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出師表)

()란 한문학 문체의 하나. ()과 함께 임금에게 올리는, 사리를 밝히는 글.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밝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라고 함.

중국 한()나라 때는 에 약간의 형식상의 구별이 있었으나 나중에는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주소(奏疏)에 장·(·() 등의 4종류가 있었는데, 표는 주로 진정을 할 때 올리는 글. 그러나 뒷시대에는 모든 상서(上書)를 표라 하고 태자(太子) 이하에 올리는 글을 계()라고 부르게 됨.

표 중에서는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 승상(국무총리) 제갈량(諸葛亮)출사표(出師表)가 유명. 그리고 출사표라고 하면 바로 이 "제갈량의 출사표"를 말함.

출사표에서 ''는 그런 뜻이고, 그럼 '출사'는 뭘까? ()'출동'의 뜻이고 사()'군대'의 뜻. 그래서 출사표는 군대를 출동시키면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뜻. *Naver 知識人 寫本

◇ 제갈량(诸葛亮)의 출사표(出師表)

출사표를 이야기할 때는 일반적으로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재상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위나라를 토벌하러 떠날 때 임금에게 올린 글을 말한다.

출사표란 신하가 적을 정벌하러 떠나기 전에 황제나 왕에게 올리던 표문(表文)으로 '군대를 일으키며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표란 천자(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말한다. '군대를 일으키며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뜻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촉한의 재상 제갈공명이 위나라를 치고자 하여 촉제(蜀帝) 유선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촉한(蜀漢) 1대 황제 유비(劉備)는 위나라 땅을 수복하지 못하고 죽었으며, ‘반드시 북방을 수복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제갈량은 유비의 유언을 받들어, 군사를 끌고 위나라를 토벌하러 떠나는데, 떠나는 날 아침 촉한의 제 2대 황제 유선(劉禪) 앞에 나아가 바친 글이 출사표라 전해진다.

전투에 자신의 목숨과 나라의 운명을 걸 각오를 한 제갈량이 피를 섞어 쓴 글이라 하여 큰 각오를 하고 어떤 일에 맞서 나서는 것을 출사표를 던진다라고 하는 말이 생겼다.

출사표에는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고, 각 분야의 현명한 신하들을 추천하며, 유선에게 올리는 간곡한 당부의 말이 담겨 있다. ·후 두 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편은 227년 작이고 후편은 228(?)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지(三國志)<제갈량전(諸葛亮傳)>, 문선(文選)등에 수록되어 있다.

제갈량의 나라에 장래에 대한 걱정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 주된 내용을 이루며 진정성이 절절히 담긴 문장으로 후세의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으며 출사표는 진()나라 이밀(李密)이 무제에게 올린 진정표(陳情表), ()나라 사상가 한유가 쓴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과 함께 중국 3대 명문 중 하나로 꼽히며, 예로부터 출사표를 읽고 제갈량의 절절한 감정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다고 하며 무릇 신하된 자로서 이 출사표를 읽고서 울지 않는 자는 충신이 아니라는 말까지 있다.

제갈량(諸葛亮)은 3세기 중국 삼국시대 蜀漢(촉한)의 책사다이름은 량(), 자는 공명(孔明)이고호는 와룡(臥龍)이다이름은 가족만이 부르고 타인은 이름 대신 자를 불렀던 당시 풍습에 따라 '제갈공명'으로 불리웠다본명인 '제갈량'보다 '제갈공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갈량(诸葛亮)

제갈량은 관우 장비에 이어 223년 유비마저 세상을 뜨고난 후, 17세 된 유비의 아들 유선을 황제로 모시고 승상으로서 선제의 유업을 지키는 데 진력했다.

그는 유선에게 위나라를 치겠다는 출사표를 227년부터 두 번에 걸쳐 올렸는데먼저 올린 것을 전출사표(前出師俵), 뒤에 올린 것을 후출사표(後出師俵)라 한다.

전출사표는 이밀의 진정표와 함께 표문의 바이블같은 존재다. 옛말 중에서는 "진정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며, 출사표를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 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명문장이다.

그러나, 후출사표는 후대의 위작이라는 논란 중에 있다. 혹자는 제갈각이 북벌의 타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후출사표를 작성했다고 하지만 아직 확실히 판증이 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위작 의혹이 입증이 되지 않았기에 진짜로 여겨지고 있다.

서경의 이훈편에 기록된 이윤의 표문과 열명편에 나오는 부열의 글 역시 문장이나 내용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출사표이지만 무후의 출사표로 인해 잘 알려지지 못했다.

○ 후출사표(後出師表) 위작설(僞作說)

후출사표는 이전부터 위작설이 나돌았는데, 특히 제갈각이 그 범인으로 꼽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후출사표는 촉의 기록에는 나오지 않고 오의 기록에만 나온다. 배송지도 본전에 없는 이 글을 주석으로 달고 뭔가 석연치 않았는지 '이거 제갈량집에는 없는 얘기인데...'라고 사족을 덧붙였다.

제갈각이 북벌을 준비하면서 반대파들에게 내세운 논지가 후출사표와 비슷하다후출사표는 오의 대흥려 장엄이 기록하였다. 그런데 장엄은 제갈각의 일파였다.

황제에 대한 태도가 제갈량의 다른 언행들과는 사뭇 다르다. 아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유독 질책이 심하다. 유선의 재능이 어쨌든 간에 "한고조만 못하시면서 가만히 계셔선 안 됩니다"라고 황제에게 강하게 질책을 하는 모습은 어색하다.

전출사표(前出師表) 전문(全文) *227년 작

【 出师表 原文 】

先帝创业未半而中道崩殂今天下三分益州疲弊此诚危急存亡之秋也然侍卫之臣不懈于内忠志之士忘身于外者盖追先帝之殊遇欲报之于陛下也诚宜开张圣听以光先帝遗德恢弘志士之气不宜妄自菲薄引喻失义以塞忠谏之路也

宫中府中俱为一体陟罚臧否不宜异同若有作奸犯科及为忠善者宜付有司论其刑赏以昭陛下平明之理不宜偏私使内外异法也

侍中侍郎郭攸之费祎董允等此皆良实志虑忠纯是以先帝简拔以遗陛下愚以为宫中之事事无大小悉以咨之然后施行必能裨补阙漏有所广益

将军向宠性行淑均晓畅军事试用于昔日先帝称之曰能是以众议举宠为督愚以为营中之事悉以咨之必能使行阵和睦优劣得所

亲贤臣远小人此先汉所以兴隆也亲小人远贤臣此后汉所以倾颓也先帝在时每与臣论此事未尝不叹息痛恨于桓灵也侍中尚书长史参军此悉贞良死节之臣愿陛下亲之信之则汉室之隆可计日而待也

臣本布衣躬耕于南阳苟全性命于乱世不求闻达于诸侯先帝不以臣卑鄙猥自枉屈三顾臣于草庐之中咨臣以当世之事由是感激遂许先帝以驱驰后值倾覆受任于败军之际奉命于危难之间尔来二十有一年矣

先帝知臣谨慎故临崩寄臣以大事也受命以来夙夜忧叹恐托付不效以伤先帝之明故五月渡泸深入不毛今南方已定兵甲已足当奖率三军北定中原庶竭驽钝攘除奸凶兴复汉室还于旧都此臣所以报先帝而忠陛下之职分也至于斟酌损益进尽忠言则攸之允之任也

愿陛下托臣以讨贼兴复之效不效则治臣之罪以告先帝之灵若无兴德之言则责攸之允等之慢以彰其咎陛下亦宜自谋以咨诹善道察纳雅言深追先帝遗诏臣不胜受恩感激

今当远离临表涕零不知所言

▲ 227년 제갈량의 전출사표(出師表)

선제(유비)께서 왕업을 시작하신 지 아직 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는데 중도에서 돌아가시고, 지금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리 익주 (益州) 는 오랜 싸움으로 지쳐 있으니이는 진실로 국가가 위급하여 흥하느냐 멸망하느냐 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모시고 지키는 신하들이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충성스런 뜻이 있는 무사들이 밖에서 자기 몸을 잊고서 애쓰는 것은모두가 선제의 특별히 두터웠던 대우를 추모하여 이를 폐하에게 보답하고자 해서입니다

폐하께서는 진실로 성덕을 열고 펴시어, 선제가 남긴 덕을 빛나게 하여 뜻있는 선비들의 의기를 더욱 넓히고 키우셔야 하며, 결코 스스로 덕이 엷고 재주가 없다 단정 내리셔도 아니 되며, 옳지 않은 비유로 의를 잃으셔서, 충성된 간언이 들어오는 길을 막으셔서도 아니 됩니다

궁중과 관원이 모두 일체가 되어야 하니 선과 악을 척벌함을 달리해서는 안될 것이요, 간사한 짓을 하여 죄과를 범하는 자 및 성실하고 선량한 일을 한 자가 있으면 마땅히 담당자에게 맡겨서 그 형벌과 상을 논하여 폐하의 공평하고 분명하신 다스림을 밝혀야 할 것이요, 편벽되고 사사로이 하여 내외로 하여금 법을 달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시중과 시랑인 곽유지·비위·동윤 등은 모두가 선량하고 진실하여 뜻과 사려가 참되고 순수합니다. 그러므로 선제께서 뽑으시어폐하께 남기셨으니 제가 생각건대 궁중의 일은 일에 크고 작음 없이 모두 이들에게 자문하신 연후에 시행하시면 반드시 폐하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넓히고 유익하게 하는 바가 있을 것이요, 장군 상총은 성품과 행위가 착하고 공평하여 군사를 잘 아는지라 예전에 시험 삼아 등용함에 선제께서 그를 칭찬하여 '유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총을 천거하여 지휘관으로 삼았으나 어리석은 신은 생각건대 군영 중의 일은 대소 없이 모두 그에게 물으면 반드시 각 부대들로 하여금 화목할 수 있게 되어 우수한 자와 졸렬한 자가 각각 제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함은 이것이 선한(先漢)이 흥하고 융성한 까닭이요, 소인을 친근히 하고 어진 신하를 멀리함은 이것이 후한(後漢)이 패망한 원인입니다. 선제께서 계실 때에 매사 저와 함께 일을 논의할 적마다 일찍이 후한의 환제와 영제의 일을 탄식하고 몹시 원통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시중·상서·장사·참군은 모두 곧고 어질며 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신하들이오니, 요청하건대 폐하께서는 이들을 가까이 하시고 이들을 믿어 주시면 곧 촉한(則漢)의 황실이 다시 번창 할 날을 헤며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본디 미천한 백성으로 남양에서 몸소 밭 갈며 지내며, 구차히 어지러운 세상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제후에게 알려져서 출세할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선제께선 신을 비천하다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스스로 몸을 낮추시어 세 번이나 신의 초옥 안으로 찾으시어 신에게 당세의 일을 물으시니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를 도와 힘써 일하기로 하니, 그 뒤 선제의 세력이 엎어지고 뒤집히려 할 때 신은 싸움에 진 군사들 틈에서 소임을 맡고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에서 명을 받았습니다.

그 이래로 21년이 됩니다. 선제께서는 신이 삼가고 조심함을 아시는지라 그러므로 돌아가심에 임하여 신에게 큰일을 맡기셨습니다. 명령을 받은 이래로 아침부터 밤까지 신이 우려해 온 것은 그 당부를 들어 드리지 못하여 선제의 밝으심을 다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5월에는 노수를 건너 그 거친 오랑캐 땅 깊이까지 들어갔습니다.

이제 다행히 남방은 이미 평정되었고, 싸움에 쓸 무기며 인마도 넉넉합니다. 마땅히 3군을 격려하고 이끌어 북으로 중원을 정벌해야 하고, 노둔한 힘이나마 다하여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쳐 없애야 하며다시 한의 황실을 일으켜 옛 도읍지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신이 선제께 보답하는 방법이요 폐하게 충성하는 직분인 것입니다.

그 동안 이곳에 남아 나라에 이롭고 해로움을 헤아려 폐하께 충언올리는 것은 곽유지와 비위·동윤의 일이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신에게 역적을 치고 나라를 되살리는 일을 맡겨 주시옵소서. 그리고 신이 만약 제대로 그 일을 해내지 못하면 그 죄를 다스리시고 선제의 영전에 알리옵소서.

만일 폐하의 덕을 흥하게 할 충언이 없으면 곽유지와 비위·동윤을 꾸짖어 그 게으름을 밝히옵소서. 폐하 또한 자주 의논하시어 스스로 그 길로 드시기를 꾀하소서좋은 방도를 자문하시고, 좋은 말을 살펴 받아들여 선제의 남기신 말을 깊이 따르소서. 신은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이제 먼 길을 떠나거니와, 떠남에 즈음하여 표문을 올리려 하니 눈물이 솟아 더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후출사표(後出師表) 전문(全文) *228(?) 작으로 알려짐

【 后出师表 原文 】

先帝虑汉贼不两立,王业不偏安,故托臣以讨贼也以先帝之明,量臣之才,故知臣伐贼,才弱敌强也然不伐贼,王业亦亡惟坐而待亡,孰与伐之?是故托臣而弗疑也臣受命之日,寝不安席,食不甘味;思惟北征,宜先入南:故五月渡泸,深入不毛,并日而食

臣非不自惜也:顾王业不可偏安于蜀都,故冒危难以奉先帝之遗意而议者谓为非计今贼适疲于西,又务于东,兵法乘劳”:此进趋之时也谨陈其事如左: 高帝明并日月,谋臣渊深,然涉险被创,危然后安;今陛下未及高帝,谋臣不如良,而欲以长策取胜,坐定天下:此臣之未解一也

刘繇王朗,各据州郡,论安言计,动引圣人,群疑满腹,众难塞胸;今岁不战,明年不征,使孙策坐大,遂并江东:此臣之未解二也

曹操智计,殊绝于人,其用兵也,仿怫孙,然困于南阳,险于乌巢,危于祁连,逼于黎阳,几败北山,殆死潼关,然后伪定一时耳;况臣才弱,而欲以不危而定之:此臣之未解三也曹操五攻昌霸不下,四越巢湖不成,任用李服而李服图之,委任夏侯而夏侯败亡,先帝每称操为能,犹有此失;况臣弩下,何能必胜:此臣之未解四也

自臣到汉中,中间期年耳,然丧赵云阳群马玉阎芝丁立白寿刘合邓铜等,及驱长屯将七十余人,突将无前,丛叟青羌,散骑武骑一千余人,此皆数十年之内,所纠合四方之精锐,非一州之所有;若复数年,则损三分之二也

当何以图敌:此臣之未解五也今民穷兵疲,而事不可息;事不可息,则住与行,劳费正等;而不及今图之,欲以一州之地,与贼持久:此臣之未解六也

夫难平者,事也昔先帝败军于楚,当此时,曹操拊手,谓天下已定然后先帝东连吴,西取巴,举兵北征,夏侯授首:此操之失计,而汉事将成也然后吴更违盟,关羽毁败,秭归蹉跌,曹丕称帝:凡事如是,难可逆见臣鞠躬尽瘁,死而后已;至于成败利钝,非臣之明所能逆睹也

▲ 228년 제갈량의 후출사표(出師表)

선제께서 생각하시기를 한()을 훔친 도적과는 양립할 수 없고, 왕업은 (중국의 한쪽에) 치우쳐서 안전할 수 없음이라, 이리하여 신에게 맡기어 적을 토벌하라 하셨습니다. 선제의 밝음으로 신의 재를 측량하건대 참으로 신이 적을 토벌함이 재주는 약하고 적은 강했습니다.

그러나 적을 토벌하지 않으면 왕업이 역시 망할 것이니 어찌 적을 정벌 하지 않고 오로지 앉아서 망함을 기다리겠습니까? 이리하여 신에게 맡기시고 의심치 않으셨습니다.

신은 명을 받은 날 자도 자리가 편치 않고 먹어도 달지 않았습니다오로지 북정(北征)을 생각하면 마땅히 먼저 남쪽을 들어가야(평정해야) 했기에 오월에 노수()를 건너고 거친땅(不毛) 깊숙이 들어가서 하루를 더불어 밥을 먹으며 (하루 한 끼를 먹으며) 애쓴 것은 신이 스스로를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왕업을 돌아 볼 때 촉도에 치우쳐 안전할 수 없어서 위난을 무릅쓰고 선제의 유의를 받든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따지기 좋아하는 자들은 그게 좋은 계책이 못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적은 서쪽에서 지치고, 또 동에서 바쁘니 병법에 피로함을 타라 하였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크게 밀고 전진할 때입니다.삼가 그 일을 아래와 같이 올립니다.

고제께서는 일월과 더불어 (해와 달처럼) 밝으시고 도모하는 신하가 못과 같이 깊었으나, 위험을 딛고 상처를 입고 위태한 연후에야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폐하는 고제에 미치치 못하고, 모신은 (일을 도모하는 신하인 저는) 장량, 진평 같지 못하건만, (장기적인) 계책으로 승리를 취하려 하며 앉아서 천하를 평정하려고만 하니 이것이 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첫번째 입니다.

유요와 왕랑은 각 주에 웅거하여 평안함을 논하고 계를 말함에는 성인을 들먹였으나 무리의 의심은 배에 가득하고 대중들의 어려움은 가슴만 갑갑하게 하여 금년에도 싸우지 아니하고 명년에도 정벌하지 않다가 손책으로 하여금 자리잡은 곳에서 커지게 하어 마침내 강동을 수병(차지하게) 하고 말았으니 이것이 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두번째입니다.

조조의 지혜와 계교는 사람에서 빼어나서 손자 오자와 방불합니다. 그러나 남양에서 곤경에 빠지고 오소에서 위험에 처하며 기련에서 위태로움을 겪고 여양에서 쫒기고 북산에서 패하고 동관에서 죽을 위험을 겪고난 후에야 거짓으로나마 일시 안정을 취하였습니다하물며 신처럼 재주가 약한 사람이 위험하지 않고 (천하를) 정하려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세번째입니다.

조조는 창패를 다섯 번 공격하고 떨어뜨리지 못했고, 네 번 소호를 건너다가 이루지 못하고 이복을 맡기어 썼던 바 이복이 오히려 뺏아버렸고 하후에게 위임했던 바 하후가 패망하였습니다선제께서 항상 조가 능하다 하셨던 바 오히려 이런 실수가 있었던 바 하물며 신이 둔하고 아래이니 어찌 반드시 이기리오이것이 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네번째입니다.

신이 한중에 이른 이래 한 해가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잃은 바 조운, 양군, 마옥, 염지, 정립, 백수, 유합, 등동과 그 아래 주둔하는 장수 칠십여명을 잃었습니다돌장, 무전, 빈수, 청강, 산기(경갑기병), 무기(중장기병)를 잃은 것도 천여명인바. 이는 모두 수십년동안 여러 지방에서 모은 정예요 어느 한 주에서 얻은 바가 아닙니다만일 수년이 지나면 삼분지 이를 잃을 터이니 어떻게 적을 도모하겠습니까이것이 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다섯번째입니다.

지금 백성들은 궁핍하고 군사들은 지쳐 있습니다. 그러나 할 일을 멈출 수 없는 것이, 머물러 있으나 움직여 나아가나 수고롭고 물자가 드는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입니다그러니 일찍 적을 도모함에 미치지 못할 것인데도 한 주의 땅으로 적과 긴 싸움을 하려 하니 이것이 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여섯번째입니다.

무릇 함부로 잘라 말할 수 없는 게 세상 일입니다. 지난날 선제께서 초() 땅에서 싸움에 지셨을 때 조조는 손뼉을 치며 말하기를 천하는 이미 평정되었다 했습니다그러나 선제는 동으로 오월과 연결하고 서에서 파촉을 취한 뒤 군을 이끌고 북을 정벌하여 하후의 머리를 베었으니, 이는 이는 (조조가) 계책을 잘못 세워 장차 우리 한이 설 수 있게 해준 것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후에 오가 동맹을 위반하여 관우는 싸움에 패하여 죽고 자귀를 잃어 조비는 황제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무릇 일이 이와 같아서 (천기를) 거슬러 헤아려보기가 실로 어렵습니다.

신은 (하늘을) 공경하여 몸을 낮추고 힘을 다 쏟아내어, 죽고 나서야 그 후에 마칠 뿐, 이루고 이루지 못함 이로움과 해로움에 대해 (천기를) 거슬러 내다보는 것에는 밝지 않습니다.

# 삼국지 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