❶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 1946 2 8일 훗날의 대한민국 지역에서 결성된 우익 계열의 범정당 정치 단체이다약칭하여 독립촉성국민회독촉국민회독촉국민회대촉국 등으로도 불린다.

이승만 계열인 독립촉성중앙협의회 김구 계열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중앙위원회가 신탁통치 반대 운동이라는 공통 분모 하에 통합 결성한 것이다.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에 가장 많은 수의 후보자를 입후보시켜 전체 의석의 27.5% 55석을 확보함으로써 무소속 다음으로 많은 당선자를 내었다.

제헌국회 총선에서 정파 연합 성격의 독촉국민회는 정식 정당이 아니었기 때문에 뚜렷한 정강·정책을 내세우지 않았고 후보들이 개인 자격으로 출마하기로 했으나실제 선거에서는 반탁 운동으로 쌓은 우익 진영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이승만의 후광을 얻기 위해 소속을 밝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초 독촉국민회에 참가했던 김구와 김규식 등 남북협상파는 제헌국회 총선에 불참하였다이후 독촉국민회는 제헌국회에서 제헌헌법을 제정하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단독 정부 수립대한민국을 건국하는데 영향을 주었다하지만 이후 제헌국회에서 당선된 대부분의 의원이 탈당하게 되고 의원직을 유지한 독촉국민회 소속 의원은 1대국회에서 4명만 남게 된다독촉국민회 출신 의원 중 약 21% 12명은 민주국민당으로 당적을 옮기고 곧이어 12명이 일민구락부로 당적을 옮겼다일민구락부는 당초 독촉국민회에서 이적한 의원들이 상당수 있었으나 그들 중 상당수가 대한국민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독촉국민회 출신 의원들이 12명만 남게된다독촉국민회 의원들이 가장 많이 당적을 옮긴 곳은 대한국민당으로 총 45% 25명의 의원들이 이동하였다.

 자유당(自由黨) 1951 12월 17일 대한민국에서 창당된 보수정당이며 대통령 이승만을 당수로 하였으며장택상 · 이범석 · 장면 · 배은희 · 이기붕 · 함태영이갑성백성욱이 주요 간부였다최초 공화민정회(共和民政會) 5개 정치시민단체인 대한청년단국민회 (1945), 한노동조합총연맹농민조합연맹대한부인회 등이 연합하여 출범하였다여기에 한민당 탈당파대한국민당 탈당파그리고 원외 자유당을 창당한 조선민족청년단이 추가적으로 참여하였다. 1951년 이후 제1공화국 기간 중 여당으로 존속하였고, 1960년 이후 해체 위기를 겪었으며 일부는 탈당 민주공화당 신민당 등으로 건너가기도 했다3공화국에서 야당으로 존속하였다.

大韓民國 共和國

더보기

1공화국(1948~1960) 이승만 대통령

2공화국(1960~1961) 이승만 대통령/윤보선 대통령

3공화국(1963~1972) 박정희 대통령

4공화국(1972~1981) 박정희 대통령/최규하 대통령/전두환 대통령

5공화국(1981~1988) 전두환 대통령

6공화국(1988~현재)은 대한민국에서 1987년의 6월 항쟁의 결과로 1987 10 29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핵심으로 하여 여야 합의 아래 개정된 민주적인 헌법 제9호에 의해 성립되어 현재까지 개정없이 지속되고 있는 현행 공화 헌정 체제이다현행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선거로 선출된 박근혜이고국무총리는 황교안이다일각에선 일본의 55년 체제를 본따와 1987년 체제 또는 87년 체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❸ 민주공화당(民主共和黨)은 대한민국의 보수주의권위주의협동조합주의 정당으로1963 2 26 5·16 군사 정변을 주도한 군부 세력이 구 자유당 세력 대한국민당 세력기타 정구영 등 학계 시민사회단체 일부를 흡수하여 창당하였다.

초대 총재에는 정구영당 의장에는 김정렬이 선출되었다. 1963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1980 10 27일 해산될 때까지 17년 동안 대한민국의 집권여당이었으나신군부에 의해 해체되었다대한민국의 최장수 정당이었으며 또한 민주화 시대 이후만 계산하면 한나라당이 최장수다.

3당 합당

❹ 민주정의당(民主正義黨): 당시 대통령 전두환을 초대 총재로 하여 1981 1 15일 창당하였다. 1988 4월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에 패하여 과반수에 못 미치는 의석에 그쳐여소야대 정국을 해결하고자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으로 다시 출범하였다참고로 민정당의 모토는 정의 사회 구현이었다.

신민주공화당(新民主共和黨): 공화당계 정당의 최후 직계 정당으로 1990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에 흡수됐다당 총재와 대통령 후보에 김종필을 지명하고 '민주공화당의 빛나는 이념과 한국국민당의 전통을 계승하여 새로운 근대화를 주도한다'라 하였으며강령으로 자유민주주의 이념자유경제체제농어민과 노동자의 중산계급화 등을 채택했다김종필 총재의 출신지인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에 강력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통일민주당(統一民主黨): 신한민주당의 김영삼이 당시 당 총재 이민우의 개헌 구상에 반발하여 신한민주당을 탈당하고 1987 5 1일 창당하였다. 6월 항쟁을 주도하는 등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였으나김대중과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 실패로 김대중이 탈당하고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뒤이어 1988년 총선에서도 평화민주당에 밀려났다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으로 다시 출범하였다이때 합당에 반대한 잔류파는 따로이 민주당(이른바 꼬마민주당)을 결성하였다.

보수의 분열

❺ 민주자유당(民主自由黨): 1990 2 9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통령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총재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하여 거대 여당으로 탄생하였다. 1992년 김영삼을 후보로 내세워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재집권에 성공하였으나, 1995 6 27일 지방 선거에서 참패하고, 11월과 12월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면서신한국당으로 당 이름을 바꾸었다.

통일국민당(統一國民黨) :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이 대통령 출마를 결심함에 따라 1992 1월 창당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고같은 해 2월 김동길이 창당을 추진하던 새한당을 흡수하여 정식으로 창당되었다정주영의 대통령선거 낙선 후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세무조사를 받고 대통령선거법위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 등의 혐의로 정주영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정주영은 1993 2월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자신이 제공하였던 통일국민당 당사마저 폐쇄하였다.

새한국당(-韓國黨)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존속했던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이었다.

1992년 민주자유당(民主自由黨)내 민정계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이종찬(李鍾贊)이 민주계의 김영삼(金泳三)과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자신을 지지하는 김현욱박철언이영일장경우 등과 함께 1992 10월에 창당했다.

이 후 12 18일에 열린 14대 대선 후보로 이종찬을 추대했으나 좀처럼 오르지 않는 이종찬의 지지율에 박철언김용환 등의 일부 의원들이 통일국민당(統一國民黨)으로 당을 옮기고 이종찬 자신도 12 13일에 국민당 정주영(鄭周永)후보의 지지를 선언한다.

이 후 재보궐선거에서 1석도 얻지 못하는 부진 속에 1995 3월 이기택이 이끄는 민주당(民主黨)과 합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4대 대선(1992.12.18) 이후

❻ 신한국당: 1995 12 6, 3당 합당 체제에서 김종필의 공화계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고일부 민정계가 이탈한 상황에서 재야 세력을 영입하고 김영삼의 민주계를 중심으로 기존의 민주자유당의 당명을 변경함으로써 출범하였다그러나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열린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와 반()이회창의 비주류가 대립하는 등 내분이 심하였고급기야 1997 IMF 환란이라는 국가 위기로 인해 1997 11 21일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자유민주연합: 1995 3 30일에 창당되어 2006 4 7일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이다민주자유당의 계파갈등으로 탈당한 공화계 인사들을 주축으로 창당했다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부터 2001년까지는 공동 집권당이었다당론으로 의원내각제의 실현을 주장했다지역적으로 충청도에 지지기반을 두었다.

❼ 한나라당2006 2 20 자유민주연합과 합당하였다. 2007년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과 당 대표를 지낸 박근혜의 경쟁 끝에 이명박이 대통령 선거 후보로 결정되고,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 낙선된 이회창 정통 보수’ 기치를 들고 한나라당을 탈당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2008 2 25일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공천파동으로 인해 박근혜계는 탈당하여 친박연대를 구성하였다.

국민신당: 1997 10월부터 1998 9월까지 존속했던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이었다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석패한 이인제 당시 경기도지사의 주도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을 총재로이인제를 대통령 후보로 하여 1997 10 10일에 창당했으나, 15대 대선에서 이인제는 3위로 낙선했다. 1998년 지방선거에서 충청남도 논산시장을 당선시키기도 하였지만 2000당시 전일순 논산시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이 무효로 되었다그리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1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1998 9 28이만섭 총재와 이인제 전 대통령후보를 비롯한 7명의 소속 국회의원은 새정치국민회의로충남 청양 태생의 김학원 의원은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면서 소멸되었다

17대 총선 이후

국민중심당: 2006년 충청도에 기반해 창당된 사실상 지역주의정당이다참여정부는 수도권 집중화를 막고 국가균형발전을 꾀하는 정책 하에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내놓았다한나라당은 이 정책에 반대하였는데한나라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충청권 인사들과 심대평 충남지사 및 신국환 의원구 신민주공화당자유민주연합한나라당 입당파를 제외한 국민신당 계열 인사들이 제휴해 2006 1 17일에 창당하였다. 2008 2 12일에 자유선진당에 통합되어 소멸하였다.

미래희망연대: 2007 9 28일 창당한 대한민국의 정당으로초기에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한 선거용 정당이었으나한나라당 계파 간의 갈등으로 친(박근혜 성향의 국회의원들이 다수 입당하면서 성장하였다창당 당시에는 참주인연합(-主人聯合)이었으나 미래한국당(未來韓國黨), 친박연대(親朴連帶등 수 차례의 개명을 하였다이후 2012 2월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과 합당했다.

자유선진당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논란이 일자일부 보수 세력은 정계 은퇴한 이회창을 대안으로 제시하게 된다무소속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이회창은 당선되지 못했으나여당이 될 한나라당을 견제할 정치 세력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창당을 준비한다대선 과정 중 후보 단일화를 이뤄낸 국민중심당의 협조로 2008 2 1일 창당한다그 후이회창 총재와 심대평 대표의 갈등으로 심대평 대표는 탈당하고 이회창 총재는 총재직에서 대표직으로 자리를 바꾼다. 2012 5 29일부터 이인제의 주도 하에 선진통일당으로 당명을 개칭하였다.

국민중심연합: 2010 4 1일에 심대평이 창당한 대한민국의 정당이다자유선진당의 심대평이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당시 대표에 반발하면서 창당한 정당인 만큼 당명은 기존에 심대평이 창당하였던 국민중심당과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였다당사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동 동성빌딩 10층에 있었다. 2010 6 2일 실시된 지방 선거에서 공주 시장공주 시의원 등을 당선시키는 데 그쳐 사실상 심대평의 개인 정당으로 전락하고 만다결국독자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하는데 실패하고 2011 11 15일 다시 자유선진당에 통합되었다.

2011년 재보선 이후

선진통일당: 2012 4 1119대 총선에서 충청남도에서 지역구 3(논산·계룡·금산서산·태안아산), 비례대표 정당투표 득표율 3.2%로 비례대표 2석을 획득했다당은 총선결과를 패배로 보고지도부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일괄 사퇴했다. 2012 4 16일 이인제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2012 5 20이회창 전 대표는 당명 개정 이전에 당을 떠난다고 선언당을 탈당한다고 밝혔다. 5 291차 전당대회를 통해 이인제 비상대책위원장을 대표로국민 공모를 통해 선정된 '선진통일당'으로 당명을 개정했다일부 언론에서 선진통일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이인제 후보측이 당선을 위해 부정을 저질렀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2 8 31충남 아산을 지역구로 하는 이명수 의원과 세종특별시의 시장 유한식이 선진통일당을 탈당새누리당에 입당하였다. 2012 10 25새누리당과의 합당을 선언하였다합당을 의결했을 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식으로 신고하지는 않았다. 11 16새누리당에 흡수합당되어 소멸하였다약 한달간 합당이 지연되었는데일각에서는 이것이 정당 국고 보조금 지급을 노린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❽ 새누리당: 2011 10.26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자 한나라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박근혜를 중심으로 재편된 지도부는 2012 2 13일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었으며상징색을 파랑색에서 빨강색으로 바꾸었다이로써 1997년 이후 15년간 존속해오던 한나라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여파로 지지율이 추락하는 등 2012 총선거에서 패배가 예상되었으나 152석을 얻어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하여 승리하였다하지만 문대성 등 당선자 2명이 당에서 출당되었고 강창희 국회의장 선출로 출당되면서 과반이 붕괴되었다.

2012 11월 선진통일당과 합당함으로써 2000년대 중반 이후 분열되었던 제도권 보수 정당들이 새누리당으로 모두 합당되었다이리하여 일단은 보수 정당들의 분열이 사실상 종식되었고그래서 지금은 대한민국의 유일한 제도권 보수 정당이자 여당이 되었다현재 당대표는 김무성 의원원내대표는 이완구 의원인데 공교롭게도 2013 4.24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던 인물이다.

20대 총선에서 16년만에 여소야대 그리고 대참패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 공천권 문제와 계파간의 갈등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정치 방식에 대해 국민들의 불만은 커졌다심지어 공천를 받지 못한 이재오유승민주호영윤상현권은희류성걸강길부김태환 의원 등은 상향식 공천을 문제삼아 대거 탈당하고 심지어 보건복지부 장관를 역임한 서울 용산구의 진영 의원도 역시 새누리당에서 탈당하며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그리고 송광호박상은조현룡심학봉 의원마저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의석수도 감소되었고 반면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한 조경태 의원은 새누리당에 입당했다원내 의석수도 146석으로 과반이 붕괴되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언론들의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은 120~140석 정도 획득한다는 전망과 함께 수도권에서 야권에게 대참패할 것이 예상되었고 심지어 영남권도 야당무소속 후보에게 자리를 내주는 등 대참패를 예상했다결과는 그대로 충격적인 대참패였다122석를 얻어 원내 과반수 의석 획득에 실패했다특히 서울에는 12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이는 13대 총선 민주정의당이 세운 10석보다 못한 것으로최악의 성적이다그리고 서울에서 전통적 강세 지역인 강남3구에서는 지난 총선에서 7석을 모두 차지했는데 20대 총선에서는 송파구 을송파구 병강남구 을을 더민주 후보에게 내주고 경기도에서 60석 가운데 19석만을 차지하고 인천에서도 4석만을 차지하는데 그쳤다대구에서 수성구 갑은 더민주의 김부겸북구 을은 무소속 홍의락에게 패배하고 수성구 을은 주호영 후보에게 완패했다그나마 경북에서 13석 모두를 석권한 것이 위안이 되었다부산에서 사상구부산진구 갑남구 을사하구 갑연제구북구강서구 갑도 더민주무소속 후보에게 헌납하고 경남에서는 김해시 갑김해시 을양산시 을을 더민주 후보에게창원시 성산구는 정의당 후보에게 패배했다울산도 노동자가 많이 사는 동구와 북구는 통합진보당 출신의 무소속 후보에게 패배했고 울주군에서는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무소속 강길부에게 패배했다하지만 호남권에서는 전남 순천시에서 이정현전북 전주시 을에서 정운천 후보가 당선되면서 새누리당은 호남에 교두보를 확보했다새누리당 지도부는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2016.6.16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무기명 표결을 통해 4.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탈당한 유승민윤상현 의원 등 무소속 의원 7명의 복당을 허용키로 했다이미 복당을 신청한 강길부유승민안상수윤상현 의원 등 4명의 복당은 곧바로 이뤄졌다이 결정에 따라 새누리당 의석수는 122석에서 126으로 늘었다. 122석 더불어민주당을 제치고 원내 1당이 됐다이때까지는 복당 신청서를 내지 않은 주호영장제원이철규 3명의 의원이 뒤이어 23일 복당하면서 의석수는 129으로 늘어 원내 1당의 자리를 유지하게 됐다이로써 지난 총선 과정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됐던 7명 전원이 당으로 돌아오게 됐다

새누리당의 분당으로 바른정당이 창당됨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후 비박계와 친박계가 극심하게 대립하였다. 비박계는 유승민을 비대위 위원장으로 선임할 것을 요구했으나 친박계가 거부하였고, 이에 비박계 의원 35명이 20161227일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같은 보수 정당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새누리당은 2017213일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변경했다.

자유한국당은 2020 9 2일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변경했다.

관련 글 진보정당·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역사 계보(건국 이후 ~ 현재까지의 당명 변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