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재 교수

Ⅰ. 서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은 헌법전문과 본문 제4조에서 발견된다. 헌법전문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려는 국민적 결의를 선언하고 있다.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것을 규정한다. 그리고 동일성 여부가 다투어지고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은 제8조 제4항(정당해산)에서 발견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기초개념으로서의 자유 , 민주 , 질서와 기타 유사개념들은 헌법전 도처에서 발견 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적극 실현되고 침해로부터는 반드시 수호되어야 할 헌법상 최상위의 규범적 가치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헌법상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내지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정확한 개념정의다. 엄밀한 定義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상황 때문에 더욱 절실해 지고 있다. 지난 세기 80년대 이후 휘몰아쳤던 민주화열풍에 영향 받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체적 형성을 에워싸고 일어나는 투쟁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민주화의 양적 성장은 괄목할만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내적 성숙을 위해서 해결되어야 할 수많은 난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 중 심각한 것으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체적 형성을 위한 상대적인 입장의 차이나 이해관계의 갈등에 머물지 않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자체의 상대화에 동조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 한편 우리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두 개의 개념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서로 상이한 것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상대화 경향에 이론적으로 동조한 것으로 보인다. 즉 상이성의 주장은 민주적 기본질서는 수호하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배제할 수도 있다는 주장가능성을 열어 버린다.

물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이건 민주적 기본질서이건 상대화가 가능한 내용을 자신의 외연 안에 담을 수 있다. 그러나 상대화될 수 없는 본질내용을 가지며, 그 본질 내용만을 가지고 보면 양 개념은 결국 동일개념인 것으로 보인다. 이 명제를 엄밀하게 논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헌법학적 과제로 생각된다. 이 과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을 상대화될 수 있는 가변적 내용으로부터 비판적으로 분리해 내서 그 본질만을 엄밀하게 정의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헌법은 우리의 공동생활방식의 총체적 규정이다. 헌법이 규정한 공동생활의 총체적 방식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 하나로 집약된다. 여기의 총체성은 - 물론 사실상으로가 아니라 규범적으로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최고절대성, 불가침성, 불가변성, 대체불가능성, 포기불가능성 등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절대적으로 수호되어야 할 과제로서 부과된 우리의 유일한 생활방식 내지 질서다. 따라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하는 것은 곧바로 위헌․불법이 되고 만다.

이러한 인식에 대한 오늘날의 심각한 도전은 이러한 인식가능성의 한계에 관한 비판적 성찰을 요구한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헌법문헌에는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는 진지한 성찰이 아직은 입문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방어 내지는 수호되어야 한다고는 인정하면서도, 수호의 근거와 한계에 관한 분석은 상당한 정도 미진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헌법판례에서 내려진 정의와 이를 모방한 -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 類似定義를 인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리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나마 행해지고 있는 논쟁과 정의조차 상당한 혼란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혼란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라는 과제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 극복되어야 하는 바, 그래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엄밀한 定義가 부단히 시도되어야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비판적 성찰, 특히 헌법상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및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엄밀한 정의는 방대한 지적 탐구를 필요로 하는데, 본고에서는 한정된 지면상의 이유도 있고 해서, 우리나라 헌법문헌상 발견될 수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및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논쟁들을 소재로 삼아 엄밀한 定議를 간략히 시도해 보고자 한다.

Ⅱ. 헌법판례와 문헌상의 定義

1. 판례상의 정의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과 제5항에 대한 한정합헌결정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자유․ 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국가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고,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체제를 파괴․변혁시키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이것을 사람들은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1952. 10. 23. 사회주의제국당(SRP) 위헌 판결에서 내린 다음과 같은 정의를 거의 그대로 또는 유사하게 수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그때그때의 다수의사에 따른 국민의 자기결정과 자유 및 평등에 기초한 법치국가적 통치 질서를 말한다. 이 질서의 기본적 원리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기본법에 구체화된 인권, 특히 생명권과 인격의 자유발현권의 존중, 국민주권, 권력분립, 정부의 책임성, 행정의 합법률성, 사법권의 독립, 복수정당제와 헌법상 야당 결성 및 활동권을 포함한 모든 정당의 기회균등.”

2. 문헌상의 정의

판례상의 정의에 대하여 비판하고 엄밀한 정의를 논증하는 것은 헌법학의 몫이다. 그런데 국내 헌법문헌은 대체로 판례상의 정의를 인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해석 및 정의를 위하여 필요한 이론으로서의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주의 등에 관한 논쟁이 시도되고는 있다. 덧붙여 루소의 일반의사론과 슈미트의 동일성민주주의론 등을 비판하는 것도 발견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논쟁은 그 자체 체계적 엄밀성에 있어서 문제점이 많으며, - 이 때문이겠지만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판례상의 정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고작해야 판례상의 정의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성요소로 수용된 대의제(간접민주주의)에 대한 옹호에 머무르고 만다.

또한, 독일기본법과는 달리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과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음으로 해서 양 개념의 동일성 여부를 놓고 다투면서 定義 시도가 보인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체계적 엄밀성 면에서 검토되어야할 것이 발견된다. 방어적 민주주의를 다룸에 있어서도 왜 그리고 어디까지 방어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논증도 그리 상세한 것 같지가 않다.

2.1.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와 민주적 기본질서 의 異同에 관한 논쟁

1) 상이한 것으로 정의하는 견해

김철수 교수는 독일기본법상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한국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상이한 개념으로 본다. 그는 “민주적 기본질서 중에서도 서구적 자유민주주의의 개념과 결부된 것만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보고,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등을 내포하는 상위개념이며 그 공통개념”이라고 정의 한다. 그는 이어서 상호 구별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詳細定義를 시도한다.

그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의를 위해서 이념․형태․내용 이라는 범주를 사용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민주적 기본질서(내지 민주정치)의 이념은 “자유․평등․복지”이며, 형태적 특징은 “국민의 지배”, 즉 국민이 치자이며 동시에 피치자라는 “자동성(Identität)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형태라는 제목하에 민주정치의 내용적 개념이라는 하위 명제를 설정하고선, 민주정치란 1) 국민의 국정에의 참여, 2) 다수결, 3) 시민대다수의 참정권 향유, 4) 자유․평등․복지의 보장, 5) 다수의 지배를 내용적 요소로 포함한다고 정의한다. 그리고는 최종적으로 그는 “민주정치는 이념이나 형태에 의하여 개념이 확정되기보다는 그 내용에 의하여 특징 지워지고 있다”고 하면서 Maunz의 학설에 따라 민주적 기본질서 내지 민주정치의 내용적 요소를 다음과 같이 열거 한다: 민주적 기본질서는 국민주권주의, 국민의 국정참여, 다수의 지배(다수결의 원칙과 소수자의 보호), 자유로운 투표에 의한 다수의 확정, 정치적 평등(특히 선거평등), 보통선거, 의견과 반대의견의 자유로운 형성, 국가에서 자유로운 여론의 형성, 자유교육제도의 확립과 교육의 기회균등, 공직취임의 평등과 자유, 자치행정, 이상의 원칙들이 국가 외의 다른 공적 영역에까지 적용될 것.

이러한 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을 평등이념에 포섭하고서는, “민주주의의 다른 요소인 자유와 복지와 결부하여 보다 많은 내용이 각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나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에 포함되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위에서 적시한 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에 “법치적 기본질서가 가미”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 정의한다. 권력분립, 기본권보장, 형식적 의미의 법률(의회입법), 사법과 행정의 합법성, 국가권력 행사의 예측가능성, 사법권의 독립, 사법적 권리구제 등의 법치주의적 요청은 “국가 권력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하여 제한하려고 하는 것”으로서 자유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포함되는 “법치주의는 형식적 법치주의에 입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파악한다. 그리고 사회국가원칙은 자유민주적기본질서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사회적 법치주의를 배척하는 개념”으로 보고 있으며, 자유와 평등만을 이념으로 하고 “복지와 사회정의의 요청을 무시”한다고 본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복합개념인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는 경제적 자유와 독점자본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라 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및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부익부․빈익빈을 조장하는 경제적 자유와 독점 자본주의를 용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란 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에 “사회적 정의․복지와 평화주의를 가미한 것”이며, “자유주의를 배격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정의의 실현, 사회복지의 실현을 위하여 자유에 어느 정도의 제한을 인정하는 것”이라 한다. “사회민주적 기본질서에서는 기본권보장에 생존권적 기본권의 보장이 중시되고 법치주 의에 있어서 사회적 법치주의의 원리가 강조되며, 실질적 법치주의에 입각하고 있 다.”

이렇게 정의하고서, 헌법전문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라고 규정한 것과 관련해서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이념으로 지향하지만, 사회민주적 기본질서를 배척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만을 이념으로 하는 것은 아니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려는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 보고,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라는 규정은 “인민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을 규정한 북한헌법에 대응하여 서구적 민주주의 하의 통일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와는 다르게 제8조 제4항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뿐만 아니라 사회민주적 기본질서까지 포함하는 것” 이며, “우리 헌법의 현실은” “고전적 자유민주주의”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복지국가적․사회적 법치주의” 내지 “복지의 요소”를 가미하는 방식으로 수정된 것이며, “자유민주적기본질서와 사회민주적기본질서의 택일을 가능하게 하는 공개된 민주질서”라 한다. 이를 종합하여 우리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으로 기본권존중, 국민주권, 권력분립, 정부의 책임성, 법치주의, 사법권의 독립, 복수정당제, 사회정의원리(=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국제평화주의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