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1 강위석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개헌 논의가 또다시 볼륨을 키우고 있다. 1987년 개헌을 통하여 제정된 지금 헌법의 어떤 부분을 고치느냐 하는 것은 지난 약 30년 동안 줄곧 대체로 3가지였다.
그 하나는 내각제로의 개헌이다. 다른 하나는 2원 집정제로 개헌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를 맡고 내치는 국무총리가 담당한다는 것이 2원 집정제의 골자다.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형이다. 마지막 하나는 대통령 임기를 지금의 5년에서 4년으로 줄이는 대신 단임제가 아니라 1회 중임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1차 중임제를 두고 장점이 여러 가지 들먹여지고 있으나 이것이 미국의 현행 제도의 복사품이라는 점만이 두드러져 보인다.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미국 헌법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으나 정치나 경제의 미국 같은 번영은 복사하지 못하고 있다.
일찌감치 1990년의 3당 통합 때에도 내각제 개헌이 밀약되어 있었다. 당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처해 있던 남한 보수 세력의 대연합이라는 명분을 걸었으나 아무리 좋게 봐 주어도 헌법을 희생시켜 보수대연합을 이룬다는 것은 본말(本末)이 전도된 것이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과 김종필이 내건 내각제 개헌에는 이만한 명분조차 없었다. 오직 자기들 사이의 권력 안배를 밀약함으로써 지지자 통합을 유도하고 이를 통하여 정권 획득을 이루어낸, 성공한 술책이었을 뿐이다. 그 후 실제 개헌에는 준비도 의지도 없으면서 개헌 논의는 대선 때 마다 가동되어 헌법과 헌법주의(constitutionalism)에 구정물을 끼얹고 있다.
헌법주의는 개인의 기본권, 즉 개인의 보편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그 제일의(第一義)로 삼는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에서 개인의 기본권에 관한 규정은 권력구조에 관한 규정보다 우월한 규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권력에 관한 규정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의 위치에 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하여 입법·행정·사법이 엄격하게 분리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개헌 논의는 개인의 기본권이 반드시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 선거철의 개헌 논의는 국민 개인의 권리나 자유의 보호나 신장을 위해서가 아닌 권력자의 지대추구(rent seeking)나 권력 자체를 위한 구조개편에 집중된다. 이런 개헌 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에 대한 배반이기도 하다. 법의 지배는 권력을 법아래 묶어두자는 데에 그 훌륭함이 있다. 나의 소견으로는 법의 지배는 인류사회의 진화(進化)가 도달한 하나의 정점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법이란 무엇인가? 공자의 제자인 염구(冉求)는 탁월한 행정가요 용맹스러운 장군이었다. 노나라 권력자인 계씨(季氏)는 염구의 이런 능력을 높이 사서 신하로 중용하였다. 당시 중원의 여러 국가들은 국가주의에 입각한 부국강병책을 추구하였다. 그런 염구가 스승인 공자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씨 정권을 위하여 백성에게 부과하는 조세를 주례(周禮)에 정한 것보다 대폭 올렸다. 주례는 주나라의 예다. 이에 공자는 진노하여 다른 제자들에게 말했다. “염구는 더 이상 우리 무리가 아니다. 너희들은 깃발을 올리고 북을 쳐서 염구를 탄핵하라.”
왜 공자는 염구가 과도한 세금을 백성에게 지운 것을 그다지도 심각하게 여겼을까. 첫째는주례가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예(禮)의 지배’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법의 지배’에서 말하는 법은 공자가 말하는 예와 같은 것이다. 예는 일종의 관습법, 자연법이자 올바른 행동규칙(rule of just conduct)이다. 예는 왕, 제후, 대부(大夫) 등 각 계급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명백하게 정하여 제한하였다. 권력자가 횡포화 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인민의 자유는 그 만큼 보호되었다.
둘째는 공자가 작은 정부를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고대 농업국가에서 인민을 부유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방도는 감세였다. 공자는 자기의 필생 소원이 인민을 부유하게 하는 데 있다고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염구에게 술회한 바 있다.
헌법주의는 법의 지배를 지키기 위하여 성문헌법 제도와 경성 헌법주의를 채택한다. 헌법을 가볍게 고치거나 고치려는 발상을 막기 위해서다. 공자의 숭례(崇禮 ) 정신은 경성 헌법주의의 고대적 표현이다.
공자는 정치의 이상을 예치(禮治)에 두었다. 여기서 예는 법의 지배, 치(治)는 난(亂, chaos)과 대척하는 개념으로서 질서(order)이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식으로 표현하면 예치(禮治)는 ‘법의 지배’가 이루어내는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쯤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주장하는 것은 헌법은 고쳐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 사회는 진화한다. 개인의 자유라는 개념도 변할 수 있다. 사회 진화의 결과, 만일 현행 헌법이 개인의 자유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거나 정부의 권력이 필요 이상으로 비대한 것을 제한하지 못한다면 그런 헌법 조항에는 수정을 가하여야 할 것이다.
개헌의 다른 원인은 법의 평등성(isonomia) 원칙과 관련된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칸트의 말을 빌리면 모든 법은 ‘보편화 가능성 기준(criteria of universalizability)'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은 다음 4 가지로 세분된다. 법은 일반적이어야 하며(즉 어떤 숫자의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하며), 추상적이어야 하며(즉 특정한 행위를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한정된 수의 행동을 사전에 금지하는 것이어야 하며), 간명(簡明)한 것이라야 하며(즉 어떤 특정한 행위가 합법적인가 아닌가를 누구라도 대체로 쉽게 가려낼 수 있어야 하며), 이치에 맞는 것(즉 이성적 담화)일 것을 요구한다.1)
내년 대선을 앞둔 개헌 논의도 역시 권력 구조의 문제로 집중되고 있다. 이 논의의 잔치가 이어지면 자유주의자들은 때를 놓치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작은 정부 원칙과 법의 평등성 원칙에 배치되는 현행 헌법의 여러 조항의 개헌을 주장하고 나서서 개헌 논의의 주도권에 도전해야 할 것이다.
1) Stefan Voigt, “헌법의 권위 살리기”, 에머지 새천년, 1999.11, p95, 중앙일보 새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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