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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2014.03.26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58명의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은…

과연 MB는 대통령과 군 통수권자로서 의무를 다했는가?

자살보트테러 당한 美이지스함, 알 카에다 세력에 대한 고문 허용한 부시 대통령, 궐석재판 열어 알 나시리에 사형 선고,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수장

3차 남북정상회담 유혹에 북한의 공격 정보를 무시한 속사정,

거듭된 북한 위협에도 불구 안일한 판단, 미 첩보위성 사진으로 사실 확인,

정보의 실패를 인정한 법원, 한국은 과연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 나라인가

전두환은 끝까지 처벌하면서… 천안함 연평도 범죄자에 대한 궐석 재판 열어야

“전쟁과 테러는 피할수록 따라온다”

 

천안함 피침 4주기를 맞는 지금,

우리 사회는 북한의 소행이냐 아니냐 하는 끊임없는 논쟁이 현재 진행형이다. 북한의 공격이 아닌 좌초나 다른 잠수함과의 추돌설 등등. 진보와 보수의 생각이 평행선이다. 마치 천안함이 두 동강 났듯…

지난해 한쪽에서는 <천안함 프로젝트>라는 다큐성 영화까지 만들었지만 그렇게 큰 흥행을 보지 못하였다. 당초 이 영화는 상당한 흥행을 이룰 것으로 전망됐으나 결과는 정 반대였다. 보수세력들의 방해 때문만도 아니었다. 국민들이 찾아와서 보지 않은 것이다. 그야말로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대국민 썰戰이 하나의 썰戰에 불과’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 20여권에 이르는 천안함 관련 각종 책들이 쏟아졌다. 정부나 국방부, 해군, 연구기관의 입장을 담은 내용이 10여권, 진보성향의 입장에서 5여권, 그러나 제3자인 기자의 냉철한 시각에서 분석한 책은 3권에 불과할 만큼 객관적으로 천안함사건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는 일이다.

손꼽히는 군사․안보전문기자인 저자는 지난 2012년 천안함 피격 2주기에 펴낸 『천안함 정치학』에 이어 그동안 새로 밝혀진 여러 관련 팩트들을 중심으로 『천안함 루머를 벗긴다』를 천안함 피격 4주기에 즈음하여 펴내게 되었다.


‘천안함 루머’의 실체는?

천안함 피침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자는 백령도 현장으로 달려가 취재를 했다. 천안함이 소속된 평택의 2함대도 찾아갔다. 그외 많은 관계자들을 만나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확보한 자료를 갖고 『천안함 정치학』을 출간한바 있다.

그 책의 부제가 ‘이명박식 보수는 왜 실패했는가’였다. 저자는 천안함 피침 사건도 사건이지만, MB정부의 대응도 엉터리였다고 보았다. MB정부가 우왕좌왕 했기에 대한민국은 바른 추적을 해놓고도 국론이 분열돼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보복도 전혀 없었다.

그러니 희한한 사람들이 나타나 요상한 주장을 퍼뜨리게 되었다. 천안함 루머가 떠 돈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민주당 추천을 받은 민군합동조사위원이였던 신상철 씨다. 그는 이 사건후 공개 강연에서 천안함이 북한 어뢰 공격으로 침몰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천안함 프로젝트> 영화에서도 유사한 주장을 내놓았다.

영화에 등장한 그는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제3국 잠수함이 천안함을 들이받아 동강냈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그와 함께 <천안함 프로젝트>에 출연한 이종인 씨는 천안함이 암초에 걸려 있다가 부러졌다는 주장을 한다. 같은 영화에 출연한 두 사람이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정부가 발표한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를 부수지 못한 것이 된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루머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정부 발표만 불신할 뿐 그들끼리의 일관성은 전혀 갖추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유령이 한동안 대한민국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것에 혹해 허송세월했다. 46명의 원혼이 울부짖고 있는데….


韓 천안함과 美 콜함 자살테러 공격

사람들은 미국을 대단한 나라로 알고 있지만 세밀히 들여다보면 미국도 허점투성이다. 콜함에 대한 테러가 일어났을 때 미국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9·11테러를 당했다. 이에 대해 콜함 테러를 그저 그렇게 대응했기에 미국은 9·11테러를 당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CIA 특수공작팀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콜함 자살테러 공격을 지시한 아브드 알-라힘 알-나시리(알 나시리)를 체포했다. 그러나 9·11테러를 지시한 것은 알 카에다에서 더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이었기에 중부군사령부는 계속 아프간 전을 치러 나갔다. CIA는 체포된 알 카에다 요원으로부터 정보를 깨내기 위해서는 고문을 해도 좋다는 허가를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받아냈다.

콜함에 대한 자살보트테러와 9·11테러 사이에는 11개월의 시차가 있다. 천안함 피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전 사이에도 8개월의 시간이 있다. 콜함 자살보트테러가 천안함 피침사건이고, 9·11테러는 연평도 포격전 같은 느낌이 든다. 한국은 대선처럼 국론이 분열되는 시기에 사건을 당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통제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집권기 한 가운데 두 사건을 모두 당했다.

그런데도 ‘물대응’을 했다. 말로만 대응을 강조했으니 말폭탄을 쏜 것도 아니고 말풍선만 터뜨린 격이다. 우왕좌왕,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쩔쩔 맨 것이 그 때의 대한민국 국군 통수권자였다. 그는 대통령 취임 선서를 지키지 않았고, 헌법이 부과한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의무를 다 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탄핵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지도자였다.

적은 겁쟁이를 결정짓는 치킨 게임을 도발했는데 우리 대통령은 호응이라도 해주듯 대결을 회피했다. 패배한 것이다. 완전히. 천안함 루머가 횡행하게 된 것은 마구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에게도 있지만, 위기를 당했음에도 보복하지 않은 대통령에도 심각한 귀책사유가 있다. 대통령은 군 최고사령관이라는 사실을 한 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3차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경계 강화를 해제해(?)

대청해전 후 북한 해안은 얼어붙었지만 북한의 위협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경계를 강화하였지만 두 달이 지난 2010년 1월13일 합참이 ‘적 특이 동향 없고 침투 도발 징후 없다’며 경계태세 일부 해제 지시를 내렸다. 해군작전사령부도 지원 세력의 복귀를 명령했다.

그런데 이틀 뒤(1월15일) 북한 국방위원회가 문화일보가 북한 급변사태 대책인 ‘부흥’을 보도한 것을 문제 삼아, “남조선 본거지 날려버리기 위한 보복성전 개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 군 지휘부는 ‘북한군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다’며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위협은 현실화됐다. 1월27일부터 30일 사이 나흘간 인민군 4군단 포병여단이 한 달 전에 해상사격구역과 통항금지구역을 발표한 바다를 향해 300~400발의 포탄을 쏜 것이다.

중대 도발을 한 것이다. 그런데 합참의 대응 지시는 미적지근했다. 북한군 사격이 끝난 한참 뒤 해병대로 하여금 사거리가 아주 짧은 대공(對空)용 벌컨포를 잠시 쏘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특별한 도발 징후가 없었다’며 역시 경계강화를 지시하지 않았다.

왜 합참의 지시는 이러했을까. 1월 28일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보도가 올라왔다. 그 날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영국 BBC 방송과 회견하며 “나는 김정일을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고 말한 것.

그러자 언론들은 일제히 2009년 10월 중순 싱가포르에서 임태희 노동부장관과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비밀리에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대청해전 직후인 11월 14일 우리 통일부와 북한 통전부 대표가 개성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을 했다는 보도도 내보냈다.


미 첩보위성 사진으로 사실 확인

그날 우리 군 정보부대는 ‘연어 급이 미식별 됐다, 24일에는 식별됐다’는 정보를 보내왔다. 그러나 우리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는 판단은 없는 단순 정보 보고였다. 2함대로서는 ‘연어 급이 시운전하는가 보다’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대잠경계태세 등을 지시하지 않은 것이다. 25일 다시 연어 급이 미식별 됐다는 정보를 왔다. 그리고 26일 저녁 천안함이 동강나 침몰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우리군은 연어 급 잠수정이 작전했을 가능성은 전혀 검토하지 못했다. 결정적인 전환은 민군합동조사단의 의뢰를 받은 쌍끌이어선이 5월 15일 사고 현장에서 북한제 CHT-02D 어뢰 잔해를 수거하면서 일어났다. 북한이 어뢰를 쏜 증거가 나왔으니 당일 북한에서 어떤 잠수함정이 사라져 있었던가에 관심이 쏠렸다. 당연히 연어 급 잠수정이 사라졌었다는 것을 떠올렸지만 다들 ‘설마’ 했다.

설마가 ‘아차’로 바뀐 것은 미국이 제공한 첩보위성 사진을 정밀 분석하고 난 다음이었다. 미 공군 우주사령부는 KH-12와 라크로스 같은 초정밀 첩보위성을 여러 대 운용한다. 이 첩보위성들은 적대국가의 중요 시설을 상시적으로 촬영한다. 우리 군은 미군의 협조를 얻어 이 위성들이 촬영한 당일 날 전후의 북한 잠수함 기지 사진을 입수해 분석했다.

 

정보의 실패 인정한 법원

천안함 사건은 누차 지적했듯이 정보의 실패가 경계의 실패, 작전의 실패를 초래한 경우이다. 정보의 실패는 북한의 의도를 눈치 채지 못하고 최고 지도자의 의지를 수용해 현실과 맞지 않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최고 지도자가 그런 의지를 갖고 있으니 정보부대에서는 그에 맞는 정보판단을 해준 것이다.

이를 증명해주는 좋은 자료가 있다. 천안함 사건을 당한 해군 제2함대사령관은 경계와 작전을 실패한 것 때문에 국방부로부터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국방부장관 등을 상대로 정직처분 취소 소송을 냈으나 1, 2심에서 연거푸 패소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본질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사실인 ‘정보의 실패가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처럼 천안함 사건에는 중대한 정보의 실패가 숨어 있다. 그러나 경계의 실패와 작전의 실패를 한 지휘관(2함대 사령관)은 처벌(정직처분)을 받았으나 정작 정보의 실패를 제공한 정보부대와 합참 관계자들은 전혀 처벌받지 않았다. 정보의 실패는 곧 판단의 실패인데, 판단의 실패는 작전의 실패보다 폐해가 심각하다. 적이 도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도 ‘그렇지 않다’고 판단해 안일한 정보를 제공했다면, 그의 판단을 믿고 있었던 작전 전문가는 아무리 좋은 실력을 갖고 있어도 기습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군은 국방의 목표에 충실해야 하는데, 정치세력이 만든 목표에 충실해서 문제이다. 정치세력이 국방의 목표와 어긋난 지침이나 지시를 내릴 경우 군 수뇌부는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그냥 맞춰주는 것이 문제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group think, wishful thinking이다. 한국군 개혁은 하위부대가 아닌 상급부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