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유럽에서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근대 국가가 탄생하면서 국민주권사상이 뿌리를 내리고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법치주의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와 상호 작용을 통하여 국민들의 기본권보장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로 의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하여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법치주의가 기본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 국가는 그 전문성, 다원성, 복잡성 등에 의하여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서는 모든 사항을 규율하기 힘들게되어 행정입법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현대 국가는 행정국가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국가기능 가운데에서도 행정부의 기능과 역할이 증대되고 또한 집행부의 인력이나 조직과 전문성 등에서 다른 국가기관들보다 상대적으로 우세한 면을 나타내고 있어서 행정입법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2009. 3. 31. 현재 1개의 헌법과 1,228개의 법률 그리고 1,654개의 대통령령과 72개의 총리령, 1373개의 부령을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법률보다 행정입법이 많은 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헌법도 제75조에서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95조에서 ‘국무총리 또는 행정각부의 장은 소관사무에 관하여 법률이나 대통령령의 위임 또는 직권으로 총리령 또는 부령을 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행정입법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행정입법 가운데 의회가 법률로써 정하여야 할 사항을 법률로 정하지 않고 명문으로 다른 법형식에 위임하여 입법하도록 하는 것을 위임입법이라 한다. 그러나 통상적인 위임입법은 국회의 입법권을 전제로 하여 국회가 그 입법권을 ‘법률적 위임’의 형태로 행정부 등 입법부 이외의 국가기관에게 위임하는 것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주로 행정부에 대한 입법권의 위임과 이에 의거한 행정부의 입법을 말하기도 한다. 즉 의회가 법률로써 정하여야 할 사항을 스스로 정하지 않고 다른 성문법 제정권자에게 위임하여 법규범을 정립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위임입법은 의회에서 제정되는 입법에 대비하여 ‘종속적 입법’ 또는 그 성질상 입법적인것이나, 전적으로 입법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준입법’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위임입법은 법률 또는 상위명령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에 관하여 법규로서의 성질을 가지는 일반적ㆍ추상적 규범을 정립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형식적 의미의 법률(국회입법)에는 속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행정에 의한 입법으로서 법률과 같은 성질을 갖는 법규의 정립이기 때문에 권력분립주의 내지 법치주의 원리에 비추어 그 요건이 엄격할 수밖에 없다. 위임입법의 증가로 의회주의가 약화된다고 할 수 있는데, 위임입법에 대하여 위임받은 범위를 벗어나서 위임입법이 행하여지는 경우가 나타나므로 이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II. 위임입법의 근거
1. 헌법 제75조의 해석
법률에서 행정입법으로 위임을 허용하는데 있어서 위임의 정도를 어디가지 할 수 있는 가하는 것은 위임입법의 한계 내지 실제 파악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따라서 법률이 위임을 허용하는 정도를 우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헌법 제75조와 제95조는 위임명령의 근거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75조는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 제75조가 ‘법률에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라는 조건을 설정한 것은 바로 일반적인 위임입법의 한계를 설정한 것으로 이해되며, 따라서 입법권의 위임은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하며, 위임의 내용?목적 및 범위가 법률에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에 근거하고 있으며, 따라서 헌법 제75조는 위임입법의 일반적 한계를 설정한 것이며, 일반적.포괄적 위임을 금지하는데 그 취지를 둔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이 없다. 즉 우리 헌법은 위임입법의 헌법상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대통령령으로 입법할수 있는 사항을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으로 한정함으로써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위임입법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주권주의, 권력분립주의 및 법치주의를 기본원리로 하고 있는 우리 헌법하에서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 및 기본의무와 관련된 중요한 사항 내지 본질적인 내용에 대한 정책 형성기능은 원칙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에 의하여 선출된 대표자들로 구성되는 입법부가 담당하여 법률의 형식으로써 이를 수행하여야 하고, 이와 같이 입법화된 정책을 집행하거나 적용함을 임무로 하는 행정부나 사법부에 그 기능을 넘겨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라고 하는 표현에 대하여 그 구체적 의미가 무엇이고 ‘구체적으로’와 ‘범위를 정하여’가 상호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 가하는 점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리고 있다.양자를 구분하는 견해에 의하면 “위임은 개별적.구체적이어야 하고, 일반적.백지적수권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구체적으로’라는 말과 ‘범위를 정하여’라는 말은 중복된 느낌이 없지 않으나, 앞의 것이 뒤의 것을 다시 한정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즉‘구체적으로’라는 말은, 상위법이 범위를 정화는 경우에 일반적?포괄적 입법사항을 일임하는 것과 같은 골격입법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범위를 정하여’는 위임명령의 일반적인 횡적 한계를,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그 종적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라고 하고 있다. 또한 “사실 헌법 제75조를 해석함에 있어서 ‘구체적으로’라는 구절과 ‘범위를 정하여’라는 구절을 서로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어도 현행법 해석의 차원에서는 그리 현명한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구체적’이란 개념은 사안, 즉 규율 대상에 관련되는 것으로 ‘추상적’이라는 개념과 대조되는 것이며, ‘범위를 정하여’란 양적 한정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일괄적’ 또는 ‘포괄적’이란 개념과 대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범위를 정하여’란 구절을 반드시 규율상대방의 특정성, 즉 수권 기준 여하에 따라 ‘일반적’에 대응하는 ‘개별적’이란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을 지 의문이며, 위임입법의 범위가 무제한 적으로 확대되면 결국 입법권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것이므로 이를 제한하려는 헌법 제75조의 규범목적에 비추어 볼 때 전부위임과 일반위임을 부정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와 ‘범위를 정하여’에 대하여 이를 특별히 구분하여 해석하지 아니하고 수권규정에서 행정입법의 규율대상.범위.기준 등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반적.포괄적 위임을 금지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다수의 견해인 듯하다. 헌법 제75조의 ‘구체적으로’와 ‘범위를 정하여’란 표현을 하나의 표현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권력분립의 취지와 법치주의의 요구에 부응하고 국민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는 이를 구분하여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본다. ‘구체적으로’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위임을 금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범위를 정하여’는 포괄적인 위임을 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위임을 하는데 있어서 개별적으로 범위를 정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2. 헌법재판소 : 예측가능성
헌법재판소는 모법의 위임과 관련하여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하여 행해져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위임을 한다면 이는 사실상 입법권을 백지위임하는 것이나 다름없이 의회입법의 원칙이나 법치주의를 부인하는 것이 되고 행정권의 부당한 자의와 기본권행사에 대한 무제한적 침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75조도 ‘대통령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인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위임입법의 근거와 아울러 그 범위와 한계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법률에서 구체적인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이란 법률에 이미 대통령령으로 규정될 내용 및 범위의 기본사항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당해 법률로부터 대통령령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라고 하여 예측가능성을 들고 있다.
1) 예측가능성의 판단 근거
수권법률이 하위규범에 위임을 함에 있어서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예측가능성은 수권법률의 특정 조항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법 조항 전체를 유기적ㆍ체계적으로 종합 판단하여야 하여야 한다. 우리 헌법재판소도“우리 헌법은 제75조와 제95조에서 위임입법의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위임입법의 범위와 한계를 제시하고 있다. 법률로 부령에 위임을 하는 경우라도 적어도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부령으로 규정될 내용 및 범위의 기본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누구라도 당해 법률로부터 부령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예측가능성의 유무는 당해 특정조항 하나만을 가지고 판단할것은 아니고 관련 법 조항 전체를 유기적ㆍ체계적으로 종합 판단하여야 하며 각 대상법률의 성질에 따라 구체적ㆍ개별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법률조항 자체에서 위임의 구체적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당해 법률의 전반적 체계와 관련규정에 비추어 위임조항의 내재적인 위임의 범위나 한계를 객관적으로 분명히 확정할 수 있다면 이를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백지위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수는 없다” 라고 하였다. 우리 헌법의 지도이념인 법의 지배 내지 법치주의의 원리는 국가권력행사의 예측 가능성 보장을 위하여 그 주체와 방법 및 그 범위를 법률로 규정할 것을 요구하며 예외적으로 위임입법을 허용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법률에 의한 수권에 의거한 명령의 내용이 어떠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국민에게 예측 가능한 것임을 요구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법규명령에 의하여 비로소가 아니라 그보다 먼저 그 수권법률의 내용으로부터 예견 가능하여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 예측가능성의 요구정도
이러한 예측가능성은 위임입법에 있어서 수범자인 국민들의 편에서 과연 모법의 위임규정을 보고 하위규범으로 제정될 내용의 대강이 예측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위임입법의 문제는 입법자 측면에서는 법류의 위임이 구체적이고 명확하여야 한다는 명확성 원칙이 요구되는 것이고, 법집행자의 입장에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사항을 행정부가 포괄위임으로 말미암아 자의적으로 입법할 수있다고 보아 이는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며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자의금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수권법률에 규정되어야 할 예측가능성의 요구정도는 규제대상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법률이 어떤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에 위임할 경우에는 국민이 장래 대통령령으로 규정될 내용을 일일이 예견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그 기본적 윤곽만은 예견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사항들에 관하여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임의 구체성ㆍ명확성의 요구 정도는 규제대상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다른 것으로 기본권 침해영역에서는 급부행정영역에서보다 구체성의 요구가 강화되고, 다양한 사실관계를 규율하거나 사실관계가 수시로 변화될 것이 예상될 때에는 명확성의 요건이 완화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각 분야별로 위임입법의 명확성, 구체성의 정도는 달라진다. 조세법규와 관련하여 조세법률주의의 이념에 비추어 국민의 재산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거나 침해하는 내용의 조세법규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급부행정법규에서와는 달리, 그 위임의 요건과 범위가 보다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한편 처벌법규 위임의 한계와 관련하여서는 더욱 더 엄격한 위임입법의 형태가요구된다. 처벌법규의 경우에는 국민들의 신체의 자유와 관련되기 때문에 국가의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로부터 신체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어떠한 영역에서 보다도 더 엄격한 위임입법을 요구한다. 헌법재판소는 “범죄와 형벌에 관한 사항에 있어서도 위임입법의 근거와 한계에 관한 헌법 제75조는 적용되는 것이고, 다만 법률에 의한 처벌법규의 위임은, 헌법이 특히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하여 죄형법정주의와 적법절차를 규정하고, 법률에 의한 처벌을 강조하고 있는 기본권보장 우위사상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므로, 그 요건과 범위가 보다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또한 수범자 또는 수범기관이 누구냐에 따라 위임입법의 구체성.명확성은 달라진다. 즉 수범자가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주민대표기관이거나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경우 구체성.명확성의 요구는 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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