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6일은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여단(UDT/SEAL)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 호에 기습 침투하여 인질범들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선원과 선박을 안전하게 구한 ‘아덴만 여명 작전’이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해외에서 발생한 인질을 국군 단독으로 구출한 최초의 작전으로 기록되면서 우리나라 특수전부대의 능력을 전 세계에 입증했다.
비록 1차 작전이 실패하면서 3명의 장병이 부상을 당했고 2차 작전 도중 석해균 선장이 총상을 입는 불행이 있기도 했지만 신속한 후속 구호조치로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많은 선원들이 각종 화기로 무장한 인질범들에게 잡혀 있는 가운데서 벌인 상당히 위험한 작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우려를 일거에 불식시키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납치 된 삼호주얼리호 선체로 진입 준비 중인 해군 특수부대 요원들. 이들은 MP5A5와 MP5SD6로 무장하였다.
그러면서 특수전부대의 각종 모습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개되었는데, 이때 대원들이 사용한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 검은색 총도 자연스럽게 노출되었다. 독일의 헤클러 앤 코흐(Heckler & Koch) 사가 제작한 MP5 기관단총인데, 특수전부대원들이 사용하였다면 그 만큼 뛰어난 총임을 짐작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총기 역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이룬 기관단총으로 유명하다.
기관단총에게 부족했던 것
근접전에서 신속히 적을 제압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기관단총은 휴대성과 연사력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졌다. 연사 시 발생하는 반동을 잡기 위해 대부분의 기관단총들은 주로 권총탄을 사용하는데, 사거리가 짧고 화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상대가 방탄 장비를 착용하였을 경우에 특히 더하다.
이와 더불어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치명적인 약점이다. 대개 기관단총은 총의 무게를 줄이고 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해 주로 오픈볼트 방식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빠른 연사가 가능하지만 정확도는 어쩔 수 없이 형편없게 되었다. 그래서 목표물을 초탄에 제압하는 행위는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여겨질 정도여서 난사하면서 목표점을 잡는 방식으로 사격을 한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싸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면 그다지 문제가 없지만 피아가 섞여서 교전을 벌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위에서 소개한 인질 구출작전 같은 경우에 정확도가 떨어진다면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휴대가 편리하여야 하고 연사력이 요구되는 특수전부대에게 기관단총은 적을 정확히 조준하여 제거하기에는 상당히 미흡한 무기였다.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다
오랫동안 이러한 단점을 어쩔 수 없는 기관단총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의 개량을 포기했던 것이 일반적인 트렌드였다. 제2차대전 당시까지 사용 목적에 따라 소총, 기관총, 기관단총이 각각 구분되어 있어서 분대나 소대 같은 소부대의 보유 장비조차도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기관단총은 소총과 기관총으로 담당하지 못하는 영역만 책임지면 되었으므로 그 정도의 성능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1960년대 탄생한 MP5는 이러한 기관단총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거에 타파하여 버렸다. 독일의 총기 명가인 헤클러 앤 코흐는 새로운 기관단총 개발에 착수하면서 그 동안 포기하다시피 하였던 정밀함에 초점을 맞추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그들은 기존 오픈볼트 방식으로는 초탄 명중률을 높일 수 없다고 보고 클로즈드 볼트 방식을 채택했다. 더불어 롤러 지연식 블로우백 기술을 사용하여 명중률을 획기적으로 향상했다.
당연히 구조도 복잡해지고 무게도 증가할 우려가 있었지만 이를 기술력으로 상쇄하면서 MP5는 불과 2년 만에 개발이 되어 1966년부터 양산에 돌입했다. 이처럼 신속히 제작될 수 있었던 이유는 1959년 헤클러 앤 코흐가 제작하여 현재도 여러 나라에서 주력 화기로 사용 중인 G3 때문이었다. G3에 사용되어 성능이 입증된 롤러 지연식 블로우백 방식이나 가늠자를 그대로 채택하여 개발 시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전에서 보여준 위력
이렇게 탄생한 MP5는 초탄 명중률이 매우 높아 기관단총으로 조준하여 사격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유효사거리 내라면 스코프 같은 부가장비를 달아 저격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정밀도를 달성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기관단총의 역사에서 혁명적인 일이었다. 더불어 이전 기관단총에 비해 복잡한 구조를 택했음에도 기계적인 안전성이 높아 분당 최대 800발을 무난히 사격할 수 있었다.
최초 HK54라는 이름으로 개발된 MP5는 각종 시험을 통과하여 당국으로부터 정식 제식번호를 부여 받았지만 독일 경찰과 국경경비대에 선별적으로 납품될 수 있었다. 제2차대전 후 기관단총은 정규군의 기본 제식화기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일부에서 특정 용도로만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기관단총과 소총의 장점을 골고루 갖춘 돌격소총의 등장 이후 별도의 탄환을 사용하고 화력도 약한 기관단총은 수요처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다른 종류의 탄을 사용하는 여러 파생형도 제작되었지만 근본적으로 MP5는 기관단총이었다. 따라서 9×19mm탄을 사용하는 모델이 가장 많이 생산되었고 또한 사용 목적에도 가장 적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화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소총용 탄환을 사용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반동이 커지고 명중률이 저하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총의 탄생 이후 반동 제어는 총기 개발자들에게 있어 영원한 숙제라 할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
1977년 10월 17일, 소말리아 모가디슈(Mogadishu) 공항에서 벌어진 루프트한자 항공사 소속 여객기 납치사건은 MP5의 명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당시 MP5를 사용한 독일의 대 테러부대인 GSG-9는 불과 2분 만에 납치범 3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며 86명의 인질을 안전하게 구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인질과 범인들이 섞여있는 좁은 비행기에서 벌어진 작전으로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이와 같은 전과를 올릴 수 있었던 도구가 저격총 같은 정밀함을 발휘한 MP5임이 알려지면서 단숨에 세계 최고의 기관단총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80년 4월 30일 영국의 특수부대인 SAS가 런던 주재 이란 대사관을 점거한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하는데도 사용되면서 MP5는 전 세계의 특수부대, 대 테러부대, 경찰 등이 앞 다퉈 도입하는 품목 1호가 되었다.
그런데 MP5도 등장한 지 어느덧 50년 가까이 되다 보니 최고의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정확도는 뛰어나지만 기관단총 고유의 단점인 화력 부족만은 MP5도 어쩔 수 없어서 뛰어난 성능의 방탄복이 속속 등장함에 따라 제압 능력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FN P90, HK UMP45과 같이 화력이 강화된 경쟁자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최고의 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기관단총이라는 장르가 계속 유효할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MP5의 미래를 불분명하게 하고 있다. 돌격소총은 오랫동안 소총과 기관단총으로 나누어진 보병들의 무기를 단순화 시기면서 기관단총의 영역을 급속히 축소시켜버렸다. 극히 제한적인 분야를 제외하고 어지간한 임무를 돌격소총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게 환경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기관단총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제원(MP5A5 형)
탄약 9×19mm 파라블럼 외 / 작동방식 클로즈드 볼트, 롤러 지연식 블로우백 / 전장 680mm / 중량 3.1kg / 발사속도 분당 800발 / 유효사거리 200m
출처 : 유용원의 군사세계 MP5 기관단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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