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구중궁궐의 권위주의적인 공간으로서 이곳에 있게되면 주눅이 들고 또한 위치가 가려져 있어 사람들에게 공연한 불안감과 의혹을 불러 일으킬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갖는 두려움인것이다.

청와대라는 명칭이 어떻게 해서 사용하게 되었는지와 아울러 청와대의 자리가 풍수지리학상으로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고찰과 함께 청와대의 역사를 개략적이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청와대의 자리는 태조 이성계가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개경에 새 수도를 건설하기 위해 현재의 청와대 아래에 위치한 곳에 정도전으로 하여금 궁궐짓는 일을 시작하게 했고, 드디어 태조 4년에 궁을 완성했는 데 이것이 경복궁이다. 그리고 세종 8년에 경복궁에 후원을 조성했는데 이곳이 청와대 자리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경복궁과 후원인 청와대 일대는 페허가 되었다. 이러한 상태로 270년간 방치되었다가 고종 2년인 1865년에 대원군의 노력으로 중건되었다. 그리고 청와대 일대에 경무대(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장의 기능)를 세웠다. 그후 일제 때 총독부 자리로 경복궁내에 10년의 공사끝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웠다.

이후 1926년에 총독관저를 경복궁보다 지대가 높은 경무대 즉 현 청와대 자리에 세웠다. 이는 북쪽의 높은곳에 관저를 지으면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을 눌러버릴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즉 풍수상 용맥(龍脈)에 해당하는 자리를 끊어 국운을 완전히 끊어버리겠다는 속셈이었다.

당시 총독관저 물색에 내 몰렸던 조선의 풍수장이들은 고의적으로 용맥에서 약간 벗어난 위치에 자리를 잡아주었다고 한다. 즉 일본의 만행을 도저히 볼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했다는 데 그 때문인지 조선총독을 지낸 자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거처한 역대 대통령까지 불행한 말년을 맞는다고 풍수가들은 말하고 있다.

1939년에 일본총독 미나미는 새로 지은 이 총독부 관저를 조선의 옛 명칭인 경무대로 부르며 기거했다. 그리고 1942년에 8대 총독인 고니소가가 1944년까지 이 곳에서 지냈다. 그리고 1944년 마지막 총독인 아베가1945년 12월 중순까지 이곳에서 지냈고, 1945년 8월 15일 해방으로 미군정에 의한 통치가 시작됐고, 통수권자인 미극동군 사령부소속 14군단 사령관 하지 중장이 12월 중순부터 이곳을 거처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윤보선 대통령)

이후 1960년 8월 윤보선이 제 2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이 때부터 경무대라는 명칭은 국민의 원성을 샀기 때문에 이름을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리고 서울시사편찬위원이었던 김영상씨는 윤보선 대통령의 간청에 의해 두가지 이름을 제시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화령대(和寧臺)이고 또 하나가 청와대(靑瓦臺)였다. 화령이라는 이름은 조선 창건시 태조가 조선과 화령이라는 이름을 명나라에 제시해 둘중 좋은것을 골라달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이었다. 청와대라는 이름은 관저의 기와가 평화를 상징하는 푸른 빛깔이기 때문이라는 것에 착안한 것이었다.

학창시절 고고학을 전공한 윤보선은 청기와는 우리고유의 문화재인 만큼 고유한 전통의 집이라는 뜻에서 청와대를 채택했다. 미국의 화이트하우스와 대조적인 블루 하우스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 터는 북악산에서 청와대를 거쳐 경복궁 근정전과 광화문을 연결하는 용맥(龍脈)의 중심통로의 시작점으로, 기를 모아 명당에 공급하는 수문인데 이 곳에 건물을 축조하는 것은 서울의 목을 조르는 행위에 해당된다.

원래 경복궁터는 주산(주산이 과연 북악산이냐 승문원터냐 라는 의견이 대립되고 있기도 하다)과 남대문 그리고 동대문과 서대문을 잇는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 바로 북쪽에 자리하여 높게 건축함으로써 다른 건물들은 절대로 그 보다 높지 못하도록 규제해 절대적 권위의 장소로 배려한 곳이다. 그런곳에 총독관저를 세움으로써 민족의 기상을 꺾는 의미를 부여한 것인데, 거기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곳은 풍수적으로 논한다면 원래 사람이 기거할 터가 아니고 잠시 머물수 있는 곳으로, 즉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터가 아니라 죽은 영혼들이 머무는 곳이거나 신이 거처하는 곳이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곳에 기거했던 조선 총독부의 말로가 매우 좋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한 역대 대통령들이 이 곳에 있을 때 신적인 권위를 지니고 살다가 결국 뒤끝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청와대터와 같은 권위주의적 공간이 아닌 국민과 동일 평면상에 있는 지기가 순화되어 있는 곳으로 대통령 관저를 옮기자는 제안이 대두되어 왔다. 물론 경제적인 부담과 보안상의 어려움도 있으리라 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