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진 교수 2016.07.08
포이즌 필의 도입이 시급하다
IMF이후 우리나라는 외자유치와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의무공개매수제도 및 외국인 주식취득한도 폐지 등 대부분의 기업경영권 보호장치를 제거함에 따라 국가안보와 우리나라의 국가경제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들마저 외국자본들의 적대적M&A의 대상이 되고 있다. 즉 소버린이 SK그룹을, 에르메스가 삼성물산을, 칼 아이컨과 스틸 파트너스가 연합하여 KT&G에 대하여 적대적 M&A를 시도한 경우를 비롯하여 최근에 발생한 삼성물산과 앨리엇 사태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외국계 자본에 의한 국내 기업에 대한 적대적 기업매수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몇 해 전 법무부는 기업하기 좋은 법제 정비의 일환으로 외국자본에 대한 국내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협을 막기 위한 경영권 방어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기로 하고 상법개정안을 마련하였지만, 국회 입법과정에서 무산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포이즌 필 제도이다. 포이즌 필 제도는 적대적 M&A로 인해 경영권상실 위기에 처한 경영진이 극약처방을 통하여 용이하게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이다.
즉 포이즌 필(poison pill)이라 함은 어느 특정한 기업을 상대로 적대적 M&A의 시도가 있는 경우 그 기업의 주주로 하여금 특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적대적 M&A에 직면한 상황에서 주식가치의 희석화를 통하여 인수시도자(매수자)와 대등하게 교섭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다. 포이즌 필은 “삼킨 후 시간이 지나서부터 독이 퍼지는 알약”을 처방해 주는 것을 이미지화하고 있다. 폐해가 있는 적대적 M&A(“질병”)에 대비한 “약”(pill)을 대상회사가 보통 때부터 복용하다가, 인수시도자가 실제로 대상회사를 매수하여 “삼켰을”때에 그에게 “독”(poison)이 퍼지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포이즌 필은 일반적으로 적대적 인수자가 회사의 주식을 일정한 비율 이상 취득하는 경우에 이사회가 대상회사의 다른 주주들에게 대상회사의 주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인수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하거나, 또는 공개매수자가 대상회사를 흡수 합병하여 존속회사로 남는 경우에 대상회사의 소멸 전에 대상회사의 주주에게 존속회사의 주식을 낮은 가격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적대적 M&A가 시도되는 경우에 당해 주주로 하여금 그 권리를 행사하게 함으로써 적대적 주식취득자가 보유하는 주식의 비율적 가치를 희석시키고, 그 비용부담을 가중시켜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수단이다.
선진국의 포이즌 필에 대한 동향을 보면, 먼저 미국에서의 포이즌 필은 적대적 M&A에 대하여 가장 강력한 방어수단으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에도 2001년 상법개정에 의하여 신주예약권이 도입된 이후, 이를 이용하여 포이즌 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미국의 포이즌 필은 이사회가 주도한다는 점이 특색이지만, 일본의 경우는 주주총회의 관여가 제도적으로 허용되어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종전에 마련되었던 법무부의 상법개정안을 살펴보면 포이즌 필의 남용을 우려하여 그 행사요건을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다.
회사의 가치나 일반주주의 이익을 해치려는 기업의 적대적 매수자의 공격에 대응하여 이에 상응하는 회사의 방어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대상회사와 그 소수파 주주들의 이익을 옹호할 수 있는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포이즌 필은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 각 국에서 인정되고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적합한 제도로서 이를 도입하는 것은 우리기업의 역차별적 족쇄를 풀어주고 동등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논자들은 포이즌 필의 도입 시 무능한 경영진의 교체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으나 포이즌 필은 주주들의 의사에 반하는 기업파괴자가 나타났을 때에만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주주들이 주주총회를 통해 무능한 경영진을 심판하고 교체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포이즌 필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주주의 2/3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주주의 의사에 반하여 도입할 수 없으며, 제3자 배정도 금지되기 때문에 특정주주를 위한 특혜를 부여할 수는 없는 구조이다. 만일 이를 남용할 경우에는 발행절차, 방식 등이 부당하면 주주가 회사를 상대로 금지가처분이나 발행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경영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책임까지 물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즉, 강화된 견제장치가 함께 마련되기 때문에 남용가능성은 없다고 생각된다. 또한 일부에서는 외국인 투자나 M&A 시장의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하나 외국인 투자 중 그린필드형 투자는 경영권방어수단과 전혀 무관하며 우호적 방법에 의한 M&A 투자 역시 방어수단 유무와 무관하기 때문에 방어수단으로 인하여 외국인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이 높은 편임을 감안할 때, 우리기업들은 여전히 적대적 M&A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우리기업들은 경영권불안으로 투자보다는 과도한 자사주 매입이나, 현금 확보 등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므로 경영권 방어수단의 도입필요성은 오히려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이 자사주 매입 등 경영권 보호를 위해 사용되었던 자금을 투자 등 생산적 자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포이즌 필과 같은 방어수단 도입은 적극적 투자환경 조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본다.
기업의 글로벌화에 따라 우리기업들은 주식제도와 관련한 보다 경쟁력 있는 자본조달 수단을 갈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이즌 필’을 비롯한 종류주식의 다양화는 회사의 자금조달과 지배권의 유지, 사업 영역의 확대 등 다양한 경영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포이즌 필 도입의 찬성론자들은 ① 적대적 M&A의 역기능 억제효과, ② 적극적 투자 환경 조성 및 기업성과 향상, ③중소 ․ 중견 기업을 위한 방어수단, ④외국인 투자의 건전성 제고 효과, ⑤적대적 M&A를 위한 외국 투기자본의 차단 효과 등을 들어 이 제도의 도입을 적극 찬성하고 있다.
적대적 M&A의 순기능으로서는 ① 비효율적인 경영진을 보다 효율적인 경영진으로 교체할 수 있고, ② 소액주주도 프리미엄의 형태로 기업지배권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며, ③ 국가 경제적으로는 산업구조조정의 촉진 및 국제경쟁력 제고를 도모할 수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반해 적대적 M&A의 역기능으로서는 ① 경영진이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보다는 단기적인 경영성과에 치중하게 되고, ② 인수회사는 인수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부채가 더 중가하게 되어 경쟁력이 약화되며, ③ 대상회사도 막대한 방어비용을 투입하여야 하는 부담요인이 발생하게 되고, ④ 시장실패의 경우에는 주주, 채권자,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기업의 적절한 방어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분별하고 부적절한 M&A가 성행할 수 있고 우리나라 기업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기업이 경영권 방어를 위하여 투하되는 과다한 방어비용은 투자위축과 이에 따른 실업문제, 장기성장동력의 상실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포이즌 필 제도의 적절한 도입은 적대적 M&A의 역기능을 억제하되 순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코스닥 업체가 신기술을 개발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경쟁업체가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기업이 R&D나 과감한 설비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경영권 안정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기관투자자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경영권 방어수단을 잘 갖춘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들에 비하여 3년, 5년, 10년의 기간 중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하여도 주가상승률이 뛰어 났으며, 수익성, 배당성향, 재무운영 등이 충실하다고 발표했다.
적절한 경영권 방어수단의 도입은 자사주 매입 등 경영권 보호를 위해 사용되었던 자금을 투자 등 생산적인 자금으로 전환할 수 있어 적극적 투자환경 조성에 긍정적 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 포이즌 필의 도입이 시급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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