사께서 부통령직을 선생에게 제의하실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갖고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나는 귀하께서 그런 자리를 초월하신 분이라 그런 점에 대하여 제가 언급하게 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실 것입니다. 선생님께선, “부통령 같은 것은 집어치워!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어!”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선생께서 李 박사와 협력하시고 싶다면 새롭게 구성되는 정부에서 그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적어도, 많은 사람들과 당황하고 있는 선생의 지지자들에게 右翼(우익)진영의 단결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께선 애국활동의 찬란한 기록을 갖고 계십니다. 선생께서 최근 평양에서 열린 소위 남북한 지도자 협의회에 관계하신 일은 그런 기록에 타격이 되었습니다. 북중국에서 조선인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포로가 되면, 목숨이 아까워서 그러겠지만, “우리는 김구 지지자들입니다. 그분이 공산주의자들의 목적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아시시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선생의 모든 동지들은 선생의 찬란한 과거 업적이 이런 식으로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金: 나도 알 알고 있는 일입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나를 자신들의 협력자로 간주합니다. 내가 귀하께 이야기했듯이, 모든 사람들이 내 입장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남한 정부에 참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귀하도 알다시피 李 박사는 한민당의 포로가 되어 , 말하자면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하는 신세입니다. 내가 만약 정부로 들어가면 피할 수 없는 갈등이 일어나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내가 바깥에 머무는 게 낫습니다. 나는 그 더러운 정치싸움에 연관되는 게 싫습니다.
劉: 선생님의 말씀은 오히려 바깥에서 계시는 것보다는 정부에 들어가셔야 한다는 논리를 갖게 합니다. 李 박사께서는 한때 선생님의 동지이셨던 신익희, 이범석, 이청천씨 같은 분들을 麾下(휘하)에 두고 있습니다. 선생께서 참여하셔서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시지 않으신다면 모든 게 한민당 뜻대로 되고 말 것입니다. 李 박사께서 國益(국익)을 위하여 그렇게 하고 싶으셔도 혼자서 그 정당을 제어하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선생께서 정부에 들어가셔서 그들을 견제하면 李 박사를 강화시켜줄 것이고 만약 버리신다면 李 박사를 한민당의 수중에 떨어지게 할 것인데, 선생께서도 한민당이 국가의 운명을 견제 없이 함부로 농단하여선 안 된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金: (정치싸움 등 이미 말한 것을 되풀이한 다음) 더구나 나는 한 특정 정당의 비방전에 의하여 反美주의자로 광범위하게 색칠당하였습니다. 나는 중국과 미국만이 한국에 도움이 되는 이웃나라라고 생각하는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건설하는 데는 미국의 도움이 필요한데 내가 정부를 구성할 때 그 안에 있으면 미국인의 동정심에 찬물을 끼얹어 국가이익을 해치게 될 것입니다.
劉: 선생님 말씀은 틀렸습니다. 李 박사도 한때 반미주의자로 惡評(악평)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미국 사람들이 태도를 바꿔 그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정부를 수립하는 것은 결국 한국인의 고유한 일입니다. 한국에 있는 미국인이 선생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그들은 결국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 장군도 명예롭게, 창피를 당하지 않고 소환될 것입니다. 가도 괜찮습니다. 귀측이 단결하고 유엔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게 되면 미국측이 떠나가는 일도 앞당기게 될 것입니다.
金: 귀하는 중국이 한국을 인정하는 첫 번째 나라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까?
劉: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입장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중국, 미국, 영국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할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金: 미국이 (지금 입장을) 물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劉: 불가능합니다. 왜냐 하면 미국인들이 한국의 독립을 확고하게 지지하니까요.
金: 내가 (평양에서 열린) 남북한 지도자 회의에 참석한 한 가지 동기는 북한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앞으로 북한군의 확장을 3년간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 남한에서 무슨 노력을 하더라도 공산군의 현재 수준에 맞서는 군대를 건설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비난을 받지 않고 아주 손쉽게 그것(주-북한군)을 南進(남진)하는 데 써먹을 것이고, 단시간에 여기서 정부가 수립될 것이며,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입니다.
劉: 러시아가 전쟁을 각오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인데, 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과거에 러시아는 두 번 국제적인 압력에 굴복한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한국으로부터, 또 한 번은 요동반도로부터 물러났습니다. 유엔을 통하여 세계 여론이 일어나면 러시아는 그 충격 앞에서 다시 굴복할 것입니다. 여기서 만들려고 하는 정부가, 북한정권이 러시아의 꼭두각시인 것처럼 미국의 꼭두각시라면 나는 선생께서 어느 쪽과도 협력하지 않으려 하는 입장을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유엔의 지지 덕분에 한국 정부는 主權(주권)국가가 될 것이고, 통일을 성취할 基地(기지)가 될 것입니다. 선생께서 한국이 약하게 보일수록 선생께선 조건 없이 (建國을 위하여) 투신하셔야 합니다(끝).
金九-劉 공사의 대화를 읽으면 金九가 보인 행동의 모순점이 드러난다. 金九는 '러시아 사람들은 비난을 받지 않고 아주 손쉽게 그것(주-북한군)을 南進하는 데 써먹을 것이고, 단시간에 여기서 정부가 수립될 것이며,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즉, 소련의 지원을 받는 북한군의 남침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평양에서 김일성과 함께 발표한 4·30 성명서 중 '외군이 철수해도 內戰(내전)은 없다'는 대목은 완전한 속임수가 된다.
金九는 북한군이 반드시 남침할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였다는 의구심이 생긴다.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할 유일한 수단은 주한미군의 장기 주둔이었다. 金九는 이 안전판의 제거를 요구한 것이 된다. 즉, 북한군의 남침에 대한 장애물을 치우는 일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서울주재 중화민국 공사이던 劉馭萬은 장개석 총통의 뜻을 받들어 이승만, 김구, 김규식이 화합, 대한민국 건국에 협조하도록 막후에서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劉馭萬은 장개석 정부가 대만으로 물러난 뒤 유엔주재 중화민국 대표부 처장, 駐韓 대사 등을 역임, 1966년에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