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균성 교수
1. 머리말
지난 5월 29일 국회는 국회법 제98조의2 제3항을 개정하여 국회 상임위원회가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행정입법을 행정부에 '통보'할 수 있도록 한 제도를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로 변경하였다.
이러한 법 개정이 권력분립의 원칙 등에 반하여 위헌인지 그리고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 필요성 및 방법에 관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검토되고, 국회의장은 수정요구제도를 수정요청제도로 변경하는 중재안을 제시하여 여야 간의 재 타협을 추진하고 있다.
2.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 등의 통제의 필요성
행정입법이 법률에 반하는 경우에는 입법권에 대한 침해를 가져온다. 법률에 반하는 행정입법은 무효라고 보고 있지만, 행정입법의 법률 위반 여부는 명백한 것이 아니고, 행정공무원으로서는 법률 보다는 보다 구체적인 행정입법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위법한 행정입법이 제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법한 행정입법도 미국 등에 비해 매우 제한적으로만 사법기관에 의한 직접적 통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견이 없다.
3.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요구제도의 위헌성
개정 국회법상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요구가 구속력이 있는 것인지에 관하여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법 규정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법 규정의 문언을 중심으로 해석하면서 입법자의 의사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 해석론이다. 이러한 해석론에 따른다면 개정 국회법상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요구규정은 구속력 있는 법 규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통상 '요구'는 상대방의 의사를 구속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또한 개정 국회법상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라는 것도 행정부가 판단하여 적의 처리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처리하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언에 충실한 해석이다. 중앙행정기관이 요구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처벌규정이 없다는 것은 구속력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아니다. 상임위원회의 요구가 구속력이 있는 법 규정이라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포함하여 관련 공무원은 법령준수의무를 부담하므로 처벌규정이 없더라도 그 요구에 따라야 한다.
이와 같이 상임위원회의 요구가 구속력이 있는 것이라면 수정·변경 요구 및 처리 후 보고제도는 헌법상 권력분립의 원칙 및 헌법이 부여한 행정입법권 등을 침해하는 위헌의 소지가 큰 제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행정입법권은 헌법 제75조 및 제95조에 의해 대통령 등에게 부여된 것으로 행정권에 속하는 것이다. 행정권에 대한 국회의 구속력 있는 통제는 권력분립의 문제로 헌법으로 정하여야 할 사항이지 법률로 정할 사항은 아니다.
국회의 수정요구제도가 합헌이라는 주장은 행정입법은 입법이고, 법률에 반하는 행정입법은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입법권이 행정입법을 통제하는 것은 당연히 인정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필요성과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제도의 합헌성은 별개의 문제이다. 행정입법의 성질에 관하여 미국과 프랑스 등의 경우에는 행정입법도 기본적으로 행정작용으로 보고 있다. 행정입법이나 행정처분을 모두 행정절차법의 적용대상으로 하고, 동일한 법리에 따라 행정소송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독일의 경우 행정입법을 규범으로 보고 일반 행정처분과 구별하고 있지만, 행정입법을 법률과 동일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비록 행정입법의 성질을 입법으로 보더라도 권력분립의 관점에서는 행정입법권을 행정권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행정입법권이 입법권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외국에서 행정입법에 대한 사전동의제도 또는 거부제도(legislative veto)가 법률에 의해 인정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사전동의제도보다 통제가 약하다고도 할 수 있는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요구제도는 당연히 법률에 의해 인정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행정입법에 대한 사전동의제도와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요구제도는 그 성질과 내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행정입법에 대한 사전동의제도는 중요한 법규사항을 행정권에게 위임하면서 최종적으로 국회의 결정에 의해 그 효력을 인정하고자 하는 제도로서 행정입법권을 제한하기보다는 행정입법권을 위임하는 과정에서 국회의 입법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사전통제제도이다. 이에 반하여 국회법상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요구제도는 행정입법에 대한 사후적인 통제제도이다.
또한, 법치국가의 원칙, 공무원의 법령준수의무 등에 비추어 행정권은 위법한 행정입법을 개폐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행정입법은 행정권에 속하고 행정부가 최종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국회는 위법한 행정입법의 개폐를 헌법의 근거 없이 또는 권한 있는 사법기관의 판결 없이 요구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4.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요구제도에 대한 대안
국회법상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요구제도가 위헌의 소지가 크다면 헌법에 합치하면서도 타당한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요구제도를 헌법에 합치하는 제도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회의 수정'요구'를 국회의 수정'요청'으로 변경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구는 상대방에게 구속력이 있는 것이지만, '요청'은 그에 대한 응답의무는 있지만 구속력은 없는 것이다. 법치국가의 원칙 등에 비추어 행정권은 위법한 행정입법을 개폐할 의무가 있고, 위법한 행정입법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법률로 국회가 위법한 행정입법을 수정하도록 요청하는 것은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정요구를 수정요청으로 개정함에 따라 수정요청을 받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행정입법의 내용이 위법하다고 판단하면 그에 합당한 처리를 하고 그 처리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개정국회법규정을 변경하여야 할 것이다.
개정 국회법의 문제는 '수정·변경의 요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정·변경 요구의 요건을 '대통령령ㆍ총리령ㆍ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하고 있는데, 이 중 특히 '법률의 취지 또는' 부분은 대통령 등의 행정입법제정에 관한 재량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에 반한다는 것만으로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법률의 취지는 모호한 경우도 적지 않고, 법률의 취지가 복수인 경우도 있고, 입법할 때에는 법률의 취지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치나 그와 충돌하는 이해관계, 현실여건 등을 함께 고려하여 가치와 이해관계의 조정을 통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에 반한다는 것만으로 수정요구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행정입법권자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다만, 수정요구제도를 구속력 없는 수정요청제도로 변경하면 법률의 취지에 반하는 행정입법에 대하여도 그 수정을 요청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국회가 아닌 국회 상임위원회가 직접 수정·변경을 요구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조직법리상 국회의 행정부에 대한 의사표시는 국회의 이름으로 하여야 하고 위원회가 직접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또한 헌법의 위임규정 없이 위원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국회의 입법권한과 지위를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반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입법에 관한 결정은 국회가 하여야 하고 위원회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83년의 차다판결(Chadha Decision)에서 개별 법률에서 행정권에 일정 사항을 위임을 하면서 위임명령이 효력을 갖기 전에 양원 중 한 의회의 승인만을 받도록 규정한 것은 미국 헌법상 양원주의에 반한다고 보고, 의회의 입법거부행위의 성질을 입법행위로 보면서 대통령의 입법행위에 대한 거부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결하였다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회법개정안 중 수정요구를 수정요청으로 변경하면 이러한 문제도 해결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국회의장의 중재안인 수정요청제도가 가장 타당한 해결책으로 보인다. 이 중재안으로 여야의 갈등과 국회와 정부의 갈등이 봉합되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행정입법에 대한 사전통제제도를 포함하여 우리의 현실에 맞는 행정입법통제제도의 모색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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