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인터뷰를 꺼리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 EG 회장이 최근 우연한 자리에서 <월간중앙>과 만났다. 자신과 관련한 이야기에는 언급을 회피하던 박 회장이 “서울 상암동에 건립 추진 중인 ‘박정희기념관’에 대해서는 유족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박정희 상암동 기념관 왜 대충짓나…위치도 재검토를
요즘 집에 가면 5살 아들 ‘목말’ 태워주느라 바쁘죠”
"기념관으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아예 안 짓는 것이 낫습니다. 현재 구상 중인 아버지 기념관은 기념관인지, 시립도서관인지 실체도 불분명합니다. 유족의 입장에서는 기념관사업이 모양을 못 잡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박지만(52) EG 회장. 그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1월28일 우연히 기자와 동석하게 된 식사자리에서였다. 기자가 이 자리에서 몇 년째 답보 상태에 있는 박 대통령 기념관에 대해 의견을 묻자 그는 처음에는 대꾸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버지 기념관에 대해 유족이 어떤 입장을 밝히는 것이 모양에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현재 차기 대권주자 1순위에 있는 누나(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월간중앙>이 1년 전부터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번번이 거절하던 그였다. 다른 언론과도 그는 수년째 본격적인 인터뷰를 자제하던 상황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식사가 중간 정도 진행될 무렵 그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솔직히 아버지 기념관에 대해서는 답답한 점이 많습니다. 다른 이야기들은 말고, 아버지 기념관 문제만 말하겠습니다.” 박 회장에게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거목 같은 존재였다. 그는 중앙고 1학년 재학 중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죽음을 경험하고, 육군사관학교 3학년(만 21세) 때 아버지마저 급작스럽게 보내야 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했을 당시 “내 방에 올라와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울었다”고 말했던 그는 이후 비운의 대명사로 오랜 세월 고독과 좌절 속에서 방황했다. 그는 13년 전 모 월간지와 인터뷰에서 “사무실에 걸린 아버지 사진만 봐도 가슴이 뜨끔해 일부러 걸어 놓지 않았다.
아버지 뵙기가 부끄러워서였다. 아버지는 여전히 크고 두려운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04년 평생 배필을 만나고 이듬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까지 얻으며 ‘평범한 가장’의 행복을 누리고 있지만, 아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채감이 있는 듯 보였다.
“아버지에 대한 오해 안타깝다”
박정희기념관 추진은 1997년 12월5일 대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구미 생가를 방문해 기념관 건축 공약을 언급한 데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인 1999년 7월19일 명예회장 김대중, 회장 신현확(현재는 김정렴 회장)으로 하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를 발족했다.
2001년 12월31일 기념사업회는 서울시와 상암동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 건립을 위한 부지 사용 협약’을 체결하고 2002년 1월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현재 기념관 건축은 진척이 없는 상태다. 정부에서 2001년 당시 ‘사업 추진이 부진하거나 기념회가 기부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보조금 지원 결정을 전부 또는 일부 취소할 수 있다’는 조건을 붙인 것도 추진이 원활하게 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다. 4년 동안 기념사업회 측의 모금액이 100억원 수준에 그치자 2005년 3월 노무현 정부 때 행자부가 보조금 지급 결정을 취소한 것.
이후 기념사업회는 정부를 상대로 ‘국고보조금취소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2007년 정부의 국고지원금사용금지처분이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났고, 최근 전경련의 추가 모금이 확정돼 사업 추진에 활기를 찾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올 초 사업자 입찰을 거쳐 내년 봄에는 완공을 목표로 기존 계획의 추진을 서두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부지나 기념관의 형태, 위상에 대해 박 회장은 아쉬운 점이 많아 보였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는 기념관 사업을 수수방관하기에는 추진 과정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며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 기념관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각종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업적이 뛰어난 대통령을 묻는 질문에 아버지가 여전히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번듯한 기념관을 짓거나 계획 중인데 왜 역사적 평가를 받는 아버지 기념관이 홀대받는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너무 오래 하신 것은 저도 인정하지만… 아버지가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신 점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추진 중인 기념관은 명칭도 ‘기념관’이 아니라 ‘기념·도서관’으로 하려다 ‘기념도서관’으로 됐고, 20년 후 서울시에 기부체납하도록 돼 있습니다. 결국 이 건물의 위상과 내용은 기념관이 아니라 시립도서관인 것입니다. 위상정립조차 제대로 안 돼 있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입니다.”
- 전시관의 위치나 규모는 어떻습니까?
“상암동 부지에 한번 가보세요. 저도 최근 직접 눈으로 보고 왔는데 더욱 답답해졌습니다. 전체 건평은 5000여m2(1600평)에 달하지만 부대시설이 대부분이고, 도서관 1350m2(450평)에 전시실은 1000여m2(360평)에 불과합니다. 아버지의 방대한 자료 중 중요한 것만이라도 전시할 수 있는 기념관의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협소합니다.
특히 상암동이라는 위치나 성격상 도서관 이용이 인근 주민과 학생들에 국한될 수밖에 없어 효과도 미미할 것이 뻔합니다. 이왕 지을 것이라면 제대로 된 기념관을 짓고 부대시설로 아버지 관련 자료를 집대성한 특색 있는 도서관을 운영해야만 의미도 살고 활용도도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박정희기념관 부지는 상암동의 중심인 DMC단지 남쪽 대로 건너편 월드컵아파트단지 뒷동산(근린공원) 반대편 모서리에 있다. 부지 정면에 대로가 있고, 건너편에는 하천과 난지도 쓰레기동산으로 조성된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 좌우로 서 있다. 그 가운데 쓰레기 침출수의 가스를 이용하는 발전소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정면으로 맞서 있기 때문에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 기념관의 의미를 어디에 두십니까?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많습니다. 새마을운동을 비롯해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만든 여러 가지 노하우를 국가적으로 샘플을 만들어 외국인들도 벤치마킹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단순히 역대 대통령의 기념관을 짓는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가 브랜드로 활용하자는 말입니다. 소홀히 지을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10·26 30주년을 맞은 지난해 국내에서는 박정희 재조명이 활발하게 일었다. 반면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친일인명사전>에 박정희 대통령 이름을 등재해 논란이 일었다. 박 회장이 즉각 취소처분을 냈지만 기각됐다. 이처럼 국내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유족으로서는 이 문제가 불거져나올 때마다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 아버지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 아직도 하고 싶으신 말씀이 많으시겠죠?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다 할 수야 있겠습니까?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1970년대 금지곡도 아버지가 명령해서 지정된 것이 아닙니다. 밑에 있던 사람들이 알아서 만든 거죠. 할 일 많은 대통령이 어떻게 금지곡까지 일일이 지정하며 신경 썼겠어요?
양희은의 <아침이슬>도 금지곡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저는 그 노래를 무척 좋아해 청와대에서 기타를 치며 가끔 부르고는 했어요. 아버지나 어머니가 제게 그 노래는 금지곡이니 부르지 말라고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② "큰 누나는 어릴 때부터 나와 너무 달라'
비운에 간 전직 대통령의 외동아들, 오랜 방황으로 휘청거리던 예전의 박지만은 평범한 가장으로 돌아온 듯했다. 2005년 낳은 아들은 올해 다섯 살 개구쟁이가 됐다. 아들 이야기를 꺼내자 박 회장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핀다.
“퇴근하고 집에만 들어가면 목을 잡고 목말을 태워달라는 아들녀석 때문에 제가 골치가 다 아픕니다. 명절 차례를 지낼 때 한복을 입고 제 옆에서 절을 하는데 장난기가 많아 넙죽 엎드리는 거예요. 아이고… 그럴 때는 참…. 제가 그녀석을 못 말린다니까요.”
영화광이기도 한 그는 아내와 주말에 영화를 보러 다니는 일도 한 가지 낙이다. 최근에는 한국전 참전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남편 역을 맡아 열연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를 감명 깊게 봤다고 했다. 1990년 EG의 대표이사로 취임했으니 올해로 벌써 20년째다. 1987년 설립된 EG(전신 삼양산업)는 포스코의 냉연강판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독점해 전자용 산화철로 만드는 회사다. 수년간 방황하며 자리를 못 잡을 때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이 마련해준 회사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 꾸려왔는데 지난해 회사가 조금 힘들어져 애를 먹었습니다. 박태준 회장님이 회사는 잘 되느냐고 물으셔서 지난해 많이 어렵다고 말씀드렸더니 ‘모두 어려울 때 문 안 닫은 것만 해도 잘한 것’이라고 격려해주시더라고요. 저야 고마울 따름이죠.”
“큰누나는 어릴 때부터 나와 너무 달라”
정국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세종시에 대한 누나의 진심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그는 또 한 차례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입가심으로 나온 맥주 한 잔을 들이켜더니 이윽고 말을 이었다.
“원래 저는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했는데 올 1월1일 누나를 만난 자리에서 ‘설득’당했습니다.(웃음) 제가 볼 때 이명박 대통령과 누나의 생각은 관점이 다릅니다. 이 대통령은 ‘4만 달러 시대로 가야 하니 다른 작은 것(정치적 신뢰, 약속 등)은 보지 말고 일단 빨리 가자’는 것이고, 누나는 ‘4만 달러 시대에 가기는 가야 하지만 좀 돌아보며 지킬 것은 지키며 가자’는 것이죠.
솔직히 아버지도 그러셨지만, 예전에 우리나라가 진짜 힘들 때는 일단 먹고 사는 것이 급했지만, 이제는 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고속성장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성장하는 것은 좋지만 약속도 지키고, 신의도 지켜 가면서 질적인 국가 발전을 위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 누나의 의견이죠. 저도 누나의 말을 듣다 보니 수긍이 가더라고요.”
박 회장에게 큰누나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어릴 때 둘째누나와 제가 밖에서 놀고 있으면 큰누나는 방에서 하루 종일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누나는 공부를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싫증나지도 않느냐’고 물으면 ‘재미있잖아’라고 대답해 할 말이 없게 말들고는 했죠.(웃음) 무슨 일이든 맡겨진 것에는 한눈팔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파예요. 고집도 못 말리고요.”
큰누나와 아버지의 닮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간략한 답변이 돌아왔다.
“애국심이죠. 그 두 양반은 애국심 빼면 설명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둘째누나 박근령 씨의 남편인 신동욱 씨와 육영재단을 둘러싸고 나오는 잡음에 대해 묻자 박 회장은 이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애당초 어린이재단사업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맡고 싶지도 않아요. 단, 어머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이니 잘 운영되기를 바랄 뿐인데 자꾸 제가 연루돼 무슨 음모를 꾸민다는 말을 그쪽에서 퍼뜨리고 있으니 참….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식사자리는 2시간 동안 이어진 후 끝났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박 회장은 밝고 편안해 보였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이 오는 11월 사업 시작 12년 만에 빛을 볼 전망이다.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측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짓는 기념도서관 건물 공사가 마무리 단계"라며 "조경(造景) 등 남은 공정을 끝내고 11월 15일 개관할 예정"이라고 1일 밝혔다.
이번에 문을 여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공식 명칭은 '박정희기념·도서관'이다. 연면적 5260㎡에 3층 규모. 마포구 상암동 상암산 부근에 들어서며 1층은 전시실, 2층은 전시실과 일반 열람실, 3층은 특별자료 열람실로 꾸민다. 박 전 대통령 관련 각종 사료와 전자도서관, 중점 7대 분야 시책, 연도별 공적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오는 11월 완공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기념도서관의 모습. 박정희기념도서관 건설 사업은 1999년 시작됐으나 소송 등으로 공사가 지연되다 12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됐다.
이번 박정희 기념관은 1999년 7월 발족한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에서 맡아 지금에 이르렀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역사와의 화해' 차원에서 공약한 게 결실을 본 것. 김 전 대통령이 1999년부터 3년간 국고보조금 208억원을 지원하면서 구체화했다. 기념사업회는 국고보조금에 국민 모금 500억원을 더해 사업을 진행하려 했으나 모금 실적이 당초 계획의 20.6%인 103억여원에 그치자 어려움에 빠졌다. 모금도 대부분 공기업과 경제 단체에서 걷어 '국민 모금'이란 취지가 퇴색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2005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기부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보조금 교부 결정을 전부 혹은 일부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이를 회수하려 들었고 기념사업회측이 이에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4년간 법정 소송 끝에 대법원은 2009년 4월 기념사업회측 손을 들어줬고 중단됐던 공사는 2010년 3월 재개됐다. 사업 부진에 따른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과정에서 2010년 5월 박 전 대통령 아들 박지만씨 등이 '기념사업회측이 국민 동의 없이 기념도서관을 짓겠다며 사업 내용을 변경했고, 기념관이 상암동 쓰레기매립장 근처'라는 이유로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기각되기도 했다.
현재 기념관 외관 공사는 거의 끝났고 내부 마감 공사를 하는 중이다. 기념사업회측은 "그동안 민간 기부금이 많이 들어와 500억원을 채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기념사업회측에 부지(14만8930㎡)를 무상 임대하는 대신 공공 성격이 강한 도서관으로 지어 달라고 요구했고, 10년 이상 기념사업회가 운영하고 건물을 시에 기부채납하도록 했다. 기념사업회측은 박정희 대통령 전시사업 외에 학술 세미나 등 연구사업도 지원할 방침이다. 기념사업회측은 "아직 구체적인 운영 계획이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 '박정희기념도서관' 땅 무상 제공한 市 태도 바꿔 "국유지로 교환" 정부에 요청출처
2012.08.23
서울시 - "무상임대 하기로 했지만 내부서 타당성 논의 일어"
행안부 - "건물 200억 들여 지어줘… 정부 역할은 끝난 것"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지난 2월 문을 연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이 운영을 둘러싸고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기념도서관 부지를 무상 제공했던 서울시는 태도를 바꿔 "국유지와 교환해줄 수 없느냐"고 정부에 요청하면서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손을 떼려는 분위기다. 기념관과 함께 있는 공공도서관 운영비를 둘러싸고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와 서울시 갈등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행정안전부에 "기념도서관 부지를 다른 국유지와 교환해줄 수 없느냐"고 요청했다. 당초 서울시는 2001년 기념사업회 측과 협약을 하면서 부지(9275㎡)를 무상 제공하고, 사업비는 기념사업회에서 정부 지원과 모금으로 조달하며, 건물은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도록 한 바 있다.
그런데 서울시가 올 들어 부지 무상 제공 방침을 바꿔 국유지와 교환해달라는 요청을 거듭 한 것이다. 행안부가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5월에는 정식 공문까지 다시 보냈다.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동 무상 임대 논란이 불거져 시유지를 전직 대통령 예우를 위해 무상으로 내주는 게 맞느냐는 내부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는 "기념도서관 운영은 이제 기념사업회와 서울시가 협의해야 할 부분만 남았다"며 "기념관 건립에 정부 예산 200억원이 들어갔는데 그걸로 역할이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개관한 박정희대통령기념관 내부 모습
이 때문에 기념사업회 측이 지난 2월 서울시에 기부채납을 신청했지만 시는 6개월째 결정을 미루고 있다. 시의회에 상정해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 망설이고 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서울시가 기부채납을 시의회에 상정하면 기념도서관에 비판적인 민주통합당 시의원들이 반대할까 봐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 운영비 부담도 문제다. 현재 기념도서관은 1·2층이 기념관, 3·4층이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지역 주민을 위한 공공도서관 용도로 지난 6월 문을 열기로 했지만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기념사업회 측이 서울시에 도서관 운영비를 요구하며 개관을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시립도서관 수준의 장서와 최소 10여명의 사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운영비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일단 국유지 교환 문제가 해결돼야 다음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