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1 조동근 교수
샌프란시스코 최대 택시회사인 옐로우캡이 앱(App)기반의 우버(Uber) 택시에 밀려 지난 1월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우버 본사가 위치한 곳이다. 엘로우 캡이 앉아서 당하지는 않았다. 파산에 이르기까지 택시의 공공성 훼손과 실직을 방패막이로 치열한 저항을 벌였다. 하지만 우버 이용자의 평가, 즉 ‘시장의 긍정적 평가’가 기득권의 방어논리를 압도했다. 기득권을 떨쳐낼 때 ‘혁신’은 빛을 발한다. 혁신이 이뤄지려면 정책당국은 철저히 ‘이해 중립적’이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7월 5일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을 불허했다. 합병인가를 신청한지 217일째 만이다. 주식 취득 및 합병 금지 명령의 논거는 ‘경쟁제한’이다. ‘권역별 시장점유율’을 기준으로 볼 때,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 제한적 독과점이 한층 더 구조화된다는 것이다. 시장점유율을 기준으로 한 독과점 판별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다. 하지만 층위가 다른 재화 간의 보완 및 대체관계를 감안할 때 특정 시장을 과학적으로 획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장은 동태적으로 변화한다. 재화의 동질성을 전제로 각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더하는 식의 경쟁제한 판정은 실효성을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책당국은 인습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과의 인수·합병(M&A)을 통해 대규모 콘텐츠, 네트워크 투자를 수행함으로써 글로벌 수준의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기업의 질적인 변신시도가 여타 경쟁업체에 어떻게 경쟁 제한적인 효과를 미치는지 쉽게 가름되지 않는다. 유의할 것은, 정책 당국이 이해 중립적이지 않으면 한 쪽의 이해관계를 암묵적으로 대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수·합병에 대한 공정위의 판단은 차치하고 ‘시장의 평가’는 어떠했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현행 법규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통해 합병에 따른 소액주주 피해 가능성을 사전에 걸러낸다. 소액주주는 인수·합병 공시로 주가가 떨어지면 ‘사전에 정해진 가격’에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된다. 인수·합병 시도에서 CJ헬로비전의 주가는 ‘매수청구가격’(1만696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는 합병법인의 미래 가치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긍정적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시장의 평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번 인수·합병은 추인돼야 한다. 공정위의 불허방침은 인수·합병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의 잠재적 기회를 차단한 것이다.
그러면 공정위의 인수·합병 불허의 논리적 근거는 타당한가. 논리적 근거 이전에 인수·합병 반대가 더 세(勢)를 얻었기 때문에 불허된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두 기업의 합병은 ‘이동통신 1위 회사’와 ‘케이블TV·알뜰폰 1위 업체’의 결합으로 인식됐다. 규제 당국의 승인을 얻어 합병이 성사되면 SK텔레콤은 이동통신에서 케이블TV 그리고 인터넷TV까지 보유하게 돼 다양한 결합상품 판매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1) 경쟁관계에 있는 KT 등이 이 같은 인수·합병 시도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좌파 시민단체의 반대는 이해하기 어렵다.
반대진영의 비판 논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개별 기업의 경영 측면에서만 현안을 보지 말고, 인수·합병이 방송 생태계와 시청자 권익 등에 미칠 파장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합병이 이루어지면 SK텔레콤이 이동전화에 방송, 초고속인터넷 등을 저가에 끼워 팔아 방송·통신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동네슈퍼나 재래시장 등이 대형 유통사업자의 경쟁 상대가 되지 않듯이, 양사 합병이 이루어지면 지역 케이블 사업자 등의 영세업자가 문을 닫게 되면서 시장이 소수의 대형사업자로 재편돼 결국은 소비자 권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합병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의 희생을 종용하는, 즉 “큰 것이 작은 것을 밀어낸다”는 것이다. ‘골목상권론’의 재판(再版)이다. 반대진영의 “공정한 경쟁 제한, 생태계파괴, 공급자 주도의 시장재편” 논리는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천착하면 정형화된 ‘자기이익 보호’에 지나지 않는다.
O 동일한 선상에서의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 이동통신시장은 포화상태이다. 올해 3사 매출이 전년 대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통(移通) 3사는 공히 조직 개편으로 미래의 먹거리를 모색하고 있다. 구체적 기업전략은 다르더라도 ‘플랫폼 사업자’로의 변신을 꾀하는 점에선 공통이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합병은 ‘미디어 플랫폼 사업’을 이끌기 위한 핵심전략이다. ‘조직 변화와 신규 사업’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데 대해 경쟁사업자가 ‘된다·안된다’식의 사족을 달 이유는 없다. 상업세계에서 “동일한 선상에서 동시에 출발하는”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준비가 덜 됐으니 “경쟁 상대방에게 기다려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랬다면 경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기업 간 합종연횡은 ‘사적자치’다. 방송과 통신의 공공성, 생태계 운운하며 인수·합병을 ‘정치적 쟁점화’하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 상업세계에서 사업재편 시도는 상시적 현상이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발굴 등의 모색은 시장경쟁 속에서 일어난다. 방·통융합 상황에서 공급자별 칸막이를 쳐 놓은 것 자체가 문제다. 자영업자도 아닌 기업 간 경쟁에 ‘골목상권’ 논리가 재연된다면 이는 비극이다. 경쟁이 생산자를 변화시키고 소비자에 봉사하게 한다.
O 인수·합병 불허로 누가 이익을 봤나?
SK텔레콤 경쟁사 이외에 지상파 TV사들도 반사이익을 누린 것으로 판단된다. 지상파3사는 뉴스를 이용해 인수·합병을 공격했다. 자신의 사적이익을 위해 공중파를 사용(私用)한 것이다. 지상파3사는 이외에도 협의체인 한국방송협회를 통해 인수·합병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2차에 걸쳐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 했다. 한국방송협회는 공정위의 인수·합병 불허 판결이 나자 “방송·통신시장의 공정거래를 보장하고 시청자·소비자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합리적 판단”이라며 “공정위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감추어진 속내는 다를 수 있다. 지상파 3사의 입장에서, 인수·합병이 성사되면 전국 및 지역단위 유료방송 시장을 석권한 SK텔레콤과 경쟁하는 것이 힘에 겨울 수 있다. 그리고 최대 1조원으로 추산되는 CJ헬로비전 매각대금이 CJ E&M(엔터테인먼트)에 투자된다면 또 다른 거인과 경쟁을 벌여야하기 때문이다.
O 인수·합병 불허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CJ 헬로비전
인수·합병 불허의 최대 희생양은 CJ헬로비전이다. CJ헬로비전은 인수·합병 추진 과정에서 영업비밀 등 속사정이 너무 많이 노출돼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케이블TV 1위 사업자인 헬로비전은 인수·합병이 무산됨에 따라 SK브로드밴드 등 IPTV업계와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이미 속내가 모두 드러났기 때문이다.
CJ헬로비전의 금년 1분기 실적도 좋을 리 없다. 영업이익(251억원)과 매출(2786억원)은 전년 동기대비 각각 6.6%, 4.9%씩 감소했다. 언제 심의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피심인이 투자여부, 경영계획 등 의사결정을 세울 수는 없다. 인수·합병이 추진되었던 7개월 동안의 시간 공백을 메워야 한다.
인터넷TV 등장 후 급격히 가입자가 감소해 자율적 구조개편을 추진해야 하는 유료방송시장도 피해자일 수 있다. 케이블TV 가입자 수는 2011년말 1,493만명에서 지난 1분기말 1,444만명으로 소폭 감소했다. 케이블 TV의 성장 정체가 뚜렷한 상황에서 시장 내 인수·합병을 통한 구조조정의 길이 가로막히면서 기존 사업자 간의 경쟁이 더 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공정위는 시장 독점을 막기 위해 인수·합병을 불허했다하지만 지상파 TV의 독점적 지위는 더욱 공고해졌다고 밖에 판단할 수 없다. 시장은 ‘복잡계’다. 평면적인 잣대로 입체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 방·통융합 시대에 SK텔레콤의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신시도를 막은 것이 과연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지를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1) SK텔레콤은 그동안 100%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를 통해 유선 가입자를 확보해왔다. CJ헬로비전 인수 결정으로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이 통합 법인으로 출범하게 되면 KT에 이어 유선시장 2위 사업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지난해 9월 기준 KT의 IPTV·위성방송 가입자는 844만명으로 전국 점유율은 29.6%다. CJ의 케이블 가입자(415만명·14.6%)와 SK텔레콤의 IPTV 가입자(335만명·11.7%)를 더하면 총 750만명(26.3%)으로 단숨에 2위 사업자로 뛰어 오를 수 있다. 반대 진영에서는 SK텔레콤이 독점적 지위를 가지게 되면 요금 인상이 불가피 해지며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면 KT의 독점적 지위는 무해(無害)한 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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