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의 제기
지난 군포여대생 납치사건 등 연쇄납치살인사건의 보도에서 주요 언론들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잠재적 범죄자의 범행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범죄예방 차원에서 반인륜 범죄자의 얼굴 및 신상을 전면적으로 공개하였다. 언론에 의한 수사상황의 공개는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겠지만, 아직 사법부의 최종판결을 받지 않은 피의자의 신상공개는 피의자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무죄추정의 원칙과의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나 언론에 의한 선판결 또는 낙인의 위험성 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이 글에서는 우리나라에서의 피의자 신상공개의 개념 및 법적 근거와 외국의 입법사례를 비교한 후 그에 대한 제반 법적 쟁점을 정리하고자 한다.
2. 우리나라의 피의자 신상공개
신상공개란 개인의 사진이나 직업, 주소, 생년월일 등 일신상에 관한 제반사항들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청소년성보호법’상 범죄자 신상공개가 있으며, 그 밖의 범죄와 관련해서는 각 부처의 별도규정에 따라 신상공개 여부가 결정되고 있다. 현행법상의 범죄자 신상공개제도로는 ‘청소년성보호법’ 제37조 제1항의 제1호부터 제5호에 해당하는 자에 대하여 5년간 열람에 제공하도록 하는 명령을 판결과 동시에 선고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또한 신상공개제도의 한 형태로서 ‘지명수배제도’가 있다. 경찰의 지명수배 전반에 대해서는 ‘범죄수사규칙’(경찰청훈령 제526호),지명수배의 실무절차에 대하여는 지명수배취급규칙(경찰청예규 제365호)과 사법경찰관리집무규칙(법무부령 제629호)에 규정되어 있고, 검찰은 검찰사건사무규칙(법무부령 제625호)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지명수배는 경찰관 및 수사기관에게 범인검거를 요구하는 수사기관 내부의 의사연락수단이며 공조 수사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피의자의 얼굴 및 인적 사항을 공개하여 범인의 검거 및 소재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공개수사와는 달리 비공개적이다. 이러한 비공개수배가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에는 ‘범죄수사규칙’ 제178조에 근거하여 예외적으로 공개수배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이처럼 피의자에 대한 공개수배의 경우 이피의자의 얼굴 및 신상공개에 관한 입법은 공인과 사인이론을 고려하여 공개에 관한 명확한 기준과 예외적 사유에 대한 법적 논거를 제시하는 방안이 강구 되어야만 할 것이다.이처럼 피의자에 대한 공개수배의 경우 이외에는 경찰은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수없으며, 그에 대한 근거는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경찰청 훈령 제461호)에 규정하고 있다.
3. 외국의 범죄자 신상공개제도
일부 국가에서는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제도를 두고 있지만, 기타 범죄자에 대한 얼굴이나 신상공개를 법적으로 규율하는 입법례는 발견하기 어렵다. 미국의 여러 주는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가 석방되면, 사진과 주소 등을 이웃에 알리는 ‘메간법’(Megan’s Law 또는 Megan’s Act)을 채택하고 있다. 또한 미국 메간법에서는 신상공개 전에 성범죄자들 에 대한 제재의 방법으로 범죄자의 신상에 관하여 등록의무를 부과하고 있다.캐나다는 성매매 상대방의 신상정보를 국가가 공개하는 입법이나 규정은 없으나, 가해자의 신원이 공개될 경우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판사가 가해자의 신원공개를 제한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해자의 신상에 대해서 언론접근이 허용되고 있다.영국은 1997년에 ‘성범죄자법’(Sex Offend-ers Act)을 제정하여 성범죄자는 그 주소등을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였으며, 1998년 ‘범죄ㆍ질서위반법’(Crime and Disorder Act)에서 이 내용을 보완한 여러 가지의 범죄 대책 절차를 도입하였다.일본에서는 1999년에 ‘아동매춘, 아동포르노와 관련된 행위 등의 처벌 및 아동의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나, 범죄자와 그관련자의 신상공개에 관한 입법례는 없고, 다만 일명 ‘잔치의 이후(宴のあと)’라는 판례(東京地判 1964.9.28. 判示 385號)에서 범죄전과자의 신상공개는 프라이버시권의 침해라고 판시한 바 있다.
4. 피의자 신상공개의 법적 쟁점
1) 언론의 자유와 피의자의 인격권 및 무죄추정원칙
언론이 경찰과 검찰에서 발표 또는 자체적으로 취재한 피의자의 이름, 사진뿐만 아니라 전과사실, 경력, 가족관계, 연인관계 등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과 범죄사실 또는 증인과 의 인터뷰 등을 보도하는 것은 일견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언론에 의한 신상공개 등 수사상황의 공개는 법원의 최종판결이 있기 전에 여론으로 하여금 그를 진범으로 예단하게 하거나 범인으로 낙인찍는 효과를 나타내어 공동생활에 있어서 돌이킬 수 없는 직업적ㆍ인격적 침해를 야기할 수 있는데, 이는 인격권 및 무죄추정의 원칙 등과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2) 명확성의 원칙의 문제
피의자 신상공개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위하여는 신상공개 대상범죄를 법률에 가능한 명확하게 규정하여야 한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범죄와 형벌을 국민이 알기 쉽게 명확하게 규정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 이를 통하여 법관의 자의를 방지할 수 있고 , 국민으로서도 어떤 행위가 형법에서 금지되고 그 행위에 대하여 어떤 형벌이 과하여지는가를 예측하게 되어 규범의 의사결정효력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 피의자 신상공개 대상범죄를 어떠한 방식으로 규정할 것인가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의 접근방식이 있을 수 있지만, 만약 신상공개를 허용하기로 한다면 그 공개대상 범죄에 대하여는 법률에서 명확하게 규정하여야 할 것이다 . 따라서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기준이 차이가 있을 수 있는 범죄를 규정하거나 추상적으로 공개대상 범죄를 규정하는 것은 명확성의 원칙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할 것이다 .
3) 자기책임의 원칙 위반 문제
신상공개는 행정청에 의한 행정처분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 실질적으로는 형사제재의 성격이 짙다.또한 신상공개에 의하여 당해 범죄자는 처벌 이후에도 일상생활에 있어서 사실상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고 , 파렴치범이라는 낙인으로 형사제재보다 더 큰 사회적 형벌이가해지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 특히 신상공개가 되는 부모를 둔 청소년의 인권보장 문제와 그 가족들에게 가해질 정신적ㆍ신체적 피해 문제에 대한 대책의 마련이 없는 것도 문제인데 , 이는 ‘자기책임의 원칙 ’ 및 ‘연좌제의 금지 ’(제13조 제 3항)와 관련하여 제기 되는 문제라고 할 것이다 . 아무리 가까운 친족의 행위라 하더라도 형사법상의 불이익은 물론, 행정법상 또는 사실상 불이익처분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
4) 이중처벌금지의 원칙 위반 및 범죄자
사회복귀 저해요인의 문제
헌법 제 13조 제 1항은 동일한 범죄에 대한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 최종 유죄판결을 받고 난 이후에 신상공개를 하는 경우에도 , 확정판결을 받은 동일한 행위에 대하여 신상이 공개되는 제재를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을 침해하는지의 여부와 관련하여 논란이 제기되는데 , 아직 확정판결을 받지 아니한 자에 관한 신상을 공개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역시 이 원칙과 관련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 또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의 목적은 교정을 통한 사회복귀에 그 주안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신상공개를 통하여 이러한 교정목적 달성에 지장을 받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5. 피의자 신원공개 허용시 고려사항
언론의 범죄보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판단될지라도 자동적으로 범인의 신원을 밝히는 실명보도를 허용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 독일의 경우 범인과 범죄혐의자에 대한 공개적 신원노출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 다만, 예외적으로 실명보도를 허용하는 경우는 ① 관계자가 공인인가 사인인가의 여부에 따른 법리와 ② 수사상 공적 이익이 있는가를 검토한 후에 판단한다.예컨대, 공인의 경우 그의 활동범위와 내용적으로 관련이 있는 범죄행위가 확인되는 경우에만 신원공개가 허용될 수 있다 . 공직자와 같이 그의 공적인 생활에서의 지위 또는 그의 직무에 관하여 공공의 특별한 신뢰를 받는자가 죄를 범한 경우에 언론은 밝혀진 사실관계의 범위에서 해당인의 성명을 묵비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인인 경우의 신원공개는 범죄행위의 시사성과 함께 다음과 같은 가중된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범죄가 사회적으로 고도의 해악성을 가지며,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공적 생활이나 기타 사회의 상위 이익에 대하여 직접 관계가 있어야 한다.
둘째, 사인의 범죄행위보도가
① 누구의 범죄인가를 알리지 않으면 뉴스의 정보가치가 상실되고, 우회적으로 기술하더라도 본인이 누구인지를 감출 수 없거나 오히려 무고한 사람을 의심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경우 ② 배경의 설명 없이는 이해될 수 없는 사건에서 범인이 누구인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 또는 ③범행의 직접적인 정치적 관련 때문에 정치적인 사건이 되었고 그 폭발성 때문에 포괄적인 해설을 필요로 하는 경우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인의 경우 이러한 요건을 갖춘 경우라도 범죄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그 밖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확증이 있는 경우에만 그 공개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기 전에 사인의 범죄에 대한 실명보도가 허용되는 요건은 위의 요건 이외에 ① 범행이 공공장소에서 범해졌거나 ② 타인에 대한 피해를 피하기 위한 특별한 이유에서 그에 대한 혐의의 보도가 필요한 경우 ③ 사법관청이 시사성을 요하는 범죄수사를 위해 공개적으로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경우 또는 ④ 그의 범행이 임의로 진술된 신빙성 있는 자백에 의해 증명되었거나 이의가 없는 경우일 것을 요한다.
6. 맺으며
언론의 범죄보도와 관련하여서는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과 피의자의 초상권, 인격권 및 피의자 가족의 프라이버시권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양립하고 있다.앞서 외국의 입법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부 국가에서는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제도를 두고 있지만, 기타 범죄자에 대해 얼굴이나 신상공개를 법적으로 규율하는 입법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사법부로부터 최종유죄판결을 받기 이전의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쟁점들을 고려한 입법정책적 판단이라 할 것이다. 피의자의 얼굴 및 신상공개에 관한 입법은 공인과 사인이론을 고려하여 공개에 관한 명확한 기준과 예외적 사유에 대한 법적 논거를 제시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만 할 것이다.이 경우에도 구체적인 요건의 판단기준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없도록 치 밀하고도 신중한 입법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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