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조선일보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5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기자들이 지켜보는 공개 모두 발언에선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ㅅ'자도 꺼내지 않았다. 비공개로 전환된 이후에야 양국 정상은 사드 배치를 놓고 평행선을 달렸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한·중 정상회담 내용을 전하면서 한·중 관계 복원을 원하는 시 주석 발언에 방점을 두고, 사드를 둘러싼 한·중 간 이견은 크게 부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사드 관련은 회담 내용을 소개한 발표문의 말미에 세 문장으로 짤막하게 언급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한·중 정상회담을 보도하면서 '사드 이견'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방중(訪中)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오전 항저우 시후(西湖) 국빈관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관영 CCTV는 이날 낮 보도에서 시 주석의 한·중 관계 복원 관련 발언을 주목했다. CCTV는 시 주석의 발언 때 이를 메모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과 박 대통령의 발언 때 이를 경청하는 시 주석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줬다. 중국 뉴스 포털들의 기사 제목도 대부분 '시진핑 주석, 박근혜 대통령과 회견'이라고 달았다. '사드 반대'를 제목으로 뽑은 곳은 평소 거친 표현으로 유명한 환구시보(環球時報) 정도였다. 이 매체는 중화 민족주의 성향이 무척 강하다.
중국 외교부와 신화통신은 이날 시 주석이 한·중 관계의 더 큰 발전을 희망하면서 "양국이 긍정적인 부분은 확대하고 부정적인 요인을 통제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은 이를 위해 ▲상대국의 핵심 이익 존중 ▲구동존이(求同存異·공통점을 추구하면서 차이점을 놔두자) 노력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환경 ▲지역 및 국제 무대에서 협력 강화 등을 언급했다. 이는 시 주석이 사드 문제에 대한 양국 간 견해차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나의 넓지 않은 어깨에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북한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지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사드 관련) 한·미·중 간 소통"을 거론한 것은 사드 해법의 숨통을 트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사는 "우리가 '사드는 자주권이기 때문에 논의 불가'라는 입장에서 '미·중과 얘기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중국 측은 긍정적으로 해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드 문제는 지금 단계에서 한·중 간에 매듭을 지을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한·중 간 전략적 소통을 계속해 가면서 우리 입장을 이해시키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사드 문제로 한·중이 공개적으로 충돌해봐야 서로 손해라는 공감대가 있다"며 "중국은 사드 문제로 한국이 미국과 완전히 밀착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고, 우리는 사드 문제로 중국이 경제 보복하는 상황을 피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두 정상이 이날 회담에서 "한·중 관계 발전은 역사적인 대세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한·중 관계를 최악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사드 문제는 한·중 관계를 언제든 뒤흔들 수 있는 '지뢰'가 될 전망이다. 특히 시 주석은 이날 박 대통령에게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말을 던지며 중국이 한국의 독립을 지원했던 역사를 거론했다.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중국의 과거 도움을 잊는 행위라는 뜻을 슬그머니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은연중의 압박'인 셈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G20이라는 잔칫집에 손님(한국)을 모신 중국으로선 손님과 얼굴을 붉힐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중국의 사드 반대 입장은 바뀐 게 없고, 앞으로 한국이 중국을 설득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대놓고 경제 제재 등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중국 체제 특성상 최고 지도자가 '사드 반대'를 공언한 만큼 한·중 관계는 작년 9월 박 대통령이 '톈안먼 망루'에 올랐을 때와는 상당히 다를 것이란 관측이 많다. 외교 소식통은 "우리 기업인이 중국 관료를 만나려 해도 약속이 잡히지 않는 등 한·중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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