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15

“광주비엔날레는 세계 미술의 주변부에 있던 아시아를 중심부로 끌어낸 중요한 행사입니다.”

지난 8일 광주광역시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린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내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예술감독인 오쿠이 엔위저가 영상으로 광주비엔날레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세계 미술계를 이끄는 파워맨이 광주비엔날레의 위상을 얘기하는 사이 정작 강연장 옆 광주시립미술관에선 비엔날레를 둘러싼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 시작한 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 걸려던 홍성담 작가의 걸개그림 ‘세월오월’ 때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묘사한 부분이 문제가 됐고, 결국 그림은 걸리지 않았다.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윤범모 책임 큐레이터가 사퇴했고, 13일 참여 작가들이 이 그림이 안 걸리면 작품을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특별전 자체가 무산될 위기다.

특별전이 무산될 경우 가장 큰 책임은 홍 작가에게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유명 민중미술가인 홍 작가는 2012년 박근혜 대선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출산하는 듯한 그림을 전시해 논란을 빚었다. 이런 전력(前歷) 탓에 “창작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미술계 내부에서조차 "예술의 소도(蘇塗) 안에 있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광주시의 책임 또한 못지않다. 광주시는 6일 전시 불허 방침을 밝혔다가 비판 여론에 부딪히자 윤장현 시장이 나서 "비엔날레재단 전문가들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손을 빼는 듯했다. 그런데 그가 말한 비엔날레재단의 이사장은 바로 윤 시장 자신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광주 현지에서 만난 미술계 인사들은 대부분 이번 사태를 윤 시장의 불안정한 정치적 입지 때문으로 해석했다. 6월 지방선거에서 안철수계 인사로 전략 공천을 받아 어렵사리 시장이 된 그로서는 성과를 내려면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다른 단체장이라도 이런 정치적 상황이라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정부 예산을 빌미로 예술을 통제하려다 갈등을 키웠다는 점이다. "광주시 측이 내년 예산으로 중앙정부에 신청한 국비가 이 그림 때문에 삭감되면 곤란하다며 그림 수정을 요구했다"는 윤범모씨의 발언은 이 점을 확인해준다.

사실 소란을 일으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홍 작가의 구태의연한 '미술운동'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 홍 작가의 예견된 도발을 결과적으로 부추긴 꼴이 된 광주시의 모습은 더욱 씁쓸하다. 홍 작가와 윤 시장은 1993년 '광주시민연대'를 결성하면서 연을 맺은 뒤로 함께 시민운동을 해왔다. 그런 20년 지기가 각자의 이해관계 앞에서 등을 돌렸다.

마침 다음 달 5일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본 전시의 주제는 '터전을 불태우라'다. 이미 불씨는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